타인의 심연, 타인의 상처
세이프하우스-C의 내부는 낡은 고철과 기름 찌꺼기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더스트 타운 지하 깊숙한 곳, 버려진 고철 폐기장 한구석에 교묘하게 위장된 이 초소형 안전가옥은 성인 세 명이 겨우 몸을 웅크릴 수 있을 정도로 협소했다. 차가운 철제 벽면을 타고 스며드는 지하의 습기가 붉은 사막의 뜨거운 열기와 충돌하며 미지근한 서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정신 차려라, 설아! 설아야!”
귀가 먹먹해지는 이명 너머로 거칠고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아의 외삼촌이자 저항군의 수석 정비사인 강 박사였다. 그의 한쪽 다리를 대신하고 있는 구식 기계 의수가 바닥의 철판을 긁으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강 박사는 도수가 높은 안경 너머로 충혈된 눈을 크게 뜨고는, 설아의 이마에 수건을 얹었다. 수건은 닿자마자 그녀의 고열 때문에 뜨거운 김을 내뿜었다.
“안 되겠어. 체온이 섭씨 41도를 넘었어. 왼쪽 쇄골의 자창도 문제지만, 이 가슴팍에 박힌 장치가…….”
강 박사의 시선이 설아의 가슴 정중앙으로 향했다. 가죽 슈트의 찢어진 틈새 너머로, 살갗 깊숙이 박힌 고대 유물 ‘양자 생명 동조기’가 검붉은 빛과 푸른빛을 거칠게 뿜어내며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설아의 맥박이 뛸 때마다 동조기 표면의 기하학적 회로가 맥동했고, 그때마다 그녀의 전신이 발작하듯 가늘게 떨렸다.
“빌어먹을 제국 놈들의 고문 침에 찔린 신경망이 완전히 폭주하고 있어. 이대로 두면 뇌 신경이 먼저 타버릴 거야!”
강 박사는 떨리는 손으로 군용 신경 안정제가 담긴 일회용 주사기를 들었다. 그는 설아의 팔뚝에 바늘을 꽂으려 했다. 하지만 주삿바늘이 그녀의 피부에 닿기도 전이었다.
파지직—!
설아의 가슴팍에서 거친 푸른색 양자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강렬한 전자기 역장이 주사기를 밀쳐냈고, 바늘은 허공에서 힘없이 꺾여 나갔다. 동조기 내부의 고대 보안 시스템이 외부에서 유입되는 이질적인 화학 물질을 기계적으로 거부한 것이었다.
“이런 미친…… 약물 주입도 거부하는 건가? 이 장치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생체 역장을 형성하고 있어!”
강 박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망했다. 설아의 의식은 그 비명 같은 외침을 뒤로한 채, 끝없는 심연 속으로 빠르게 가라앉고 있었다.
차가운 스팀과 비린 피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하지만 그것은 세이프하우스-C의 냄새가 아니었다. 훨씬 더 거대하고, 지독하리만치 차갑고 살균된 냄새. 눈을 뜨자, 붉은 사막의 하늘 대신 끝없이 펼쳐진 은빛 격벽과 수십 개의 홀로그램 모니터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여기는……?’
설아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거친 굳은살이 박인 전사의 손이 아니었다. 나노 섬유로 짜인 정교한 제국 장교복 소매 아래로, 미세한 떨림조차 허용하지 않는 단단하고 기계화된 손가락이 보였다.
그것은 레이븐의 손이었다.
‘동조 3단계: 기억 전이.’
의지가 개입할 틈도 없이, 동조기의 과부하가 경계를 허물어뜨렸다. 레이븐의 무의식과 뇌세포 깊은 곳에 각인되어 있던 가장 어둡고 처절한 기억의 해일이 설아의 정신을 사정없이 잠식하기 시작했다.
시야가 왜곡되며 시간의 축이 뒤틀렸다. 설아는 어느새 열 살 남짓한 소년의 몸을 한 채, 하얗게 빛나는 티타늄 수술대 위에 묶여 있었다. 천장의 무자비한 수술용 광원들이 눈을 멀게 할 것처럼 빛나고 있었고, 사방은 온통 차가운 메탈 질감의 벽으로 막혀 있었다. 움직이려 했지만, 사지를 결박한 강철 구속구는 살을 파고들 뿐이었다.
“울지 마라, 레이븐. 발렌타인 가문의 후계자에게 눈물은 사치다.”
머리맡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고개를 돌리자, 엄격하게 빗어 넘긴 백발과 제국 대귀족의 위엄이 서린 검은 벨벳 로브를 입은 사내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발렌타인 공작가의 가주이자 레이븐의 양아버지, 에드워드 발렌타인이었다. 그의 푸른 눈동자에는 자식을 향한 온기 따위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완벽한 전쟁 병기를 품평하는 정치가의 냉혹함만이 서려 있을 뿐이었다.
“자가 재생 나노 주입을 시작해라. 강도를 임계점의 120%까지 끌어올려.”
에드워드의 냉혹한 명령과 함께, 수술대 옆의 기계 팔들이 소년의 척추와 심장 부근으로 기다란 나노 주입 침을 내리꽂았다.
푸슉—!
“아아아악—!”
소년의 목구멍을 찢고 터져 나온 비명은 그대로 설아의 영혼을 관통했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수억 개의 나노 기계들이 살점을 뜯어내고 뼈를 깎아내며 강제로 기계적인 회로를 이식하는 고통. 그것은 불에 달군 쇳물을 온몸의 피 대신 주입하는 듯한 지옥이었다.
옆 수술대에서도 격렬한 비명과 발작이 일어나고 있었다. 레이븐과 똑같은 얼굴을 한, 하지만 전신에 폭주하는 붉은 나노 회로가 돋아나 피를 흘리고 있는 소년—복제 형제인 ‘데스-04’였다.
“각하! 데스-04의 나노 코어가 폭주합니다! 세포 붕괴율이 90%를 넘었습니다!”
연구원들이 소리쳤지만, 에드워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실패작이군. 폐기하고 레이븐에게 주입되는 나노 밀도를 더 높여라.”
“살…… 살아남아, 레이븐…….”
데스-04가 피눈물을 흘리며 소년 레이븐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의 손끝이 레이븐의 뺨에 닿기도 전에, 폭주한 나노 기계들이 소년의 신체를 안쪽에서부터 분해하기 시작했다. 살점이 회색 나노 먼지로 변하며 허공으로 흩어졌고, 이내 수술대 위에는 그을린 은빛 인식표 조각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데스……! 데스-04!”
소년 레이븐의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거대한 죄책감,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비참함, 그리고 양아버지를 향한 뼈에 사무치는 증오와 공포가 설아의 뇌리로 실시간 전송되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생생하고 처절한 상처였다. 제국의 대장군, 냉혹한 침략자, 고향 카이로스를 파괴한 원수라 믿었던 레이븐의 본질은, 결국 제국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만들어낸 가장 비참하고 고독한 살인 인형에 불과했다는 진실.
‘이 자가…… 내가 그토록 죽이고 싶어 했던 괴물의 진짜 얼굴인가?’
설아의 마음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맹목적인 증오의 벽에 기묘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원수를 향한 타오르는 분노의 밑바닥에, 같은 상처를 공유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원초적인 연민이 싹트고 있었다. 그 균열이 가져다주는 정신적 혼란은 육체적 고통보다 더 괴로웠다.
“설아! 눈을 떠! 네 기억 속으로 도망치지 마!”
그때, 강 박사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현실의 차가운 감각이 설아의 뺨을 때렸다. 설아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눈을 떴다. 세이프하우스-C의 희미한 주황색 비상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그녀의 뺨에는 눈물인지 식은땀인지 모를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강 박사는 설아의 어머니이자 고대 양자 문명 연구가였던 한지원의 낡은 연구 일지를 펼쳐 쥐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일지의 한 구절을 다급하게 가리켰다.
“여기 봐라! 네 어머니가 남긴 일지에 적혀 있어. ‘동조가 깊어질수록 두 지성체의 자아가 하나로 융합되며, 동조율이 90%를 초과하면 뇌 신경망이 완전히 결합하여 각자의 자아를 잃고 소멸한다’고!”
[계승자여, 경고합니다.]
설아의 시야 속에서 작은 은빛 성운 모양의 구체가 반짝였다. 동조기 내부에 상주하는 고대 인공지능, AI 에테르의 차가운 목소리가 그녀의 뇌리에 직접 울렸다.
[현재 동조율은 54%까지 치솟았습니다. 상대방의 기억과 감정을 이성적으로 격리하지 않으면, 당신의 자아는 제국 대장군의 군사적 자아에 잠식되어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당신의 유년 시절 기억이 지워지고 있습니다.]
에테르의 말대로였다. 설아는 순간 자신의 고향 집 마당의 풍경이, 어머니의 목소리가 안개 너머로 사라지듯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자리를 레이븐의 전술 교리와 제국 황실의 차가운 복도 풍경이 빠르게 채워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자신은 민설아가 아닌, 레이븐의 그림자가 될 터였다.
‘안 돼…….’
설아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떨리는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목덜미로 가져갔. 손가락 끝에 닿은 것은 그을린 은빛 군인 인식표였다. 플라즈마 폭격으로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질식사했던 남동생 민우의 유품.
설아는 손바닥이 찢어질 것처럼 인식표를 꽉 움켜쥐었다. 차가운 금속 모서리가 상처 입은 살을 파고들며 날카로운 통증을 선사했다. 그 물리적인 통각이, 그리고 손바닥을 타고 흐르는 피의 감각이 그녀의 흩어지던 자아를 현실로 강하게 잡아끌었다.
‘나는 민설아다. 카이로스의 최후의 저항군 전사. 제국에 의해 동생을 잃고, 고향을 잃은 복수의 화신이다.’
설아는 레이븐의 비극적인 과거 기억들을 자신의 뇌리에서 강제로 분리해 냈다. 동정심과 연민은 사치였다. 그가 아무리 비참한 피해자일지라도, 결국 제국의 대장군으로서 카이로스를 짓밟은 칼날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기억과 고통을 슬픔이 아닌, 향후 그를 이용하고 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한 ‘전술 데이터’로 분류하여 머릿속 깊은 곳의 격벽 너머로 밀어 넣었다.
스스스—.
정신적 장벽이 구축되자 가슴팍의 검붉은 발광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차분한 은청색 주파수로 돌아왔다. 폭주하던 고열이 내리며 설아의 호흡이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위기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경고.]
AI 에테르의 목소리가 한층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동조기의 물리적 에너지가 8% 이하로 고갈되었습니다. 3단계 기억 전이의 반동으로 인해 심장 코어의 전력이 급격히 소모되었습니다. 에너지를 안정시킬 촉매인 ‘아크라이트’를 즉각 주입하지 않으면, 10분 이내에 당신의 심장 박동이 정지할 것입니다.]
설아의 가슴팍 동조기에서 푸른 스파크가 다시 미세하게 튀며, 그녀의 허파를 쥐어짜는 듯한 급격한 호흡 곤란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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