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쥔 인질극
유리 사막 ‘글라스 듄스’의 대기는 숨을 쉴 때마다 허파를 태워버릴 것처럼 뜨거웠다. 제국의 무자비한 플라즈마 폭격으로 모래가 녹아내려 형성된 거대한 유리 결정체들은 지는 노을빛을 반사하며 잔인할 정도로 아름다운 붉은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지상으로 탈출하자마자 마주한 것은 그 눈이 멀 것 같은 반사광보다 더 차갑고 위압적인 제국의 철벽이었다.
“포위망을 좁혀라. 생체 반응 추적기에 걸렸다. 도망칠 곳은 없다.”
기계음으로 변조된 차가운 목소리가 사막의 정적을 깨뜨렸다.
그들의 가슴 장갑판에 새겨진 까마귀 문양. 제국 제3함대 대장군 레이븐의 직속 최정예 경호대, ‘검은 까마귀’ 요원들이었다. 전신을 감싼 무광 검은색 특수 슈트는 사막의 뜨거운 열기를 완벽히 차단하고 있었고, 그들의 헬멧 바이저 너머로 흐르는 푸른색 조준선들이 일제히 민설아의 심장을 조준하고 있었다.
요원들의 중심에서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온 사내, 경호대장 크로우-3의 위압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의 검은 슈트 어깨에는 대장군 친위대임을 증명하는 은빛 훈장이 붉은 노을빛 아래에서 번쩍이고 있었다.
“설아, 내 뒤로 물러서!”
설아의 오랜 전우이자 저항군의 돌격대장 강철이 거대한 체구를 앞으로 내밀며 가로막았다. 그의 손에는 붉은 모래 먼지가 묻은 개조형 ‘헤비 진동 대검’이 쥐어져 있었다. 칼날이 고주파로 진동하며 웅웅거리는 묵직한 소음을 냈지만, 상대는 제국 최정예 살인 병기들이었다.
“비개조 반란군 잔당이군. 무의미한 저항이다.”
크로우-3가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순간, 그의 신체가 기이할 정도의 속도로 가속되었다. 제국 고위 장교들에게만 허용되는 나노 개조의 힘이었다.
슈웅—!
강철이 대검을 휘두르며 베어 가기도 전에, 크로우-3는 이미 그의 사각지대로 파고들어 있었다.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크로우-3의 기계화된 오른발이 강철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단 한 방의 발차기였다. 강철의 거구는 허공으로 붕 떴다가 유리 모래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대검은 멀리 튕겨 나가 유리 결정체에 부딪히며 쨍그랑 소리를 냈다.
“강철……!”
설아가 소리쳤지만, 이미 두 명의 요원이 강철의 양팔을 꺾어 지면에 무자비하게 짓눌렀다. 강철은 이를 악물며 신음을 흘렸지만, 제국군의 완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고개를 처박았다.
크로우-3가 천천히 설아를 향해 걸어왔다. 그의 양손에는 살상용 플라즈마 화기 대신, 푸른색 전류가 불꽃을 튀기며 흐르는 비살상 ‘전기 충격 그물’ 발사기가 들려 있었다.
그 순간, 설아의 날카로운 전술적 두뇌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상해.’
그들은 제국 황실의 명령을 수행하는 가장 잔인한 집단이다. 반란군을 발견하면 즉각 즉결 처형하는 것이 그들의 기본 교리였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움직임은 지독하리만치 조심스러웠다. 총구를 겨누고는 있지만, 결코 격발하지 않았다. 심지어 강철을 제압할 때도 단번에 목을 벨 수 있는 진동 검을 두고 굳이 육탄전으로 끝냈다. 무엇보다 설아 자신을 향해 전개하는 무기는 살상용이 아닌 제압용 그물이었다.
‘놈들은 나를 죽이고 싶지 않은 게 아니야. 정확히는…… 나를 다치게 해서는 안 되는 거다.’
설아는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얇은 슈트 가죽 너머로 양자 생명 동조기가 마치 심장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궤도 위 기함에서 자신의 심장을 쥐어짜며 괴로워하던 적장 레이븐의 일그러진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원수의 목숨이 나의 목숨과 강제로 연동되어 있다. 내가 죽으면 그도 죽는다. 내가 고통을 느끼면 그 역시 똑같은 지옥을 맛본다.
레이븐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부하들에게 나를 ‘상처 하나 없이 산 채로’ 생포하라는 비밀 지침을 내린 것이 분명했다. 원수의 목숨이 묶여 있다는 저주가, 이 순간 사막 한가운데서 그녀를 지켜줄 유일한 방패가 되는 모순적인 현실이었다.
“과연 그렇다면…….”
설아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야수 같은 생존 본능과 독기가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 속에서 번뜩였다.
그녀는 허리춤의 비밀 주머니로 손을 뻗었다. 손끝에 닿은 것은 차갑고 가느다란 금속 침이었다. 저항군의 외과의 정경의 박사의 해부학적 조언을 바탕으로 자작했던 ‘신경 자극 유도용 전극 침’이었다. 인체의 특정 통각 신경망을 고의로 자극하여 뇌가 느낄 수 있는 극치의 고통을 물리적으로 유도하는 끔찍한 도구였다. 본래는 고문 저항 훈련용으로 만들어진 물건이었지만, 지금은 그녀의 가장 치명적인 인질이 될 터였다.
“멈춰라. 더 가까이 오면 네놈들의 대장군이 어떻게 될지 장담 못 하니까.”
설아가 침을 자신의 왼쪽 쇄골 아래, 양자 동조기 낙인이 붉게 박동하는 신경 밀집 구역에 가져다 대며 차갑게 선언했다.
크로우-3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그의 검은 헬멧 바이저가 미세하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지? 사막의 쥐새끼가 대장군 각하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마라.”
“헛소리인지 아닌지는 직접 확인해 보면 알겠지.”
설아는 망설임 없이 전극 침을 자신의 쇄골 밑 통각 신경 중심부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으, 윽……!”
비명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것을 설아는 이를 악물어 삼켰다. 전극 침 끝에서 미세한 전류가 흐르며 전신의 모든 통각 세포를 강제로 쥐어짜는 듯한 지옥 같은 아픔이 휘몰아쳤. 뼈가 바스러지고 살이 불타는 듯한 감각에 눈앞이 하얗게 멀어졌다.
‘통각 분산 명상법.’
설아는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필사적으로 정경의 박사에게 배운 정신 조율법을 전개했다. 고통을 뇌의 특정 영역으로 몰아넣고, 이성적인 자아를 육체와 분리해 내는 처절한 명상이었다. 그녀는 다리가 꺾여 무릎을 꿇으면서도, 전극 침을 쥔 손만큼은 결코 늦추지 않았다.
그 순간, 설아의 가슴팍 동조기 낙인이 붉은색으로 폭발하듯 발광했다.
‘동조 2단계: 통각 역전.’
양자 네트워크를 타고 흐른 고통의 파동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대기권 밖 궤도 정거장에 정박해 있던 기함 ‘블랙 레비아탄’의 사령실로 그대로 역류했다.
“끄아아아악—!”
강철 왕좌에 앉아 보고를 받던 제국 대장군 레이븐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그의 전신이 마치 보이지 않는 채찍에 맞은 것처럼 격렬하게 뒤틀렸다. 심장 코어가 과부하를 일으키며 푸른 전류를 뿜어냈고, 그의 입가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사령실의 모든 홀로그램 모니터가 그의 급격한 생체 수치 붕괴를 감지하고 적색 경보등을 일제히 점멸하기 시작했다.
삐— 삐— 삐—!
그와 동시에, 사막 지상에 있던 크로우-3와 검은 까마귀 요원들의 헬멧 HUD에 전례 없는 최상위 긴급 경보가 붉은 글씨로 도배되었다.
[경고: 대장군 각하의 생체 신호 급락. 심장 마비 수치 92% 도달. 즉각적인 심장 쇼크 상태 진입.]
“각하……?! 각하의 생체 신호가 왜 갑자기……!”
크로우-3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는 헬멧의 분석 장치를 통해 전송되는 기함의 실시간 데이터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자신의 가슴에 전극 침을 꽂은 채 피눈물이 고인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설아를 바라보았다.
설아의 가슴팍에서 번지는 은청색과 붉은색의 양자 회로 무늬가 기이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 무늬의 파동은 레이븐의 심장 코어 주파수와 소름 끼치도록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다.
“이제…… 알겠나?”
설아가 핏기가 가신 입술을 열어 나직하게 속삭였다. 침을 잡은 그녀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릴 때마다, 크로우-3의 HUD 속 레이븐의 심박 그래프는 미친 듯이 곤두박질쳤다.
“네놈이 각하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고대의 사악한 주술이라도 부린 건가!”
크로우-3가 분노와 공포가 뒤섞인 목소리로 포효하며 권총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그의 총구는 설아의 머리를 겨누지 못하고 허공에서 갈팡질팡 흔들렸다. 격발하는 순간, 대장군의 심장 역시 멈춘다는 경보 수치가 그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한 걸음만 더 움직여 봐.”
설아는 허리춤에서 낡은 저항군 진동 단검을 뽑아 자신의 심장 정중앙 피부 위에 가져다 댔다. 날카로운 칼끝이 얇은 가죽 슈트를 뚫고 들어가 살갗을 살짝 베자, 붉은 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그와 동시에 크로우-3의 HUD에서 레이븐의 혈압 수치가 위험 수위 이하로 뚝 떨어졌다.
“내가 이 단검을 조금만 더 깊이 밀어 넣으면, 궤도 위의 네 대장군의 심장도 깨끗하게 뚫릴 거다. 어디 쏠 테면 쏴 봐. 내 심장이 멈추는 순간, 너희 발렌타인 가문의 그 위대한 살인 병기도 사막의 모래 먼지로 변할 테니까.”
설아의 목소리는 지독하리만치 침착했고, 그녀의 눈빛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저항군 전사의 광기가 서려 있었다. 남동생 민우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그녀에게 자신의 목숨은 제국을 무너뜨릴 수만 있다면 언제든 던질 수 있는 가장 값싼 소모품에 불과했다.
“미친 쥐새끼가……!”
크로우-3는 주먹을 피가 나도록 꽉 쥐었다. 제국 최정예 요원으로서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굴욕이었다. 손가락 하나면 으스러뜨릴 수 있는 나약한 비개조 인류의 여전사 앞에서, 제국의 정예 부대가 손끝 하나 대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었다. 그들의 무력은 완벽했지만, 인질이 너무도 비대했다.
“대장, 각하의 생체 신호가 임계점을 돌파하기 직전입니다! 이대로 가다간 각하의 나노 코어가 영구 정지합니다!”
뒤에 있던 요원이 다급하게 외쳤. 크로우-3의 HUD 스크린은 이미 온통 붉은색 경고등으로 가득 차 시야를 가릴 지경이었다.
“……무기를 내려놔라.”
크로우-3가 이빨을 갈며 명령했다.
“하지만 대장!”
“명령이다! 모두 무기를 내려놓고 뒤로 물러서!”
요원들이 분노와 허탈함이 가득한 손길로 전기 그물 발사기와 플라즈마 권총을 모래바닥에 내려놓았다. 강철을 짓누르고 있던 요원들도 그를 놓아주고 뒤로 물러섰다. 강철은 기침을 토해내며 몸을 일으켜 설아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의 눈동자 역시 설아가 부린 기적적인 광기에 경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퇴로를 열어.”
설아가 칼날을 심장에 댄 채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크로우-3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설아를 노려보았지만, 결국 몸을 돌려 요원들에게 길을 열 것을 지시했다.
“이번 한 번은 각하를 위해 물러나 주지.”
크로우-3가 헬멧 너머로 쇳소리를 내며 경고했다.
“하지만 기억해라, 사막의 유령. 대장군 각하께서 이 동조의 저주를 풀 방법을 찾아내시는 순간, 네놈과 네 비천한 동료들은 은하계 가장 깊은 구역에서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전에 내가 네놈들의 황제의 목을 벨 테니 걱정 마라.”
설아는 피가 묻은 입술을 깨물며 조소했다. 그녀는 강철의 부축을 받으며 붉은 유리 사막의 언덕 너머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검은 까마귀 경호대 요원들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설아는 가슴팍의 전극 침을 뽑지 않았다. 마침내 안전 구역인 협곡 깊은 곳에 도달했을 때야 그녀는 전극 침을 뽑아내고 모래바닥에 쓰러졌다.
“하아…… 하아……!”
침이 빠진 자리에서 검붉은 피가 솟구쳤고, 신경 오염의 반동으로 극심한 두통이 뇌를 찢어발겼다. 눈을 감을 때마다 레이븐이 사령실 바닥에서 피를 토하며 거칠게 호흡하는 시각 데이터와, 그의 소년 시절 가혹한 실험실의 차가운 환영들이 그녀의 기억과 지독하게 뒤섞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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