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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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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틀어막은 내 손가락 틈새로 붉은 피가 흘러내리는 찰나, 지휘관의 백은색 투구가 격벽 틈새 너머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시야가 하얗게 점멸했다. 아우렐리아 게이트의 거대한 인공 고리가 뿜어내는 양자 파동이 내 가슴속 동조기와 공명하며 뇌 신경을 사정없이 난도질하고 있었다. 각혈이 멈추지 않았다. 붉은 피가 턱을 타고 흘러내려 제국군 제복의 깃을 적셨다. 오른손은 이미 섀도우-B의 습격을 막아내느라 인대가 완전히 파열되어 소매로 가슴팍에 꽁꽁 묶어둔 상태였다. 쓸 수 있는 것은 오직 왼손 하나뿐이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발각된다면, 나와 레이븐의 목숨은 물론이고 기함 하부에 숨겨둔 카이로스의 피난민들까지 모조리 황실의 도살대 위로 끌려가게 된다.


‘생각해, 민설아. 사막에서 살아남는 법은 모래바람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강철 기함 내부에는 모래가 없다. 대신 차가운 냉각 가스와 순환하는 배기구의 기류가 있을 뿐이다.’


나는 이빨을 악물며 사막에서 익힌 은신 기교를 이 차가운 강철 요새에 맞춰 응용하기로 결단했다.


‘모래바람 은폐술.’


나는 왼손 하나로 격벽 모퉁이의 냉각 파이프라인 지지대를 움켜쥐었다. 파열된 오른손목에서 뼈를 깎는 듯한 격통이 일었지만, 의식적으로 그 통증을 지워냈다. 지호가 개조해 준 전자기 차폐 차단 목걸이의 다이얼을 왼손 끝으로 미세하게 조율하며, 내 몸에서 방출되는 열 신호와 시각적 흔적을 환기구 내부의 저온 기류 주파수와 완벽하게 동기화시켰다. 내 신체의 윤곽이 어둠 속에서 신기루처럼 흐려지며 배기구의 차가운 안개 속으로 녹아들었다.


스으으읍—.


나는 왼손의 완력과 두 다리의 힘만으로 벽면을 타고 올라가, 천장 부근의 좁은 환기구 격자 틈새에 몸을 밀착시켰. 환기구 내부의 강철 팬을 정지시키려 왼손을 뻗으려 했으나, 기계가 멈출 때 발생하는 미세한 구동 소음이 친위대의 고감도 음향 센서에 걸릴 위험이 있음을 직감하고 즉각 시도를 포기했다. 그저 차가운 쇠창살에 몸을 고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스르륵, 쾅.


수동 격벽 문이 완전히 열리며, 백은색 중장갑을 입은 황실 친위대 지휘관이 사령실 내부 비밀 통로로 진입했다. 그의 손에는 대상의 생체 신호를 분자 단위로 역추적하는 고성능 양자 스캐너가 들려 있었다. 스캐너의 렌즈에서 투사된 붉은색 레이저 격자 광선이 내가 방금 전까지 주저앉아 피를 흘렸던 바닥을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띠리릭, 띠리릭—.


스캐너가 바닥의 미세한 유기적 흔적을 감지했는지 경고음을 울렸다. 지휘관의 투구가 내가 숨어 있는 천장 환기구 쪽으로 천천히 돌아갔다. 그의 손가락이 스캐너의 탐지 감도를 최대로 높이는 콘솔을 조작했다. 이대로 내 심장 박동이 감지된다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통각 분산 명상법.’


나는 눈을 감았다. 우뇌 신경망에 가해지는 양자 공명의 고통과 손목의 파열 통증을 이성적으로 분리했다. 고통은 그저 신경을 타고 흐르는 미세한 전기 자극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했다. 의식이 육체의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유리되자, 요동치던 심장 박동이 급격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분당 50회…… 40회…… 30회…… 25회.


내 전신의 맥박이 정지하기 직전의 상태까지 하강했다. 체온 역시 냉각 파이프의 서리와 동화되어 급격히 내려갔다. 스캐너의 화면 위에서 내 생체 열 신호가 완벽하게 지워졌다.


그러나 그 대가는 가혹했다. 극단적인 맥박 하강으로 인해 우뇌 신경망에 일시적인 산소 부족이 발생하며 눈앞이 캄캄해졌고, 지독한 현기증이 엄습했다. 왼손가락의 힘이 풀려 천장에서 추락할 것만 같은 공포가 덮쳐왔다. 나는 피가 흘러내리는 입술을 깨물며 정신을 붙잡았다.


“지휘관, 내 개인 침소의 먼지까지 황실의 자산으로 등록할 셈인가?”


차가운 사령실 내부로 묵직하고 오만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레이븐 대장군이었다.


그는 흰 붕대를 감아 검붉은 피가 배어 나오는 왼손으로 자신의 시그니처 병기인 ‘초전도 진동 단검’을 뽑아 들었다. 단검의 칼날이 고주파 분자 진동을 시작하며 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진동음이 좁은 비밀 통로를 가득 채웠다. 레이븐은 은발 아래의 차가운 푸른 눈동자로 지휘관을 쏘아보며, 단검의 끝을 지휘관이 들고 있는 스캐너 콘솔 바로 앞까지 들이밀었다.


“이 기함은 황실의 영토이기 전에, 내 검은 까마귀 함대의 심장이다. 대장군의 사적인 공간에서 무력 충돌을 불사하면서까지 수색을 강행하겠다는 것은, 발렌타인 가문의 명예를 정면으로 모독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


레이븐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나노 전류의 푸른 안개가 사령실의 희미한 비상 조명 아래서 흉포하게 일렁였다. 제국 대장군 고유의 위압감과 대귀족 가문의 명예를 방패로 내세운 정면 압박이었다. 친위대 지휘관이 제아무리 황제의 직속 사냥개라 할지라도, 제3함대의 총사령관이자 정계 최고 권력자의 후계자와 기함 내부에서 물리적 충돌을 일으키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정치적 부담이었다.


지휘관의 백은색 투구 아래로 침묵이 흐르는 동안, 천장의 환기구 틈새에서 내 왼손 손가락은 서서히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다. 우뇌의 산소 결핍으로 인해 시야 가장자리가 검게 타들어 갔다. 손가락 끝이 미끄러질 때마다 강철 파이프와의 마찰음이 미세하게 발생할 뻔한 절체절명의 서스펜스가 이어졌다.


“……실례했습니다, 대장군 각하. 누전으로 인한 일시적인 시스템 오작동이었던 것 같군요.”


지휘관은 결국 레이븐의 서슬 퍼런 위압감에 기세를 꺾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 그는 스캐너의 전원을 끄고 허리춤에 수납했다. 레이븐은 진동 단검을 거두지 않은 채 차가운 눈빛으로 지휘관을 격벽 밖으로 밀어내듯 노려보았다.


지휘관이 몸을 돌려 비밀 격벽 통로를 빠져나가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의 은빛 금속 장화 끝이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에 툭 부딪혔다. 가벼운 금속성 마찰음이 고요한 사령실 바닥에 울렸다.


탁—.


지휘관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그의 투구가 천천히 바닥을 향했다.


그곳에는 내가 환기구를 타고 올라갈 때 가죽 슈트의 찢어진 소매 틈새로 흘러내린, 카이로스 저항군의 낡은 군복 단추 하나가 붉은 비상등 불빛 아래서 은밀하게 빛나고 있었다. 붉은 모래 먼지가 묻은, 제국의 정규 규격에는 존재하지 않는 거칠고 낡은 은빛 단추였다.


지휘관이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그의 백은색 철갑 장갑을 낀 손가락이 바닥에 떨어진 은빛 단추를 향해 서서히 뻗어 내려가는 순간, 내 가슴속 동조기가 심장이 멎을 듯한 차가운 경고음을 울렸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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