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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정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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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폭 프로토콜 가동. 남은 시간: 180초.]


뇌리를 가르는 붉은색 경고등과 함께, 내 가슴속에 박힌 고대 양자 생명 동조기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붉고 푸른 스파크가 얇은 저항군 슈트 가죽을 뚫고 나와 허공으로 비산했다. 입안 가득 고인 뜨거운 피를 바닥에 토해내자, 반물질 반응로 제어실의 차가운 강철 바닥이 붉게 물들었다.


숨을 쉴 때마다 허파가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우측 손목은 인대가 완전히 파열되어 제복 소매로 가슴팍에 겨우 묶어 고정한 상태라 감각조차 없었다. 게다가 사령실에서 스스로 손바닥을 깊게 베어내 나를 구했던 레이븐의 자해 통증이 동조 2단계의 통각 역전을 타고 내 왼손 손바닥으로 고스란히 역류하고 있었다. 상처 하나 없는 내 왼손이 마치 고온의 플라즈마에 녹아내리는 듯한 환각통에 단단히 마비되어 덜덜 떨렸다.


하지만 쓰러져 있을 시간이 없었다.


지익, 지이익—.


제어실 구석의 배수 통로 격벽 너머에서 미세한 전자기 노이즈와 함께 은밀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내 망막 HUD 위로 흐릿하게 일렁이는 생체 신호 하나가 잡혔다. 그것은 레이븐의 누이 엘리사 발렌타인이 기함 내부에 심어둔 극비 밀정, 섀도우-B였다.


그자의 단말기 화면에 기함의 메인 전력망에서 해킹한 레이븐의 생체 나노 데이터와, 나와 레이븐의 목숨이 연동되어 있다는 양자 동조 기록이 실시간으로 업로드되고 있었다.


‘저 데이터가 기함 밖으로 전송되는 순간, 나와 레이븐은 물론이고 화물칸에 숨겨둔 카이로스의 동포들까지 모두 황실 실험실의 해부대로 끌려가게 된다.’


“지호야…… 내 목소리 들려?”


나는 무전기를 누르며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입가에 흐르는 피를 왼손 소매로 닦아내자, 지호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누나! 동조기 주파수가 완전히 미쳐 날뛰고 있어! 자폭까지 150초밖에 안 남았단 말이야! 제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섀도우-B가 도망치고 있어. 그자의 단말기에 든 데이터를 외부로 송출하게 둘 순 없다. 추격한다.”


나는 레이븐이 건네주었던 대장군 친위대 카드 키를 왼손에 움켜쥐고, 섀도우-B가 도주한 어둡고 좁은 배수 파이프라인 통로 안으로 몸을 던졌다. 영하의 냉각수 결로가 흐르는 차가운 파이프 벽면에 어깨가 부딪힐 때마다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격통이 일었지만,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남은 시간: 120초.]


배수 통로 저편에서 제 제복을 입은 섀도우-B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자는 탈출 포드 구역으로 향하는 비상 해치를 열기 위해 미친 듯이 콘솔을 조작하고 있었다.


“거기 서라, 밀정.”


내 목소리에 섀도우-B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자의 눈동자가 붉은색 기계식 안구로 기괴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노 개조율 31~60%에 달하는 전신 기계화 인간의 위압감이 좁은 통로를 가득 채웠다.


“민설아……! 반응로의 폭주를 막고도 살아 움직이다니, 괴물 같은 년이군. 하지만 늦었다. 이 데이터가 발렌타인 공작가로 전송되는 순간, 네년과 레이븐 대장군은 반역죄로 즉결 처형될 것이다!”


섀도우-B가 탈출 포드의 가동 버튼을 누르려 손가락을 뻗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왼손을 뻗어 벽면에 노출된 고압 유압식 격벽 제어 전선 뭉치를 그대로 움켜쥐었다. 레이븐의 자해 통증으로 불타던 내 왼손끝에 고압의 전류가 흐르며 살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아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전선 뭉치를 통째로 뜯어내 버렸다.


쾅—!


탈출 포드 베이의 육중한 강철 격벽이 엄청난 굉음과 함께 아래로 떨어져 내리며 섀도우-B의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포드로 향하는 물리적 통로가 끊어진 것이었다.


섀도우-B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자의 오른손목에서 나노 입자들이 고속으로 재구성되며, 붉은 광채를 뿜어내는 초고온 플라즈마 나노 단검이 길게 튀어나왔.


“미친 저항군 년이 끝까지 발목을 잡는구나! 여기서 네년의 심장을 도려내 주마!”


섀도우-B가 바닥을 박차며 번개처럼 쇄도했다. 초고온의 붉은 칼날이 공기를 찢으며 내 목덜미를 향해 내리꽂혔다. 우측 손목을 쓸 수 없는 상태에서 정면 방어는 자살 행위였다.


나는 몸을 비틀어 파이프 벽면을 차고 도약했다. 사막에서 몸에 익힌 무중력 기동 기교가 빛을 발했다. 칼날이 내 뺨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며 벽면의 티타늄 파이프를 녹여버렸다.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덮치는 찰나, 나는 에이든과의 전투 기억 속에서 체화했던 레이븐의 반사신경 데이터를 뇌리 속에서 강제로 끄집어냈다.


[남은 시간: 60초.]


피할 수 없다면, 적의 기계망을 직접 붕괴시켜야 했다.


나는 착지와 동시에 섀도우-B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레이븐의 기억 전이로 파악해 두었던 제국 장교들의 기계 척추 주파수 대역을 떠올리며, 내 왼손바닥을 그자의 오른쪽 어깨와 목덜미 이음새에 강력하게 밀착시켰.


“인체 나노 통제 간섭!”


내 가슴팍의 동조기에서 흘러나온 은청색 성운의 양자 에너지가 내 왼손가락 끝을 타고 보랏빛 양자 노이즈의 형태로 섀도우-B의 신체 내부로 폭풍처럼 들이쳤다.


파지직! 파지직—!


그자의 전신 피부 밑에 심겨 있던 은빛 나노 회로들이 보랏빛으로 과부하를 일으키며 맹렬하게 불꽃을 튀기기 시작했다. 전신 개조 기계 관절들이 일시적으로 잠기며, 섀도우-B의 신체가 허공에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플라즈마 단검의 붉은 불꽃이 힘없이 사그라들었다.


“윽…… 으극…… 내 몸이…… 작동하지 않아……!”


섀도우-B가 마비된 턱을 떨며 경악 어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나 역시 한계였다. 적의 체내 나노 독소가 내 왼손끝을 타고 역유입되며 왼팔 전체가 돌처럼 무겁게 굳어갔고, 동조기의 자폭 카운트다운은 이제 30초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 머리 위의 환기구 격벽이 폭풍 같은 소음과 함께 통째로 뜯겨 나갔다.


어둠 속에서 강하한 거대한 그림자가 섀도우-B의 배후를 덮쳤다. 단정한 검은 제복 장교복의 가슴팍에 피 묻은 붕대를 감은 남자, 레이븐 대장군이었다.


그는 왼손바닥의 자창 부상에서 흐르는 피를 아랑곳하지 않고, 오른손에 쥔 은빛 ‘초전도 진동 단검’을 가동했다. 윙— 하는 고주파 분자 진동음이 좁은 배수 통로의 공기를 날카롭게 갈랐다.


스윽— 삭!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가혹한 궤적이었다. 초전도 진동 단검의 푸른 칼날이 마비되어 있던 섀도우-B의 목덜미를 단숨에 베어 넘겼다. 기계로 개조된 목 뼈가 종잇장처럼 잘려 나가며, 그자의 머리가 바닥으로 둔탁하게 굴러떨어졌다.


스파크를 뿜어내던 섀도우-B의 신체가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지며 완전히 침묵했다. 가문의 밀정이 마침내 종말을 맞이한 순간이었다.


“하아…… 하아……”


나는 벽을 짚고 주저앉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동조기의 자폭 카운트다운이 10초를 가리키며 붉은 낙인이 심장을 조여오던 그 순간, 레이븐이 쓰러진 섀도우-B의 품에서 암호화 단말기를 회수해 자신의 생체 인장 코드를 강제로 주입했다.


[자폭 프로토콜 정지. 동조기 전력 안정화 모드 전환.]


가슴을 짓누르던 타는 듯한 통증이 기적처럼 가라앉으며, 은청색 광채가 부드러운 박동으로 돌아왔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섀도우-B가 떨어뜨린 단말기 화면을 바라보았다.


단말기의 깨진 액정 너머로, 발렌타인 가주의 극비 통신 아카이브가 지호의 백도어 프로그램을 통해 자동으로 해독되어 스크린 위로 전개되고 있었다.


그 아카이브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프로젝트 네메시스’라는 붉은색 폴더 파일이 내 눈에 들어왔다. 떨리는 왼손으로 화면을 터치하자, 가주 에드워드 발렌타인의 차가운 서명이 담긴 나노 신체 도해 문서가 홀로그램으로 허공에 떠올랐다.


그것은 레이븐의 심장 나노 코어 정밀 설계도였다.


그리고 그 심장의 중심부, 주동맥 바로 옆에 황제 발타자르의 마스터 키 주파수와 실시간으로 연동되는 초소형 ‘나노 자폭 칩’이 내장되어 있다는 극비 기록이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특이 사항: 대상자(레이븐)가 황실의 명령을 거부하거나 반역을 도모할 시, 황제의 마스터 제어 칩 ‘오리온의 심장’에서 방출되는 원격 코드를 통해 심장 자폭 칩이 즉각 기폭됨.]


그 화면을 바라보는 내 눈동자가 경악으로 거칠게 흔들렸다.


내가 살기 위해 목숨을 공유한 적장의 심장 속에, 언제든 황제의 손가락 하나로 터져버릴 시한폭탄이 심겨 있었다는 잔혹한 진실이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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