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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로 폭주 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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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타오르는 홀로그램 카운트다운 너머로, 반물질 코어의 푸른 열기가 내 얼굴을 삼킬 듯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경고. 반물질 반응로 코어 열화 진행률 98%. 자폭 차단 프로토콜 작동 불능. 남은 시간: 52초.]


제어실의 공기는 이미 숨을 쉴 때마다 허파가 타들어 가는 듯한 초고온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벨리알의 친위 요원들이 사령실의 비상 경보에 속아 철수한 것은 다행이었지만, 내 눈앞에 남겨진 것은 기함 ‘블랙 레비아탄’과 그 안의 모든 생명체를 우주의 먼지로 만들어버릴 죽음의 타이머뿐이었다.


오른손 손목은 인대가 완전히 파열되어 제복 소매로 가슴팍에 단단히 묶어 고정해 둔 상태. 쓸 수 있는 것은 왼손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그 왼손마저도 정상은 아니었다. 동조 2단계의 가혹한 감각 전이로 인해, 사령실에서 스스로 손바닥을 깊게 베어낸 레이븐의 생생한 통각이 내 왼손 손바닥에 실시간으로 역류하고 있었다. 상처 하나 없는 내 왼손가락들이 뼈를 깎는 듯한 환각통으로 인해 덜덜 떨리며 기이하게 뒤틀렸다.


“하아…… 하아……”


나는 뒤틀리는 손가락을 억지로 쥐어짜 제어반 콘솔을 붙잡았다. 차가운 금속판마저 코어의 열기 때문에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제국군 고위 암호 해독기는 콘솔 포트에 꽂힌 채 황실 특수 방화벽의 락온에 걸려 붉은 경고등만 깜빡이고 있었다.


지호가 수송선 화물칸에서 전송해 주는 무선 신호가 내 귓가에서 노이즈와 함께 찢어지듯 울렸다.


[설아 누나! 안 돼! 벨리알이 걸어둔 황실 락온 보안 프로토콜이 너무 견고해! 비상 냉각 밸브를 원격으로 개방하려고 해도 시스템이 물리적으로 완전히 잠겨 있어! 내 해킹 단말기로는 그 물리 락을 풀 수 없어……! 이대로라면 정말 다 날아가 버려!]


지호의 목소리에 서린 절망이 내 가슴을 짓눌렀다. 밸브의 물리적 개방이 불가능하다면, 기계적인 수단으로 이 폭주를 막을 방법은 전무했다. 코어의 온도는 이미 섭씨 5000도를 향해 치솟고 있었다. 반응로 격벽 너머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반물질 방사능의 일렁임이 시야를 온통 푸른 안개처럼 왜곡시키고 있었다.


그때, 내 귓속의 극비 무전 채널에서 또 다른 차분하지만 다급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기함의 수석 과학자, 닥터 에밀리였다.


[민설아 씨, 내 목소리 들립니까? 사령실의 레이븐 대장군이 보낸 생체 데이터로 상황을 확인했습니다. 기계적 냉각 장치가 마비된 상황에서 반응로를 안정시킬 방법은 단 하나뿐입니다. 코어 내부의 과부하된 반물질 에너지를 인위적으로 방출하거나, 다른 매개체로 강제 흡수해 정화해야 합니다!]


“강제 흡수라고요?”


나는 뜨거운 열기 속에서 각혈을 참아내며 왼손으로 무전기를 눌렀.


“이 엄청난 반물질 에너지를 받아낼 수 있는 매개체가 이 제어실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당신의 가슴에 있습니다! 당신의 가슴팍에 박힌 고대 양자 생명 동조기라면 가능합니다! 그 장치는 단순한 저주가 아니라 고대 선구자들의 양자 에너지를 제어하는 마스터 키입니다. 코어의 에너지를 동조기로 흡수해 정제된 양자 파동으로 변환시키세요. 내가 실시간으로 반응로 코어의 에너지 결을 분석해 주파수를 송신하겠습니다!]


에밀리의 지시와 동시에 내 망막 HUD 위로 복잡하게 꼬인 푸른색 전자기 에너지 결의 홀로그램 도해가 전개되었다. 눈이 멀 것 같은 푸른 반물질 열기 속에서, 그 주파수선들이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남은 시간은 30초.


나는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가죽 슈트 너머로 은청색 성운의 광채를 내뿜는 동조기가 반응로의 전자기장과 공명하며 맥박 치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레이븐의 처절한 고독과 고통이 느껴졌다. 그 역시 사령실에서 피를 흘리며 내 생체 신호를 지켜보고 있을 터였다.


‘나와 똑같은 상처를 가진 원수를 살려두기 위해, 내 심장이 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반응로를 막아내야 한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사막 광산에서 오씨 아저씨와 함께 연마했던 기술의 공식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 적 기갑 차량의 연료 전지에 양자 노이즈를 주입해 폭발을 유도하던 ‘아크라이트 과부하 촉발’ 기술.


불안정한 광물의 에너지를 읽고 제어하던 그 감각을 역으로 뒤집는다면, 폭주하는 반물질 에너지를 내 동조기로 끌어당겨 정제하는 역공식이 성립될 수 있었다.


“지호야, 에밀리 박사의 주파수 라인을 내 해독기에 연동해 줘. 오씨 아저씨의 정밀 추출법 공식을 역위상으로 변환한다.”


[누나, 미쳤어? 반물질 에너지를 맨몸으로 받아들이면 누나의 뇌 신경망이 버티지 못해!]


“지금 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 우주의 먼지가 돼. 당장 연동해!”


내 단호한 명령에 지호가 울먹이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곧 해독기 스크린에 역위상 제어 공식이 업로드되었다.


남은 시간 15초.


나는 뒤틀리는 왼손바닥의 환각통을 억누르며, 뜨겁게 타오르는 반물질 반응로 코어 제어반에 왼손을 단단히 얹었다. 손바닥이 닿는 순간, 찌릿한 고전압 스파크가 제복 소매를 태우며 살을 찢는 듯한 실제적인 고통이 들이쳤다.


“아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가슴속 동조기의 출력을 개방했다.


파지직—!


내 가슴팍에서 은청색 성운 낙인이 눈이 멀 것 같은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동조기의 고대 아르케 역장이 가동되며, 제어반을 통해 코어 내부의 폭주하는 반물질 전류를 내 신체로 강제 흡수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제어실 전체가 거대한 진동과 함께 요동쳤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하고 푸른 반물질 에너지가 내 왼손을 타고 역류해 들어왔다. 내 왼팔의 피부 밑 혈관들이 나노 기계 회로처럼 푸른빛으로 발광하며 온몸을 타고 가슴의 동조기로 빨려 들어가는 시각적 경이로움이 제어실을 가득 채웠다.


뇌 신경망이 통째로 불타오르는 듯한 고통에 나는 이빨을 악물었다. 입술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내려 제어반 위로 떨어졌다. 동조기 내부의 고대 AI 에테르가 뇌리 속에서 다급하게 경고음을 울렸다.


[경고. 외부 반물질 에너지 유입률 300% 초과. 동조기 배터리 급속 충전 중. 신경 오염도 임계점 도달 위험.]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텨……!”


나는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비명을 지르며 에밀리가 전송해 준 주파수 결을 따라 반물질 전류의 흐름을 강제로 비틀었다. 동조기의 아르케 역장이 유입된 반물질 에너지를 정제된 양자 파동으로 강제 변환하여 동조기 코어 내부에 안착시키는 등가교환의 사투가 이어졌다.


카운트다운이 3초를 가리킨 순간, 기함을 뒤흔들던 거대한 진동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웅웅거리며 폭주하던 반응로 코어의 붉은 열기가 기적적으로 가운다운을 멈추고 차분한 푸른빛으로 안정을 되찾았다. 반응로의 폭주가 완벽하게 저지된 것이었다. 기함과 그 안의 모든 피난민들이 우주의 먼지가 될 위기에서 벗어난 순간이었다.


“하아…… 하아……”


나는 제어반에서 왼손을 떼어내며 비틀거렸다. 반응로는 안정을 찾았지만, 내 몸은 그렇지 못했다.


과도한 반물질 에너지를 급격하게 빨아들인 내 가슴팍의 동조기가 미친 듯이 뜨거워지며 전신에 붉은색 스파크를 튕겨내기 시작했다. 에너지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과부하되어 폭주하는 상태—‘양자 과부하 임계점’에 도달한 것이었다.


[경고! 양자 과부하 임계점 도달. 동조기 자폭 회로 작동 대기. 심장 박동 급격 저하. 뇌 신경망 오염률 89%.]


“윽……!”


가슴을 찌르는 듯한 극통에 나는 바닥으로 쓰러졌다. 목덜미와 쇄골 라인을 따라 붉은 나노 회로 패턴이 불타오르듯 번져나갔다. 입안 가득 고인 뜨거운 피를 바닥에 토해내며, 내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동조기의 기계적인 경고음이 이명처럼 뇌리를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자폭 프로토콜 가동. 남은 시간: 180초.]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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