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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각의 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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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초의 잔혹한 카운트다운이 붉은 홀로그램 화면 위에서 무자비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경고. 시스템 잠금 해제 실패. 황실 직속 특수 방화벽의 역추적 프로토콜이 가동되었습니다. 남은 시간 175초.]


기계적인 여성의 음성이 차갑게 내리꽂히는 순간, 반응로 제어실 내부의 공기가 무겁게 얼어붙었다. 붉은색 비상 경보등이 사정없이 점멸하며 은청색으로 빛나는 내 가슴팍의 양자 생명 동조기 낙인을 기괴하게 물들였다.


오른손 손목의 파열된 인대와 탈구된 관절은 소매로 단단히 묶어 고정해 두었지만, 맥박이 뛸 때마다 뼈를 깎는 듯한 격통이 어깨까지 타고 올라왔. 왼손 하나만으로 이 복잡한 제어반 콘솔을 조작해 황실의 방화벽을 뚫어야 하는 상황. 하지만 진짜 위기는 다른 곳에서 찾아오고 있었다.


척, 척, 척—.


배수 통로 너머, 두꺼운 강철 격벽 방향에서 수십 명의 발소리가 바닥을 울리며 다가왔다. 제국의 제복을 입은 일반 군인들의 가벼운 걸음걸이가 아니었다. 묵직하고 규칙적인, 그리고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금속성의 구동음. 황실 감찰관 벨리알이 직접 이끄는 정예 친위 요원들이었다.


“이 구역의 방화벽 경보가 울린 즉시 모든 하부 격벽을 차단해라.”


격벽 너머로 벨리알의 음산하고 창백한 목소리가 복도를 타고 흘러들었다. 그 목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내 심장은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반응로 제어실 내부의 전자기 노이즈를 정밀 추적한다. 놈들은 멀리 가지 못했을 터. ‘생체 반응 추적기 스카우트-X’를 전개해라. 먼지 한 톨, 체온의 미세한 흔적조차 놓치지 마라.”


스카우트-X. 제국 정보부의 최정예 수색대만이 사용하는 최첨단 생체 탐지기였다. 벽 너머의 열 신호는 물론이고, 미세한 분자 단위의 양자 파동까지 감지해 내는 괴물 같은 장비였다. 그것이 가동되는 순간, 내 가슴팍에서 숨 쉬듯 고동치는 고대 동조기의 은청색 주파수는 벨리알의 단말기에 가장 먼저 붉은 표적으로 박힐 것이 뻔했다.


도망칠 퇴로는 없었다. 제어실의 문은 오직 하나뿐이었고, 격벽 밖은 이미 벨리알의 군대가 겹겹이 포위하고 있었다.


‘생각해, 민설아. 여기서 잡히면 지호도, 화물칸의 동포들도, 그리고 나도 끝이다.’


나는 꺾인 오른팔을 가슴에 바짝 붙인 채, 왼손으로 제어반 옆의 좁은 고압 냉각 파이프라인 틈새로 몸을 밀어 넣었다. 영하 50도에 달하는 액체 질소가 흐르는 파이프의 표면은 서리가 하얗게 끼어 있어 살이 닿는 순간 얼어붙을 듯이 차가웠다. 하지만 이 냉기를 이용해 체온을 강제로 숨기지 않으면 스카우트-X의 열 센서를 피할 방법이 없었다.


철컥, 지이잉—.


제어실의 두꺼운 강철 문이 벨리알의 마스터 코드로 해제되며 위로 미끄러지듯 열렸다. 동시에 사방으로 투사되는 붉은색 레이저 스캔 광선들이 안개처럼 자욱한 제어실 내부를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친위 요원들이 들고 있는 스카우트-X의 탐지 핀포인트가 벽면을 따라 붉은 선을 그리며 내가 숨어 있는 냉각 파이프라인 쪽으로 서서히 다가왔다.


내 심박수는 이미 120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3초 뒤에 탐지 센서에 내 열 신호가 완전히 노출될 터였다.


나는 눈을 감았다. 사막에서 전설적인 교관 한태성 사령관 밑에서 배웠던, 그리고 저항군의 의사 정경의 박사가 주입해 주었던 인간의 신경 제어법을 떠올렸다.


‘통각 분산 명상법.’


의식의 흐름을 뇌 신경망에서 강제로 분리해야 했다. 나는 오른쪽 손목의 파열된 격통을 머릿속에서 지워내기 시작했다. 고통을 고통으로 인지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전류의 자극으로 치환했다. 아픔이 이성 너머로 밀려나자, 요동치던 아드레날린 분비가 멈추고 심장 박동이 급격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후— 읍.


들이쉬는 숨을 극도로 길게 늘이고, 내쉬는 숨 속에서 폐의 온도를 떨어뜨렸다. 맥박이 분당 80회에서 60회, 그리고 마침내 40회 이하로 뚝 떨어졌다. 전신의 모세혈관이 수축하며 피부 온도가 차가운 냉각 파이프의 온도와 동화되어 갔다.


삐빅, 삐빅—.


스카우트-X의 레이저가 내 머리 위를 정확히 스치고 지나갔다. 체온을 숨기는 데는 성공했지만, 기기 표면의 양자 수치 그래프가 미세하게 출렁였다. 내 가슴팍의 동조기가 내뿜는 은청색 파동까지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쪽에 미세한 양자 노이즈가 감지되었습니다. 배관 뒤쪽의 정밀 스캔을 전개하겠습니다.”


친위 요원의 차가운 음성과 함께, 세 명의 무장 대원이 총구를 겨눈 채 내가 숨은 파이프라인 구석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은빛 철갑 장화가 바닥을 딛는 소리가 내 고막을 찢을 듯이 크게 울렸다. 손에 쥔 사제 권총의 차가운 금속성이 왼손 바닥을 축축하게 적셨다. 격발하는 순간 기함 전체에 내 위치가 노출될 터였다.


남은 시간은 고작 120초. 절체절명의 사선에 선 그 순간, 기함 최상층 사령실의 상황이 내 뇌리에 기이한 파동으로 흘러들었다.


***


같은 시각, 기함 블랙 레비아탄의 사령실.


대장군 레이븐은 감찰실의 모니터 스크린을 바라보며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벨리알이 반응로 제어실로 진입해 수색을 개시하는 실시간 영상이 그의 망막 HUD에 연동되어 있었다. 그 옆에는 설아의 심장 박동과 양자 파동 수치가 실시간으로 붉은 경고선을 그리며 요동치는 그래프가 떠 있었다.


설아의 심박수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가 스스로 생체 신호를 지우기 위해 ‘통각 분산 명상법’을 시전하고 있음이 생체 데이터를 통해 고스란히 읽혔다. 하지만 황실 친위대의 스카우트-X는 만만한 장비가 아니었다. 10초 뒤면 그녀의 은신처가 들통나고, 그녀는 그 자리에서 벨리알에게 생포당할 터였다.


그녀가 잡히는 순간, 자신과 설아의 생명 동조 사실은 황실 전역에 폭로된다. 그것은 발렌타인 가문의 파멸이자, 레이븐 자신의 즉각적인 처형을 의미했다.


“대장군 각하, 하부 반응로 구역의 방화벽 해킹 경보로 인해 수도 함대와의 교신 주파수가 일시적으로 불안정합니다.”


부관 카이가 다가와 정중하게 보고했다. 카이의 눈빛에는 여전히 대장군을 향한 맹목적인 충성과, 설아라는 기생충을 제거해야 한다는 차가운 결의가 뒤섞여 있었다. 레이븐은 카이를 돌아보지 않은 채, 사령관 집무실 책상 아래 숨겨진 수동 제어 콘솔로 슬며시 왼손을 뻗었다.


‘제국 대장군 규격’의 신체 제어력이 그의 뇌 신경망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그의 전신에 이식된 군용 나노 기계들이 주인의 이성적인 명령에 따라 일제히 주파수를 맞추었다.


레이븐은 벨리알의 주의를 반응로 구역에서 강제로 돌려야만 했다. 기함의 보안 시스템은 정해진 데이터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그렇다면, 기함 내부에서 가장 높은 보안 등급을 가진 존재—즉, 대장군 본인의 생체 신호에 ‘치명적인 비상 사태’를 발생시키는 것만이 기함의 중앙 컴퓨터의 센서 락온 우선순위를 강제로 가로챌 유일한 방법이었다.


스르릉.


레이븐은 허리춤에서 소형 나노 단검을 소리 없이 뽑아 쥐었다. 그리고 가죽 장갑을 벗어 던진 채, 자신의 왼손 손바닥을 향해 날카로운 칼날을 가차 없이 내리꽂았다.


서걱—.


차가운 칼날이 그의 단단한 손바닥 가죽과 근육을 깊숙이 가르고 뼈가 닿는 소리를 냈다. 붉은 선혈이 사령실의 은빛 대리석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전신이 기계화 개조된 대장군의 신체였지만, 고의로 나노 수용체를 차단하고 가한 자해는 지독하리만치 날카로운 고통을 그의 뇌하수체로 직접 송신했다.


위이이이이잉—!


그 순간, 사령실 전체에 찢어지는 듯한 비상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경고! 제3함대 총사령관 레이븐 대장군의 생체 신호 폭주. 심장 부근 나노 코어의 급격한 과부하 및 대량 출혈 감지. 보안 등급 프라이오리티 알파-1(Priority Alpha-1) 비상 사태 발령.]


중앙 보안 컴퓨터의 인공지능이 즉각 반응했다. 기함 내부의 모든 센서와 탐지 장비의 우선순위가 일제히 대장군의 신체 정보가 위치한 사령실로 강제 락온되었다. 벨리알의 요원들이 들고 있던 스카우트-X의 화면 역시 지이잉 소리를 내며 노이즈로 뒤덮이더니, 사령실의 비상 상황 경고문으로 강제 전환되었다.


***


“윽……! 아아악!”


반응로 제어실 구석, 파이프라인 틈새에 숨어 있던 나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왼손 손바닥이 불타는 인두로 지져지는 듯한, 아니 날카로운 칼날이 손바닥 전체를 가르고 뼈를 긁어내는 듯한 지독한 격통이 온몸의 신경망을 타고 휘몰아쳤다. 오른손 손목의 골절 통증과는 전혀 다른, 날카롭고 선명한 자창의 통증이었다.


‘동조 2단계: 통각 역전.’


목에 채워진 차단 목걸이가 전송률을 제한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왼쪽 손바닥에는 실시간으로 레이븐의 고통이 고스란히 유입되고 있었다. 내 왼손에는 상처 하나 없었지만, 뇌는 이미 손바닥이 갈기갈기 찢겨 나간 것으로 인식해 손가락이 기이하게 뒤틀렸다.


동시에, 고통의 파동을 타고 레이븐의 무의식 깊은 곳에 잠겨 있던 감정 데이터가 내 뇌리로 직접 역류해 들어왔.


그것은 지독하리만치 차갑고 고독한 어둠이었다. 제국 황실의 실험실에서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며 칼날을 받아내던 소년의 비명, 자신과 함께 살아남았던 복제 형제 ‘데스-04’가 붉은 나노 가스 속에서 녹아내릴 때 붙잡았던 그 뜨거운 손의 감촉, 가문의 번영을 위해 자신을 도구로만 대하던 양아버지 에드워드의 차가운 눈빛.


남자의 영혼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하고 애절한 슬픔과 고독이 내 가슴속 동조기를 타고 흘러넘쳤다.


“하아…… 하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뺨의 흉터를 타고 흘러내렸다. 신체적인 통증 때문이 아니었다. 내 동생 민우를 잃었을 때 느꼈던 그 처절한 상실감과 정확히 닮아 있는, 원수의 마음속 가장 깊은 상처를 온전히 느껴버렸기 때문이었다. 차가운 학살자인 줄만 알았던 대장군의 내면은, 이미 수없이 찢기고 벼려진 비극의 전장과 다름없었다.


그 기묘한 연대감이 내 심장을 거칠게 두드리는 순간, 수색 대원들의 발소리가 멈추었다.


“뭐지? 스카우트-X의 신호가 끊겼다. 사령실에서 알파-1 비상 경보가 작동했다!”


친위 요원들이 자신들의 단말기를 두드리며 당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벨리알의 수신기 역시 붉은 경고등을 깜빡이며 대장군의 생체 이상 신호를 뿜어내고 있었다. 벨리알은 미간을 찌푸린 채 어두운 복도 너머 사령실 방향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레이븐…… 이 타이밍에 심장 코어가 폭주했다고? 내 의심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망가뜨린 건가.”


벨리알의 입가에 음험한 미소가 떠올랐지만, 황실 군법상 총사령관의 알파-1 비상 사태가 발령되면 감찰관이라 할지라도 즉각 수색을 중단하고 사령실의 상태를 확인해야만 했다. 만약 대장군이 사망하기라도 한다면 기함의 모든 권한이 황실로 넘어가기 전 함선 전체가 자폭 프로토콜에 돌입하기 때문이었다.


“수색을 일시 중단한다. 전원 사령실로 복귀해 대장군의 상태를 확인해라.”


벨리알의 명령과 함께 친위 요원들이 일제히 무기를 거두고 제어실 밖으로 신속하게 퇴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육중한 강철 문이 다시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을 때야, 나는 파이프라인 틈새에서 비틀거리며 바닥으로 기어 나왔다.


“하아, 하아…… 살아났어……”


왼손 바닥은 여전히 레이븐이 흘리는 피의 뜨거운 온기와 날카로운 칼날의 통증으로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눈물을 닦아내며 제어반 콘솔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붉은색 홀로그램 스크린 위에서 방화벽의 카운트다운은 멈추지 않고 줄어들고 있었다.


[남은 시간: 60초. 반물질 반응로의 냉각 제어 장치가 완전히 정지합니다. 기함 전체의 에너지 소멸 및 증발 프로토콜이 가동됩니다.]


60초 뒤면 이 거대한 기함 블랙 레비아탄과 그 안의 모든 생명체가 우주의 먼지로 사라질 터였다. 나는 찢어지는 듯한 왼손의 통증을 움켜쥔 채, 다시 한번 제어반 콘솔을 향해 왼손을 뻗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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