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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로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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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의 눈을 통해 흘러들어온 황실의 전송 예약 화면이 점멸하는 순간, 내 가슴속 동조기가 차갑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윽……!”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부관 카이의 시야가 끊어짐과 동시에, 나는 독방의 차가운 메탈 바닥으로 쓰러졌다.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호흡 곤란이 허파를 조여왔다. 오른손 손목의 인대가 완전히 파열되어 기이한 각도로 꺾인 통증이 뒤늦게 뇌 해마를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상처 부위는 이미 시퍼렇게 부어올라 손가락 끝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불능 상태였다.


“네년이 감각을 끊은 타이밍치고는 아주 훌륭하군. 뭘 보았지?”


독방 구석의 감시 사각지대에 서 있던 레이븐이 나지막이 신음을 흘렸다. 그의 오른쪽 손목 역시 내 부상의 영향으로 시퍼렇게 떨리고 있었다. 동조 2단계: 통각 역전. 목에 채워진 전자기 차폐 차단 목걸이가 고통의 전송률을 30%로 제한하고 있었음에도, 적장의 강철 같은 이성에 균열을 내기에는 충분한 수준의 고통 파동이었다.


“네 부관 카이…….”


나는 이를 악물고 꺾인 오른팔을 왼손으로 감싸 안으며 신음을 삼켰.


“그자가 감찰관 벨리알과 내통하고 있어. 3시간 뒤 황실 성계 진입 직전에 네 생체 이상 데이터를 황실 중앙 서버로 송출하도록 예약 설정을 걸어두었더군. 그들이 널 반역죄로 처단하기 위해 친위대를 소환할 생각이야.”


레이븐의 푸른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전신에서 흐르는 미세한 나노 초전도 전류가 분노의 파동을 그리며 거칠게 일렁였다.


“카이가…… 나를 배신했다고? 가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구하기 위해 황실의 손을 빌리겠다는 뜻이군. 어리석은 놈.”


레이븐은 배신감보다도 상황의 냉혹함을 먼저 계산하는 듯 입술을 짓씹었다. 그가 분노를 억누르기 위해 주먹을 쥘 때마다 내 가슴팍의 양자 생명 동조기가 은청색 성운 모양의 광채를 내뿜으며 기함의 주파수와 격렬하게 반응했다.


치익—.


그때, 내 제복 안쪽에 숨겨둔 초소형 무전기에서 지호의 다급한 목소리가 노이즈와 함께 흘러나왔.


[설아 누나! 내 목소리 들려? 큰일 났어! 벨리알의 강경파 첩자들이 기함의 심장부인 ‘반물질 반응로 챔버’의 냉각 제어반에 우회 제어 코드를 주입하고 있어! 반응로를 고의로 과부하시켜 기함을 폭발 위기로 몰고 가려는 음모야. 기함이 폭주하면 레이븐의 함대 통제권은 완전히 무력화되고, 벨리알이 기함을 강제 접수할 명분이 생겨!]


상황은 3시간의 송신 타임리미트보다 훨씬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벨리알은 레이븐의 숨통을 끊기 위해 기함 전체를 날려버릴 도박을 시작한 것이다.


“내가 사령실을 비우면 벨리알이 즉각 사령권을 박탈하고 나를 체포할 거다. 크로우-3조차 벨리알의 밀착 감시 때문에 움직일 수 없어.”


레이븐이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천천히 다가와 자신의 품속에서 묵직한 티타늄 재질의 카드를 꺼냈다. 제3함대 최고 등급의 보안 구역을 모두 열 수 있는 마스터 키였다.


“이걸 가져가라. ‘대장군 친위대 카드 키’다. 기함 하부 반응로 구역으로 통하는 모든 격벽을 열 수 있을 거다. 반응로의 폭주를 막고, 카이의 데이터 전송을 지연시킬 사보타주를 감행해라.”


나는 카드 키를 왼손으로 받아 쥐었다. 오른손은 이미 감각이 마비되어 쓸 수 없었기에, 제복 소매를 찢어 오른팔을 가슴팍에 단단히 묶어 고정했다.


독방 문 앞으로 다가서자, 문 바깥을 지키고 있던 레이븐의 직속 경호대원 크로우-3(제국군)가 수동 격벽의 잠금장치를 조용히 해제해 주었다. 그는 나를 증오와 경멸이 서린 눈빛으로 바라보았지만, 레이븐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군율을 어기고 묵묵히 고개를 돌려 통로의 눈을 가려주었다. 원수를 살리기 위해 원수의 부하가 길을 열어주는 모순적인 공생의 현장이었다.


독방을 탈출해 기함 하부의 어두운 강철 통로로 접어들자, 기압의 미세한 변화가 고막을 짓눌렀. 귀가 먹먹해지는 압박감 속에서, 저 멀리 심연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웅웅거리는 거대한 중저음 소음이 온몸의 뼈마디를 흔들었다. 반물질 반응로가 내뿜는 불길한 고동이었다. 통로의 벽면을 흐르는 전력 케이블들이 푸른빛을 내며 요동치고 있었다.


나는 벽에 몸을 밀착한 채 왼손으로 중심을 잡으며 조용히 기동했다. 오른손 손목의 파열된 통증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뇌를 찔렀지만, 가슴팍의 동조기가 방출하는 은청색 빛이 어둠 속에서 유일한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지호야, 내 목소리 들려? 하부 통로 진입에 성공했다.”


내 가쁜 숨소리 너머로 지호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들어왔.


[누나! 흐윽, 다쳤다면서요? 손목이 완전히 꺾였다고…… 레이븐의 생체 수치로 역류해 들어오는 통증 그래프를 보고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그런 몸으로 어떻게 반응로까지 가겠다는 거예요!]


“울지 마, 지호야. 난 저항군 전사다. 이 정도 부상으로 멈추지 않아. 지금 반응로 챔버 진입로 앞인데, 제국군 센트리 포탑의 레이저 감시망이 통로 전체를 덮고 있어. 파괴하면 즉각 비상 경보가 울릴 거다. 우회할 방법이 있나?”


통로 전방에는 세 기의 센트리 포탑이 붉은색 격자형 레이저 감시망을 촘촘하게 투사하고 있었다. 개미 한 마리도 감지해 낼 만큼 정밀한 황실 규격의 센서였다. 오른손을 쓸 수 없는 나로서는 포탑의 사격각을 무력으로 돌파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잠시만요, 누나. 제가 기함 하부의 보조 전력 그리드를 역해킹해서 포탑의 전원 공급 장치를 아주 미세하게 과부하시켜 볼게요. 전자기 신호가 재부팅되는 틈을 타서 정확히 ‘5초’ 동안 레이저가 꺼질 거예요. 그 사이에 무중력 제어창 틈새로 기동해야 해요!]


지호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기함 내부의 화물칸 구석에서 해킹 단말기 ‘스펙터-X’를 두드리는 지호의 손가락 소리가 무전기 너머로 타다닥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울렸다.


나는 무중력 기동 전투 훈련의 감각을 떠올렸다. 중력이 불규칙하게 차단된 기함 하부 정비 통로에서는 디딤발의 각도와 밀쳐내는 타이밍이 생사를 가른다. 쓸 수 있는 것은 왼팔과 두 다리뿐이었다. 나는 왼쪽 장화를 강철 벽면에 단단히 고정하고 몸을 웅크렸다.


[누나, 준비해요! 3, 2, 1…… 지금!]


파지직—!


붉은색 레이저 감시망이 순간적으로 깜빡이며 완전히 소멸했다. 기함 내부의 전력 케이블이 일시적으로 침묵한 5초의 공백.


나는 왼쪽 다리의 완력을 폭발적으로 쥐어짜며 벽을 박차고 허공으로 도약했다. 무중력의 어둠 속에서 내 몸이 매끄러운 호를 그리며 날아갔다. 오른손을 쓸 수 없었기에 몸의 균형이 미세하게 흔들렸지만, 왼손을 뻗어 전방의 기계 배관을 움켜쥐며 몸을 강제로 끌어내렸다.


3초. 4초.


지이이잉—!


내가 배관 뒤의 사각지대로 몸을 숨김과 동시에, 포탑의 붉은 레이저가 다시 살아나며 배수관 벽면을 날카롭게 스캔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전신이 플라즈마 탄환에 관통당했을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다. 이마에서 차가운 식은땀이 흘러내려 뺨의 흉터를 적셨다.


“하아, 하아…… 제어반 도달 완료.”


나는 숨을 몰아쉬며 왼손으로 품속에서 지호가 개조한 ‘제국군 고위 암호 해독기’를 꺼냈다. 반물질 반응로의 비상 제어반 콘솔은 삼엄한 황실 방화벽으로 덮여 있었다. 나는 꺾여 있는 오른손의 통증을 억누르며, 왼손 끝으로 암호 해독기의 케이블을 제어반 포트에 직접 연결했다.


“지호야, 단말기 연결했다. ‘양자 코드 우회 해킹 기법’을 시전해라. 벨리알의 우회 제어 코드를 즉각 격리해야 해.”


[알았어요, 누나! 고스트의 백도어 프로토콜을 가동할게요. 주파수 역설계 시작합니다!]


암호 해독기의 스크린 위로 수만 개의 고대 기하학적 양자 코드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지호가 전송하는 해킹 패킷들이 제국의 보안망을 우회하며 반응로의 강제 과부하 코드를 하나씩 잠식해 들어갔다. 제어반 내부의 냉각수 유압 펌프가 다시 가동되는 기계음이 들려오며, 폭주하던 반응로의 웅웅거리는 소음이 미세하게 잦아드는 듯했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삐이이이이—!


제어반 콘솔 전체가 핏빛처럼 붉은 광채를 내뿜으며 비명 같은 경고음을 토해냈다. 해독기 화면이 완전히 정지하더니, 황실 전용 문양이 새겨진 거대한 전자기 방화벽이 스크린을 가득 채웠.


[경고. 황실 직속 특수 방화벽(Imperial Special Firewall) 가동. 미등록 불법 해킹 단말기 감지. 시스템 완전 잠금 및 기함 보안 네트워크 역추적 프로토콜 개시.]


[남은 시간: 180초.]


차가운 기계식 여성의 경고 방송이 반응로 제어실 전체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사방에 설치된 적색 경보등이 미친 듯이 점멸하며 내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지호야! 방화벽이 작동했어! 역추적이 시작됐다!”


무전기 너머로 지호의 비명에 가까운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어반의 양자 방화벽이 지호의 해킹 단말기를 역으로 추적해 파괴하려 하고 있었다. 180초의 잔혹한 카운트다운이 붉은 홀로그램 화면 위에서 무자비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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