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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빛의 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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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컥, 쿠우웅.


기함 ‘블랙 레비아탄’ 최상층 독방의 육중한 강철 격벽이 닫히는 소리는 기괴하리만치 무겁고 차가웠다. 황실 감찰관 벨리알이 남긴 음산한 미소와 비열한 경고가 텅 빈 방 안의 공기 중에 유령처럼 부유했다. 마침내 홀로 남겨진 순간, 민설아는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정신의 끈이 툭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컥……! 쿨럭, 흑……”


바닥을 짚은 손끝이정체불명의 진동으로 잘게 떨렸다. 설아는 가슴을 움켜쥐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입술 사이로 뜨겁고 비린 감촉이 울컥 솟구쳤다. 차가운 은빛 메탈 바닥 위로 검붉은 피가 점정으로 흩뿌려졌다. 뺨에 새겨진 거친 흉터가 붉게 달아올랐고, 오른쪽 시야는 데커드의 고문 침 후유증으로 인해 마치 깨진 유리창을 보는 것처럼 흐릿하게 일렁였다.


두통이 뇌하수체를 직접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엄습했다. 단순한 두통이 아니었다. 뇌세포 하나하나가 고전압 전류에 절여져 타들어 가는 듯한 극치의 통증이었다. 가슴팍 가죽 슈트 너머로 새겨진 ‘양자 생명 동조기’ 낙인이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은청색 성운의 광채와 불길한 crimson 붉은빛이 교차하며 쇄골 라인을 따라 뻗어 나간 신경 회로를 터뜨릴 듯이 점멸했다.


‘아으윽……!’


설아는 목덜미를 감싸 쥐었다. 레이븐이 강제로 채워둔 ‘전자기 차폐 차단 목걸이’의 차가운 금속성 질감이 살을 파고들었다. 목걸이는 양자 신호의 방출을 억제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설아의 심장에 가혹한 과부하를 가하고 있었다.


쿵. 쿵. 쿵.


동조기를 타고 사령실에 있을 적장 레이븐의 심장박동이 그대로 전송되어 왔다. 그의 심장 역시 마비 직전의 쇼크 상태에서 터질 듯이 불규칙하게 뛰고 있었다. 원수의 숨결과 고통이 자신의 허파와 혈관을 지배하는 이 가혹한 동조의 저주가 설아의 숨통을 서서히 조여왔다. 의식이 암전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으려 했다.


띠리릭.


그때, 독방 격벽의 패스워드 우회음이 아주 미세하게 울렸다. 삼엄한 전자기 차폐막이 일시적으로 흔들리며, 슬라이딩 도어가 조용히 위로 미끄러졌다. 설아는 흐릿한 시야 속에서 붉은 비상등 잔상을 뚫고 다가오는 두 개의 푸른 그림자를 포착했다.


“설아 씨! 정신 차려요!”


단정하게 묶은 머리에 차가운 제국 군의관 제복을 입은 여성—레이븐의 개인 주치의 소피아였다. 그녀의 곁에는 지적인 인상에 하얀 연구 가운을 걸친 기함의 수석 과학자, 닥터 에밀리가 예리하게 반짝이는 눈동자로 설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피아는 독방에 들어서자마자 벽면의 제어 콘솔로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녀의 섬세한 손가락이 단말기 위를 두드리자, 벨리알의 감시 카메라 화면이 일시적으로 정지했다.


“카메라 루프 제어 코드를 심었습니다. 정확히 10분 동안은 벨리알의 감찰실 화면에 정지된 독방 모습만 송출될 겁니다. 에밀리 박사님, 서두르십시오!”


소피아의 다급한 목소리에 닥터 에밀리가 무릎을 꿇고 설아의 상체를 부축했다. 에밀리는 품속에서 휴대용 생체 나노 스캐너인 ‘메디-큐브’를 꺼내 설아의 가슴팍에 가져다 댔다. 스캐너의 스크린 위로 기하학적인 주파수 곡선들이 어지럽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피이이—.


날카로운 경고음이 메디-큐브에서 흘러나왔다. 에밀리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질렸다.


“이럴 수가…… 양자 오염 수치가 임계점을 완전히 넘어섰어. 심장 부근의 나노 네트워크가 폭주하고 있군요.”


설아는 마비되어 가는 손가락을 억지로 움직여 목덜미에 걸린 남동생 민우의 은빛 군인 인식표를 꽉 움켜쥐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전해지자 흐려지던 이성이 간신히 수면 위로 떠 올랐. 그녀는 피가 섞인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에밀리를 노려보았다.


“나를…… 치료하겠다는 건가? 제국의 과학자가 반란군을 위해?”


“오해하지 마세요, 민설아 씨.”


에밀리가 차가우면서도 지적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당신이 죽으면 우리 대장군 각하의 심장 코어도 즉각 정지합니다. 나는 제국의 군인으로서 각하의 생명선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을 뿐이에요. 소피아, 긴급 신경 안정제를 주입해!”


소피아가 즉각 소형 주사기를 꺼내 설아의 쇄골 부근, 은청색 회로가 요동치는 부위로 바늘을 가져갔다.


지잉—!


그 순간, 설아의 가슴팍에 이식된 양자 생명 동조기에서 강력한 전자기 역장이 방출되었다. 투명한 푸른빛의 스파크가 허공에서 일며 소피아의 손을 거칠게 밀쳐냈다. 주사 바늘이 강한 척력에 튕겨 나가며 메탈 바닥으로 떨어져 비참하게 구부러졌다.


“아앗!”


소피아가 손목을 감싸 쥐며 비명을 질렀다.


“안정제를 기계적으로 거부하고 있습니다! 동조기 자체의 방어 역장이 이질적인 나노 물질을 외부 침입으로 인식하는 것 같아요!”


에밀리는 구부러진 주사기를 바라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그녀는 메디-큐브의 스캔 데이터를 정밀 분석하기 시작했다. 화면에는 설아의 뇌 신경망이 고대의 양자 신호에 의해 기이하게 재구성되는 도해가 실시간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역시 단순한 기계 장치가 아니었어…….”


에밀리가 나지막이 탄식했다.


“이 동조기는 당신의 혈통 속에 흐르는 아르케의 유전자와 유기적으로 반응하는 장치예요. 일반적인 제국군 규격의 화학 약물은 독성 물질로 판단해 역장으로 밀어내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당신이 겪고 있는 ‘신경 오염의 진짜 정체’예요.”


설아는 거친 호흡 속에서 귀를 기울였다. 신경 오염의 진짜 정체.


“동조기를 쓸 때마다 발생하는 두통과 신경 마비는 단순한 반동이 아닙니다. 고대의 시스템이 당신의 인간적인 뇌 신경망을 선구자—아르케의 고차원 뇌로 재구성하려는 과정이에요. 하지만 평범한 인간의 육체는 그 방대한 양자 데이터 부하를 견뎌내지 못합니다. 그 결과로…….”


에밀리의 눈동자에 짙은 절망감이 서렸다.


“당신의 뇌세포가 실시간으로 괴사하고 있습니다. 영구적인 괴사예요. 이대로 방치하면 당신은 물론이고, 당신과 목숨이 연동된 레이븐 대장군 역시 48시간 이내에 완전한 뇌사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뇌세포의 영구적 괴사. 그리고 동반 뇌사.


에밀리의 선고는 가혹한 시한부 선고였다. 설아의 머릿속에서 과거 강 박사가 전해 주었던 어머니 한지원의 연구 일지 경고가 유령처럼 되살아났다.


*동조율이 90%를 초과하면 두 사람의 뇌 신경망이 하나로 융합되어 각자의 자아를 잃고 소멸할 것이다.*


어머니의 경고는 단순한 가설이 아니었다. 지금 자신의 머릿속을 헤집고 있는 이 지옥 같은 통증이 바로 자아 소멸과 죽음의 전조였던 것이다. 설아는 이를 악물었다. 원수인 레이븐을 죽이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살아야 했다. 조국 카이로스를 파괴한 제국 황실의 진짜 음모를 밝혀내기 전까지는 결코 눈을 감을 수 없었다.


“방법이…… 있을 텐데.”


설아가 핏물이 고인 목구멍으로 쇳소리를 내며 물었다.


“나를 살려야…… 당신들의 대장군도 산다.”


“맞아요. 그래서 내가 이 금기된 약물을 준비했죠.”


에밀리가 품속에서 극비리에 조제한 작은 원통형 실린더를 꺼냈다. 실린더 내부에는 신비롭고 영롱한 푸른빛을 내뿜는 액체가 일렁이고 있었다. ‘생명 동조 안정화 액’이었다. 아크라이트 추출액과 제국의 고위 신경 안정 물질을 양자 주파수에 맞춰 특수 비율로 혼합한, 은하계에 단 하나뿐인 처방전이었다.


“이 약물은 동조기의 역장과 주파수를 동기화해 주입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일시적으로 신경 오염의 전파를 차단하고 세포의 괴사 속도를 늦춰줄 겁니다.”


에밀리는 실린더를 설아의 목걸이 틈새, 쇄골 라인에 새겨진 은청색 회로의 중심 노드에 대고 압축 분사 장치를 가동했다.


치이익—!


차가운 가스 소리와 함께 푸른빛의 안정화 액이 설아의 피부 밑 혈관으로 직접 주입되기 시작했다.


순간, 눈이 멀 것 같은 푸른 섬광이 설아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혈관을 타고 차가운 얼음물이 흘러들어오는 듯한 감각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붉게 불타오르며 비명을 지르던 쇄골의 양자 회로들이 푸른빛의 액체와 반응하며 서서히 진정되기 시작했다. 머리를 쪼개놓을 것 같던 극심한 두통이 파도 밀려가듯 가라앉았다.


“하아…… 흑, 하아……”


설아의 허파로 맑은 공기가 흘러들어왔다. 흐릿했던 오른쪽 시야가 조금씩 선명해지며, 눈앞의 에밀리와 소피아의 얼굴이 온전히 보였다. 가슴속에서 요동치던 레이븐의 심장박동 역시 차분하고 일정한 궤적으로 돌아왔다. 기함 저편에서 그 역시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음이 양자 링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설아는 차가운 은빛 바닥에 상체를 기대며 거친 호흡을 정리했다. 살았다. 생명의 불꽃이 꺼지기 직전, 기적적으로 다시 타올랐다.


그러나 에밀리의 표정은 전혀 밝아지지 않았다. 그녀는 빈 실린더를 거두며 차가운 눈빛으로 설아를 바라보았다.


“안심하지 마세요. 이건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임시방편이라니?”


설아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에밀리는 메디-큐브의 스캔 결과를 가리켰다.


“안정화 액은 동조기의 신경 폭주를 겨우 48시간 동안만 지연시켜 줄 뿐이에요. 이 시간이 지나면 당신의 뇌세포는 다시 빠른 속도로 괴사하기 시작할 겁니다.”


설아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품속을 더듬었다. 시타델 카이로스의 고문실에서 목숨을 걸고 탈취했던 은빛 나노 치료제 ‘헬릭스-V’ 세 병이 장교 제복 안쪽에 고스란히 숨겨져 있었다. 설아는 그것들을 꺼내 보이려 했다.


“내게 헬릭스-V가 있다. 제국 정보부의 고문실에서 가져온 세 병이…….”


에밀리가 그 병들을 힐끗 보더니 슬프게 고개를 저었다.


“그것들은 일반 등급의 헬릭스-V입니다. 일반 군인들의 신경 재생용으로 희석된 약물이죠. 동조기가 일으키는 초고차원 양자 괴사를 막기에는 순도가 턱없이 부족해요. 당신의 뇌세포 괴사를 근본적으로 정지시키고 신경 오염을 치료하려면, 오직 제국 장교단 중에서도 극소수에게만 허락되는 ‘고순도(High-Purity) 헬릭스-V’가 필수적입니다.”


“고순도 헬릭스-V…….”


설아의 입술 사이로 차가운 단어가 새어 나왔다. 에밀리는 고개를 들어 독방의 천장 방향을 가리켰다.


“그 약물은 기함 블랙 레비아탄의 심장부, 삼엄한 감시 하에 놓인 최정예 의무 보물고 깊은 곳에 엄격히 보관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보관함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결코 접근할 수 없어요.”


에밀리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고 무겁게 가라앉았다.


“의무 보물고의 마스터 보안 장치는 황실 감찰관 벨리알의 극비 개인 코드로만 개방할 수 있는 절대 금지 구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벨리알의 눈을 피해 그곳에 침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죠.”


독방 안의 비상 조명이 미세하게 깜빡이며 다시 붉은빛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소피아가 설정해 둔 10분의 제한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다. 벨리알의 감시 카메라 루프가 풀리기 직전이었다.


설아는 목걸이의 차가운 금속판을 손끝으로 짚었다. 살기 위해 주어진 시간은 단 48시간. 그 안에 벨리알의 철저한 감시망을 뚫고 기함 내부의 금지 구역에 침투해 고순도 치료제를 빼앗아야만 했다.


어둠 속에서 설아의 은청색 눈동자가 차갑고 강인한 복수의 불꽃을 튀기며 빛났다. 적장의 목숨을 쥔 인질이자, 기함의 보이지 않는 유령 포로로서 벌여야 할 목숨을 건 두 번째 도박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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