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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찰관의 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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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익, 격벽이 미끄러지듯 열리며 차가운 살균 가스 사이로 구두굽 소리가 울렸다.


독방 내부의 붉은 비상 조명 아래, 황실 감찰관 벨리알의 창백한 얼굴과 날카로운 금빛 안경테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뒤로는 검은 제복을 입은 황실 친위 요원들이 그림자처럼 늘어섰다. 벨리알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말려 올라갔다.


“대장군 각하, 아주 열정적인 심문이군요. 포로의 숨통을 직접 끊어 놓으실 기세입니다.”


레이븐은 설아의 입술을 짓누르고 있던 가죽 장갑을 천천히 떼어냈다. 그는 설아를 벽으로 밀쳐둔 채, 아무런 동요도 없는 차가운 눈빛으로 벨리알을 돌아보았다. 레이븐의 전신에서 흐르는 푸른색 나노 전류가 미세한 경고의 스파크를 일으키며 튀었다.


“감찰관. 이 사막의 쥐새끼가 입을 열지 않아서 직접 기강을 잡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습니까?”


벨리알이 안경을 치켜올리며 설아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설아는 목덜미를 조여오는 전자기 차폐 차단 목걸이의 가혹한 압박 속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팍의 동조기가 레이븐의 심장박동과 공명하며 옷감 너머로 미세하게 은청색 빛을 흘리고 있었지만, 레이븐의 넓은 어깨와 제복 그림자 덕분에 간신히 벨리알의 시야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게 전송된 함선 생체 데이터 로그는 조금 다른 말을 하더군요.”


벨리알이 손목의 홀로그램 단말기를 톡톡 두드렸다.


“대장군 각하의 심장 코어 수치와 이 반란군 포로의 심박 주파수가 소름 끼칠 정도로 일치하며 요동쳤습니다. 마치…… 하나의 목숨을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가문의 명예를 짊어지신 각하께서 설마 사막의 하층민과 영혼을 섞기라도 하신 겁니까?”


독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영하로 얼어붙는 듯한 침묵이 감돌았다. 설아는 입술을 깨물며 벨리알을 노려보았다. 벨리알은 이미 심증을 굳히고 덫을 놓은 것이 분명했다.


레이븐이 차갑게 실소를 터뜨렸다.


“쓸데없는 음해군, 감찰관. 포로의 심장에 이식된 저항군 규격의 양자 장치가 내 나노 코어에 미세한 전자기 교란을 일으켰을 뿐이다. 내 함선의 보안이 그토록 취약해 보이나?”


“그 의문을 완전히 해소하기 위해 제가 직접 심문을 진행하려 합니다.”


벨리알이 손을 가볍게 흔들자, 뒤에 서 있던 친위 요원들이 레이븐의 앞을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가로막았다.


“대장군 각하께서는 사령실로 복귀해 함대의 아우렐리아 성계 진입을 지휘해 주십시오. 황실 법률 제14조에 의거, 포로의 이단 기술 심문은 황실 감찰관인 제 전권 사항입니다.”


레이븐의 푸른 눈동자가 살기로 번뜩였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감찰관의 권한을 무력으로 누른다면, 그것이야말로 반역의 결정적 증거가 될 터였다. 레이븐은 벽에 기대어 숨을 헐떡이는 설아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살아남으라’는 무언의 압박과 경고가 서려 있었다.


“……좋을 대로 해라. 하지만 내 포로를 완전히 망가뜨려 놓는다면 황실 의회에 정식으로 책임을 묻겠다.”


레이븐은 가죽 장갑을 거칠게 고쳐 끼며 독방을 빠져나갔. 격벽이 닫히는 순간, 설아는 다시 한번 세상에서 완전히 고립되었음을 실감했다.


벨리알이 천천히 설아에게 다가왔다. 그의 창백한 손에는 어두운 금속성 재질의 둥근 장치—‘황실 진실의 거울 단말기’가 들려 있었다. 장치가 가동되자, 차가운 붉은색 레이저 광선이 설아의 안구를 강타하며 시야를 붉게 물들였다.


“자, 사막의 유령이여. 이제 연극은 끝났다.”


벨리알이 단말기의 홀로그램 스크린을 띄웠다. 스크린 위에는 설아의 심장 박동 그래프와, 사령실로 향하는 레이븐의 실시간 생체 수치 그래프가 나란히 정렬되어 있었다.


“이 거울 단말기는 네 뇌파와 심장 주파수를 완벽하게 락온한다. 네가 거짓을 말하거나 감정이 흔들릴 때마다 발생하는 미세한 나노 전류를 감지하지. 첫 번째 질문이다. 카이로스-4의 지하 요새 ‘아이언 아크’의 잔존 세력은 지금 어디로 대피했지?”


설아는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을 참으며, 묶여 있는 손가락으로 목걸이의 차가운 감촉을 느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벨리알의 안경 너머 음험한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모두…… 모래바람 속에서 죽었다. 제국군의 폭격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위이이잉—.


단말기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붉은 레이저가 설아의 가슴팍 동조기 흔적을 비추며 강렬하게 요동쳤다.


“거짓이군.”


벨리알이 단말기의 콘솔을 조작하자, 설아의 목에 채워진 차단 목걸이에서 미세한 고전압 나노 자극이 뿜어져 나왔다. 쇄골과 목덜미의 신경총을 직접적으로 찌르는 타는 듯한 통증이 설아의 전신을 강타했다.


“아아악……!”


설아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동시에, 사령실의 제어 콘솔을 모니터링하고 있던 레이븐의 생체 수치 그래프가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30%의 동조된 고통이 레이븐의 나노 코어를 강타한 것이었다. 레이븐의 심박수가 급상승하며 함선 보안망에 경보가 감지되었다.


벨리알이 그 모습을 보며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었다.


“역시 그렇군. 네가 고통을 느끼자마자 대장군의 맥박이 정확히 같은 곡선을 그리며 치솟는구나. 이 기묘한 생명 동조 장치의 작동 코드가 무엇이지? 레이븐 대장군이 너와 어떻게 목숨을 묶은 거냐?”


설아는 이가 부러질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통증으로 인해 뇌 신경망이 오염되며 시야가 하얗게 점멸했다. 이대로 벨리알의 심문에 놀아난다면 레이븐의 생체 수치가 폭주하여 동조 비밀이 완전히 폭로될 터였다. 원수의 목숨을 지켜야만 자신이 살 수 있는 가혹한 모순 속에서, 설아는 전술적 판단을 내려야 했다.


‘정신을 집중해라. 뇌파를 속여야 해.’


설아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고대 유적에서 아르케 박사의 의식체로부터 터득했던 정신 집중법—‘양자 호흡 제어법’을 머릿속으로 시전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허파 깊숙이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셨다가 극도로 느리게 내뱉었다. 가슴속에서 은청색 성운의 광채를 내뿜는 동조기의 고동 소리에 정신을 집중했다. 목에 걸린 남동생 민우의 은빛 군인 인식표의 차가운 감촉을 마음속으로 그리며, 요동치는 감정과 두통의 파동을 인위적으로 억누르고 이성을 차가운 영하의 상태로 얼려버렸다.


후우…… 후우…….


설아의 호흡이 믿기 힘들 정도로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뇌 신경망의 시냅스 전달 속도가 강제로 늦춰지면서, 거울 단말기의 스크린에 표시되던 붉은색 불안정 그래프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안정을 되찾았다. 동조기를 타고 레이븐에게 전달되던 고통의 주파수 역시 차단 목걸이의 한계 수치 아래로 가라앉았다.


벨리알의 안경 너머 눈동자가 의아함으로 가늘어졌다. 단말기는 이제 설아의 생체 데이터를 ‘정상’ 혹은 ‘무반응’으로 감지하고 있었다.


“뇌파를 스스로 제어하는 기술이라니…… 변방의 반란군 쥐새끼치고는 제법이군. 하지만 황실의 기술력을 얕보지 마라.”


벨리알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냉혹한 광기가 서렸다. 그는 단말기의 측면 다이얼을 최대 출력으로 돌렸다.


“출력을 최대로 높여 네 통각 신경을 뇌하수체째로 태워버려도 그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지 보지!”


단말기의 붉은 광선이 보랏빛의 초고온 나노 전류 광선으로 변하며 설아의 안구와 목덜미의 전극을 직접적으로 강타하기 시작했다. 신경망이 통째로 뜯겨 나가는 듯한 극치의 통증이 설아의 영혼을 찢어발겼다. 설아의 입술 사이로 핏물이 배어 나왔다. 사령실의 레이븐 역시 심장 마비 직전의 쇼크 상태로 그래프가 치솟았다.


바로 그 순간.


탁, 타탁—!


블랙 레비아탄 독방의 모든 은빛 조명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일시적으로 점멸했다. 사방을 비추던 붉은 비상등마저 완전히 꺼지며 독방 내부가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잠겼다. 동시에 기함 전체에 웅웅거리는 거대한 비상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경고. 상층부 전력 계통에 예기치 못한 양자 과부하 발생. 비상 전력 수동 전환을 시작합니다.]


벨리알의 손에 들려 있던 황실 진실의 거울 단말기가 강한 전자기 스파크를 일으키며 일시적으로 전원이 꺼졌다. 설아를 짓누르던 나노 자극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각하! 사령실에서 대장군 각하가 반응로 이상 경보를 이유로 상층부 구역의 전력을 강제로 일시 차단했습니다!”


친위 요원의 다급한 보고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설아는 어둠 속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차가운 격벽에 머리를 기댔다. 레이븐이 사령실에서 원격으로 함선의 전력망을 교란해 자신을 구해낸 것이 분명했다.


어둠 속에서 벨리알의 안경 렌즈만이 푸른 비상등 잔상에 반사되어 번뜩였다. 그의 낮고 음산한 웃음소리가 독방의 정적을 깨뜨렸다.


“……대장군께서 아주 영리한 도박을 하시는군요. 재미있습니다.”


벨리알은 전원이 꺼진 단말기를 거두며 설아의 턱을 거칠게 치켜올렸다.


“이번 심문은 기술적 오류로 미뤄두지. 하지만 민설아, 대장군의 주치의인 소피아가 각하의 생체 데이터를 언제까지 위조해 줄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 다음 저울 위에서는 그 누구도 네 목숨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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