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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함의 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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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포 광선이 수송선 더스트 호를 완전히 삼키는 순간, 민설아의 가슴속 양자 생명 동조기는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웅웅거리는 중저음의 진동이 기함 ‘블랙 레비아탄’의 거대한 도킹 베이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칠흑 같은 우주 공간에서 거대한 강철 포식자처럼 다가왔던 기함의 내부로 끌려 들어가는 감각은, 마치 거대한 괴수의 식도로 추락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철컥, 철컥, 철컥.


수송선의 해치가 강제로 개방되는 둔탁한 소리가 사막의 전사들에게 종말을 알렸다. 대기권을 돌파하느라 만신창이가 된 더스트 호의 선실 내부로, 제국 제3함대 ‘검은 까마귀’의 정예 요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은 붉은 모래 먼지가 묻은 저항군 가죽 슈트를 입은 피난민들과 부상당한 지호, 그리고 거구의 돌쇠를 무자비하게 끌어내렸다.


“대장! 설아 대장!”


돌쇠가 거대한 팔을 버둥거리며 소리쳤지만, 검은 까마귀 요원들의 나노 강화 외골격 슈트에서 방출되는 푸른 전류가 그의 몸을 무겁게 억눌렀다. 설아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그들을 향해 손을 뻗으려 했으나, 뼈마디가 비틀리는 듯한 전신 마비 피로와 우뇌 신경 손상으로 인한 오른쪽 시야의 왜곡이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오른쪽 뺨의 거친 흉터가 식은땀으로 젖어 들었다.


“그들을 해치지 마라.”


차가운 기계음 너머로, 설아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사령관 제복을 입은 장교 한 명이 검은 까마귀 대원들에게 수동 신호를 보냈다.


“대장군 각하의 직접 명령이다. 비전투원들과 부상자는 하부 화물 구역으로 격리해라. 그리고 이 여자, 민설아는 즉각 최상층 독방으로 압송한다.”


그것이 설아가 기함 내부로 끌려가며 들은 마지막 지시였다. 지호의 애타는 목소리와 돌쇠의 절규가 기함 내부의 냉혹하고 거대한 강철 질감 너머로 서서히 멀어졌다. 설아는 차가운 메탈 복도를 지나며 목덜미에 깊게 새겨진 데커드의 고문 침 자창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품속에는 고문실에서 탈취했던 은빛 헬릭스-V 치료제 세 병과 벨리알의 음모 데이터 로그가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것이 그녀가 원수의 기함 한가운데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다.


마침내 도착한 최상층의 ‘블랙 레비아탄 독방’은 완벽한 침묵과 차가운 전자기 차폐막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두꺼운 강철 문이 둔탁한 금속음을 내며 닫히는 순간, 외부 세계와의 모든 물리적, 전자기적 연결이 차단되었다. 사방이 온통 살균된 은빛 격벽으로 둘러싸인 방 한가운데에 설아는 홀로 남겨졌다.


“하아…… 하아……”


설아는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가슴팍의 동조기가 기함 내부의 반물질 반응로 주파수와 격렬하게 공명하며 은청색 성운 모양의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궤도 위에서 느꼈던 레이븐의 거대한 심장박동이 마치 자신의 가슴 속에서 치는 북소리처럼 쿵쾅거렸다. 원수의 목숨이 나의 목숨과 묶여 있다는 이 잔혹한 저주가, 차가운 독방 안에서 그녀의 허파를 죄어왔다.


그때, 독방의 이중 차단 격벽이 부드러운 기계음과 함께 위로 미끄러지듯 열렸다.


차가운 스팀이 바닥으로 깔리는 안개 너머로, 거대하고 위압적인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국 제3함대의 총사령관이자, 카이로스 행성을 초토화하려 했던 적장. 레이븐 대장군이었다.


그는 단정한 제국 대장군의 검은 제복을 입고 있었으며, 어깨에 달린 은빛 견장이 사령실의 미세한 조명을 받아 차갑게 빛났다. 전신을 감싸고 있는 나노 생체 융합 전류가 그의 피부 밑에서 미세한 푸른빛을 내며 흐르고 있었다. 그의 은발 아래로 보이는 푸른 눈동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냉혹함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설아는 동조기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겉모습은 철벽처럼 완벽해 보였지만, 심장 깊은 곳에서는 자신과 똑같은 미세한 맥박의 통증이 일렁이고 있다는 것을.


레이븐은 말없이 설아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설아의 가슴팍에서 점멸하는 은청색 성운 표식과, 목덜미에 남은 피 묻은 자창 흔적에 머물렀다.


“사막의 쥐새끼가 기어이 내 기함의 심장부까지 기어 들어왔군.”


레이븐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하지만 설아는 비틀거리며 벽을 짚고 일어섰다. 흐릿한 오른쪽 시야 속에서도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는 원수를 향해 불타는 독기를 뿜어냈다.


“네놈이 나를 살려두라고 명령했다는 걸 알아, 레이븐. 네 심장을 쥐고 흔드는 낙인이 내 가슴에 박혀 있으니까.”


설아는 가슴팍의 동조기를 툭툭 치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내가 여기서 혀를 깨물거나, 이 목덜미의 상처를 더 깊게 찢어발기면 네놈도 그 화려한 사령관 의자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지겠지. 안 그래?”


레이븐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푸른색 초전도 나노 전류가 스파크를 일으키며 튀었다. 일반적인 제국 장교였다면 즉각 그녀의 목을 베었겠지만, 레이븐은 그럴 수 없었다. 설아의 육체에 가해지는 모든 물리적 훼손은 고스란히 그의 심장 코어로 전이되어 동귀어진의 파멸로 이어질 터였다.


“오만한 반란군 전사여. 네가 쥔 인질의 무게가 네 생명을 영원히 보장해 줄 거라 착각하지 마라.”


레이븐이 품속에서 묵직하고 차가운 금속성 고리를 꺼냈다. 검은색 초합금 표면에 미세한 나노 회로가 복잡하게 수놓아진 장치—‘전자기 차폐 차단 목걸이’였다.


“이건 네 가슴속 동조기의 양자 신호를 강제로 감쇄시키는 구속구다. 네놈이 쓸데없는 짓을 꾸미지 못하도록 제어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지.”


레이븐이 성큼 다가왔다. 설아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전신을 짓누르는 마비 피로와 좁은 독방의 벽이 그녀의 퇴로를 막았다. 레이븐의 거대한 손이 설아의 얇은 칼라를 젖히고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그의 기계화된 강철 같은 완력이 설아의 목을 단단히 고정했다.


“놔……!”


철컥—!


차가운 금속 고리가 설아의 목덜미를 가혹하게 감싸 안으며 잠겼다. 목걸이가 작동하는 순간, 가슴팍에서 흘러나오던 은청색 양자 파동이 억누르는 압력에 막혀 급격히 감쇄하기 시작했다. 동조기의 주파수가 강제로 짓눌리자, 설아의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조여들며 숨이 턱 막혔. 전신에 타는 듯한 과부하 통증이 엄습했다.


“윽……!”


설아는 무릎을 꿇으며 신음을 흘렸다. 레이븐 역시 가슴을 움켜쥐며 미세하게 호흡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통각 역전을 통해 설아가 느끼는 고통의 절반이 그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 것이었다. 하지만 레이븐은 이내 이성을 되찾고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동조 파동 감쇄 조율법을 적용했다. 이제 네가 자해를 하더라도 내게 전송되는 통증의 세기는 30% 이하로 제한된다. 주파수를 완전히 잠글 수는 없지만, 최소한 네놈이 목숨을 담보로 내 경호대를 협박하는 짓거리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설아는 목을 짓누르는 차단 목걸이를 긁어내려 했지만, 단단한 초합금 잠금장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레이븐을 쏘아보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겨우…… 이딴 목걸이 하나로 복수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제국의 대장군이 고작 포로 한 명 때문에 밤마다 심장 발작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니, 정말 눈물겹군.”


“입을 조심해라, 민설아. 네놈이 어떻게 고대 양자 동조기를 가동했는지, 그리고 이 저주를 푸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전까지는 네 목숨을 살려두는 것뿐이다.”


레이븐이 몸을 돌려 독방을 나가려 했다. 바로 그 순간, 설아의 입에서 흘러나온 나지막한 목소리가 그의 발걸음을 완전히 얼어붙게 만들었다.


“글쎄, 그 저주를 푸는 것보다…… 네 뒤통수를 노리는 황실의 칼날을 걱정하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대장군 각하.”


레이븐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동자에 서린 살기가 독방 내부의 기압을 단숨에 떨어뜨리는 것 같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설아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앉아, 품속에 숨겨둔 단말기의 홀로그램 화면을 슬쩍 점멸해 보였다. 데커드의 고문실에서 지호를 구출할 때 백업해 두었던 극비 데이터—황실 감찰관 벨리알이 레이븐을 반역죄로 엮어 파멸시키려 한다는 구체적인 음모의 데이터 로그였다.


“황제 발타자르가 보낸 뱀이 네 기함 내부까지 기어 들어왔더군. 벨리알 감찰관이었나? 그자가 네 건강 이상 수치와 내 존재를 눈치채고, 널 몰락시킬 완벽한 물증을 찾고 있어. 내가 순순히 입을 열어 네놈과의 생명 동조 사실을 황실 의회에 고발하면, 발렌타인 가문의 명예가 어떻게 될지 참 궁금하네.”


레이븐의 은빛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설아가 제국 황실의 극비 암투 정보까지 쥐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듯했다.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침묵과 전술적 대치가 이어지던 바로 그 순간.


삐비빅—!


레이븐의 손목 단말기에서 붉은색 비상 경고등이 요란하게 점멸했다. 기함의 인공지능이 차가운 음성 메시지를 사령실 통신망을 통해 그의 뇌 신경망으로 직접 송신했다.


[경고. 황실 직속 감찰선이 기함 블랙 레비아탄의 제1도킹 베이에 강제 접안했습니다. 황실 감찰관 벨리알 각하가 친위 요원들을 거느리고 대장군 각하의 개인 구역 및 최상층 독방 구역으로 즉각 진입하고 있습니다. 차단 코드 우회 해킹 감지.]


“이런 미친…… 벨리알이 벌써 움직였다고?”


레이븐의 안색이 급격히 굳어졌다. 감찰관 벨리알이 황실의 백도어 코드를 이용해 기함의 보안 장벽을 우회하며 이 독방 앞까지 예고 없이 들이닥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만약 벨리알이 문을 열고 들어와 가슴팍에 고대 양자 동조기 낙인을 빛내고 있는 사막 저항군 여전사 민설아를 목격한다면, 레이븐은 그 자리에서 반역 혐의로 기소될 터였다.


쿵, 쿵, 쿵.


독방 외부 복도 너머로 황실 친위 요원들의 묵직한 강철 군화 소리가 불길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외부 보안 콘솔이 강제로 해킹당하며 격벽 해제 카운트다운이 작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이 없었다. 단 5초 뒤면 이 독방의 격벽이 열리고 벨리알의 음험한 안경 너머 푸른 눈동자가 이 안을 샅샅이 훑을 것이 분명했다.


설아는 이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을 감지하고 동조기를 폭주시켜 전자기 펄스를 방출하려 시도했다.


“비켜, 이 기회에 네놈과 그 감찰관을 한꺼번에—”


“닥쳐라!”


레이븐이 야수처럼 포효하며 설아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는 설아의 가슴팍에서 은청색 성운 모양으로 밝게 타오르기 시작한 동조기의 발광을 가리기 위해,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움켜쥐고 차가운 강철 벽면으로 사정없이 밀어붙였다.


쿵—!


설아의 등에 둔탁한 충격이 가해졌고,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오려 했다. 하지만 레이븐은 가죽 장갑을 낀 거친 손으로 그녀의 입술을 무자비하게 틀어막았다. 그의 거대하고 단단한 체구가 설아의 전신을 벽면에 밀착시키며 짓눌렀. 두 사람의 물리적 거리가 완전히 사라진 초밀착 상태였다.


설아의 가슴팍에 박힌 동조기와 레이븐의 심장에 심겨진 나노 코어가 서로 부딪히며 기이하고 격렬한 공명을 일으켰다. 두 사람의 심장이 정확히 같은 주파수로 요란하게동조하며 폭풍 같은 두 배의 울림을 독방 내부에 퍼뜨렸다. 레이븐은 자신의 넓은 어깨와 제복으로 설아의 은청색 발광을 완벽하게 가린 채,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를 뚫어질 듯이 응시했다.


바로 그 순간, 독방의 육중한 강철 문이 패스워드 우회음과 함께 스르륵 열리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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