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떠나는 궤도 수송선
시타델 카이로스의 무너져 내리는 지하 정비창을 뚫고, 돌쇠의 초인적인 괴력 덕분에 제국군 기갑 수색대의 촘촘한 포위망을 돌파했던 순간의 전율이 아직도 민설아의 온몸에 생생하게 낙인처럼 남아 있었다. 왼쪽 목덜미에 깊게 박혔던 고문관 데커드의 나노 고문 침 자창은 심장이 박동할 때마다 불타는 듯한 신경통을 뿜어내며 쇄골 라인을 타고 번져갔고, 우뇌 신경의 일시적 손상으로 인한 오른쪽 시야는 모래 폭풍이 휘몰아친 것처럼 여전히 흐릿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단 1초의 휴식조차 사치였다. 부상당한 소년 해커 지호를 부축해 피눈물을 흘리며 돌아온 저항군의 비밀 방주 기지, ‘아이언 아크’는 이미 생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비열한 보급 담당자 황두식의 추악한 밀고. 제국의 은화 몇 푼과 가짜 시민권 카드에 영혼을 판 배신자의 밀고로 인해 기지의 비밀 좌표와 비상구 코드는 바란 소장이 이끄는 제국 진압군에게 고스란히 유출되었고, 무자비한 기갑 사단이 기지의 최후 비상구 격벽 앞까지 들이닥쳐 포격을 퍼붓고 있었다.
쿠구구궁—!
지하 300미터 아래의 요새 전체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요동쳤다. 천장에서는 붉은 모래와 콘크리트 잔해가 폭포수처럼 쏟아졌고, 붉은색 비상 경보등이 깜빡이며 파멸의 임박을 알렸다. 피난민들의 비명과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좁은 통로를 가득 메웠다.
“설아 야, 늦지 않게 와주었구나.”
피와 먼지로 얼룩진 일안식 가죽 안대를 쓴 저항군 총사령관, 한태성이 무너져 내리는 잔해 먼지 속에서 그녀를 바라보며 쓸쓸히 미소 지었다. 그의 굳건했던 가슴팍은 이미 제국군의 플라즈마 포탄 파편에 관통당해 붉은 피가 쉴 새 없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설아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고통을 느끼며 그에게 달려갔다.
“사령관님! 안 됩니다, 제발 움직이지 마십시오! 제가 가져온 헬릭스-V 치료제를 주사하면 살아나실 수 있습니다!”
설아는 품속에서 데커드의 고문실에서 탈취했던 은빛 치료제 병을 꺼내려 했지만, 한태성은 차갑게 식어가는 거친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강하게 움켜쥐며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없다, 설아 야. 이 치료제는 네 가슴속 동조기의 저주를 견뎌내기 위해 네가 아껴두어야 할 생명선이다.” 한태성의 목소리는 거칠게 갈라졌지만, 그 눈빛만큼은 사막의 태양보다 뜨겁게 번뜩였다. “제국 채굴 연합 놈들이 아크라이트 광물을 무단으로 남채한 대가로 카이로스의 핵이 완전히 붕괴하기 시작했다. 이 행성은 이제 오래 버티지 못해. 피난민들과 대원들을 데리고 당장 이 행성을 탈출하거라.”
“하지만 사령관님을 두고 갈 수는 없습니다! 제게 전투 기술을 가르쳐 주신 아버지 같은 분이신데, 어떻게 혼자 두고 간단 말입니까!”
설아의 눈에서 참아왔던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려 오른쪽 뺨의 흉터를 적셨다. 한태성은 설아의 목에 걸려 있는 남동생 민우의 은빛 군인 인식표를 가만히 바라보며,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민우를 지키지 못했던 늙은이의 죄책감을, 오늘 여기서 이 요새와 함께 묻으마. 설아 야, 저항군의 불꽃은 이제 네 어깨에 달렸다. 살아남아라. 살아서 지배와 피지배가 없는 평등한 신은하의 하늘을 보아라.”
콰아앙—!
비상구 격벽이 제국군의 거대 타이탄 메카 ‘철의 군주’가 쏜 초고온 플라즈마 포격에 찢겨 나가며 눈이 멀 것 같은 붉은 화염이 통로로 들이쳤다. 격벽의 찢어진 틈새 너머로 제국 헌병수비대의 은빛 철갑 장화와 수십 개의 레이저 조준선들이 어둠을 뚫고 쏟아져 들어왔다. 적들의 무자비한 진입이 임박한 순간이었다.
한태성은 마지막 남은 온 힘을 쥐어짜 설아와 지호, 그리고 뒤에서 울부짖는 돌쇠를 비상 탈출용 고속 수송선 통로 너머로 밀쳐냈다. 그리고 격벽 수동 비상 차단 레버를 온 힘을 다해 아래로 잡아당겼다.
쿠구구궁—!
육중한 티타늄 차단벽이 내려앉으며 설아와 한태성의 시야를 영원히 갈라놓았다. 닫히는 격벽의 아주 작은 틈새 너머로 한태성의 마지막 호쾌한 미소와 함께, 격벽 너머에서 헌병대의 무자비한 플라즈마 총성과 폭발음이 사정없이 울려 퍼졌다. 스승의 장렬한 최후이자, 설아의 심장에 지울 수 없는 거대한 붉은 분노가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사령관님—!”
거구의 돌쇠가 격벽을 주먹으로 치며 절규했지만, 설아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그의 옷자락을 낚아챘다.
“움직여, 돌쇠! 사령관님의 희생을 헛되이 만들지 마! 피난민들을 수송선으로 인도해!”
설아는 부상당한 지호를 부축한 채 흔들리는 지하 터널을 지나 탈출 수송선 ‘더스트 호’가 대기 중인 비밀 격납고로 달렸다. 격납고 천장에서는 거대한 암석들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수송선의 조종석에서는 베테랑 파일럿 한수가 엔진을 과부하시키며 조종간을 잡고 다급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설아 대장! 빨리 타십시오! 행성의 중력장이 미쳐가고 있습니다! 외곽 궤도의 게이트웨이-4 대공포망도 이미 우리 수송선을 조준하기 시작했습니다!”
더스트 호는 사막의 고철 부품들을 기이하게 섞어 만든 낡은 저항군 수송선이었지만, 한수의 신들린 비행 조종술 덕분에 무너져 내리는 암석 지대와 제국군의 지상 포격을 기적처럼 뚫고 하늘을 향해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대기권을 돌파하는 순간, 전신을 짓누르는 거대한 중력 압착이 덮쳐왔다. 설아는 가슴을 움켜쥐며 신음을 흘렸다. 가슴팍의 양자 생명 동조기가 행성의 요동치는 중력 왜곡과 반응하며 뇌 신경망에 극심한 통증을 주입했다. 은청색 성운의 광채를 뿜어내던 동조기 표식이 거칠게 요동치며 그녀의 오른쪽 시야를 더욱 흐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조종석 창밖으로 푸른 은하의 경계와 함께, 궤도 정거장 게이트웨이-4의 차가운 강철 고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경고! 후방에 제국 순찰함 ‘데스 윙’ 출현! 락온 시스템 작동!”
한수의 절망적인 비명과 함께, 궤도 상공을 철벽처럼 지키고 있던 제국의 정예 순찰함 데스 윙이 더스트 호의 꽁무니를 향해 강력한 궤도 포격을 개시했다.
콰아앙—!
우주 공간에서 소리 없는 폭발이 일어났다. 수송선 후방 장갑에 직격탄이 꽂히며 기체가 비틀거렸고, 좌측 보조 엔진에서 붉은 불꽃과 전자기 스파크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조종석의 홀로그램 스크린에 경고등이 켜지며 방어막 수치가 순식간에 12%까지 급락했다.
“이대로 한 발 더 맞으면 기체가 공중 분해됩니다! 적의 락온 시스템이 너무 정교해서 일반적인 회피 비행으로는 따돌릴 수 없습니다!” 한수가 조종간을 필사적으로 당기며 소리쳤.
설아는 이를 악물었다. 물리적인 화력으로는 저 거대한 제국의 순찰함을 상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레이븐과의 동조를 통해 흘러나온 제국 군함의 정밀 설계 데이터가 뇌리에 문양처럼 각인되어 있었다. 데스 윙 급 순찰함의 유일한 구조적 취약점—노출된 반물질 엔진 냉각 밸브의 위치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한수, 수송선 상부 포탑의 수동 제어권을 내게 넘겨! 내가 저놈들의 눈을 멀게 하겠어!”
설아는 사제 플라즈마 저격소총 ‘모래바람’을 쥐고 수송선 상부의 수동 포탑 제어석으로 뛰어 올라갔다. 해치를 열자 차가운 우주의 진공과 기체의 격렬한 진동이 가죽 슈트를 타고 온몸으로 전해졌다. 그녀는 거친 우주 바람 속에서 흔들리는 소총을 포탑 거치대에 고정했다.
‘인과율 계산 사격술.’
설아는 흐릿한 오른쪽 눈을 감고, 왼쪽 눈을 모래바람의 정밀 조준경에 밀착시켰다. 가슴속의 동조기가 은청색 빛을 밝히며 뇌 신경을 가속했다. 레이븐이 평생 동안 전장에서 축적한 초인적인 공간 예측 감각이 주파수를 타고 유입되었다. 우주 공간의 미세한 중력 왜곡 궤적과 순찰함 데스 윙의 3초 뒤 기동 경로가 조준경 스크린 위에 푸른색의 인과선 가이드라인으로 선명하게 시각화되었다.
순찰함이 다음 포격을 위해 반물질 엔진의 냉각 밸브를 개방하는 단 0.5초의 찰나.
피융—!
모래바람의 총구에서 뿜어져 나온 고출력 플라즈마 탄환이 우주의 어둠을 가르고 날아갔다. 탄환은 인과율이 계산한 궤적을 따라 기가 막힌 곡선을 그리며, 데스 윙의 노출된 냉각 밸브 안으로 정확히 관통해 들어갔다.
콰과과광—!
순찰함의 후방 엔진실에서 푸른색의 전자기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데스 윙은 동력을 완전히 상실한 채 궤도 아래로 미끄러지며 강제 기동 정지 상태에 빠졌다. 수송선을 조준하던 대공 락온 레이저가 허공에서 산산조각 나며 사라졌다.
“해냈어……! 대단합니다, 설아 대장!” 한수의 환호성이 통신기를 타고 들려왔다.
더스트 호는 기적적으로 궤도 포격망을 돌파해 카이로스의 대기권을 완전히 벗어났다. 하지만 기쁨은 찰나였다. 무리한 대기권 돌파와 포격의 여파로 우측 추진기가 완전히 파손되며 수송선의 엔진이 꺼져버렸다. 더스트 호는 칠흑 같은 우주 공간 한가운데에 무력하게 표류하기 시작했다.
“엔진 과부하…… 추진 시스템이 완전히 침묵했습니다. 우주 공간에서 표류 상태입니다.” 한수의 목소리가 절망으로 가라앉았다.
고요하고 차가운 우주의 심연 속에서, 더스트 호의 전면 유리창 너머로 빛조차 삼켜버릴 듯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소리 없이 다가왔다.
그것은 제국 수도 함대조차 경외하는 제3함대의 정예 기함이자, 레이븐 대장군의 초대형 기함 ‘블랙 레비아탄’이었다. 기함의 거대한 하부 포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색 나포 광선이 표류하던 더스트 호를 부드럽고도 강력하게 감싸 안으며, 기함 내부의 어두운 도킹 베이 속으로 천천히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설아는 가슴팍의 동조기가 레이븐의 거대하고 차가운 심장박동 주파수와 격렬하게 공명하며 차갑게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궤도 위 적장의 거대한 요새가 마침내 그녀의 목숨을 집어삼키기 위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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