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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굴의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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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곡의 밤은 언제나 질척한 타르와 유황 냄새로 가득했다. 하늘을 가린 검은 먹구름 사이로 희미한 달빛조차 들지 않는 시각, 사방을 짓누르는 어둠 속에서 소년의 숨소리만이 고요하게 흩어졌다.


육한신은 무너진 오막살이의 문틀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았다. 오른손목에서부터 시작된 타오르는 듯한 격통이 척추를 타고 뇌수까지 찔러왔다. 가죽 끈으로 뒤틀린 손가락과 칠살검(七殺劍)의 자루를 뼈가 으스러지도록 옭아맨 탓에, 손끝의 감각은 이미 차갑게 죽어 있었다. 피가 통하지 않아 허옇게 질린 살가죽 위로 붉은 핏물이 가죽 끈 틈새로 뚝뚝 배어 나왔다.


말은 필요 없었다. 소년은 벙어리 아신의 가면 아래로 차가운 이성을 제련해 넣었다. 분노는 불꽃이 아니라, 단단하게 식은 강철이어야 했다.


한신이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첫발을 내디뎠을 때, 문틀 옆 그림자 속에서 푸른 옷자락이 가볍게 흔들렸다. 대나무 삿갓을 깊게 눌러쓴 백령(백령)이었다. 그녀는 청강검(靑鋼劍)을 손에 쥔 채, 아무런 말도 없이 한신의 기형적인 오른손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조롱도, 동정도 없었다. 오직 광기 어린 집념을 가진 무인을 향한 기묘한 경외감만이 서려 있을 뿐이었다.


한신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까딱하지도 않은 채,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백령 역시 소리 없는 유령처럼 그 뒤를 따랐다.


* * *


항산파(恒山派) 석탄곡 분타 전각은 황량한 탄광촌의 중심에서 홀로 화려한 기와를 뽐내고 있었다. 높은 붉은 담벼락 위로 수십 개의 횃불이 타오르며 붉은 빛을 밤하늘에 뿌렸고, 철갑을 두른 무사들이 창을 든 채 삼엄하게 순찰을 돌고 있었다.


한신은 담벼락 아래의 짙은 음영 속에 몸을 밀착했다. 매일 낮, 잡역부로서 이 전각의 마당을 쓸고 잡일을 했던 기억이 머릿속에 기하학적인 지도로 펼쳐졌다. 경비병들의 교대 시간, 횃불의 불빛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 그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그림자까지.


스스슥.


한신의 신형이 지면을 낮게 쓸며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사부 육남천에게 배웠던 위장 수련법, ‘빗자루질 보법(掃地步)’이었다. 비록 손에 대빗자루는 없었으나, 그의 발끝은 바닥의 흙을 미세하게 쓸어내며 몸의 중심을 완벽하게 뒤로 비껴갔다. 횃불을 든 무사들이 코앞을 지나갔지만, 그 누구도 어둠과 하나가 된 한신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소리 없는 연기처럼 붉은 담벼락을 넘어선 한신은 곧장 분타주 조표(趙彪)의 개인 침소로 향했다.


침소 내부는 고요했다. 낮 동안 광부들을 채찍질하던 조표는 다른 전각에서 기녀들과 술판을 벌이고 있는지 방 안은 비어 있었다. 한신은 숨죽여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나무 바닥의 미세한 이음새를 손끝으로 더듬자, 둥글게 튀어나온 비밀 버튼이 만져졌다.


스으윽.


버튼을 누르자 침대 뒤편의 석벽이 무겁고 고요하게 갈라지며 지하로 이어지는 어둡고 축축한 계단이 드러났다. 지독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차가운 지하수가 흐르는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조표의 지하 금고(地下 金庫)로 이어지는 통로였다.


한신은 계단을 밟고 어둠 속으로 내려갔다. 계단 끝에 도달하자, 사방이 두꺼운 무쇠 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석실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정중앙에는 성인 장정 세 명이 달라붙어도 끄떡없을 듯한 육중한 무쇠 금고 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금고 문의 한가운데에는 톱니바퀴가 복잡하게 얽힌 삼중 회전식 자물쇠가 위압적인 자태로 박혀 있었다.


‘이 자물쇠를 강제로 부수면 내부의 장치에서 산성 독물이 흘러나와 안의 물건들을 모조리 녹여버린다.’


과거 탁무양이 일러주었던 경고가 떠올랐다. 조표가 광부들을 수탈해 모은 황금과 뇌물, 그리고 빼앗아 간 사부님의 유해 항아리를 온전히 되찾기 위해서는 자물쇠를 부수지 않고 열어야만 했다.


자물쇠의 규칙은 기묘했다. 특정 무게를 지닌 묵철(墨鐵) 조각을 열쇠 구멍에 밀어 넣은 상태에서 내부 톱니의 균형을 맞추고, 정확히 세 번을 회전시켜야만 걸쇠가 풀리는 구조였다. 평범한 도둑이라면 평생을 걸어도 그 무게의 배합을 맞출 수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한신의 눈동자가 서서히 붉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안구 주변의 경맥이 내력의 압박으로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고, 눈앞의 시야가 뜨거운 용광로 속 쇳물처럼 붉은 Spectrum으로 대조되기 시작했다. 대장장이의 피를 이어받아 무기의 미세한 피로도와 금속의 성질을 식별하는 특수 감각, ‘철 분석안(鐵 分析眼)’이 깨어난 것이다.


눈을 찌르는 듯한 극심한 안구 통증이 밀려왔지만 한신은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붉은 시야 속에서 무쇠 금고 문의 밀도와 자물쇠 내부의 미세한 틈새들이 투명하게 드러났다. 수십 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린 내부 기계 장치, 그리고 그 장치들이 가하는 압력의 분포가 붉은 선과 푸른 선으로 얽혀 보였다.


‘내부 걸쇠를 누르고 있는 스프링의 장력…… 그리고 필요한 묵철의 무게는 정확히 서 돈 삼 푼이다.’


한신은 오른손에 묶인 부러진 칠살검의 검날을 바라보았다. 고대 묵철로 주조된 검이었다. 소년은 왼손 손톱 끝으로 칠살검의 부러진 단면 가장자리를 미세하게 긁어냈다. 대장장이로서 단련된 손끝의 촉각과 철 분석안의 정밀함이 결합하여, 정확히 서 돈 삼 푼의 무게를 지닌 미세한 묵철 가루와 조각들이 그의 왼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한신은 숨을 죽인 채, 그 묵철 조각들을 열쇠 구멍 속으로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서걱.


묵철 조각들이 내부의 무쇠 홈에 끼어들며 기계 장치와 맞물리는 미세한 마찰음이 통로를 타고 흘러왔다. 일반인의 귀에는 바람 소리에 묻힐 아주 작은 소리였으나, 감각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한신의 귀에는 천둥소리처럼 선명했다.


철 분석안의 시야 속에서 푸른색 장력 선들이 서서히 수평을 이루기 시작했다. 한신은 왼손가락 끝으로 자물쇠의 외부 다이얼을 잡았다.


스륵. 첫 번째 회전. 내부의 첫 번째 걸쇠가 어긋나며 가벼운 쇳소리가 났다.


스륵. 두 번째 회전. 톱니바퀴들이 맞물리며 압력이 정중앙으로 집중되었다.


마지막 세 번째 회전. 한신은 손끝의 미세한 진동을 이용해 내부의 묵철 조각이 완전히 내려앉도록 유도했다.


틱.


묵직하면서도 경쾌한 파열음과 함께, 단단하게 닫혀 있던 무쇠 금고 문이 스르륵 뒤로 밀려났다.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해제였다.


한신은 문을 밀고 금고 내부로 발을 들여놓았다. 사방에 조표가 약탈한 금은보화와 명문 문파의 무기들이 무질서하게 쌓여 있었다. 하지만 소년의 눈에는 그런 화려한 재물 따위는 들어오지 않았다.


금고의 가장 깊은 곳, 낡은 목조 상자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거친 회색 진흙 항아리.


사부 육남천의 유해 항아리였다.


한신의 가슴속에서 차갑게 가라앉았던 분노가 순간 뜨거운 불길로 화해 솟구쳤다. 소년은 절뚝이는 다리로 허겁지겁 다가가 왼팔로 항아리를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다. 차갑고 투박한 진흙의 질감이 살결을 타고 전해지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응어리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사부님…… 마침내 되찾았습니다.’


항아리 바닥을 더듬자, 미세한 칼끝으로 새겨진 잔회검파의 비전 구결이 손가락 끝에 닿았다. 온전했다. 훼손된 곳은 없었다. 한신은 항아리를 품에 안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몸을 돌려 탈출하려 했다.


바로 그 순간.


스아아악—


지하 통로를 타고 흐르던 차가운 바람의 흐름이 급격하게 비틀렸다. 기척을 숨긴 거대한 살기가 통로 계단 위에서부터 폭포수처럼 밀려 내려왔다.


화아악!


고요하던 통로 벽면에 걸려 있던 횃불들이 일제히 타오르며 주황색 불꽃이 금고 내부를 잔인하게 비추었다. 일렁이는 불빛 사이로, 금고 문 입구를 가로막고 서 있는 거대한 실루엣이 드러났다.


참수 대도를 어깨에 걸친 채, 이 빠진 미소를 지으며 한신을 내려다보는 사내.


분타 제일의 호위무사이자 살수, 독고령(獨孤령)이었다.


“쥐새끼 한 마리가 꼬이더니, 설마 진짜로 이 자물쇠를 열 줄은 몰랐군.”


독고령이 대도를 바닥으로 내리찍으며 숲속의 맹수 같은 안광을 번뜩였다.


“조표 분타주께서 내리신 덫에 제 발로 걸어 들어왔구나, 벙어리 놈아.”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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