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 속에 묻힌 칼날
“그 손으로 쥐는 것은 곡괭이인가, 아니면 칼자루인가.”
백령의 서늘한 질문이 주막 장씨네의 탁한 공기를 가른 순간, 주막의 낡은 목조 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거친 군화 소리가 들이닥쳤다. 붉은 제복을 입은 항산파의 하급 간수들이 횃불을 치켜들며 주막 내부를 가득 메웠다. 매캐한 유황 연기와 석탄 먼지가 횃불의 붉은 불꽃에 일렁였다.
“가택 수색이다! 다들 엎드려! 움직이는 놈은 즉시 마교의 첩자로 간주하겠다!”
간수 대장 번호의 날카로운 고함이 주막 안을 짓눌렀다. 들이닥친 무사들의 서슬 퍼런 기세에 술을 마시던 광부들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육한신은 즉시 고개를 푹 숙였다. 더벅머리 아래로 눈빛을 감추고, 오른손의 삼베 붕대를 마의 소매 깊숙이 밀어 넣었다. 어수룩한 절름발이 벙어리 ‘아신’의 가면을 쓴 채, 테이블 밑으로 왼손을 뻗어 주모 장씨가 건넸던 무쇠 숟가락을 쥔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만약 정체가 탄로 난다면, 이 무쇠 숟가락 하나로 독고령의 목울대를 꿰뚫어야 할지도 모른다.
맞은편에 앉은 백령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잔에 담긴 독주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등 뒤에 기댄 청강검 끝의 검결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맑은 공명음을 냈다. 한신의 뒤틀린 오른손에서 흘러나온 미세한 내력이 백령의 검과 반응하고 있었다. 백령은 한신의 살기를 감지하고도 나지막이 미소 지었다.
“이봐, 저기 저 벙어리 놈!”
간수 하나가 횃불을 들이밀며 한신의 탁자로 다가왔다. 일촉질발의 순간, 백령이 들고 있던 술잔을 탁자에 가볍게 내려놓았다.
탁.
정순한 도가 계열의 내력이 탁자를 타고 흐르며 미세한 진동을 일으켰다. 다가오던 간수는 알 수 없는 압박감에 짓눌려 멈칫하며 백령을 바라보았다. 남장을 했으나 숨길 수 없는 기품과 차가운 안광에 기가 질린 간수가 침을 삼켰다. 그 미세한 틈을 타 한신은 ‘청소 보법(소지보)’을 전개했다. 다리를 절뚝이는 척하면서도, 몸의 중심을 낮추어 경비병들의 시야 사각지대를 기민하게 빠져나갔다. 백령은 멀어지는 한신의 뒷모습을 보며 소리 없이 술잔을 비웠다.
주막을 빠져나온 한신은 석탄곡의 어두운 골목길을 달렸다. 매연과 유황 냄새가 목구멍을 턱턱 막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머릿속에는 오직 오막살이에 두고 온 사부님의 유해 항아리 생각뿐이었다.
그때, 저편 어둠 속에서 헐떡이는 숨소리와 함께 소년 전령 철이가 달려왔.
“아신 형! 큰일 났어! 빨리 피해!”
철이는 한신의 옷자락을 붙잡고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독고령이…… 독고령이 곽 아저씨 대장간 뒤뜰을 수색하다가, 늙은 느티나무에 고정된 무쇠 지지대를 발견했어! 지지대 정중앙이 쩍 갈라진 흔적을 보더니, 이 동네에 엄청난 찌르기 고수가 숨어 연습한 게 분명하다고 소리를 질렀어! 그러고는 형의 오막살이로 군사들을 보냈어!”
쿵, 하고 한신의 심장이 가라앉았다.
곽씨 대장간 뒤뜰의 무쇠 지지대. 누적 1만 번의 찌르기를 돌파할 때 생긴 그 파멸적인 균열을 일류 고수인 독고령이 알아챈 것이다. 독고령은 석탄곡 내부에 숨겨진 무인의 존재를 확신하고, 가장 의심스러운 외곽의 오막살이로 향했다.
“사부님…….”
한신은 철이를 밀쳐두고 폭풍처럼 오막살이를 향해 질주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오른손목의 관절 염증이 욱신거리며 지옥 같은 통증을 뿜어냈다. 하지만 머릿속은 오직 사부의 유해 항아리를 지켜야 한다는 집념 하나로 가득 차 있었다.
언덕길을 단숨에 뛰어 올라간 한신의 눈앞에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오막살이의 낡은 목조 문은 산산조각이 나 바닥에 뒹굴고 있었고, 흙벽은 군화발에 찍혀 허물어져 있었다. 방 안의 초라한 가재도구들은 모조리 짓밟혀 깨져 있었고, 석탄 먼지와 흙더미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마치 광풍이 쓸고 지나간 듯한 파국이었다.
한신은 허겁지겁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가장 먼저 바닥 밑 비밀 판자를 들추었다. 다행히 깊은 틈새에 숨겨두었던 부러진 철검 ‘칠살검’은 대장장이의 정교한 은폐 덕분에 온전히 보존되어 있었다.
그러나 벽면 환기 구멍 깊숙한 곳을 확인하는 순간, 한신의 전신이 얼어붙었다.
비밀 구멍 안이 텅 비어 있었다.
사부 육남천의 유해 항아리가 사라졌다.
“아아…….”
한신의 목구멍에서 갈라진 신음이 흘러나왔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거대한 어둠과 끓어오르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머릿속이 하얗게 타들어 가며 전신이 떨렸다. 멸문지화 속에서 제 몸 하나 돌보지 않고 불길 속에서 꺼내온 사부님의 유해였다. 매일 밤 뼈가 바스러지는 고통 속에서도 소년을 지탱해 주던 유일한 영혼의 구심점이자 가문의 전부였다. 그것이 빼앗겼다.
그때, 오막살이 밖의 무너진 담벼락 너머로 이웃 광부들의 나지막한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독고령의 수하들이 아신의 방을 샅샅이 뒤지더니, 벽 구멍에서 기묘한 흙 항아리를 찾아내더군.”
“그 항아리를 들고 가며 고가품이라느니, 옛 문파의 유산 같다느니 하면서 실실 웃더군. 독고령이 직접 챙겨서 조표 분타주에게 뇌물로 바치겠다고 분타 전각으로 가져갔어.”
항산파의 탐욕스러운 지배자 조표와 그의 잔인한 사냥개 독고령. 그 위선적인 정파의 말단 악당들이 사부의 유해 항아리를 단순한 골동품이나 가치 있는 옛 문파의 보물로 오인해 강탈해 간 것이다.
“크으으윽……!”
한신은 무릎을 꿇고 무너진 흙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오른손의 기형적으로 뒤틀린 관절 마디마디가 비명을 질렀고, 찢어진 삼베 붕대 틈새로 붉은 피가 배어 나와 검은 석탄 흙을 적셨다. 당장이라도 분타 전각으로 달려가 그자들의 목을 베어버리고 싶었다. 살기가 폭풍처럼 주위를 휘감았고, 소년의 철 분석안이 붉은 쇳물빛 안광을 뿜어내며 어둠 속에서 타올랐.
하지만 한신은 눈을 감았다. 차가운 유황 바람이 무너진 오막살이 틈새로 불어왔다.
‘참아야 한다. 마음을 재처럼 식혀라.’
사부 육남천의 마지막 유언이 뇌리를 스쳤다. 분노에 눈이 멀어 무작정 들이닥치면 유해 항아리는 인질이 되거나 파괴될 것이다. 적들은 아직 자신을 평범한 벙어리 광부로 생각하고 있다. 이 오명을 무기로 삼아 철저히 어둠 속에서 움직여야 했다. 분노를 칼날보다 날카로운 차가운 이성으로 제련해야 했다.
한신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두 눈은 이제 분노를 넘어 고요하고 깊은 심연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소년은 바닥 밑 비밀 판자 아래서 부러진 철검 ‘칠살검’을 꺼내 들었다. 검날의 절반이 부러져 뭉툭하지만, 일반 검보다 세 배는 무거운 묵철의 묵직함이 왼손을 타고 전해졌다. 오른손은 매일 이어진 무리한 찌르기로 인해 손가락 마디마디가 붓고 뒤틀려 검자루를 제대로 쥘 수조차 없는 상태였다. 수련의 반동이 관절을 완전히 망가뜨려 놓은 탓이었다.
한신은 삼베 붕대를 풀어헤쳤다. 피와 먼지에 찌든 붕대 아래로 드러난 오른손은 기형적이고 흉측했다. 하지만 소년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오막살이 구석에 버려져 있던 두꺼운 가죽 끈을 집어 들었다.
스윽, 스윽.
한신은 칠살검의 낡은 검자루를 오른손바닥에 얹었다. 그리고 가죽 끈을 이용해 뒤틀린 손가락과 손목, 그리고 검자루를 하나로 칭칭 감아 묶기 시작했다. 관절이 어긋나는 극심한 통증에 이가 갈렸지만, 소년은 입술을 깨물며 묵묵히 가죽 끈을 당겼다. 손가락의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가죽 끈으로 검을 손에 박아 넣으면 그만이었다. 검과 손이 피로 물들며 단단히 고정되었다.
어둠 속에서 칠살검을 오른손에 완전히 고정한 한신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무너진 오막살이의 문틀 너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푸른 장포를 입은 백령이 서 있었다. 그녀의 등 뒤에 기대어 있는 청강검이 차가운 월광을 반사하고 있었다. 백령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스스로 오른손에 검을 묶어 고정하는 한신의 처절하고 광기 어린 뒷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소년의 잿빛 등 뒤로 사부의 원한과 굳건한 복수심이 밤바람을 타고 차갑게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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