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밤의 처단
석탄 가루가 허공을 메우는 밤은 낮보다 어두웠다. 유황 타는 냄새가 섞인 매캐한 밤바람이 오막살이의 삐걱거리는 판자 틈새를 사정없이 후벼팠다.
육한신은 거적때기 위에 누워 숨을 죽였다. 오른손목에서 시작된 불타는 듯한 통증이 팔꿈치를 지나 어깨 경맥까지 타고 올라왔다. 매일 밤 곽씨 대장간에서 목검을 쥐고 내지른 만 번의 찌르기, 그리고 낮 동안 이어진 가혹한 3갱도에서의 곡괭이질이 남긴 대가였다. 삼베 붕대 틈새로 배어 나온 진득한 피가 거칠게 굳어 굳은살과 엉겨 붙어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이불 속에서 왼손으로 쥐고 있는 부러진 철검, 칠살검의 차가운 검자루만이 소년의 요동치는 심장을 가라앉혀 줄 뿐이었다.
‘온다.’
벽 너머에서 스며드는 기묘한 살기. 그것은 한신의 뒤를 집요하게 밟던 항산파의 밀정, 마칠의 기척이었다. 마칠은 한신이 오늘 밤 갱도의 이중 교대 근무 때문에 오막살이를 비웠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이 판 함정인 줄도 모른 채.
낮 동안 한신은 광산 소년 철이와 은밀히 눈빛을 나누었다. 마칠이 오막살이를 뒤질 타이밍을 흘려보내고, 철이가 대나무 피리로 신호를 보내기로 한 계획이었다. 철이의 피리 소리는 일반 어른들의 귀에는 그저 바람이 대나무 숲을 스치는 소리로 들리지만, 감각을 극한으로 다듬은 한신의 귀에는 명확한 경보음이었다. 한신은 교대 근무 도중 ‘청소 보법(소지보)’을 전개해 감시원들의 시야를 비껴 나갔고, 어둠을 틈타 오막살이 뒤편 헐거워진 진흙 벽 틈새로 이미 복귀해 있었다.
스르륵.
마침내 오막살이의 낡은 나무문이 소리 없이 밀려 열렸다.
기름때 묻은 삼베 수건을 이마에 동여맨 마칠이 고양잇걸음으로 방 안으로 기어 들어왔다. 그의 눈동자는 탐욕으로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마칠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한신이 매일 밤 목숨처럼 아끼며 닦아대던 벽면 환기 구멍으로 곧장 다가갔다.
“흐흐, 벙어리 놈이 숨겨둔 게 이 구멍 안이렷다.”
마칠이 거친 손을 환기 구멍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었다. 이윽고 그의 손끝에 거친 삼베로 감싸인 둥근 물체가 걸렸다. 사부 육남천의 유해 항아리였다. 마칠은 그것을 꺼내 들며 침을 흘렸다.
“이 투박한 흙 항아리…… 분명 잔회검파의 비전 야철 도면이나 보물이 들어 있는 항아리가 분명해. 조표 분타주께 바치면 이 지옥 같은 탄광 구덩이에서 나가 항산파의 정식 무사가 될 수 있어!”
마칠이 항아리를 품에 안고 돌아서려던 찰나였다.
“내려놓아라.”
방구석의 깊은 어둠 속에서, 쇠가 긁히는 듯한 차갑고 무거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힉!”
마칠은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충격에 몸을 떨며 뒤로 자빠질 뻔했다. 허겁지겁 횃불 빛을 어둠 속으로 비추자, 그곳에는 절름발이 벙어리 ‘아신’으로 위장하고 있던 소년, 육한신이 서 있었다.
소년의 눈빛은 낮의 어수룩한 광부의 것이 아니었다. 끓어오르는 쇳물처럼 붉게 일렁이는 철 분석안의 안광이 어둠 속에서 마칠의 심장을 꿰뚫고 있었다. 등 뒤로 늘어진 오른손은 힘없이 흔들렸지만, 왼손에 쥐어진 부러진 철검, 칠살검의 뭉툭한 단면이 푸르스름한 안개를 내뿜고 있었다.
“너, 네놈…… 말을 할 줄 알았나? 벙어리가 아니었단 말이냐!”
마칠은 본능적인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이내 한신의 마비된 오른손과 남루한 체구를 보고는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하, 속았군. 하지만 오른손이 병신인 삼류 놈이 감히 누굴 위협하는 거냐? 얌전히 그 항아리를 넘기지 않으면, 당장 소리쳐 분타의 무사들을 불러들이겠다! 네놈이 마교의 첩자라는 증거는 이미 차고 넘치니까!”
마칠이 품속에서 번뜩이는 비수를 꺼내 들었다. 삼류 수준의 외문 무공을 지녔다고는 하나, 실전 경험이 없는 어린 소년을 상대하기에는 충분하다고 믿는 눈빛이었다.
“소리치겠다면, 해라.”
한신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발끝이 흙바닥을 낮게 쓸었다. 대장간 뒤뜰에서 쓸쓸히 밟아왔던 삼점의 보법, 소지보의 기리였다.
“이 쥐새끼가!”
마칠이 독기를 품고 비수를 휘두르며 한신의 가슴을 향해 돌진했다. 찌르기 궤적은 날카로웠으나, 전신의 무게를 싣지 못한 얄팍한 칼끝이었다.
한신은 상체를 미세하게 비틀었다. 빗자루질을 하듯 부드럽게 바닥을 쓴 발끝이 마칠의 오른쪽 사각지대로 매끄럽게 파고들었다. 비수의 날카로운 끝이 한신의 회색 마의 깃만을 스치며 허공을 갈랐다.
“어라?”
마칠이 당황하여 몸을 돌렸다. 가볍게 피한 한신의 신법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비수를 크게 회전시켜 한신의 목을 베어버릴 듯한 횡베기를 시도했다.
가로로 찢어발기는 칼바람이 오막살이의 좁은 공간을 채웠다. 회피할 공간은 없었다.
하지만 한신은 피할 생각이 없었다.
오른손목의 뼈마디가 바스러지는 듯한 격통이 밀려왔지만, 한신은 어깨와 팔꿈치, 그리고 붕대 감은 손목을 완벽한 수평선으로 정렬했다. 대장간 뒤뜰에서 매일 밤 피를 흘리며 찔러왔던 단 하나의 초식.
‘기본 일직선 찌르기.’
황노인에게 배웠던 체중 이동의 비결이 소년의 발끝에서부터 허리를 거쳐 어깨로, 그리고 왼손에 쥔 부러진 칠살검 끝으로 폭발하듯 전달되었다.
마칠의 횡베기 궤적이 한신의 목에 닿기 전, 칠살검의 부러지고 뭉툭한 날끝이 공간을 가로지르며 더 빠르게 파고들었다. 파공음조차 삼켜버린 듯한 무겁고 일직선적인 궤적이었다.
푸학!
둔탁하고 축축한 파열음이 좁은 방 안을 메웠다.
목검이 아니었다. 진짜 강철, 그것도 고대 묵철로 주조된 칠살검의 뭉툭한 끝이 마칠의 목울대를 정면으로 강타했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검 끝이 마칠의 목덜미 뒤편까지 사정없이 꿰뚫고 나갔다.
“끄…… 윽…….”
마칠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의 눈동자가 터질 듯이 확장되었고, 입가로 붉고 뜨거운 선혈이 울컥 쏟아져 나왔다. 칠살검의 날끝이 그의 목뼈를 관통한 채 고정되어 있었기에, 가쁜 숨소리조차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했다.
한신은 검자루를 쥔 왼손을 통해 전해지는 생생한 물리적 충격을 고스란히 느꼈다. 살점이 찢기고 뼈가 부서지며 온기가 차갑게 식어가는 그 생생한 감각. 첫 살인(殺人)이었다. 소년의 가슴속에서 묘한 전율과 함께 사부의 원한을 갚을 수 있다는 차가운 확신이 일렁였다.
슥.
한신이 칠살검을 거칠게 뽑아냈다. 마칠의 시신이 끈 떨어진 인형처럼 흙바닥 위로 무겁게 쓰러졌다. 목에서 울컥 흘러나온 피가 오막살이 바닥을 붉게 적셨다.
그때, 문밖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철이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철이는 바닥에 쓰러진 마칠의 시신을 보고 얼굴이 창백해졌으나, 이내 한신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형…… 뒤처리는 제가 도울게요. 대장간의 곽 아저씨가 미리 일러두신 폐광 구덩이가 있어요. 그곳에 던져넣으면 항산파 놈들도 절대 찾지 못할 거예요.”
한신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칠의 피가 튄 바닥에 석탄 가루를 뿌려 흔적을 지우고, 삼베 붕대로 덮인 오른손으로 사부의 유해 항아리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았다. 항아리는 다행히 흠집 하나 없이 안전했다.
마칠의 시신을 가마니에 싸서 철이와 함께 숲속 깊은 곳의 폐광 구덩이로 유기하는 내내, 한신은 한풍산 방향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느꼈다.
밀정 마칠의 실종.
그것은 비록 눈앞의 위기를 지워버린 처단이었으나, 동시에 항산파 분타주 조표의 잔인한 의심을 깨우는 도화선이 될 터였다. 석탄곡의 고요한 수면 아래 숨겨져 있던 피비린내 나는 폭풍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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