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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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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씨의 대장간 뒤뜰을 지배하던 무거운 침묵을 깨고, 육한신은 무쇠 지지대 정중앙에 깊숙이 박혀 있던 대추나무 목검을 천천히 뽑아냈다.


스으윽, 서늘한 마찰음과 함께 검날이 빠져나오자, 쩍 갈라진 무쇠판의 틈새로 미세한 쇳가루가 흘러내렸다. 목검의 자루는 이미 소년의 손바닥에서 터져 나온 붉은 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오른손목 관절은 마치 불에 달군 쇠붙이를 집어넣은 것처럼 욱신거렸고, 손가락 뼈마디는 기형적으로 부어올라 제멋대로 떨리고 있었다.


“후우…….”


한신은 거친 숨을 내쉬며 이빨로 삼베 붕대의 끝을 물어당겼다. 관절이 완전히 어긋나는 것을 막기 위해 손목을 부러질 듯 단단히 동여매는 고통에 미간이 깊게 패었다. 주모 장씨가 전해준 삼칠근의 약효 덕분에 왼쪽 옆구리의 타박상 통증은 겨우 가라앉았으나, 1만 번의 찌르기가 남긴 신체적 반동은 소년의 가녀린 경맥을 사정없이 짓누르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대장장이 곽씨가 바닥에 떨어진 곰방대를 주워 올리지도 못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무쇠를…… 목검 한 자루로 갈라버리다니. 네놈이 정녕 잔회검파의…….”


“곽 아저씨.”


한신이 곽씨의 말을 가로막았다.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정체를 입 밖에 내는 순간, 석탄곡에 불어닥칠 피바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신은 묵묵히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뒤, 피 묻은 목검을 삼베 천에 감싸 품에 넣었다.


오막살이 주변을 감시하고 있을 밀정 마칠의 눈을 피해야 했다. 한신은 대장간 뒷문을 열고 밤안개 속으로 몸을 던졌다.


스스슥.


흙바닥을 쓸어내리는 대빗자루의 움직임처럼, 한신의 발끝이 기하학적인 세 개의 점을 밟으며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사부 육남천에게 배웠던 위장 수련법이자 신법인 ‘청소 보법(掃地步)’이었다. 기척을 완벽히 지운 채 어둠 속을 관통하는 소년의 신형은 한 자락의 회색 연기와도 같았다.


오막살이 근처에 다다랐을 때, 한신은 걸음을 멈추고 호흡을 죽였다. 전방의 우거진 잡초 더미 속에서 미세하게 타오르는 연기 냄새와 음산한 내력의 기척이 느껴졌다. 번호의 지시를 받고 밤새 감시망을 좁히고 있는 밀정 마칠이었다. 마칠은 오막살이의 종이창을 향해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한신은 마칠이 주시하는 전면을 피해, 오막살이 뒤편의 헐거워진 진흙 벽 판자 틈새로 소리 없이 기어 들어갔다. 먼지 하나 일으키지 않는 완벽한 은신이었다. 방 안으로 들어선 한신은 품속의 목검을 바닥 밑 비밀 틈새에 칠살검과 함께 숨겨두고, 벽면 환기 구멍 깊숙한 곳에 삼베로 감싸둔 사부의 유해 항아리를 가만히 어루만졌다.


‘사부님……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한신은 자리에 누워 몽롱해지는 의식 속에서도 오른손목의 통증을 견뎌내며 밤을 지새웠다.


* * *


다음 날 아침, 석탄곡의 하늘을 깨우는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항산파 분타의 간수들이 불어대는 구리 호각 소리였다.


“모두 일어나라! 게으름을 피우는 놈은 오늘 밤 갱도에 묻어버리겠다!”


간수 대장 번호의 거친 고함과 함께, 남루한 마의를 입은 광부들이 좀비처럼 오막살이 밖으로 기어 나왔다. 한신 역시 어수룩한 잡역부 ‘아신’의 가면을 쓴 채,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뚝이며 대열에 합류했다. 온몸에 검은 탄가루가 박힌 광부들의 눈빛에는 생기가 없었다.


한신이 배정받은 곳은 석탄곡에서도 가장 깊고 험악하기로 악명 높은 ‘지하 깊은 3갱도’였다.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르고, 상시 낙반 사고가 발생하는 지옥 같은 곳이었다.


“어이, 절름발이 놈. 오늘은 저 안쪽 막장까지 들어가서 채굴해라. 꾀병을 부리다 걸리면 그 뒤틀린 오른손가락을 마저 으스러뜨려 주마.”


간수 하나가 한신의 뒤틀린 오른손목을 채찍 자루로 툭툭 치며 비아냥거렸다. 한신은 비굴하게 허리를 굽히며 갱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동굴 깊은 곳은 횃불 불빛조차 희미하게 번지는 암흑의 세계였다. 한신은 무거운 무쇠 곡괭이를 들어 올렸다. 매일 밤 이어진 찌르기 수련으로 인해 오른팔은 숟가락조차 쥐기 힘들 정도로 관절이 망가져 있었다. 한신은 오른손을 느슨하게 얹어두기만 한 채, 왼손과 허리의 힘만으로 곡괭이를 휘둘렀다.


‘발끝에서 허리로, 허리에서 어깨로…….’


황노인에게 배웠던 실전 창술의 체중 이동 비결이었다. 단순한 팔 힘이 아닌 전신의 무게를 곡괭이 끝 한 점에 싣자, 둔탁한 파공음과 함께 단단한 바위벽이 힘없이 깨져 나갔다. 겉보기에는 어수룩하고 느려 보였으나, 한신이 휘두르는 곡괭이질은 그 어떤 장정보다도 깊고 정교하게 광맥을 파고들고 있었다.


깡! 깡!


일정한 박자로 곡괭이질을 이어가던 중, 한신의 눈가에 기묘한 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유황 연기 때문이 아니었다. 머릿속이 뜨거워지며, 눈동자 깊은 곳에서 붉은 쇳물이 끓어오르는 듯한 극심한 안구 통증이 밀려왔다.


‘이것은……?’


가난한 대장장이였던 친부 육태강이 늘 말하곤 했던 가문의 핏줄이었다. 쇠의 숨결을 느끼고, 용광로의 불꽃 속에서 철의 순도를 읽어내던 신비로운 안목. 대장장이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특수 감각인 ‘철 분석안(鐵 分析안)’이 뼈를 깎는 수련의 경지와 맞물려 마침내 각성한 것이었다.


한신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자, 그의 시야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어둡고 침침하던 3갱도의 바위벽이 기묘한 질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단순한 돌덩어리들이 아니었다. 바위 내부에 얽혀 있는 미세한 균열선들이 붉은 실선처럼 시야에 선명하게 드러났고, 광물들의 밀도와 성질이 본능적으로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평범한 무쇠 원석들 사이로 은은하고 차가운 푸른빛을 내뿜는 기묘한 광맥이 한신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묵철(墨鐵)이다.’


한신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일반 철보다 세 배는 무겁고, 검객의 내력을 주입하면 미세한 진동을 일으켜 적의 무기를 갈아버린다는 전설적인 희귀 광물, ‘묵철 원석’이었다. 잔회검파의 비전 무기를 주조할 때 필수적으로 쓰이던 신비로운 철광석이 이 깊은 3갱도의 어둠 속에 은밀히 매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신은 간수들의 눈치를 살피며, 철 분석안으로 묵철 원석이 매장된 바위벽의 가장 취약한 균열선을 찾아냈다.


깡!


정확하게 균열의 중심을 곡괭이 끝으로 타격하자, 단단하던 바위가 스르륵 갈라지며 주먹만 한 검고 묵직한 돌덩어리가 한신의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겉보기에는 거친 흙이 묻은 돌멩이에 불과했으나, 손끝에 닿는 감촉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묵직한 중량감이 손목을 내리눌렀다.


한신은 묵철 원석을 신속하게 자신의 누더기 마의 안감 속에 숨겨두고, 그 위를 석탄 가루로 덮어 완벽하게 은폐했다. 소지만으로도 오악동맹의 표적이 될 수 있는 치명적인 보물이었다.


* * *


정오가 지나고 광부들이 캐낸 석탄을 밖으로 실어 나르는 방출 시간, 한신은 석탄 수송 마차를 끄는 척하며 광산촌 외곽의 숯 굽는 가마터로 은밀히 이동했다.


그곳에는 매캐한 연기 속에서 묵묵히 통나무를 가마에 집어넣고 있는 20대 중반의 청년이 있었다. 어깨가 떡 벌어지고 팔뚝에 흉터가 가득한 사내, 과거 잔회검파의 전용 야철소에서 일했던 젊은 야철공 탁무양이었다.


한신은 주변에 간수들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마차의 그늘막 아래로 탁무양을 불러 세웠다.


“무양 형.”


탁무양은 흠칫 놀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한신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의 무뚝뚝한 얼굴에 미세한 경련이 일어났다. 한신은 품속에서 석탄 가루가 묻은 검은 돌덩어리를 꺼내 탁무양의 두터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탁무양은 돌을 쥔 순간 숨을 들이켰다. 그의 대장장이 본능이 손끝에서 전해지는 비정상적인 무게감과 차가운 온도를 감지한 것이다. 손가락으로 흙을 살짝 긁어내자, 어둠 속에서 은은한 푸른빛의 묵철 분자 구조가 드러났다.


“이…… 이것은 잔회철(殘灰鐵)의 핵이 되는 묵철 원석이 아닙니까? 소장문인, 대체 이것을 어디서…….”


탁무양의 목소리가 젖어들었다. 멸문당한 문파의 유산이 이 차가운 석탄곡 지하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에 대한 경악이었다.


“3갱도 안쪽 막장이다. 오악동맹 놈들이 아직 눈치채지 못한 진짜 광맥이 숨겨져 있어.”


한신은 나직하게 속삭였다.


“이 원석들을 모아야 한다. 사부님의 부러진 칠살검을 다시 세우고, 위선적인 정파 놈들의 목을 벨 진짜 검을 주조해야 하니까.”


탁무양은 묵철 원석을 가슴 깊숙이 품으며, 한신의 뒤틀린 오른손과 날카로운 눈빛을 바라보았다. 소년의 눈동자 속에는 멸문지화 속에서 살아남은 자의 처절한 집념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탁무양은 바닥에 무릎을 꿇으려다 한신의 제지로 간신히 몸을 지탱하며, 이빨을 악물고 속삭였다.


“제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이 묵철을 제련하여 천하에서 가장 예리한 검날을 장문인께 바치겠습니다.”


두 사람의 은밀한 맹세는 석탄가루 날리는 가마터의 매연 속으로 소리 없이 녹아들었다.


* * *


깊은 밤이 찾아오고, 한신은 다시 오막살이로 돌아와 거적때기 위에 몸을 뉘었다.


오른손의 통증은 낮의 채굴 노동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어 있었다. 뼈마디가 어긋나는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고, 옆구리는 찌르는 듯한 격통으로 숨을 쉴 때마다 각혈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한신은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은 채, 천장을 응시했다.


그때였다.


오막살이 벽면의 갈라진 나무 틈새로, 차갑고 끈적끈적한 살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한신은 본능적으로 전신을 긴장시켰다. ‘어둠 속의 눈동자’였다.


종이창 너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항산파의 밀정 마칠이 숨을 죽인 채 오막살이 내부를 집요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칠의 눈동자는 한신이 낮에 숨겨온 묵철 원석의 흔적을 찾으려 혈안이 되어 있었고, 그의 시선은 이윽고 벽면 환기 구멍 속에 숨겨진 거친 삼베 주머니로 향했다.


마칠은 그 주머니 속에 한신이 목숨보다 아끼는 회색 진흙 항아리, 즉 사부 육남천의 유해 항아리가 들어 있음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저 어수룩한 절름발이 놈이 매일 밤 품에 안고 우는 저 항아리…… 분명 잔회검파의 숨겨진 비전 보물이거나, 고가의 골동품이 분명하다. 저것만 손에 넣으면 조표 분타주께 큰 공을 인정받고 이 지옥 같은 석탄곡을 벗어날 수 있어.’


어둠 속에서 마칠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올라갔다. 그는 한신이 내일 낮 가혹한 갱도 이중 교대 근무로 오막살이를 완전히 비우는 틈을 타, 은밀히 침투해 사부의 유해 항아리를 강탈해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벽 너머에서 일렁이는 탐욕스러운 살기를 느끼며, 한신은 이불 속에서 왼손으로 부러진 칠살검의 검자루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소년의 두 눈이 어둠 속에서 차갑게 빛났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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