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자루 끝에 실린 무게
석탄곡의 아침은 언제나 매캐한 유황 연기와 검은 석탄 가루로 시작되었다. 하늘은 낮게 가라앉은 회색빛이었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곡괭이질 소리와 광차의 쇠바퀴 구르는 소리는 마치 거대한 괴물의 신음 같았다.
한신은 몽둥이처럼 굳어버린 오른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사부 육남천의 피 묻은 도포 자락을 찢어 만든 삼베 붕대는 밤새 흘린 피와 진물, 그리고 석탄 먼지가 엉겨 붙어 흑갈색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손가락을 미세하게 움직일 때마다 관절 마디마디가 비명을 질렀고, 어깨까지 이어지는 경맥은 불에 달군 송곳으로 찌르는 듯 욱신거렸다.
어제 소표를 그 차가운 잿더미 무덤에 묻고 돌아온 이후, 한신의 가슴속에는 오직 차가운 분노만이 숯불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소표의 무덤가에 꽂아둔 부러진 나무 조각 검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부의 유해 항아리는 오막살이 구석 비밀 구멍 속에 은밀히 숨겨두었으나, 번호의 의심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을 터였다. 살아남아야 했다. 10만 번의 찌르기를 완수하여 저들의 위선적인 목덜미를 관통할 때까지는, 철저히 무능하고 비참한 삼류 광부 ‘아신’으로 살아야 했다.
“어이, 벙어리 놈! 마당 구석에 쌓인 탄재는 언제 치울 거냐!”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허공을 가르는 채찍 소리가 광산 마당을 찢었다.
한신은 즉시 허리를 굽히고 다리를 절뚝이며 낡은 대나무 대빗자루를 잡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바보 같은 울음 섞인 신음을 내며 빗자루질을 시작했다.
저벅, 저벅.
가죽 군화가 자갈밭을 짓밟는 무거운 발소리가 다가왔다. 간수 대장 번호였다. 어제 수색에서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소표를 때려죽여 광부들 사이에 묘한 동요가 일자 그의 성질은 극도로 흉포해져 있었다. 번호의 가슴팍에 걸린 가죽 조끼에는 소표의 피가 마른 흔적이 여전히 붉은 얼룩으로 남아 있었다.
“더러운 쥐새끼 같은 놈들. 어제 그 꼬맹이 놈이 죽어 나가니까 다들 눈빛들이 흉흉하단 말이지.”
번호는 침을 뱉으며 채찍 끝으로 한신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철조망이 박힌 특제 가죽 채찍의 차가운 감촉이 마의 너머 짓눌린 타박상 부위에 닿자, 한신은 온몸의 근육이 본능적으로 긴장하는 것을 느꼈다.
‘참아야 한다. 검을 뽑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한신은 빗자루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일부러 다리를 크게 절뚝였다. 흙바닥에 세 개의 점을 찍듯, 발끝을 낮게 쓸며 몸의 중심을 뒤로 비껴 나갔다. 사부에게 배운 위장 수련법인 ‘빗자루질 보법(掃地步)’이었다. 겉보기에는 둔하고 어수룩하게 발을 헛디디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적의 시야 사각지대로 몸을 유연하게 숨기는 정교한 신법이었다.
“이 바보 놈이 감히 내 말을 무시해?”
번호의 눈이 뒤집혔다. 그의 손목이 가볍게 스냅을 그리자, 철조망 가죽 채찍이 한신의 머리 정중앙을 겨냥해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평범한 광부라면 머리통이 단번에 깨져나갈 위력이었다.
쉬이익!
채찍이 공기를 가르는 순간, 한신은 빗자루를 쓸어내리는 척하며 상체를 반 보 비껴 무릎을 낮추었다. 채찍의 날카로운 끝이 소년의 귀밑머리를 한 끗 차이로 스쳐 지나갔다.
찰싹!
허공을 친 채찍이 한신이 들고 있던 빗자루의 두꺼운 대나무 손잡이에 칭칭 감겨들었다.
“어라? 이 벙어리 놈이 피했어?”
번호는 자신의 채찍질이 빗나간 것에 경악했다. 비록 조준이 빗나갔다 한들, 평범한 삼류 광부가 자신의 채찍을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번호는 이를 악물며 채찍을 강하게 뒤로 잡아당겼다.
“끌어당겨서 다리를 으스러뜨려 주마!”
가죽 채찍에 감긴 대나무 손잡이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한신의 뒤틀린 오른손목에 가혹한 반동이 전해졌다. 뼈가 어긋나는 듯한 극심한 격통에 눈앞이 하얗게 흐려졌다. 오른손만으로는 도저히 번호의 외문 내력을 견뎌낼 수 없었다.
그때였다.
광차에 석탄을 가득 싣고 지나가던 늙은 광부 대장, 황노인이 둔탁한 곡괭이를 바닥에 쾅 내려놓으며 걸걸한 목소리로 침을 뱉었다.
“에이, 빌어먹을! 곡괭이 자루가 왜 이리 겉도는 게야! 바닥을 딛는 발끝이 단단하지 못하면 백날 쇠를 내질러봐야 깃털만도 못한 법인데! 허리에 체중을 싣지 않고 팔 힘만으로 쇠를 다루려 하니 자루가 부러질 수밖에!”
황노인은 번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치 제 도구를 탓하듯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늙고 흐릿한 눈빛만은 정확히 한신의 발끝을 꿰뚫고 있었다.
‘발끝에서부터 허리를 거쳐 어깨로…….’
한신의 머릿속에 번개 같은 깨달음이 스쳤다.
황노인이 일러준 것은 단순한 광산 도구 사용법이 아니었다. 과거 군부의 일류 고수들이 사용하던 실전 창술의 체중 이동 비결이자, 단순한 팔 힘이 아닌 전신의 무게를 검 끝 한 점에 실어 나르는 거대한 물리적 역학의 원리였다.
오른손의 관절이 뒤틀리고 내공이 부족하다면, 대지(大地)의 힘을 빌려 몸 전체의 무게를 회전축으로 삼으면 되었다.
한신은 즉시 오른쪽 발끝을 석탄 먼지가 가득한 흙바닥 깊숙이 디뎠다. 다리의 관절을 고정하고, 척추를 비틀어 힘의 흐름을 허리에서부터 어깨, 그리고 빗자루 손잡이 끝으로 일직선으로 연결했다.
스으윽.
대나무 빗자루 끝에 전신의 무게 중심이 무겁게 실렸다. 그것은 더 이상 가벼운 대나무 막대기가 아니었다. 수백 근의 무쇠 대검과도 같은 중량감이 실린 거대한 지렛대였다.
“이 벙어리 새끼가 감히 버텨?”
번호는 한신이 끌려오지 않자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전력을 다해 채찍을 잡아당겼다. 그가 모든 체중을 뒤로 싣는 바로 그 순간, 한신은 단단히 움켜쥐고 있던 빗자루의 중심을 툭 풀어주며 힘의 방향을 번호 쪽으로 가볍게 밀어 넣었다.
순간적인 힘의 역류였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가죽 채찍의 탄성과 반동이 고스란히 번호의 몸으로 역류했다.
“어, 어어?”
번호는 자신의 당기는 힘과 한신의 무게 중심 이동이 만들어낸 가공할 역탄력에 휘말려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스르륵, 쿵!
비참한 소리와 함께 번호의 웅장한 체구가 물이 고인 시커먼 석탄 진흙 더미 속으로 처참하게 처박혔다. 얼굴과 가죽 조끼가 온통 시커먼 탄가루와 오물로 범벅이 되었다. 주변에서 눈치를 보며 일하던 광부들 사이에서 큭, 하는 억눌린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으아아악! 이 벙어리 쥐새끼가!”
번호는 비명을 지르며 진흙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분노와 수치심으로 괴물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광부들 앞에서 이런 망신을 당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한신은 즉시 빗자루 손잡이가 부러진 척하며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리고 뒤틀린 오른손목을 움켜쥐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바보처럼 울부짖었다.
“아으으! 아아아!”
실제로도 오른손목의 관절이 반동을 이기지 못해 뼈마디가 어긋나며 극심한 염증성 격통이 밀려왔다. 한신의 이마에서 굵은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손가락 끝이 마비되어 부들부들 떨리는 모습은, 번호가 보기에 그저 뼈가 약한 광부가 힘 대결 끝에 부상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대장! 괜찮으십니까!”
하급 간수들이 황급히 달려와 번호의 옷에 묻은 오물을 닦아냈다. 번호는 거칠게 그들을 밀쳐내며 한신을 노려보았다. 채찍 끝에 실렸던 그 기묘하고도 묵직한 힘의 반동은 분명 평범한 광부의 것이 아니었다. 비록 눈앞의 벙어리가 뼈가 부러져 뒹굴고 있었지만, 번호의 흉포한 눈동자 속에는 지울 수 없는 의혹의 독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저 녀석…….”
번호는 피 묻은 가죽 채찍을 꽉 쥐며, 저 멀리서 자신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는 황노인과 한신을 번갈아 보았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불길한 예감이 피어올랐다. 이 어수룩한 벙어리 아신은 결코 평범한 잡역 무사가 아니었다.
“마칠(Ma-chil) 어디 있느냐.”
번호가 어두운 목소리로 낮게 읊조렸다.
광산 저편의 어둠 속에서 난민 복장을 한 채 주변을 감시하던 항산파의 밀정 마칠이 소리 없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예, 대장.”
“오늘 밤…… 저 벙어리 놈의 오막살이를 은밀히 감시해라. 저 뒤틀린 삼베 붕대 아래에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밤마다 무슨 짓을 하는지 샅샅이 캐내란 말이다. 만약 쥐새끼 같은 무공의 흔적이라도 보인다면 즉시 내게 보고해라.”
“지시대로 거행하겠습니다.”
마칠의 음산한 눈빛이 한신의 오막살이 방향을 향해 뱀처럼 번뜩였다.
한신은 바닥에 엎드려 오른손목의 고통을 견뎌내며 피눈물을 삼켰다. 번호의 의심이 마침내 자신을 정조준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석탄 가루가 휘날리는 회색 마당 위로, 더 가혹하고 숨 막히는 야간 감시와 생사의 위기가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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