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를 넘어서
매서운 밤바람이 귓가를 스쳐 지나갈 때마다, 검은 잿가루가 섞인 흙먼지가 사정없이 뺨을 때렸다. 석탄곡의 대폭발은 밤하늘에 거대한 붉은 궤적을 남겼지만, 살아남은 자들에게 허락된 것은 오직 차가운 어둠과 끝없는 도주의 길뿐이었다.
육한신은 묵묵히 걸었다. 그의 오른팔은 생기를 잃은 나뭇가지처럼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사부 육남천의 피 묻은 도포 자락을 찢어 만든 삼베 붕대가 오른손목부터 손가락 마디까지 칭칭 감겨 있었으나, 그 안의 뼈와 경맥은 이미 사천당가의 한독과 오 의원의 침술로 인해 완벽하게 마비되어 있었다.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오른팔은 그저 무거운 짐짝처럼 몸 한편에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한신의 왼팔은 가죽 장포 안쪽에 품은 사부의 진흙 유해 항아리와 오악비망록을 그 어떤 보물보다 단단히 감싸 안고 있었다. 허리춤에는 날의 절반이 비스듬히 부러진 검은색 묵철검, '칠살검'이 차가운 쇳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소장문인, 조금만 더 가면 한풍산의 초입으로 이어지는 숲길입니다. 광부들의 체력이 한계에 달했으니 속도를 조절해야 합니다.”
전신에 검은 그을음을 묻힌 대장장이 탁무양이 낮고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의 뒤편에는 번호의 가혹한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광부 대장 맹칠과, 석탄곡 광산의 지옥 같은 수탈에서 간신히 탈출한 광부 연합의 민초들이 서로의 어깨를 부축하며 숨을 죽인 채 걷고 있었다. 붉은 화염으로 물든 고향을 등진 채 험준한 산길로 피신하는 그들의 눈빛에는 굶주림과 피로, 그리고 언제 뒤쫓아올지 모르는 오악동맹의 추격에 대한 극도의 공포가 서려 있었다.
한신의 왼편에서는 푸른 장포를 걸친 백령이 청강검의 자루를 쥔 채 주위의 미세한 바람 흐름을 경계하고 있었다. 남장 아래 가려진 그녀의 차갑고 단아한 이목구비는 화염의 열기로 붉게 상해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그 어떤 고수보다 날카롭게 빛났다. 그녀는 한신의 절뚝이는 걸음걸이와 늘어진 오른팔을 묵묵히 주시하며, 말없이 그의 사각지대를 메워주고 있었다.
바스락.
갑자기 전방의 우거진 가시덤불 사이로 마른 나뭇가지가 꺾이는 소리가 들렸다. 밤바람의 기류가 순간적으로 어지럽게 뒤틀렸다. 한신은 본능적으로 걸음을 멈추고 왼손을 허리춤의 칠살검 자루로 가져갔다. 백령 역시 청강검을 반쯤 뽑아내며 신형을 낮추었다.
“모두 멈춰라.”
한신의 차가운 경고가 떨어지기 무섭게, 협곡의 좁은 외길 사방에서 횃불들이 일제히 타올랐다. 타오르는 불빛 아래로 항산파의 고급 검사 무복을 입은 무사 수십 명이 병장기를 번뜩이며 그들의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그리고 그들의 정중앙, 험준한 바위 위에 한 사내가 거만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매서운 눈빛과 오만한 미소를 지닌 젊은 무사, 항산파의 추격대장 학진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하사한 명검 녹수검을 뽑아 들며 한신 일행을 내려다보았다.
“조표 분타주를 단죄하고 감히 오악동맹의 야철소를 날려버린 대역죄인이 누구인가 했더니, 겨우 석탄곡의 절름발이 벙어리 놈이었군.”
학진이 비웃음을 흘리며 바위 아래로 가볍게 착지했다. 그의 뒤를 따르는 항산파 검사들의 살기가 좁은 협곡 안을 가득 메웠다.
“오른팔이 완전히 망가진 불구자 주제에 감히 잔회검파의 이름을 사칭하며 깃발을 세우려 하다니. 오악동맹의 명에 따라 이 자리에서 마교의 첩자들을 모조리 참살하겠다. 특히 그 불구자 놈이 품고 있는 항아리와 장부를 회수해라!”
“무양, 맹칠 대장과 광부들을 데리고 우회 통로로 피하시오. 이곳은 내가 막겠소.”
한신이 낮게 읊조렸다. 탁무양은 장문인의 명령에 눈물을 머금고 광부들을 이끌고 가시덤불 속 비밀 도주로로 빠르게 몸을 숨겼다. 학진은 그들을 쫓으려던 무사들을 손짓으로 제지하며 한신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도망쳐 봐야 한풍산 전체가 오악동맹의 포위망이다. 불구자 놈아, 네놈의 사지를 잘라 아버지 학무성 장로님께 공을 바치겠다!”
학진의 신형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이류 최상급 검수다운 가공할 속도였다. 그의 녹수검이 허공을 가르며 푸른 검기를 뿜어냈다. 학진은 한신의 늘어진 오른팔 방향을 정확히 간파하고, 그 사각지대를 향해 항산파 비전 자하검법의 쾌검을 사정없이 쏟아부었다.
쉭! 쉭! 쉭!
수십 개의 검영이 한신의 오른쪽 어깨와 목덜미를 베어왔다.
한신의 뇌는 본능적으로 오른손을 움직여 검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삼베 붕대 아래 굳어버린 오른손가락은 단 일 푼의 내력조차 통하지 않았다. 억지로 힘을 주려 하자, 경맥에 박힌 한독 억제침이 요동치며 뼈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괴사 통증이 척추를 타고 뇌수로 몰아쳤. 눈앞이 순간적으로 하얗게 흐려지며 한신은 칠살검을 떨어뜨릴 뻔했다.
‘안 된다. 오른손은 이미 죽었다!’
한신은 이빨이 부러질 정도로 입술을 깨물며 통증을 억눌렀다. 그는 급격히 중심을 잃어가는 몸을 억지로 비틀며, 왼손으로 부러진 칠살검을 고쳐 쥐었다. 좌우 역전의 순간이었다.
카아아앙!
한신이 왼손으로 칠살검을 들어 올려 학진의 첫 번째 쾌검을 겨우 막아냈다. 일반 검보다 세 배는 무거운 묵철 대검의 무게가 왼팔 근육에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제대로 타통되지 않은 왼팔의 경맥이 미세하게 파열되며 찢어지는 고통이 밀려왔다.
“흐하하! 왼손으로 검을 쥐다니, 참으로 처량하구나!”
학진은 한신의 움직임이 둔해진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한신의 왼손 검로가 지닌 불안정한 무게 중심을 읽어내고, 정면에서 검 끝을 곧바로 찔러 들어왔다. 녹수검의 날카로운 끝이 한신의 가슴 정중앙을 향해 맹렬하게 쇄도했다.
한신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황노인에게 배웠던 실전 창술의 물리적 기리를 떠올렸다. 단순한 팔 힘이 아닌, 전신의 체중을 이동시키는 법칙이었다. 한신은 왼발 끝에 전 체중을 실으며, 척추의 축을 강제로 오른쪽으로 비틀어 정렬하는 좌수역검술의 역방향 신법을 전개했다.
뼈마디가 뒤틀리는 뻐근한 통증과 함께, 한신의 몸이 기묘한 각도로 회전했다.
스으윽.
학진의 녹수검 끝이 한신의 가슴 장포를 한 끗 차이로 비껴가며 허공을 찔렀다. 몸의 회전축을 반대로 사용하는 변칙적인 흘리기였다.
그와 동시에 한신은 회전의 반동을 그대로 왼손 검 끝에 실어 학진의 목덜미를 향해 일직선으로 내질렀다.
쉬익!
부러진 칠살검의 단면이 학진의 오른쪽 어깨 가죽을 스치며 깊은 자상을 입혔다. 선혈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윽!”
학진이 경악하며 뒤로 세 걸음 물러섰다. 어깨 경맥이 베인 고통보다, 불구자라 무시했던 놈의 왼손에서 뻗어 나온 변칙적인 궤적에 허점을 찔렸다는 굴욕감이 그의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 비열한 쥐새끼가 기묘한 야바위를 부리는구나!”
학진의 눈동자가 광기로 물들었다. 그는 한신의 왼손 검술이 단지 기습적인 회전축 변화에 의존할 뿐, 무게 중심이 극도로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이내 간파했다. 칠살검의 엄청난 무게를 왼손이 감당하지 못해, 한신의 왼쪽 어깨가 미세하게 아래로 처져 있었다.
학진은 녹수검을 가슴 높이로 치켜들며 자하기공의 내력을 폭발시켰다. 푸른 검강이 도신을 휘감으며 기류를 찢어발겼다.
“진짜 일류의 검이 무엇인지 보여주마!”
학진의 신형이 잔상을 남기며 한신의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바람 소리조차 내지 않는 항산파 비전의 쾌검이 한신의 목울대를 겨냥해 곧바로 쏘아 올려졌다.
한신은 급히 칠살검을 들어 막으려 했으나, 왼손 검의 어색한 무게 중심 때문에 몸의 회전축이 한 템포 늦어지고 말았다. 묵철검의 뭉툭한 단면이 허공에서 겉돌며 치명적인 허점이 정면으로 노출되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학진의 서늘한 검 끝이 한신의 목덜미를 꿰뚫기 직전이었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