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곡의 대폭발
치지직, 치직!
도화선을 타오르는 불꽃은 무자비했다. 조표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와 함께, 바닥에 흩뿌려진 불씨가 뱀처럼 기어가 지하 비밀 창고 입구의 도화선에 닿았다. 백색 화약 연기가 매캐하게 피어오르며, 붉은 불꽃이 황실 조총용 화약 상자들이 가득 쌓인 어둠 속을 향해 맹렬하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석탄곡 분타와 야철소 전체를 흔적도 없이 날려버릴 대폭발이었다.
“크하하하! 같이 죽는 거다! 이 병신 같은 쥐새끼 놈아! 네놈이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결국 이 용광로의 불길 속에서 재가 될 뿐이다!”
대도가 산산조각 나고 온몸에 무쇠 파편이 박힌 조표가 피투성이가 된 채 울부짖었다. 이류 최상급의 벽력진기가 그의 단전에서 광적으로 역류하며 마지막 남은 생명의 불꽃을 사납게 태우고 있었다. 그는 이 빠진 대도 자루를 움켜쥔 채, 최후의 동귀어진을 노리며 한신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한신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의 오른팔은 어깨부터 손가락 끝까지 백령의 한철 은침과 오 의원의 침술로 인해 영구히 마비되어 감각조차 없었다. 사부의 피 묻은 도포 자락으로 만든 삼베 붕대로 가슴팍에 단단히 묶여 고정된 오른팔은 무거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왼손에는 방금 전 용광로의 고열 속에서 만년 한철과 묵철의 합금으로 새로 제련된 칠살검이 들려 있었다. 검날의 절반이 부러진 형태였으나, 복원된 푸른 외날은 스스로 미세한 진동 공명을 내뿜으며 차가운 검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조표, 네놈의 탐욕은 여기서 끝이다.’
한신은 왼쪽 허벅지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느끼며 척추를 낮추었다. 조표의 이전 도풍에 스쳐 찢어진 상처에서 뜨거운 선혈이 배어 나왔지만, 뇌음사의 눈먼 노승에게 배웠던 마음 응축법을 발동하자 고통은 순식간에 차가운 이성의 영역 너머로 밀려났다.
스스슥.
한신의 신형이 지면을 낮게 쓸며 역방향으로 회전했다. 오른손의 마비를 극복하기 위해 몸의 중심축을 강제로 왼쪽으로 틀어 정렬하는 좌수역검술의 보법이었다. 조표가 최후의 벽력진기를 쥐어짜 내지른 대도 자루의 강기가 한신의 귓가를 스치며 허공을 찢었다. 찰나의 순간, 한신은 철 분석안의 붉은 시야를 통해 조표의 목울대 주변 경맥의 흐름이 완전히 무너져 있음을 포착했다.
이것이 마지막 일격이다.
한신은 왼발 끝에 온몸의 체중을 실으며 허리의 회전력을 검 끝으로 전달했다. 황노인에게 배웠던 실전 창술의 물리적 기리가 칠살검의 푸른 날끝에 응축되었다.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하고 어떤 파공음도 내지 않는 잔회검파 최후의 절기, 무성 찌르기가 시전되었다.
소리가 사라진 세계.
쉭 하는 미세한 기류의 흔들림조차 없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간 칠살검의 푸른 날끝이 조표의 목울대를 정확히 관통했다.
푸학!
검붉은 선혈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조표의 눈동자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그의 단전에서 날뛰던 벽력진기가 일시에 흩어지며, 광기 어린 미소는 처참한 경악으로 굳어갔. 조표는 자신이 그토록 멸시했던 범재 소년의 왼손 찌르기 한 방에 목숨을 잃는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듯, 칠살검의 검신을 붙잡으려 손을 뻗었으나 이내 힘없이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쿵!
조표의 거구가 뜨거운 제련소 바닥 위로 쓰러지며 피를 토해냈다. 한신은 차갑게 검을 뽑아냈다. 조표의 품속에서 추가 장부나 기밀을 회수하려 했으나, 이미 도화선의 불꽃이 지하 비밀 창고의 첫 번째 화약 상자에 도달해 있었다.
콰아아앙!
첫 번째 대폭발이 야철소 지하를 강타했다. 지면이 미친 듯이 요동치며 용광로 위에 매달려 있던 거대한 쇳물 가마가 균열을 일으켰다. 붉고 뜨거운 쇳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며 제련소 바닥을 삼키기 시작했다. 유황 연기와 불길이 순식간에 가마터를 지옥도로 만들었다.
“소장문인! 이쪽입니다! 어서 피하십시오!”
화염 속에서 탁무양이 얼굴에 그을음을 가득 묻힌 채 소리쳤다. 그의 뒤편, 무너져 내리는 목조 철창 안에는 번호의 가혹한 고문으로 피투성이가 된 광부 대장 맹칠과 석탄곡 광부 연합의 민초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갇혀 있었다.
“맹칠 대장!”
한신은 지체하지 않고 신형을 날렸다. 왼쪽 허벅지의 상처가 찢어지는 감각이 생생했지만, 그는 왼손으로 칠살검을 움켜쥐고 철창의 쇠사슬을 향해 다가갔다.
‘공명해라!’
한신이 칠살검 끝에 내력을 주입하자, 검 내부의 묵철 핵이 쇠사슬의 고유 진동수와 공명하기 시작했다. 푸른 검광이 번뜩이며 칠살검이 철창의 두꺼운 무쇠 자물쇠를 정면으로 내리쳤다.
콰아앙!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무쇠 자물쇠가 단번에 조각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칠살검의 공명 파괴 능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소, 소장문인…….”
맹칠이 피 묻은 얼굴을 들며 경악했다. 한신은 그의 쇠사슬마저 베어내며 소리쳤.
“일어나시오! 석탄곡이 곧 완전히 무너질 것이오. 모두 나를 따르시오!”
그때, 무너지는 천장 사이로 붉은 장포를 걸친 백령이 청강검을 휘두르며 낙석들을 쳐내고 한신의 곁으로 착지했다. 남장 아래 가려진 그녀의 단아한 얼굴은 화염의 열기로 붉게 상해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한신! 황실 화약 수십 상자가 한꺼번에 터지기 시작했어요! 야철소 전체가 무너져 내리고 있어요! 어서 뒤편의 지하 폐광 통로로 달려야 해요!”
백령의 외침과 동시에 제련소 천장의 거대한 대들보가 불길에 휩싸인 채 바닥으로 떨어졌다. 콰아앙! 뜨거운 바람과 화약 가스가 통로를 덮쳐왔다. 한신은 가슴 장포 안쪽에 안전하게 모셔진 사부의 유해 항아리와 오악비망록을 다시 한번 왼팔로 단단히 감싸 안았다. 목숨보다 소중한 문파의 유산들이었다.
“무양! 맹칠 대장과 광부들을 이끌고 폐광 입구로 가시오! 내가 후방을 막겠소!”
“소장문인, 부디 몸을 보존하십시오!”
탁무양과 맹칠은 눈물을 흘리며 해방된 광부들을 이끌고 야철소 뒤편에 숨겨진 석탄곡 지하 폐광의 입구로 달리기 시작했다. 백령은 한신의 왼편에 서서 청강검으로 쏟아지는 불화살과 무너지는 전각 조각들을 물 흐르듯 유연하게 쳐내며 그의 사각지대를 완벽하게 엄호했다.
치지직, 콰콰콰쾅!
마침내 지하 깊은 곳에 적재되어 있던 대량의 황실 조총용 화약이 본 폭발을 일으켰다. 가공할 굉음과 함께 대지가 뒤집어졌다. 야철소의 웅장한 석조 벽면들이 종이장처럼 찢겨 나갔고, 엄청난 충격파가 지하 폐광 입구로 도망치던 일행의 등 뒤를 강타했다.
“으아악!”
광부들이 비명을 지르며 갱도 안쪽으로 쓰러졌다. 폭발의 여파로 지하 폐광의 입구가 무너져 내리며 거대한 바위들이 퇴로를 차단하려 했다. 흙먼지와 유독 가스가 갱도를 가득 메워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었다.
“출구가…… 출구가 무너져 막혔습니다!”
앞서가던 탁무양이 절망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무너진 천장의 바위들이 폐광 통로의 출구를 겹겹이 가로막고 있었다. 뒤편에서는 화약의 연쇄 폭발이 엄청난 열기를 뿜어내며 갱도 안쪽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모두가 어둠 속에서 질식해 죽거나 산채로 매장당할 판이었다.
그때,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맹칠이 거친 숨을 내쉬며 앞으로 나섰다.
“광부들이여! 우리가 평생 해온 일이 무엇이냐! 곡괭이를 들어라! 소장문인께서 우리 목숨을 구하셨다, 이번엔 우리가 길을 뚫는다!”
맹칠의 외침에 절망하던 광부들의 눈빛에 불꽃이 일었다. 그들은 흙바닥에 떨어져 있던 채굴용 곡괭이와 무쇠 장비들을 움켜쥐었다. 맹칠이 타고난 천생신력으로 무너진 바위 틈새를 내리찍자, 다른 광부들이 일제히 곡괭이를 휘두르며 바위를 깨부수기 시작했다. 정파의 수탈 아래서 노예처럼 일하던 그들의 거친 손놀림이, 이제는 생존을 위한 투쟁의 도구가 되어 굳건한 바벽을 무너뜨려 갔다.
“뚫렸다! 어서 나가십시오!”
맹칠이 외쳤다. 좁은 바위 틈새로 신선한 밤바람과 함께 희미한 바깥 불빛이 새어 들어왔다. 한신은 백령의 부축을 받으며, 마지막 광부 한 명까지 무사히 바위 틈새를 통과하는 것을 확인한 뒤 몸을 날렸다.
지하 폐광의 출구를 뚫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등 뒤에서 대지를 뒤흔드는 최후의 대폭발이 일어났다.
쿠구구구궁!
석탄곡 분타 전각과 야철소 전체가 거대한 불기둥과 함께 주저앉으며 지옥 같은 화염 속으로 완전히 소실되었다. 항산파가 동창과 결탁하여 불법으로 무기를 주조하고 민초들을 착취하던 탐욕의 요새가, 붉은 불꽃의 잿더미가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한신은 차가운 흙바닥 위에 쓰러지듯 무릎을 꿇었다. 그의 온몸은 석탄 먼지와 그을음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왼쪽 허벅지의 상처에서는 여전히 피가 흘러내렸다. 오른손은 차갑게 마비되어 힘없이 늘어져 있었지만, 그의 왼팔 품속에 안긴 사부의 진흙 유해 항아리만큼은 따뜻하고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한신, 해냈어요. 우리가 살아남았어요.”
백령이 한신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쥐며 속삭였다. 그녀의 차가운 눈동자에는 붉게 불타오르는 석탄곡의 참상이 고스란히 비치고 있었다. 해방된 광부들은 무너진 고향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자신들을 구원해 준 소년 장문인을 향해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한신은 새로 세워진 칠살검을 대지 위에 굳건히 꽂아 넣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 그의 이마 위로 차가운 밤바람이 불어와 석탄 먼지를 쓸어내렸다.
어두운 밤하늘 너머, 매연과 잿가루가 흩어지는 서늘한 잿빛 구름 사이로 저 멀리 산맥의 거대한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험준하고 산세가 매서운, 그러나 불타버린 잔회검파의 옛 본산이자 그들이 돌아가 깃발을 세워야 할 성지, 한풍산(寒風山)의 웅장한 자태가 차가운 달빛 아래 그 서늘한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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