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뼈, 굳어가는 마음
문짝을 부술 듯한 기세로 번호의 거친 목소리가 오막살이 벽을 흔들었다.
쾅! 쾅!
낡은 나무문이 비명을 지르며 흔들릴 때마다 틈새로 붉은 횃불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유황 먼지와 석탄 가루가 뒤섞인 매캐한 공기가 문틈을 타고 방 안으로 들이쳤다. 육한신은 가쁜 숨을 죽이며 품속의 유해 항아리를 가슴 깊이 끌어안았다. 차가운 진흙 항아리의 질감이 얇은 마의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옆구리에서는 낮에 번호에게 차인 타박상의 통증이 욱신거리며 밀려왔다. 갈비뼈가 어긋난 듯 숨을 쉴 때마다 찌르는 듯한 격통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지만, 소년은 입술을 깨물며 소리를 삼켰다. 오른손목을 칭칭 감은 삼베 붕대 틈새로 수련 중에 터진 핏방울이 조금씩 배어 나왔다.
“어이! 벙어리 녀석! 살아 있으면 당장 기어 나와라!”
문밖에 선 번호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무림맹의 마교 첩자 수색령을 핑계로 광부들의 푼돈을 갈취하고, 눈에 거슬리는 자들을 합법적으로 매질하려는 속셈이 뻔히 보였다.
한신은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닥 밑 비밀 틈새에 숨겨둔 부러진 철검 ‘칠살검’은 다행히 저들의 눈에 띄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품에 안은 사부 육남천의 유해 항아리는 숨길 곳이 없었다. 저들이 들이닥쳐 이 항아리를 발견한다면, 그 투박한 외형에 의심을 품고 깨부수거나 빼앗아 갈 것이 분명했다.
그때, 오막살이 구석의 흙벽 바닥이 작게 들썩였다.
스윽.
흙먼지 속에서 작고 마른 체구의 소년이 기어 나왔다. 한신과 함께 가혹한 탄광 노동을 견디며 형제처럼 지내던 열네 살의 고아 소년, 소표(So-pyo)였다. 소표의 맑고 큰 눈동자에는 극도의 공포가 서려 있었지만, 그의 손은 흔들림 없이 오막살이 바닥의 한구석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은 갱도가 무너질 때를 대비해 파놓은 좁은 환기 구멍이었다.
“형…… 빨리, 항아리를 여기에…….”
소표가 갈라진 목소리로 소리 없이 속삭였다.
한신은 주저하지 않았다. 사부의 유해 항아리를 삼베 조각으로 조심스럽게 감싸 소표가 가리킨 좁은 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 위를 낡은 가마니와 석탄 자루로 덮어 은폐했다. 마지막 흔적을 지우는 순간, 오막살이의 낡은 나무문이 완전히 부서져 내렸다.
쿠웅!
“이 쥐새끼 같은 놈들, 불러도 대답이 없어?”
부서진 문짝을 밟고 번호가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의 한손에는 기름 냄새를 풍기는 횃불이 들려 있었고, 다른 한손은 허리에 찬 철조망 가죽 채찍의 자루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의 뒤로는 붉은 제복을 입은 항산파의 하급 간수들이 횃불을 든 채 오막살이를 가득 메웠다.
“나, 나리…… 잠시 잠이 들어서…….”
한신은 즉시 바닥에 엎드리며 말을 더듬었다. 흙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비굴하게 손을 비벼댔다. 옆구리의 타박상이 짓눌려 눈앞이 하얗게 흐려졌지만, 소년은 더욱 처절하게 벙어리 흉내를 내며 신음했다.
번호는 코방귀를 끼며 오막살이 내부를 거칠게 훑었다. 횃불의 불길이 방 안의 초라한 살림살이들을 비추었다. 이 빠진 밥그릇, 낡은 이불, 그리고 석탄 가루가 묻은 옷가지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간수들은 가죽 군화로 가재도구들을 짓밟으며 마구잡이로 방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마교의 첩자가 이 근방으로 숨어들었다는 첩보가 있다. 특히 멸문당한 잔회검파의 잔당들이 사교의 무리와 결탁해 음모를 꾸민다는 소문이 돌더군.”
번호가 차가운 눈빛으로 한신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한신의 감긴 삼베 붕대와 기형적으로 굵어진 손가락 마디에 머물렀다.
“네놈의 그 손…… 아무리 봐도 평범한 광부의 손이 아니란 말이지. 뼈마디가 뒤틀린 꼴이 꼭 검자루를 오래 쥔 무인의 손 같단 말이야.”
긴장감이 오막살이의 공기를 얼려버릴 듯 팽팽해졌다. 한신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손가락 끝의 신경이 미세하게 떨렸고, 칠살검의 검로가 머릿속에서 본능적으로 그려졌다. 단 한 번의 찌르기. 지금 내지르면 저 번호의 목덜미를 꿰뚫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순간, 사부 육남천이 불길 속에서 전신에 화상을 입은 채 남겼던 마지막 유언이 뇌리를 스쳤다.
‘한신아…… 절대 정체를 드러내지 마라. 단 한 번의 찌르기로 천하를 관통할 힘을 기르기 전까지는, 재 속의 숯불처럼 숨죽여 살아남아야 한다…….’
한신은 어금니를 깨물며 살기를 억눌렀다. 그리고 억지로 바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뒤틀린 오른손을 번호에게 내밀었다.
“이, 이기…… 어릴 적에 대장간 화로에 손이 데여가꼬 뼈가 굳어버렸습니더, 나리. 광산에서 곡괭이질 할 때도 매일 피가 터져가꼬 삼베로 감아놓은 깁니다. 살려주이소…….”
번호는 혀를 차며 한신의 손을 거칠게 쳐냈다.
“더러운 쥐새끼 같은 놈.”
그때, 방 구석을 뒤지던 간수가 소표가 숨겨둔 환기 구멍 근처의 가마니를 걷어찼다.
“대장! 여기 바닥에 구멍이 있습니다! 흙이 새로 다져진 흔적이 있습니다!”
간수의 외침에 번호의 눈빛이 번뜩였다. 번호는 성큼성큼 다가가 횃불로 구멍 안을 비추려 했다. 그 안에는 사부의 유해 항아리가 삼베에 감긴 채 들어 있었다. 발각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 순간, 소표가 몸을 던졌다.
“안 돼!”
열네 살의 소년은 무공을 전혀 모르는 초학자 이전의 단계였지만, 광산에서 단련된 빠른 몸놀림으로 번호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이건 그냥 쥐구멍입니다! 나리, 제발 오막살이를 부수지 마십시오! 아무것도 없습니다!”
소표는 한신이 목숨처럼 아끼는 항아리를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번호의 군화를 안고 늘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이성을 잃은 살귀에게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이 비천한 노예 놈이 감히 어디를 만져!”
번호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다리를 거칠게 휘둘러 소표의 가슴을 걷어찼다.
퍽!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소표의 가냘픈 몸이 벽 모서리에 부딪쳐 나뒹굴었다. 컥, 하며 붉은 피가 소년의 입술 사이로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소표는 고통 속에서도 눈을 부릅뜨고 한신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형, 항아리를 지켜야 해’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직도 입을 열지 않는 걸 보니, 이 구멍 속에 분명 마교의 기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 확실하군.”
번호는 허리춤에서 철조망이 박힌 특제 가죽 채찍을 뽑아 들었다. 채찍이 허공을 가르며 날카로운 파공음을 냈다.
쉭!
철조망이 박힌 채찍이 소표의 마른 등 가죽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찰싹!
“으아아악!”
소표의 처참한 비명이 오막살이의 사방 벽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단 한 대의 채찍질만으로도 소년의 얇은 옷가지가 찢겨 나가고, 등 뒤로 붉은 선혈과 함께 살점이 튀었다.
“말해라! 이 구멍 속에 무엇을 숨겼느냐! 네놈들이 마교의 첩자와 접선하는 통로냐!”
번호는 광기에 젖은 눈으로 채찍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두 번, 세 번, 네 번…….
찰싹! 찰싹!
채찍이 가해질 때마다 소표의 비명 소리는 점차 가늘어졌다. 소년의 전신은 순식간에 피떡으로 변해갔고, 부러진 뼈마디가 살 가죽을 뚫고 나올 듯 기형적으로 뒤틀렸다.
한신은 바닥에 엎드린 채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 살을 뚫고 들어가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눈동자는 붉은 핏발로 가득 찼고,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가 단전의 미세한 내력을 폭발시키려 했다. 당장이라도 바닥 밑의 칠살검을 뽑아 저 번호의 심장을 관통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번호의 뒤에는 항산파 분타의 정예 무사들과 오악동맹의 거대한 세력이 도사리고 있었다. 지금 무공을 드러내는 순간, 소표의 희생은 무의미해지고 사부의 유해와 문파의 마지막 불씨는 완전히 꺼져버릴 터였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복수할 수 있다…….’
한신은 이빨이 깨져나갈 정도로 입술을 짓씹으며 피눈물을 삼켰다.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비굴하게 울부짖는 엄살을 부리는 것이 소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었다.
“나리! 살려주이소! 소표는 아무것도 모릅니더! 그냥 쥐를 잡으려고 판 구멍입니더!”
그러나 번호의 채찍질은 멈추지 않았다. 소표의 눈망울에서 점차 생기가 사라져 갔다. 소년은 마지막 순간까지 한신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품속에서 한신이 깎아주었던 작은 나무 조각 검을 꼭 쥔 채 천천히 숨을 거두었다.
“쳇, 벌써 숨이 끊어진 건가. 맷집이 쥐새끼만도 못한 놈이군.”
번호는 피 묻은 채찍을 털어내며 차갑게 뱉었다. 그는 구멍 속을 대충 발로 헤집어보더니, 낡은 가마니와 석탄 자루만 나오자 흥미를 잃은 듯 침을 뱉었다.
“아무것도 없군. 헛수고를 했어. 벙어리 녀석, 시체는 내일 아침까지 광산 밖 잿더미에 던져버려라. 더러운 마교의 기운이 남지 않게 말이다.”
번호와 간수들은 오막살이를 난장판으로 만든 채 유유히 사라졌다.
정적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깨진 문틈으로 차가운 유황 바람이 불어와 소표의 식어가는 뺨을 쓸고 지나갔다.
한신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소년의 얼굴은 피와 눈물, 그리고 석탄 가루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소표의 시신 앞으로 다가간 한신은 무릎을 꿇었다. 소년의 손에는 여전히 거칠게 깎인 나무 조각 검이 쥐여 있었다.
“소표야…….”
한신은 소표의 차가워진 손을 잡았다. 피눈물이 소년의 뺨을 타고 흘러내려 소표의 얼굴에 떨어졌다. 전신이 산산조각 난 동생의 죽음 앞에서, 한신의 심장은 서서히 차가운 얼음처럼 굳어갔다. 정파라는 자들의 가혹한 폭압과 위선이 소년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깊은 밤, 한신은 홀로 소표의 장례를 치렀다. 석탄곡 외곽, 검은 재와 황량한 돌멩이만 가득한 잿더미 무덤가에 소표를 묻고, 그가 아끼던 나무 조각 검을 무덤 머리에 꽂아두었다.
“내 약속하마. 저들의 피로 이 무덤을 적셔주겠다고.”
소표의 무덤 앞에서 한신은 붕대 감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뒤틀린 관절이 달빛 아래에서 기형적인 실루엣을 그렸다. 분노는 이제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소년의 뼈와 살에 각인된 처절한 신념이 되었다.
오막살이로 돌아온 한신은 환기 구멍 속에서 사부의 유해 항아리를 꺼냈다. 다행히 삼베 조각에 감싸여 있어 흠집 하나 나지 않은 상태였다.
소년은 떨리는 손으로 항아리에 묻은 검은 석탄 가루와 흙먼지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젖은 삼베 조각으로 항아리의 겉면을 정성스럽게 쓸어내리던 한신의 손끝에 기묘한 마찰 감각이 느껴졌다.
항아리의 투박한 진흙 표면과 달리, 바닥 안쪽 깊숙한 곳에서 미세하게 파인 칼끝의 흔적이 감지된 것이다.
“음……?”
한신은 돋보기안경도 없이, 대장장이의 피를 이어받은 날카로운 감각으로 항아리 바닥 안쪽을 집중해서 들여다보았다. 희미한 촛불 불빛 아래, 거친 회색 진흙 바닥에 아주 미세한 칼끝으로 정교하게 새겨진 글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사부 육남천이 죽기 전, 자신의 마지막 내력을 손가락 끝에 실어 항아리 내벽 바닥에 새겨둔 미완의 ‘잔회검의(殘灰劍意)’ 구결이었다.
[만물이 타서 재가 되듯, 검 끝의 의지 또한 스스로를 태워 극의에 도달해야 한다. 쇠의 울림을 마음으로 듣고, 바람의 저항을 지워 일직선으로 내지를 때, 부러진 검은 비로소 천하를 관통하리라…….]
글귀를 Tracing하던 한신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 구결 아래에는 미세한 제련 배합비와 진동 주파수에 대한 기록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반쯤 부러져 날 끝이 뭉툭해진 문파의 보검 ‘칠살검’의 묵철 성질을 깨우고, 그 이 빠진 검날을 완벽하게 복원하여 적의 무기를 파괴하는 공명 능력을 부여하는 핵심 비법이었다.
“사부님…….”
한신은 항아리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사부가 남긴 마지막 유산은 단순한 무공 비급이 아니었다. 그것은 멸문당한 문파의 정통성을 증명하고, 부러진 검 한 자루로 거대한 오악동맹의 위선을 깨부술 수 있는 유일한 열쇠였다.
하지만 이 구결을 완벽히 소화하고 칠살검의 진정한 위력을 깨우기 위해서는,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는 처절한 단련이 선행되어야 했다. 오직 하나의 기본 찌르기 초식을 영혼이 마비될 때까지 반복하는 것.
10만 번의 찌르기.
한신은 품속에서 부러진 철검 칠살검을 꺼내 들었다. 검은색 묵철의 차가운 검날이 소년의 굳어버린 얼굴을 비추었다. 소년은 오른손의 뒤틀린 삼베 붕대를 더욱 단단히 조여 매었다. 관절이 바스러지는 듯한 격통이 밀려왔지만, 소년의 눈빛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소표의 죽음으로 완성된 처절한 한(恨)과, 사부의 항아리 바닥에서 발견한 비전 구결. 이 두 가지가 합쳐져 소년의 내면에 꺾이지 않는 불꽃을 피워 올렸다.
한신은 오막살이 앞마당의 늙은 느티나무 앞으로 걸어 나갔다. 검은 탄가루가 날리는 밤하늘 아래, 소년은 왼발을 축으로 몸을 낮추고 칠살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쉬익!
소리 없는 일직선의 검로가 어둠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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