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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의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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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의원의 약방을 나서는 육한신의 걸음은 무거웠으나, 그의 왼손에 쥐어진 부러진 철검 칠살검(七殺劍)의 자루는 단 한 순간도 흔들리지 않았다.


“정말 괜찮겠어, 한신?”


남장을 한 채 그의 곁을 지키던 백령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그녀의 어깨에는 삼베 끈으로 단단히 묶인 사부 육남천의 회색 진흙 유해 항아리가 메여 있었고, 품속에는 오악동맹의 위선을 폭로할 유일한 증거인 오악비망록이 소중히 보관되어 있었다.


한신은 대답 대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오른손은 오 의원이 시술한 한독 억제침들로 인해 완전히 얼어붙어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손가락 끝마디부터 어깨 경맥까지 깊숙이 박힌 검은 침들은 당목이 주입한 치명적인 한독(寒毒)을 억제하고 있었지만, 그 대가로 오른팔의 모든 감각과 힘을 앗아갔다. 평생 오른손으로 검을 쥘 수 없다는 가혹한 진단. 그것은 평생을 단 하나의 찌르기 초식에 매달려온 범재 소년에게 사형 선고와도 같았다.


하지만 한신은 주저앉지 않았다. 오른손이 죽었다면 왼손으로 검을 쥐면 될 일이었다.


백령은 한신의 흔들림 없는 눈빛에서 형용할 수 없는 비장함을 읽고, 그를 석탄곡 뒤편 벼랑 끝 험준한 산자락에 숨겨진 고찰, 뇌음사(雷音寺)로 인도했다. 정파의 삼엄한 감시망을 피할 수 있으면서도, 한신이 새로운 검로를 개척하기에 이보다 더 고요하고 은밀한 장소는 없었다.


사방이 빽빽한 대나무로 둘러싸인 뇌음사 대나무 숲은 바람이 불 때마다 서걱이는 댓잎 소리만 가득한 고요한 비경이었다. 다 무너져가는 대웅전 마당 한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깡마른 노승이 있었다. 뼈만 남은 육체에 먼지 낀 가사를 걸친 그는, 두 눈이 멀어 초점 없는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가 바로 뇌음사에 은거 중인 무명 승려(無名 僧侶)였다.


노승은 낯선 발소리가 들려오자 낡은 나무 목탁을 가볍게 두드렸다.


탁.


맑고 무거운 목탁 소리가 대나무 숲의 정적을 깨뜨렸다. 노승은 보이지 않는 눈으로 한신이 서 있는 방향을 정확히 짚으며 나지막이 내뱉었다.


“피비린내와 타오르는 불길의 재 냄새를 풍기는구나. 거기에 뼛속까지 얼어붙은 음한 독기까지…… 소년아, 네 오른손은 이미 죽었는데 어찌하여 여전히 검을 버리지 못하느냐?”


한신은 노승의 앞에 묵묵히 다가가 왼손에 쥔 부러진 칠살검을 바닥에 꽂아 넣었다. 쇠붙이가 빙판과 돌바닥을 긁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사부님의 원한을 갚기 전에는, 이 몸이 가루가 되어도 검을 놓을 수 없습니다.”


한신의 갈라진 목소리에는 서릿발 같은 살기가 서려 있었다. 당목이 죽어가며 흘렸던 비틀린 진실이 그의 뇌리를 끊임없이 난도질하고 있었다. 오악동맹의 맹주 엽고운의 수양딸이자 화산파의 촉망받는 천재 여무인 엽청진. 그녀가 자신을 완전한 불구로 만들어 잔회검파의 씨를 말리기 위해 사천당가의 독무사 당목에게 암살을 의뢰했다는 사실. 그 위선적인 정파 놈들의 음모를 알게 된 이상, 손가락 하나가 부러지는 것 따위는 멈출 이유가 되지 못했다.


무명 승려는 한신의 대답을 듣고 허허로운 미소를 지었다.


“어리석고도 우직한 놈이로구나. 검을 쥐는 것은 손가락이 아니라 전신의 기혈과 척추, 그리고 발끝이다. 오른손의 경맥이 막혔다면 왼손의 닫힌 문을 억지로 열면 될 터. 하지만 그 대가는 네 뼈를 깎아내는 고통일 게다.”


노승은 가사 소매 속에서 마른 손을 꺼내 한신의 왼쪽 어깨와 등줄기를 짚었다.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굳어 있던 기혈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반야선공(般若禪功)의 기리로 네 마음에 쌓인 살기를 다스려라. 분노가 검 끝을 흔들면 일직선의 찌르기는 결코 완성될 수 없다. 마음을 차갑게 응축하고, 전신의 회전축을 반대로 돌려라.”


무명 승려의 마음 응축법(無名 僧侶의 마음 응축법)이었다. 요동치는 복수심과 끓어오르는 살기를 심장 깊은 곳에 차갑게 얼려두고, 오직 검 끝의 일직선 궤적에만 정신을 집중시키는 극단적인 정신 통제술이었다.


한신은 대웅전 앞마당의 빽빽한 대나무 숲 한가운데에 섰다. 왼손으로 부러진 칠살검의 묵직한 자루를 쥐자, 오른손으로 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색하고 무거운 무게감이 손목을 짓눌렀. 오른손 수련으로 단련된 하체의 지지력과 어깨의 회전 방향이 왼손을 잡는 순간 완벽하게 어긋나 버렸다.


“시작해라.”


노승의 명령과 함께 한신은 왼손을 뻗어 정면을 향해 칠살검을 내질렀.


쉬익!


검 끝이 허공을 갈랐으나, 궤적은 형편없이 흔들렸고 파공음 또한 둔탁했다. 오른발을 앞으로 내딛던 버릇이 남아 있어 몸의 중심이 왼쪽으로 쏠리며 균열이 발생한 탓이었다.


“크윽……!”


한신은 신음을 삼켰다. 왼손으로 검을 찌르기 위해서는 몸의 회전축을 완전히 반대로 뒤집어야 했다. 왼발을 축으로 삼고, 오른발을 뒤로 뻗으며 골반과 허리를 역방향으로 강하게 틀어 정렬하는 좌수역검술(左手逆劍術)의 기초였다.


하지만 평생 오른손잡이로 살아온 소년의 척추는 그 인위적인 뒤틀림을 거부했다. 허리를 반대로 틀 때마다 척추뼈마디가 어긋나는 듯한 불타는 격통이 등줄기를 타고 뇌수까지 찔러왔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찢어지는 고통과는 차원이 다른, 전신의 골격이 뒤틀리는 가혹한 신체 재조율의 고통이었다.


게다가 왼손의 내경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평생 쓰지 않아 굳어 있던 왼팔의 미세 경맥들을 강제로 타통해야 했다. 좌우 역전(좌우 역전 - 왼손의 타통)의 장벽이었다. 한신은 무명 승려의 지도에 따라 단전의 내력을 억지로 끌어올려 왼팔의 닫힌 경맥으로 밀어 넣었다.


“아아악……!”


결국 참지 못한 비명이 한신의 입술 사이로 터져 나왔다. 좁고 막혀 있던 왼팔의 경맥 속으로 억센 내력이 파고들자, 혈관이 불타오르고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이 전신을 덮쳤다. 왼손바닥의 동상 상처에서 붉은 피가 다시 배어 나와 삼베 붕대를 적셨고, 척추의 통증으로 인해 다리가 꺾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일어나라.”


무명 승려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 정도의 고통에 무릎을 꿇을 거라면, 화산파의 천재 여무인에게 목을 내어주고 사부의 항아리를 조표의 발밑에 바치거라. 범재가 천재의 목을 베기 위해서는 제 뼈를 깎아내는 고통쯤은 당연한 대가로 치러야 하는 법이다.”


사부의 유해 항아리.


그 한마디에 한신의 눈동자가 다시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떨리는 왼손으로 바닥을 짚고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입술을 깨물어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의 안광만은 용광로 속의 쇳물처럼 붉게 빛났다.


그는 다시 검을 쥐었다. 마음 응축법을 극대화하여 뇌리를 지배하는 격통을 차가운 무감각의 장막 뒤로 밀어냈다.


왼발을 단단히 고정하고, 허리를 역방향으로 틀며 왼손을 곧게 내지른다. 발가락 끝에서 시작된 전신의 무게가 뒤틀린 척추를 거쳐 왼손 끝 한 점으로 온전히 전달되는 감각을 찾아내야 했다. 엉터리로 휘두르는 백 번의 검보다, 완벽한 회전축을 지닌 단 한 번의 정밀한 찌르기가 필요했다.


쉬익! 쉬익!


대나무 숲속에서 칠살검이 허공을 가르는 파공음이 밤새도록 이어졌다. 한신이 검을 내지를 때마다 대나무 잎들이 미세하게 흔들렸고, 그의 척추에서는 뚝뚝 끊어지는 뼈 소리가 삭막하게 울려 퍼졌다. 백령은 대웅전 처마 밑에 앉아, 어둠 속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찌르기를 반복하는 한신의 뒷모습을 주먹을 꽉 쥔 채 지켜보았다.


수일이 흐르고, 수만 번의 실패가 뇌음사의 흙바닥 위에 쌓였다. 한신의 왼손바닥은 이제 동상 상처와 검은 묵철 자루의 마찰로 인해 두꺼운 피 딱지가 앉아 굳은살로 변해 가고 있었고, 뒤틀리던 척추는 역방향의 회전축에 맞춰 기형적으로 단단하게 정렬되기 시작했다.


어느 깊은 밤, 매서운 밤바람이 대나무 숲을 거칠게 뒤흔들었다.


스스스슥.


대나무 가지가 흔들리며 날카로운 대나무 잎 하나가 한신의 눈앞으로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한신은 숨을 죽였다. 무명 승려의 가르침대로 눈을 감고, 오직 바람의 흐름과 댓잎이 공기를 가르는 미세한 진동을 청각으로 느꼈다. 왼손 끝에 정순한 내력이 부드럽게 흘러들었다. 척추의 축이 반대로 완벽히 꼬였다가 풀리는 찰나의 순간.


타앗!


한신의 왼손 찌르기가 허공을 뚫고 나갔다.


어떠한 거친 파공음도 없었다.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한 정교한 직선의 궤적. 칠살검의 부러진 뭉툭한 끝이 떨어지던 대나무 잎의 표면을 스치듯 베어내며 미세한 궤적을 완벽하게 잡아갔다. 마침내 왼손 좌수역검술의 첫 번째 실전 궤적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깨달음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었다.


쿠우웅!


대나무 숲의 고요를 깨뜨리는 둔탁한 폭발음이 저 멀리 산기슭 방향에서 울려 퍼졌다.


한신은 번개처럼 눈을 뜨고 석탄곡 광산 쪽을 바라보았다. 칠흑 같은 밤하늘 위로, 심상치 않은 붉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며 먹구름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바람을 타고 광부들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뇌음사 대나무 숲까지 희미하게 들려왔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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