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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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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은 쓰러진 육한신의 몸을 굳건히 부축하며, 사부의 유해 항아리와 칠살검을 챙겨 동굴 밖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밤하늘은 칠흑처럼 어두웠고, 석탄곡 외곽의 깊은 숲을 뒤흔드는 밤바람은 살을 에는 듯 매서웠다.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부딪히며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는 산길을, 백령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렸다. 그녀의 등에 업힌 한신의 몸은 이미 만년빙처럼 차갑게 식어 가고 있었다.


“정신 차려, 한신! 여기서 무너지면 사부님의 원한은 누가 갚는단 말이야!”


백령의 다급한 외침이 차가운 허공으로 흩어졌다. 한신의 등 뒤에 단단히 묶인 사부 육남천의 회색 진흙 유해 항아리가 그녀의 어깨에 무겁게 부딪혔다. 한신의 품속에 숨겨진 피 묻은 가죽 장부, 오악비망록이 차가운 금속성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한신의 오른팔은 이미 검푸른 빛을 띠며 완전히 굳어 있었다. 자객 당목이 주입한 치명적인 한독(寒毒)이 그의 손끝에서부터 경맥을 타고 어깨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뻗어 오르고 있었다. 백령이 시침해 둔 은침들이 한독의 확산을 임시로 막고 있었으나, 침 끝 주변의 살가죽이 이미 하얗게 서리가 내린 것처럼 변해 가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이대로 한독이 심장 경맥에 도달하는 순간, 한신의 심장은 그대로 얼어붙어 멈출 터였다.


백령은 이 빠진 명검 청강검을 허리에 차고, 오직 가문에서 들었던 소문 하나만을 의지한 채 숲속 깊은 곳으로 향했다. 석탄곡 외곽, 정파의 감시를 피해 깊은 숲속에 은거 중인 몰락한 명의. 환자에게 독설을 퍼붓지만 의술만큼은 신의(神醫)의 경지에 닿았다는 괴짜, 오 의원의 거처였다.


한참을 헤맨 끝에, 울창한 가시덤불 너머로 희미한 등불 빛이 새어 나오는 초라한 흙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퀴퀴한 약초 냄새와 매캐한 연기가 집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쾅! 쾅! 쾅!


백령은 다급하게 나무문을 두드렸다.


“오 의원님! 사람을 살려주십시오! 제발 문을 열어주십시오!”


잠시 후,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문틈 사이로 돋보기안경을 비스듬히 쓰고 이 빠진 곰방대를 입에 문 깡마른 노인이 나타났다. 헝클어진 백발을 뒤로 대충 묶은 노인은 차가운 눈빛으로 백령과 그녀의 등에 업힌 한신을 번갈아 보았다. 그가 바로 오 의원이었다.


“야밤에 시체를 들고 와서 짖어대는 꼴이라니. 여기가 공동묘지인 줄 아느냐? 썩 꺼지거라.”


오 의원은 귀찮다는 듯 문을 닫으려 했다. 백령은 다급하게 자신의 청강검 자루로 문틈을 막아섰다.


“사천당가의 한독(寒毒)입니다! 이미 경맥이 파열된 상태에서 독이 침투했습니다. 이대로 두면 심장이 얼어붙을 것입니다.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사천당가’와 ‘한독’이라는 말에 오 의원의 돋보기안경 너머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는 곰방대를 툭툭 털어내며 한신의 검푸르게 죽어버린 오른손을 흘깃 보았다. 뒤틀린 손가락 뼈마디와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피 묻은 삼베 붕대, 그리고 하얗게 서리가 내린 은침들이 그의 예리한 안목에 포착되었다.


“……귀찮은 성가신 물건을 몰고 왔군. 안으로 들여라.”


오 의원은 혀를 차며 돌아섰다. 백령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한신을 방 안의 낡은 나무 침상 위에 눕혔. 방 안은 온갖 말린 약초와 정체불명의 뼈다귀들, 그리고 매캐한 유황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오 의원은 돋보기안경을 고쳐 쓰며 한신의 오른팔을 덮고 있던 피 묻은 삼베 붕대를 거칠게 가위로 잘라냈다. 붕대가 벗겨지자, 백령조차 숨을 들이켤 만큼 참혹한 광경이 드러났다.


한신의 오른손은 이미 인간의 손이라 부르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수십만 번의 무리한 찌르기 수련으로 인해 손가락 관절은 비정상적으로 굵어지고 뒤틀려 기형적인 형상을 하고 있었고, 그 뒤틀린 뼈마디 사이사이로 검푸른 독기가 혈관을 타고 번져 나가고 있었다. 경맥 파열과 독성의 침투(經脈破裂-毒性浸透)가 동시에 일어난 최악의 상태였다.


“어리석은 놈. 범재(凡才) 녀석이 제 근골도 모르고 무식하게 칼질을 해대더니, 결국 경맥을 스스로 찢어발겨 놓았구나. 그 갈라진 틈새로 당가의 음한 독이 흘러들어 갔으니,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이 당연하지.”


오 의원의 목소리에는 자비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손놀림은 매서울 정도로 신속했다. 그는 벽에 걸린 낡은 침통에서 은빛이 아닌, 거무스름한 빛을 띠는 특수한 한철제 침들을 꺼내 들었다.


“잡아라. 비명을 지르다 제 혀를 깨물지 않게 하려면 단단히 눌러야 할 게다.”


백령은 침을 삼키며 한신의 상체를 강하게 눌러 고정했다. 한신의 의식은 희미했지만, 전신을 지배하는 본능적인 공포에 몸을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오 의원의 손끝이 움직였다.


스윽! 팍!


첫 번째 침이 한신의 오른쪽 어깨 깊숙한 곳의 견정혈(肩井穴)을 꿰뚫었다.


“으그극……!”


의식을 잃어가던 한신의 입에서 짐승 같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의 전신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하며 침상이 들썩였다. 오 의원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두 번째, 세 번째 침을 곡지혈(曲池穴)과 외관혈(外關穴)에 사정없이 찔러 넣었다. 기혈의 흐름을 강제로 뚫어내는 의술의 극의, 귀문십삼침(鬼門十三針)이었다.


“치익……!”


기이한 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깨뜨렸다.


오 의원이 침을 찔러 넣은 혈자리 주변에서 검붉은 피가 거품을 일으키며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피는 정상적인 인간의 피가 아니었다. 반쯤 얼어붙은 검은 진흙처럼 걸쭉했고, 시큼하고 차가운 유독한 냄새를 풍겼다. 독혈이 바닥의 나무 판자 위로 떨어지자, 지익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가 하얗게 얼어붙으며 서리가 내렸다.


한신의 몸이 격렬하게 뒤틀렸다. 통증 차단 비술의 약효가 완전히 끝나버린 그의 육체는, 경맥을 강제로 찢어발기며 파고드는 귀문십삼침의 극단적인 자극에 지옥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이마와 온몸에서 식은땀과 피가 섞여 흘러내렸다. 왼손바닥의 고드름 검을 쥐다 찢어진 동상 상처에서도 붉은 피가 배어 나와 침상을 적셨다.


“참아야 한다, 한신! 이겨내야 해!”


백령은 눈물을 흘리며 한신의 어깨를 누르고 내력을 불어넣어 그의 심장을 보호하려 애썼. 오 의원은 마지막으로 한독 억제침(寒毒 억제침) 세 발을 한신의 오른손목 신문혈(神門穴)과 손가락 마디마디에 정확히 찔러 넣었다.


침이 완전히 박히자, 무섭게 꿈틀거리며 어깨를 향해 기어오르던 검푸른 독선(毒線)이 거짓말처럼 멈추어 섰다. 오른팔 전체가 하얀 서리로 뒤덮이며 차갑게 얼어붙었지만, 적어도 독이 심장으로 역류하는 것은 완벽히 차단되었다.


“하아…… 하아…….”


한신은 혼절하듯 침상 위로 무너져 내렸다. 그의 거친 호흡이 하얀 입김이 되어 허공으로 힘없이 흩어졌다.


오 의원은 피 묻은 손을 대야의 물에 씻어냈다. 대야의 맑은 물이 순식간에 검붉은 독빛으로 물들었다. 그는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침상 옆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피로감이 서려 있었다.


“명의님…… 한신은 살 수 있는 것입니까?”


백령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오 의원은 이 빠진 곰방대를 다시 입에 물고, 불을 붙이지 않은 채 나지막이 내뱉었다.


“목숨줄은 붙잡아 두었다. 내 귀문십삼침과 한독 억제침이 아니었다면 이놈은 벌써 저승 길목에서 사부라는 늙은이를 만나 저세상 제사를 지내고 있었겠지.”


백령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오 의원의 다음 한마디는 비수처럼 그녀와 한신의 가슴을 관통했다.


“하지만 무사로서 이놈의 오른손은 오늘부로 완전히 죽었다.”


침상 위에서 간신히 의식을 붙잡고 있던 한신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오른손이 죽다니요?”


백령이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소리쳤다. 오 의원은 돋보기안경 너머로 한신의 검푸르게 죽어버린 오른손을 가리켰다.


“이놈의 오른손 경맥은 이미 찌르기 수련의 반동으로 걸레짝처럼 찢어져 있었다. 뼈마디가 기형적으로 변할 때까지 제 몸을 갉아먹으며 칼질을 해댄 게지. 거기에 당가의 한독이 스며들어 찢어진 경맥의 미세한 통로들을 완전히 얼려 터뜨려 버렸다. 쉽게 말해, 이놈의 오른팔 신경과 기혈의 길은 영구히 파괴되었다는 뜻이다.”


오 의원의 어조는 지극히 덤덤했다. 그래서 더 잔인하게 들렸다.


“한독 억제침으로 독의 확산은 막았지만, 침을 뽑는 순간 독은 다시 살아날 게다. 평생 이 억제침을 오른손에 박아둔 채 살아가야 한다. 침이 경혈을 누르고 있는 한, 이 오른손에는 어떠한 내력도 통하지 않으며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 다시는 무사로서 오른손으로 검을 쥘 수 없다는 말이다.”


사망 선고였다.


검객에게 오른손을 쓰지 못한다는 것은, 무인으로서의 생명이 끝났음을 의미했다. 더구나 한신은 천재적인 자질도, 기묘한 내공 비법도 없는 범재였다. 그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매일 천 번씩, 10만 번을 반복하여 단련한 오른손의 투박한 일직선 찌르기 초식뿐이었다. 그 집념의 결정체이자 복수의 유일한 도구였던 오른손이 영구히 마비되었다는 진단은, 그의 영혼을 통째로 찢어발기는 절망이었다.


방 안에는 무거운 정적이 가라앉았다.


한신은 멍하니 천장의 그을린 목조 들보를 올려다보았다.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듯한 극단적인 허탈감이 밀려왔다. 사부 육남천이 오악동맹의 불길 속에서 전신에 화상을 입고 죽어가던 모습, 자신을 지키려다 간수들의 매질에 처참하게 숨진 의동생 소표의 맑은 눈망울, 그리고 멸문당한 잔회검파의 잿더미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


‘내 오른손이…… 죽었다고?’


가죽 끈으로 칠살검을 오른손에 묶어 고정하며 복수를 맹세했던 밤들이 떠올랐다. 굳은살이 박이고 뼈가 뒤틀리면서도 멈추지 않았던 수십만 번의 찌르기 동작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그 모든 피와 땀,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들이 오직 자객의 독침 한 방에 무형의 먼지처럼 사라져 버렸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백령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녀는 한신의 처절한 집념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동반자였기에, 이 사망 선고가 소년에게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오 의원님,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천하의 명약이나 내공으로 경맥을 이어붙일 수는 없나요? 제발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백령이 오 의원의 옷소락을 붙잡고 애원했다. 오 의원은 거칠게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시끄럽다! 천하의 영약? 소림의 대환단이나 화산의 자하단이라도 가져온다면 모를까, 일개 광부 놈의 뒤틀린 뼈다귀에 그런 신물이 쓰일 리 있겠느냐? 경맥이 파열되고 독성이 침투한 자리는 영구히 회복되지 않는다. 이것이 강호의 냉혹한 법칙이다.”


노의원은 침상 머리맡에 놓인 사부의 유해 항아리를 힐끗 보았다.


“복수니 문파 재건이니 하는 거창한 꿈은 버리고, 평생 석탄곡의 절름발이 광부 아신으로 쥐죽은 듯 살아라. 그것이 이놈이 목숨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검을 놓아라.”


‘검을 놓아라.’


그 한마디가 가혹한 채찍이 되어 한신의 귓가를 때렸다.


한신은 천천히 고개를 숙여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하얗게 서리가 내린 한독 억제침들이 굵게 뒤틀린 손가락 마디마디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힘을 주려 해보았지만, 오른팔은 마치 타인의 육체를 붙여놓은 것처럼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손가락 끝의 감각은 완전히 죽어 차가운 고깃덩어리와 다름없었다.


절망의 심연 속에서, 한신의 눈동자가 붉게 충혈되어 갔다. 눈물이 고였지만, 소년은 결코 눈물을 흘려보내지 않았다. 그의 가슴속 깊은 곳, 삼칠근과 유황 먼지로 가득 찬 심장 한구석에서 차가운 불꽃이 다시금 요동치기 시작했다.


‘사부님의 원한을 갚기 전에는…… 내 육체가 가루가 되어 사라질지언정 검을 놓을 수 없다.’


오른손이 죽었다면.


오른손이 영구히 쓸 수 없는 불구가 되었다면.


한신은 천천히 자신의 왼쪽 손을 들어 올렸다.


동굴 천장의 차가운 고드름을 움켜쥐다 살가죽이 찢어지고 동상에 걸려 붉은 피가 엉겨 붙은 왼손. 비록 오른손처럼 뒤틀린 굳은살은 없었지만, 여전히 온전하게 살아 숨 쉬며 손가락을 구부릴 수 있는 그의 또 다른 손이었다.


오 의원의 경혈 조율법(오 의원의 경혈 조율법)을 머릿속으로 되새기며, 한신은 몸의 기혈 흐름을 왼손 끝으로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오른손의 마비를 비웃듯, 왼손의 손가락들이 미세하게 꿈틀거리며 힘을 되찾았다.


스윽.


한신은 침상 옆 바닥에 힘없이 놓여 있던 부러진 철검, 칠살검(七殺劍)을 향해 왼손을 뻗었다.


백령과 오 의원이 숨을 죽인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한신의 피 묻은 왼손가락들이 칠살검의 거칠고 무거운 묵철 자루를 굳건히 움켜쥐었다. 손바닥의 찢어진 동상 상처에서 붉은 피가 다시 배어 나와 검은 묵철 자루를 벌겋게 물들였지만, 소년은 단 한 번의 신음도 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두 눈은 용광로 속에서 막 꺼낸 신검의 날끝처럼 차갑고도 예리한 안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오른손이 죽었다면, 왼손으로 찌르면 된다.


처음부터 다시, 수만 번을 더 내지르면 될 일이었다.


한신은 왼손으로 칠살검의 자루를 으스러질 듯 움켜쥐며, 자신을 내려다보는 오 의원을 향해 고개를 들어 차가운 침묵의 눈빛을 건넸다. 그 눈빛은 검을 놓으라는 명의의 경고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불굴의 선언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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