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를 깎는 반격
어둠을 가르고 날아오는 한빙침(寒冰針)의 차가운 기운이 가슴께에 닿기 직전, 육한신은 품속의 묵철 호심경이 주는 단단한 감각을 느끼며 몸을 앞으로 던졌다.
파공음조차 없었다. 사천당가의 독문 암기 중에서도 가장 음험하다는 한빙침은 공기를 찢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오직 살을 에는 듯한 극음(極陰)의 냉기만이 벼락처럼 허공을 관통할 뿐이었다. 시각이 차단된 흑풍 얼음동굴의 어둠 속에서, 한신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피부를 스치는 미세한 기류의 변화를 읽는 바람 읽기 수련법(風讀法)뿐이었다.
‘세 발……!’
한신은 직감했다. 세 갈래의 차가운 실바람이 그의 심장과 폐, 그리고 목울대를 정조준하고 날아들고 있었다. 오른손은 백령의 은침 시술로 인해 감각이 완전히 죽어 늘어져 있었고, 왼손에 쥔 대장장이 곽씨의 목검으로는 그 보이지 않는 암기를 전부 쳐낼 수 없었다.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왼쪽 어깨는 이미 암벽에 부딪쳐 뼈가 어긋날 듯한 극심한 타박상을 입은 상태였고, 미끄러운 만년빙 바닥은 빠른 신법을 허용하지 않았다.
한신은 이를 악물고 상체를 비틀어 가슴을 앞으로 내밀었다. 피할 수 없다면, 가장 단단한 곳으로 받아낸다!
깡! 깡! 콰앙!
둔탁하고도 날카로운 금속음이 동굴 내벽을 세차게 흔들었다. 조표의 정예 호위무사 독고령과의 사투에서 이미 심하게 찌그러지고 균열이 갔던 가슴 장포 안쪽의 묵철 호심경이, 당목이 날린 한빙침 세 발을 정면에서 받아냈다. 무쇠보다 단단한 묵철의 단면이 얼음 침의 충격을 튕겨내며 불꽃을 일으켰다.
그러나 충격은 고스란히 한신의 가슴뼈로 전달되었다. 이미 금이 가 있던 늑골이 비명을 지르며 으스러지는 듯한 격통이 밀려왔다. 폐부가 뒤틀리며 목구멍으로 뜨거운 핏물이 울컥 솟구쳤다. 한신은 입술을 깨물며 핏물을 강제로 삼켰지만, 입가로 흘러내리는 검붉은 피는 막을 수 없었다.
“쿠흑……!”
“흐흐흐, 호심경을 차고 있었군. 하지만 그 낡은 쇠붙이가 언제까지 네놈의 목숨을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으냐?”
어둠 속에서 당목의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에는 승리를 확신하는 오만함이 가득했다.
동시에, 한신의 오른손끝에서부터 기분 나쁜 한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당목의 사냥개들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어깨에 스쳤던 미세한 상처를 통해 한독(寒毒)이 침투한 것이었다. 백령이 은침으로 심장 경맥을 봉인해 두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온몸의 피가 얼어붙어 즉사했을 터였다. 하지만 은침의 효력도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오른손가락 끝마디부터 검푸르게 변하며 괴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손끝의 뼈가 얼어 터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전신을 엄습했다.
정신이 흐려지고 무릎이 꺾이려 했다. 이대로 주저앉으면 사부 육남천의 유해 항아리도, 오악동맹의 위선을 밝힐 오악비망록도 모두 저 비열한 살수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
‘안 된다.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다.’
한신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차가운 살기를 다스렸다. 뇌음사의 눈먼 승려에게 배웠던 마음 응축법을 발동하며, 요동치는 감정을 얼음처럼 차갑게 식혔. 그리고 전신의 내력을 억지로 쥐어짜 내어 뇌의 경혈을 자극했다.
‘통증 차단(痛症遮斷)……!’
경맥이 파열되고 뼈가 바스러질 때 발생하는 모든 통증 신호를 뇌에서 강제로 끊어버리는 잔회검파의 비술이었다. 비무가 끝난 뒤 전신 마비나 경맥 폐색이라는 참혹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자학적인 기술이었지만, 지금의 한신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순간, 한신의 전신을 지배하던 지옥 같은 고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오른손이 괴사해 가는 끔찍한 감각도, 왼쪽 어깨의 찢어지는 듯한 타박상의 격통도 모두 무형의 장막 뒤로 가라앉았다. 육체는 여전히 파괴되어 가고 있었지만, 머릿속만큼은 용광로 속에서 벼려진 신검의 날끝처럼 극도로 맑고 예리해졌다.
툭.
한신의 왼손에서 힘이 빠지며 피 묻은 대나무 목검이 빙판 바닥으로 떨어졌다. 당목의 비수와 부딪치며 이미 균열이 가 있던 목검은 쓸모가 없어졌다. 무쇠 칠살검은 오른손의 마비로 쥘 수 없었고, 왼손에는 아무런 무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
“무기를 버렸구나. 드디어 제 처지를 깨달은 모양이군.”
당목이 비웃으며 어둠 속에서 성큼 걸어 나왔다. 그의 발걸음 소리가 빙판을 밟을 때마다 삭막한 울림을 남겼다. 당목은 한신이 완전히 무력화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독이 시퍼렇게 묻은 그의 비수가 한신의 목울대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한신은 묵묵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바람 읽기 감각이 동굴 천장에 매달린 수많은 날카로운 고드름들의 위치를 머릿속에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그 고드름들은 단순한 얼음이 아니었다. 석탄곡의 미세한 묵철 먼지와 광물 가루가 오랜 세월 동안 냉기와 함께 얼어붙어, 웬만한 철검 못지않은 경도와 무게를 지닌 천연의 암기들이었다.
타앗!
한신은 왼발 끝으로 빙판을 강하게 차며 몸을 솟구쳤다. 왼쪽 어깨의 부상으로 신법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통증 차단 덕분에 몸은 거침없이 움직였다. 허공으로 솟구친 한신의 왼손이 천장에 매달려 있던 가장 길고 날카로운 고드름 하나를 움켜쥐었다.
콰득!
영하의 냉기를 품은 고드름을 쥐는 순간, 왼손바닥의 살가죽이 얼음 표면에 달라붙으며 순식간에 찢어졌다. 차가운 얼음이 살을 파고들어 뼈를 얼려버릴 듯한 자극이 밀려왔지만, 한신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왼손가락 마디마디가 얼어붙으며 고드름과 하나가 되는 기묘한 일체감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흑풍 얼음동굴 고드름 검(黑風 冰穴 冰劍).
묵철 먼지가 섞여 검푸른 빛을 띠는, 한 자루의 날카로운 대검과도 같은 얼음 기둥이 한신의 왼손에 쥐어졌다.
“무슨 짓을……!”
당목은 한신이 허공에서 고드름을 꺾어 쥐고 내려오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살수로서의 본능이 위험을 알렸다. 당목은 급히 신형을 뒤로 날리며 소매 속에서 남은 한빙침들을 사방으로 뿌려 방어막을 형성하려 했다.
하지만 한신이 착지하는 순간, 그의 몸은 이미 역방향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오른손의 마비를 극복하기 위해 왼손으로 검을 잡고 몸의 회전축을 반대로 사용하는 좌수역검(左手逆劍)의 기리였다. 발끝에서 시작된 힘이 척추를 타고 반대로 회전하며 왼손 끝으로 폭발하듯 몰려들었다.
스으으윽.
동굴 내부의 모든 소리가 일순간에 지워졌다.
바람 소리도,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도, 심지어 당목의 숨소리마저 사라진 완벽한 진공의 세계. 한신이 내지른 고드름 검 끝이 나아가는 궤적 주변의 공기 저항이 순간적으로 소멸했다. 파공음조차 내지 않고 소리보다 빠르게 적을 꿰뚫는 잔회검파 최후의 절기, 무성 찌르기(無聲刺)였다.
당목은 눈앞의 공간이 기묘하게 왜곡되는 것을 느꼈을 뿐, 검이 다가오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 그가 방어벽을 치기도 전에, 검푸른 고드름 검 끝이 공기를 가르고 그의 눈앞에 도달해 있었다.
푸학!
둔탁하고도 서늘한 파공음이 뒤늦게 동굴 안을 메웠다.
단단한 묵철 고드름 검 끝이 당목의 가슴 가죽 보호구를 종이장처럼 찢어발기고, 그의 흉골을 관통하여 심장 뒷벽까지 단숨에 꿰뚫었다. 당목의 몸이 그 자리에서 굳어졌다. 그의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으로 크게 벌어졌다.
“꺼, 검이…… 소리가…… 없…….”
당목의 목구멍에서 검붉은 독혈이 울컥 쏟아져 나왔다. 그가 쥔 독 비수가 힘없이 빙판 바닥으로 떨어지며 쨍그랑하는 맑은 소리를 냈다. 한신은 왼손에 쥔 고드름 검을 움켜쥔 채, 차가운 눈빛으로 당목을 내려다보았다.
당목의 체온이 차가운 고드름 검을 타고 전해지며 얼음이 미세하게 녹아내렸다. 뚝, 뚝. 적의 심장을 관통한 고드름 끝에서 붉은 피와 녹아내린 얼음물이 섞여 바닥의 만년빙 위로 떨어졌다.
한신은 천천히 고드름 검을 뽑아냈다. 당목의 몸이 힘없이 빙판 위로 쓰러지며 거친 호흡을 몰아쉬었다. 그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피가 얼음 바닥을 더럽혔다.
“범재의…… 집념이…… 이 정도일 줄은…….”
당목은 숨이 끊어지기 직전,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한신의 굳어버린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술이 피에 젖어 기괴하게 뒤틀렸다.
“하지만…… 좋아할 것 없다……. 네놈의 오른손은…… 이미 끝났다…….”
한신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무슨 소리냐.”
“크흑, 쿨럭! ……오악동맹의 맹주, 엽고운 장문인의 수양딸…… 엽청진(葉淸眞) 소저께서…… 이미 사천당가에 의뢰를 내리셨다……. 잔회검파의 생존자가 검을 쥘 수 없도록…… 그 오른손을 영구히 쓰지 못하는 폐인으로 만들라고 말이다……. 내가 실패했어도…… 다음 자객들이…… 네놈의 목을…….”
당목은 말을 다 마치지 못한 채, 고개를 꺾으며 숨을 거두었다. 그의 두 눈은 여전히 허공을 응시한 채 차갑게 굳어갔다.
동굴 안에는 다시 뼛속까지 시려 오는 침묵이 찾아왔다. 한신은 숨을 죽인 채 쓰러진 당목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엽청진…….’
처음으로 듣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 이름 뒤에 숨겨진 거대한 의지는 명확했다. 오악동맹의 맹주 엽고운과 그의 가문이 이미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으며, 자신을 완벽히 말살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는 비틀린 진실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복수의 표적이 일개 분타주 조표를 넘어, 동맹의 가장 깊은 막후로 격상되고 있었다.
스으으윽.
통증 차단 비술의 효력이 서서히 꺼져가기 시작했다.
뇌를 짓누르던 무형의 장막이 걷히자, 억눌려 있던 극단적인 고통이 폭풍처럼 전신을 덮쳐왔다. 괴사해 가는 오른손목의 타는 듯한 통증, 부러진 가슴 갈비뼈의 격통, 그리고 고드름을 움켜쥐었던 왼손바닥의 찢어진 살가죽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으그극……!”
한신은 무릎을 꿇으며 바닥을 짚었다. 차가운 만년빙의 냉기가 상처 입은 왼손바닥으로 스며들었지만, 오른손의 통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의 오른손은 이미 감각을 완전히 잃고 검푸른 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백령은 청강검을 거두고 한신의 곁으로 다가와 그의 어깨를 짚었다. 그녀의 차가운 눈동자에 담긴 안타까움과 경악은 그 어느 때보다 깊었다.
“한신…… 네 오른손 경맥이…….”
한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이빨을 드러내며 신음을 참아낼 뿐이었다. 동굴 밖에서는 여전히 매서운 밤바람이 울부짖고 있었고, 사부의 유해 항아리는 차가운 얼음 바위 위에서 고요히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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