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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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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풍 얼음동굴의 어둠은 단순한 빛의 부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피부를 서서히 얼려가는 냉기와 습기, 그리고 뼛속까지 파고드는 침묵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하나의 질긴 장막이었다.


동굴 천장에 매달린 수백 개의 고드름 끝에서 차가운 물방울이 떨어져 바닥의 만년빙에 부딪힐 때마다, 낮고 날카로운 파공음이 동굴 안을 메웠다. 뚝, 뚝. 일정한 간격으로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마치 죽음을 재촉하는 가쁜 맥박 소리 같았다.


그 지옥 같은 어둠 속에서, 육한신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의 온 신경은 오직 내면으로 침잠해 있었다.


‘일직선. 발끝에서 시작된 힘이 허리를 거쳐 어깨로, 그리고 검 끝으로 흘러간다.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적의 심장부를 정확히 관통해야 한다.’


한신은 눈을 감은 채 머릿속으로 수만 번의 비무를 치르고 있었다. 사부 육남천의 유해 항아리 바닥에서 발견한 미완의 구결과, 뇌음사의 눈먼 승려에게 배웠던 마음 응축법이 그의 뇌리 속에서 끊임없이 칠살검의 궤적을 그려내고 있었다. 심상 비무법(心象 比武法)이었다.


육체는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할지언정, 그의 마음속 검은 이미 수만 번의 허공을 뚫고 적의 목울대를 관통하고 있었다. 오른손목의 관절이 기형적으로 뒤틀려 비명을 지를 때마다, 한신은 머릿속으로 그 통증의 흐름을 강제로 비틀어 검 끝의 회전력으로 치환했다.


그러나 현실의 육체는 참혹했다. 그의 오른팔은 이미 죽은 나무등걸처럼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백령이 놓아준 은빛 은침들이 그의 오른쪽 어깨 견정혈부터 곡지, 외관, 신문혈까지 깊숙이 박혀 한독(寒毒)의 역류를 막고 있었지만, 그 대가로 오른팔의 모든 감각과 움직임이 완벽히 봉인된 상태였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의 타박상 흉터가 욱신거렸고, 동굴의 혹독한 냉기가 가느다란 마의 틈새로 스며들어 전신의 체온을 사정없이 앗아갔다. 한신의 옆, 평평한 얼음 바위 위에는 사부의 흙빛 유해 항아리와 피 묻은 가죽 장부인 오악비망록이 고요히 놓여 있었다. 그것들이야말로 한신이 이 얼어붙은 사지에서 숨을 쉬어야 하는 유일한 이유였다.


“……온다.”


한신의 옆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백령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얼음 동굴의 냉기보다 더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남장 차림의 푸른 장포 아래로, 백령의 손이 청강검의 자루를 단단히 쥐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녀의 정순한 도가 내력인 유운태을심법의 기운이 미세하게 요동치며 주변의 냉기를 밀어내고 있었다.


그르르르…….


동굴 입구 쪽,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기괴하고 젖은 숨소리가 흘러들어왔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발톱이 얼어붙은 빙판을 긁는 삭막한 마찰음이 고막을 긁었다.


사천당가의 방계 독무사 당목이 부리는 포이(捕獸) 사냥개들이었다. 평범한 사냥개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지독한 사독(蛇毒)과 부패한 인육을 먹여 길러내어, 몸집이 송아지만 하고 눈빛이 핏빛으로 일렁이는 괴수들이었다. 세 마리의 사냥개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동굴 내부의 피 냄새를 맡고 어둠 속에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수스스.


사냥개들의 거친 숨소리 뒤편으로, 옷자락이 가볍게 쓸리는 미세한 파공음이 들렸다. 기척을 극한으로 죽인 발걸음. 당목 본체 역시 사냥개들의 엄호 아래 동굴 내부로 은밀히 침투하고 있었다.


한신은 본능적으로 바닥에 놓인 부러진 칠살검을 향해 오른손을 뻗으려 했다. 그러나 어깨부터 손가락 끝까지 박힌 백령의 은침이 그의 움직임을 강제로 가로막았다. 억지로 힘을 주려 하자, 뼛속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격통이 밀려오며 허공에서 오른팔이 허망하게 가라앉았다.


오른손으로는 검을 쥘 수 없다.


찰나의 순간, 한신의 왼손이 움직였다. 그의 왼손이 얼음 바위 옆에 기댄 ‘대장장이 곽씨의 목검’을 움켜쥐었다. 단단한 백년 대추나무를 깎아 무게 중심을 맞춘 무거운 목검. 철검보다 가벼웠지만, 오른손이 망가진 한신에게는 이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나뭇가지였다.


“크르릉!”


가장 거구인 사냥개 한 마리가 한신의 피 냄새를 완전히 포착하고 빙판을 박차며 날아올랐다. 어둠 속에서 쩍 벌어진 아가리 사이로 썩은 고기 냄새와 독기가 가득한 침이 사방으로 튀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암흑이었지만, 한신의 감각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깨어나 있었다. 매일 밤 석탄곡의 밤바람 속에서 나뭇잎의 흔들림을 피부로 느끼며 연마했던 바람 읽기 수련법(風讀法)이 그의 전신 경맥을 자극했다.


스아아악.


공기가 갈라지는 궤적, 사냥개의 몸통이 허공의 바람을 밀어내는 미세한 기류의 변화가 한신의 피부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한신은 몸을 낮추며 오른쪽으로 빠르게 굴렀.


쿵!


사냥개의 거대한 앞발이 한신이 방금 전까지 앉아 있던 얼음 바닥을 강타하며 얼음 조각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한신은 빗자루질 보법의 기리를 왼발 끝에 실어 사냥개의 사각지대로 침투하려 했으나, 쇠약해진 체력과 뒤틀린 신체 균역이 발목을 잡았다.


콰당!


피하는 과정에서 중심을 잃은 한신의 왼쪽 어깨가 동굴 벽면에 솟아오른 날카로운 암벽 바위에 강하게 부딪혔다. 우두둑하는 불길한 소리와 함께 왼쪽 어깨에 찢어지는 듯한 타박상의 고통이 밀려왔다. 가슴 깊은 곳의 타박상 내상까지 요동치며 입안 가득 비린 핏물이 고였다. 체력이 급격히 저하되며 숨이 가빠왔다.


“크아앙!”


두 번째 사냥개가 넘어진 한신의 목덜미를 노리고 어둠 속에서 이빨을 드러냈다.


한신은 왼쪽 어깨의 통증을 억누르며, 왼손에 쥔 대추나무 목검을 사선으로 비틀어 쥐었다. 전신의 무게를 발끝부터 허리로 전달하는 군병 창술의 원리를 왼팔에 억지로 대입했다.


쉬익!


투박한 목검 끝이 어둠을 가르며 날카로운 직선 궤적을 그렸다. 바람 읽기 감각이 가리킨 사냥개의 목울대 정중앙, 가장 부드러운 가죽 틈새로 목검 끝이 정확히 파고들었다.


퍽!


무거운 타격음과 함께 사냥개의 단단한 목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 퍼졌다. 괴수는 단 한 번의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바닥으로 굴러 떨어져 경련했다. 목검의 투박한 끝이 개의 목덜미를 완전히 관통해 버린 것이다.


“조잡한 목검 한 자루로 내 독견(毒犬)의 목뼈를 부수다니. 과연 조표의 분타를 초토화한 쥐새끼답군.”


어둠 속에서 뱀이 기어가는 듯한 낮고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목이었다.


그 목소리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한신의 등 뒤편 공기가 미세하게 수축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천당가 살수 특유의 암습 보법이었다. 당목은 이미 소리 없이 한신의 사각지대로 파고들어, 독이 시퍼렇게 묻은 비수를 치켜들고 있었다.


스스슥.


한신의 귀에 당목의 어깨 근육이 미세하게 수축하는 소리가 포착되었다. 바람의 흐름이 반대로 꺾이는 찰나였다. 한신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스아악!


차가운 쇠붙이가 한신의 귀밑머리를 한 끗 차이로 스쳐 지나갔다. 비수에 발라진 독기 때문에 뺨의 살이 타들어 가는 듯한 기분 나쁜 열기가 느껴졌다. 조금만 늦었어도 목덜미가 단번에 베여 나갔을 치명적인 암습이었다.


당목은 자신의 일격이 피해지자 미세하게 호흡을 흐트러뜨렸다. 한신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타앗!


한신은 왼손에 쥔 목검의 자루를 거꾸로 쥐고, 당목이 쥔 비수의 단면을 향해 목검 끝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깡!


나무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치고는 기묘하게 웅장한 진동이 동굴 내벽을 흔들었다. 한신은 목검 끝을 통해 당목의 비수 손잡이로 미세한 내경의 진동을 유도했다. 칠살검의 공명 원리를 목검에 대입한 변칙적인 반격이었다.


“으윽!”


당목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비수를 쥔 그의 오른팔 전체가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 부르르 떨리며 비수의 궤적이 크게 흔들렸다. 당목은 한신의 기묘한 반격 기량에 경악하며 신형을 뒤로 쾌속하게 날렸다. 어둠 속으로 그의 신형이 다시 안개처럼 녹아들었다.


한신은 목검을 쥔 왼손을 바르르 떨었다. 억지로 왼손 찌르기를 전개한 탓에, 척추의 중심축이 틀어지며 등 뒤로 타는 듯한 통증이 가해졌다. 게다가 은침으로 묶어둔 오른손목 관절에서도 미세한 기혈의 요동이 시작되고 있었다.


당목의 사냥개 한 마리를 처단하고 당목에게 타격을 입혔으나, 적의 본체는 여전히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인 채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폐쇄적인 동굴 내부의 공기가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건방진 놈. 사지가 멀쩡해도 내 상대가 되지 못했을 범재가, 한쪽 팔이 썩어가는 상태에서 목숨을 구걸하는 꼴이라니.”


어둠 속에서 당목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


이번에는 그의 목소리가 한 곳이 아닌, 동굴 사방의 벽면에 반사되어 흘러나왔다. 당목이 소매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드는 미세한 찰각 소리가 공기를 흔들었다. 바람의 흐름이 기묘하게 왜곡되며, 차가운 쇠 냄새가 동굴 입구 쪽에서부터 한신의 코끝을 찔러왔다.


당목의 소매 끝에서 바람 소리조차 나지 않는 차가운 한철제 독침, 한빙침(寒冰針)이 한신의 심장을 겨냥해 번개처럼 쏘아 올려졌다.


피할 수 없는 어둠 속의 습격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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