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피신처
가시덤불을 스치는 사냥개들의 가쁜 숨소리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백령은 숨을 죽인 채 육한신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숲의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항산파 순찰대의 횃불 불빛이 가시덤불 틈새로 붉은 실선처럼 번뜩였다.
한신의 의식은 한계에 달해 있었다. 독고령과의 사투에서 오른손목의 관절을 강제로 뒤틀어 일격을 날린 대가는 끔찍했다. 삼베 붕대 너머로 흘러나온 피가 칠살검의 검자루를 적시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실혈과 내상으로 인해 그의 눈앞이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흐려지기 시작한 그때, 머리 위쪽의 바위 틈새에서 나지막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새의 울음소리를 흉내 낸, 기묘한 고주파의 신호. 석탄곡 광산 소년 철이의 대나무 피리 소리였다.
“이쪽이에요, 아신 형! 빨리요!”
가시덤불 뒤편, 사람 한 명이 겨우 기어 들어갈 수 있는 좁은 암벽 바위 틈새에서 철이의 까맣게 그을린 얼굴이 쑥 튀어나왔다. 철이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날렵한 몸놀림으로 가시덤불을 헤치며 한신과 백령에게 손짓했다.
백령은 주저하지 않고 한신의 왼팔을 자신의 어깨에 걸머쥐었다. 한신은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왼팔로 사부의 유해 항아리를 가슴팍에 필사적으로 끌어안았다. 그 몸부림 속에서도 항아리가 바위에 부딪치지 않도록 온몸을 움츠리는 소년의 집념에, 백령은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철이의 인도를 따라 그들이 기어 들어간 통로는 석탄곡 외곽의 험준한 절벽으로 이어져 있었다. 발밑은 천 길 낭떠러지였고, 계곡 사이로 불어오는 밤바람은 살을 에는 듯 차가웠다. 절벽 끝에는 겨우 통나무 하나를 걸쳐놓은 듯한 외나무다리가 얼어붙은 채 매달려 있었다. 일반인이라면 발을 딛는 것조차 불가능한 사지(死地)였다.
“항산파 놈들은 이 다리를 몰라요. 너무 위험해서 아무도 안 오거든요. 이 다리만 건너면 흑풍 얼음동굴이에요!”
철이가 먼저 날렵하게 다리를 건너가 저편 절벽 틈새를 가리켰다. 백령은 청강검의 자루를 단단히 쥐고, 의식을 잃어가는 한신의 몸을 지탱하며 얼어붙은 외나무다리를 조심스럽게 건넜다. 뒤편 숲속에서 군견들의 사나운 짖음과 독고령의 광기 어린 노호성이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그들은 마침내 절벽 틈새에 숨겨진 차가운 동굴 내부로 몸을 밀어 넣었다.
“저는 내려가서 놈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게요. 아신 형을 부탁해요, 누나.”
철이는 짧게 속삭인 뒤, 다시 어둠 속으로 연기처럼 사라졌다. 열두 살 소년의 눈빛에는 자신이 경배하는 ‘아신 형’을 반드시 살리겠다는 단단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동굴 안은 암흑 그 자체였다. 석탄곡의 숨 막히는 유황 연기와 매연은 사라지고, 오직 뼛속까지 시려 오는 고요한 냉기만이 가득했다. 동굴 천장에는 수백 년 동안 얼어붙은 날카로운 고드름들이 기괴한 짐승의 이빨처럼 매달려 있었고, 바닥은 차가운 만년빙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곳이 바로 석탄곡 뒤편 벼랑 끝에 숨겨진 금지 구역, 흑풍 얼음동굴이었다.
“하아…… 하아…….”
한신은 차가운 바닥에 쓰러지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입김이 하얗게 얼어붙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영하의 혹독한 냉기가 동굴 안을 채우고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가혹한 한기는 한신의 뒤틀린 오른손목의 타오르는 듯한 부종과 통증을 강제로 가라앉혀 주었다. 마치 불타는 화로에 차가운 얼음물을 끼얹은 듯, 욱신거리던 격통이 서서히 마비감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한신의 신체 온도는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실혈과 내상으로 내기가 바닥난 상태에서 이 혹독한 냉기를 버티는 것은 또 다른 자멸이었다. 한신은 떨리는 왼손으로 품속에서 사부의 유해 항아리를 꺼내, 평평한 얼음 바위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 품속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피 묻은 가죽 장부, 오악비망록을 나란히 놓았다.
백령은 묵묵히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한신의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차가운 눈동자가 한신의 오른손으로 향했다.
“손을 보여봐.”
한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정파의 고결한 천재이자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온 여인에게, 뼈가 뒤틀리고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추한 상처를 보여주는 것은 멸문당한 문파의 마지막 생존자로서 지키고 싶은 최소한의 자존심을 짓밟는 일이었다.
“고집 피우지 마. 이대로 두면 네 오른손 경맥은 완전히 죽어버려. 평생 검을 쥐기는커녕 곡괭이질도 못 하는 불구자가 되고 싶어?”
백령의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숨길 수 없는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거친 몸짓으로 한신의 오른손목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가죽 끈과 함께 칭칭 감겨 있던 삼베 붕대를 조심스럽게 풀어내기 시작했다.
삼베 붕대가 한 겹씩 벗겨질 때마다, 백령의 아름다운 미간이 파르르 떨렸다.
그곳에 드러난 소년의 오른손은 인간의 것이라 믿기 힘들 정도로 처참했다. 손가락 뼈마디는 비정상적으로 굵어져 기형적으로 뒤틀려 있었고, 손목 관절은 붉고 푸르게 부풀어 올라 터지기 직전이었다. 내공의 지지 없이 하루 천 번, 수만 번의 찌르기 반동을 오직 뼈와 근육으로만 받아낸 결과였다. 게다가 독고령과의 사투에서 억지로 내력을 쥐어짜 찌르기를 날린 탓에, 미세한 경맥들이 갈기갈기 찢어져 검붉은 피가 피부 밑으로 고여 있었다. 경맥 파열과 독성의 침투가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명문 세가인 백가장에서 자라나 천하의 기재라 불리며 정순한 무공만을 보아온 백령에게, 이 상처는 기괴한 충격이었다.
‘대체 어떤 삶을 살았기에…… 단 하나의 초식을 위해 이토록 자신을 파괴한단 말인가.’
백령은 떨리는 손끝으로 한신의 기형적인 손가락 마디를 가만히 만졌다. 거칠고 딱딱한 굳은살, 어긋난 뼈의 감촉이 그녀의 손가락 끝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것은 천재들에게 짓밟히고 멸시당한 범재가 흘린 피와 땀의 물리적인 증거였다. 한신의 처절한 집념이 그녀의 가슴 깊은 곳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바보 같은 놈.”
백령은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품속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가늘고 긴 침통을 꺼냈다. 백가장 비전의 한철로 제련된 의료 보조 도구, 백령의 은침(白玲 隱針)이었다.
“참아. 뼛속까지 얼어붙는 것 같겠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한독과 염증이 심장 경맥으로 역류해 널 죽일 거야.”
백령은 한신의 거친 마의 소매를 걷어올리고, 얼음처럼 차가운 은침 한 자루를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그녀의 손끝에서 정순한 도가 내력인 유운태을심법의 기운이 은침으로 흘러들었다.
스윽.
첫 번째 은침이 한신의 오른쪽 어깨 아래 견정혈(肩井穴)을 깊숙이 꿰뚫었다.
“으윽……!”
한신의 전신이 단번에 뻣뻣하게 굳어졌다. 입술 사이로 거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단순한 통증이 아니었다. 얼음 송곳이 어깨 뼈를 뚫고 들어가 골수 속에서 얼어붙는 듯한, 극도의 차가운 격통이었다. 은침이 기혈의 흐름을 강제로 차단하며 경맥 속에 고여 있던 독성과 한기를 봉인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옥 같은 고통이었다.
“움직이지 마. 혈도가 어긋나면 경맥이 아주 끊어져 버려.”
백령은 흔들림 없는 손길로 두 번째, 세 번째 은침을 연이어 한신의 곡지혈(曲池穴)과 외관혈(外關穴)에 찔러 넣었다. 은침이 들어갈 때마다 한신의 뒤틀린 오른팔 근육이 미세하게 경련하며 검붉은 피를 한 방울씩 뿜어냈다. 소년은 이를 악물었다. 입술이 터져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는 더 이상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오직 사부의 유해 항아리를 바라보며 그 지옥 같은 통증을 묵묵히 견뎌냈다.
백령은 침을 놓으며 한신의 눈동자를 똑바로 주시했다. 고통으로 인해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면서도, 그 안의 서늘한 살기와 집념만은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천재들의 비웃음 속에서도 찌르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 외고집이, 백령의 마음속에 굳건한 신뢰의 싹을 틔우고 있었다. 이 소년이라면, 정파라는 이름 뒤에 숨은 거대한 위선자들의 가슴을 정말로 꿰뚫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묘한 확신이 들었다.
마지막 은침이 손목의 신문혈(神門穴)에 깊숙이 박히는 순간, 한신의 상체가 크게 꺾였다가 이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후우…… 후우…….”
한신의 호흡이 서서히 안정을 찾아갔다. 오른팔 전체가 완전히 마비되어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심장을 옥죄던 비린 기혈의 역류는 멈춘 상태였다. 백령의 은침이 통증과 독성을 오른팔 내에 일시적으로 완벽히 가두어 둔 덕분이었다.
백령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한신의 옆에 앉아 차가운 얼음벽에 몸을 기대었다. 그녀의 시선이 동굴 밖, 붉은 횃불 불빛이 어지럽게 일렁이는 석탄곡의 밤하늘로 향했다.
“조표가 미쳐 날뛰고 있어. 분타의 비밀 금고가 털린 데다 독고령의 눈까지 멀었으니, 오악동맹 본산에 이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 널 죽이려 하겠지.”
백령의 목소리가 한풍보다 차갑게 가라앉았다. 한신은 묵묵히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하지만 조표가 움직이는 건 군사들뿐만이 아니야. 방금 주막을 빠져나오기 전에 가문의 연락망을 통해 들은 정보가 있어.”
백령이 고개를 돌려 한신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차가운 눈동자에 전례 없는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조표가 네놈을 확실하게 제거하기 위해, 사천당가(四川唐門) 출신의 방계 독무사인 당목(唐木)을 석탄곡으로 불러들였다고 해. 이미 그자는 한독(寒毒)을 품고 이 근방에 도착했어.”
당목.
사천당가의 비열한 독수이자, 어둠 속에서 숨죽여 사냥감의 숨통을 끊어놓는 음산한 살수. 그 이름이 흑풍 얼음동굴 내부의 차가운 정적 속으로 무겁게 떨어졌다. 한신은 왼손으로 바닥의 차가운 얼음을 움켜쥐었다. 새로운 적의 그림자가 그들의 피신처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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