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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포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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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통로의 돌계단 위쪽에서 수십 명의 발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쇠 가죽 장화가 거칠게 바닥을 딛는 소리, 무기가 서로 부딪치며 내는 날카로운 금속음이 어두운 터널을 따라 메아리쳤다.


육한신은 왼팔로 사부 육남천의 유해 항아리를 터질 듯이 감싸 안았다. 진흙으로 구워진 거친 항아리의 표면이 소년의 옆구리를 단단히 압박했다. 품속 장포 안쪽에는 방금 지하 금고에서 탈취한 오악비망록이 묵직한 가죽의 질감으로 심장 박동을 짓누르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오른손이었다. 독고령의 왼쪽 눈을 칠살검으로 관통한 대가는 참혹했다. 가죽 끈으로 억지로 검자루에 동여매 놓았던 그의 오른손목은 뒤틀린 뼈마디의 격통으로 인해 이미 감각이 완전히 죽어 있었다. 손가락 끝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신경이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어깨 경맥을 타고 전신으로 뻗어 나갔고, 가슴팍의 짓눌린 타박상에서는 숨을 쉴 때마다 비린 피 냄새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


‘여기서 막히면 사부님의 유해도, 문파의 원한도 모두 이 어둠 속에 묻힌다.’


한신은 차갑게 살기를 가라앉혔다. 계단 위쪽에서 횃불의 붉은 그림자가 어지럽게 흔들리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선두에 선 항산파 무사들의 살기 어린 외침이 터져 나왔다.


“지하에 쥐새끼가 들었다! 금고실로 내려가 독고 나리를 구해라!”


한신은 몸을 낮추었다. 오른손의 칠살검을 제대로 쥘 수 없었기에, 그는 빗자루질 보법(소지보)의 기리를 역용하기로 했다. 적들의 시선이 어두운 계단 정중앙에 쏠리는 순간, 그는 몸을 비틀어 계단 옆벽의 어두운 음영 속으로 소리 없이 파고들었다.


쉬익!


첫 번째 무사가 횃불을 치켜들고 계단을 내려오는 찰나, 한신은 낮게 쓸어내리는 발끝의 신법으로 그의 사각지대를 파고들었다. 왼팔로 항아리를 안은 채, 오직 몸의 오른쪽 면만을 전방으로 내세운 기형적인 자세였다. 하지만 그 기형적인 자세에서 뻗어 나온 칠살검의 뭉툭한 날끝은 자비가 없었다.


퍽!


묵직한 묵철검의 단면이 무사의 턱관절을 강타했다. 뼈가 바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무사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뒤로 고꾸라졌다. 한신은 그가 떨어뜨린 횃불이 바닥에 닿기 전, 오른발 끝으로 쳐내어 계단 아래의 독고령이 쓰러진 방향으로 날려 보냈다. 불길이 허공을 가르며 시야를 어지럽히는 사이, 한신은 연기처럼 무사들의 어깨 사이를 헤집고 계단 위로 솟구쳤다.


“막아라! 위쪽이다!”


뒤늦게 눈치챈 무사들이 도검을 휘둘렀으나, 좁은 돌계단 통로에서 그들의 화려한 항산파 검로는 서로의 진형을 방해할 뿐이었다. 한신은 칠살검의 두꺼운 단면으로 적들의 칼날을 무겁게 튕겨내며 계단 끝 조표의 침소 문을 박차고 나갔다.


콰앙!


침소를 벗어나 분타 전각의 마당으로 나선 순간, 한신의 숨이 턱 막혔다.


석탄곡의 밤하늘은 이미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전각 마당뿐만 아니라, 석탄곡 광산촌 전체를 에워싼 험준한 바위 절벽 위로 수백 개의 횃불이 줄을 지어 타오르고 있었다. 조표의 지시로 석탄곡 전역에 붉은 포위망이 쳐진 것이다. 밤바람을 타고 징소리와 군견들의 사나운 짖음이 계곡 전체를 뒤흔들었다.


“침입자를 잡아라! 조표 분타주님의 명이다! 쥐새끼 한 마리도 석탄곡 밖으로 살려 보내지 마라!”


사방에서 항산파 순찰조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한신은 이가 부러질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가슴의 타박상과 오른손목의 염증이 한꺼번에 요동치며 눈앞이 순간적으로 흐려졌다. 칠살검을 쥔 오른손가락 마디마디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올라 붉은 피가 삼베 붕대 새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검을 쥐는 악력이 사라지자, 칠살검이 손끝에서 스르륵 미끄러지며 바닥으로 떨어질 뻔했다.


스스스.


한신은 급히 몸을 돌려 전각 뒤편의 험준한 바위 틈새로 몸을 숨겼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뼈가 삐걱거리는 고통이 밀려왔다. 왼팔로 안은 사부의 유해 항아리를 바위 벽에 부딪치지 않게 조심하며, 그는 차가운 바위에 몸을 밀착했다.


그때, 바위 틈새 바로 바깥쪽으로 거친 발소리와 함께 횃불의 붉은 불빛이 스며들었다. 항산파 순찰 무사 세 명이 군견을 이끌고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 부근에서 피 냄새가 난다. 샅샅이 뒤져라!”


무사 하나가 횃불을 한신이 은신한 바위 틈새 안쪽으로 들이밀었다. 불빛이 한신의 거친 회색 마의 자락을 비추기 직전이었다. 한신은 칠살검을 오른손으로 쥐고 찌르기 자세를 취하려 했으나, 오른팔의 경맥이 완전히 마비되어 손가락 뼈가 어긋나는 소리만 미세하게 날 뿐 검 끝이 허공에서 사정없이 흔들렸다. 실패였다. 힘을 주려 할수록 뒤틀린 관절에서 뼈가 깎이는 듯한 통증만 가중되었다.


바로 그 순간, 차가운 밤바람을 뚫고 한 자락의 푸른 그림자가 허공을 갈랐.


스아아악!


정교하고 화려한 검풍이 낙엽을 거칠게 쓸어 올리며 순찰조의 얼굴을 덮쳤다. 백령이었다. 그녀의 명검 청강검(靑鋼劍)이 구름처럼 부드러운 궤적을 그리며 무사들이 들고 있던 횃불 세 자루를 순식간에 베어냈다.


스스슥! 툭, 툭.


불씨가 바닥에 떨어지며 사방이 순식간에 어둠에 잠겼다. 갑작스러운 시야 차단에 항산파 무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적습이다! 횃불을…… 으악!”


백령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품속에서 미리 준비해 둔 자극적인 독초 가루를 허공에 뿌렸다. 사납게 짖어대던 군견들이 독초 가루를 들이마시고는 재채기를 해대며 후각을 상실한 채 깽깽거렸다.


“이쪽이야, 바보야! 얼른 뛰어!”


남장 차림의 백령이 한신의 왼쪽 어깨를 가볍게 낚아채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녀의 눈빛에는 한신이 보여준 처절한 집념에 대한 기묘한 경외감과 긴박함이 서려 있었다.


“으윽…….”


한신은 왼팔로 유해 항아리를 가슴에 안고, 백령의 날렵한 신법을 따라 벼랑 아래의 어두운 수풀을 향해 몸을 던졌다. 뒤편에서 눈이 먼 무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어둠 속으로 암기들을 미친 듯이 난사하는 소리가 파공음과 함께 밤공기를 찢었다.


벼랑의 거친 돌밭을 구르며 한신의 등 뒤로 가벼운 자상이 추가되었고, 오른손목의 뒤틀린 뼈마디는 비명을 지르듯 고통을 뿜어냈다. 그럼에도 한신은 품 안의 유해 항아리를 감싼 왼팔에 온 힘을 집중했다. 항아리만큼은 단 한 군데의 균열도 허용할 수 없었다.


가까스로 벼랑 아래의 어두운 가시덤불 속에 몸을 숨긴 두 사람. 그러나 안도는 찰나였다.


저 멀리 전각 위쪽에서 한쪽 눈을 잃고 복수심에 미쳐버린 독고령의 피비린내 나는 노호성이 석탄곡 전체를 흔들었다.


“그놈을 잡아라! 내 눈을 멀게 한 그 벙어리 놈의 사지를 찢어버리겠다!”


사냥개들의 거친 숨소리와 군화 소리가 도주로를 향해 다시 좁혀오기 시작했다. 한신의 등 뒤로 붉은 피가 삼베 옷을 적시며 흘러내렸고, 그 피 냄새를 맡은 군견들의 으르렁거림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심장 박동이 고막을 찢을 듯 울리는 순간, 한신의 오른손 끝에서 핏방울이 마지막 힘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극도의 피로와 마비 증세로 인해 그의 시야가 서서히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흐려지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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