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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토하는 타통(打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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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경의 지시에 따라 목패를 쥔 소백의 손끝이 요철의 기이한 나뭇결을 훑어 내리기 시작하자, 어둠 속에서 푸른 기운이 그의 손가락 끝을 타고 미세하게 흘러들었다.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낙엽촌 뒤편에 위치한 험준하고 깊은 계곡, 흑호곡(Heukho Valley)은 낮에도 해가 잘 들지 않는 음습한 곳이었으나, 깊은 밤이 되자 자욱한 안개까지 깔려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었다. 얼음 계곡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북서풍이 뺨을 스쳤지만, 설소백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흘러내렸다.


소백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암호화된 목패(Encrypted Wooden Slips)는 반쯤 그을린 자국이 선명했다. 눈먼 태경이 오직 손끝의 감각만으로 장서각의 비급을 읽기 위해 특수하게 깎아 만든 물건. 소백의 거친 손가락이 그 요철의 미세한 홈을 더듬을 때마다, 머릿속에 기이한 경맥의 지도가 입체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무림맹이 정의라 부르는 정종 무학의 운기 조식법과는 완전히 반대로 움직이는, 기괴하고도 서글픈 역천(逆天)의 길이었다.


태경은 대나무 지팡이 청풍죽(Cheongpung-juk)을 짚은 채, 미동도 없이 소백의 앞에 서 있었다. 안대 뒤에 숨겨진 그의 보이지 않는 눈은 소백을 향해 있지 않았지만, 그의 귀는 소백의 미세한 심장 박동과 혈류의 흐름을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게 잡아내고 있었다. 심음 감청술(Heartbeat Listening Technique)의 감각이 태경의 온 신경을 자극했다.


"상의를 벗거라, 소백아."


태경의 낮고 평온한 목소리가 안개 속을 갈랐다. 소백은 침을 꿀꺽 삼키며 낡은 삼베 무복을 벗어 던졌다. 가슴뼈와 척추가 왼쪽으로 기이하게 뒤틀린 소백의 앙상한 상체가 차가운 밤공기 속에 드러났다. 정상적인 무인이라면 결코 무공을 익힐 수 없다고 침을 뱉었을, 저주받은 기형의 골격이었다.


태경은 품속에서 검붉은 빛을 띠는 끈적한 액체가 담긴 작은 도자기 병을 꺼냈다. 낙엽촌의 괴짜 의원 장 노인(Old Man Jang)이 뼈를 강화하는 특수 약재와 독초를 배합해 은밀히 달여낸 외용 물약, 역근 타통수(Muscle-Reversing Liquid)였다.


"이것을 전신에 바르거라. 뒤틀린 경맥을 억지로 뒤집을 때 발생하는 근육의 파열을 막아줄 유일한 보조제다. 하지만 온몸이 불타는 듯한 고통이 따를 것이다."


소백은 망설임 없이 병을 받아 들어 검붉은 액체를 손바닥에 쏟아부었다. 그리고 자신의 뒤틀린 척추와 어깨 관절 주변에 사정없이 문질러 발랐다.


"흐읍...!"


액체가 피부에 닿는 순간, 소백의 입에서 거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단순한 통증이 아니었다. 끓는 기름을 맨살에 들이붓고 쇠 갈고리로 가죽을 긁어내리는 듯한 극심한 작열감이었다. 피부가 붉게 충혈되며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고, 소백의 전신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수축하며 부르르 떨렸다.


"단전(Dantian)을 비우고, 기운을 뒤틀린 척추 뼈 틈새로 밀어 넣어라. 네 기형의 등뼈야말로 기운을 압축했다 폭발시킬 가장 완벽한 활시위다. 두려워하지 말고 운기를 시작하거라."


태경의 엄격한 지시가 떨어지자, 소백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목패의 요철을 기억하며 숨을 들이쉬었다.


정상적인 내력의 흐름을 완전히 거슬러 올라가는 역기맥근골법(Reverse Qi-Vein Method)의 운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단전에서 시작되어야 할 기운이 거꾸로 비틀린 등뼈의 신주혈(身柱穴) 주변으로 강제로 비집고 들어갔다. 뒤틀린 뼈가 경맥을 짓누르고 있던 그 좁은 틈새로 내력이 억지로 밀려들자, 소백의 몸 안에서 기괴한 파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득, 드드득.


뼈와 뼈가 부딪치고, 굳어 있던 관절의 접합부가 억지로 벌어지는 소리였다. 소백의 얼굴이 고통으로 허옇게 질려갔다. 전신의 모공에서 검붉은 탁한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땀과 뒤섞여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아아악!"


결국 소백이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상체를 앞으로 꺾었다. 단전을 거치지 않은 내력이 비틀린 척추 사이에 갇혀 사방으로 폭주하려 하고 있었다. 이대로 기운이 엉키면 경맥이 안에서부터 폭사하여 전신 마비에 이르거나 주화입마로 즉사할 터였다. 소백의 눈동자가 흰자위를 보이며 초점을 잃어갔다.


태경의 귀에 소백의 심장 박동이 폭주하는 소리가 들렸다. 두두두두! 마치 미쳐 날뛰는 군마의 말발굽 소리 같았다. 기맥 폭주의 위기였다.


'지금 제어하지 못하면 이 아이는 죽는다.'


태경은 자신의 뇌 속 데이터베이스를 극한으로 가동했다. 장서각에서 암송했던 수백 권의 비급 중, 역근경의 변형 구결과 인체 경맥의 마찰 계수를 실시간으로 연산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타들어 가는 듯한 아찔한 통증이 습격해 왔다. 완전기억능력의 부작용인 뇌 과부하(Brain Overload)의 전조였다. 관자놀이가 깨질 듯이 아파왔지만, 태경은 이빨을 악물고 청풍죽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풍안청청(Wind Eye Clarity)의 감각이 열리며,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소백의 체내에서 요동치는 내력의 줄기들이 붉은 선으로 뇌리에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태경은 지팡이 끝으로 소백의 척추 우회 경로인 견외수혈(肩外兪穴)을 강하게 격타하려 했다. 기운을 강제로 분산시켜 폭주를 막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태경의 뇌 신경이 비명을 질렀다. 눈앞이 핑 돌며 뇌가 타버릴 듯한 극통이 그의 의식을 덮쳤다. 찰나의 순간, 지팡이 끝의 궤적이 단 1리(釐) 어긋나고 말았다.


팍!


지팡이가 소백의 왼쪽 어깨 뒤편의 엉뚱한 혈도를 타격했다.


"컥...!"


소백이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한 바가지의 검붉은 피를 토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잘못된 타격으로 인해 왼쪽 어깨 주변의 경맥이 파열되어 검은 피가 살가죽 뚫고 뿜어져 나왔다. 소백의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며 급격히 식어갔다.


"스, 스승님... 더는... 못 하겠습니다... 몸이... 찢어질 것 같습니다..."


소백의 목소리에 깊은 절망과 죽음의 공포가 서려 있었다.


태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입틈새로도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뇌 신경의 피로가 극에 달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그는 청풍죽을 고쳐 잡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호통쳤다.


"일어나라, 소백아! 여기서 멈추면 너는 평생 뒤틀린 뼈를 안고 흑호방의 발밑을 기어 다니는 벌레로 살다 죽을 것이다! 나를 믿고 기운을 다시 척추 우회로로 밀어 넣어라!"


스승의 서슬 퍼런 호통에 소백의 흐려지던 눈동자에 다시 한번 독기가 서렸다. 소백은 이빨이 부러질 정도로 악물고 다시 가부좌를 틀었다.


태경은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 속에서 마지막 남은 정신력을 쥐어짜 소백의 기맥 흐름을 다시 연산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청풍죽 끝으로 소백의 척추 뒤편 명문혈(命門穴)과 비틀린 관절의 중심점을 정확하게 타격했다.


탁! 탁! 탁!


"호흡을 삼장일단(三長一短)으로 조율해라! 세 번 길게 들이쉬고, 한 번 짧게 내뱉으며 기운을 척추 뼈 틈새로 완전히 압축시켜라!"


태경의 정확한 혈도 지시와 호흡 조율이 소백의 뇌리에 내리쳤다. 소백은 고통 속에서도 스승의 음성을 등대 삼아 기운을 한곳으로 모았다. 뒤틀린 등뼈 틈새에 갇혀 날뛰던 은색의 내력이, 태경의 지팡이 타격으로 열린 새로운 우회 경맥을 타고 쾌속하게 순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콰드득!


소백의 몸 안에서 무언가 거대한 자물쇠가 부서지는 듯한 뼈 맞춰지는 소리가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소백의 전신 모공에서 뿜어져 나오던 검은 피가 멈추고, 뒤틀린 등뼈를 타고 흐르는 은색 내력이 소백의 몸 표면에 푸르스름한 기운으로 안정되게 피어올랐다.


설소백(1차 돌파), 역기맥의 첫 번째 타통이 기적적으로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소백의 호흡이 소름 끼치도록 고요해지며, 이류 무사의 기틀이 그의 비틀린 육체 속에 완벽히 안착했다.


"하아... 하아..."


소백은 전신 가죽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통 속에서도 자신이 살아남았음을, 그리고 몸 안에서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강력한 탄성의 힘이 흐르고 있음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턱...!"


소백의 시야에 서 있던 태경이 갑자기 둔탁한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스승님!"


소백이 경악하여 태경을 붙잡았다. 태경의 검은 안대 밑으로 검붉은 선혈이 눈물처럼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는 멈추지 않고 검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뇌 과부하가 임계점을 넘어 뇌 세포가 실시간으로 파괴되고 있는 처절한 반동이었다.


태경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져 갔다. 지독한 두통과 함께, 뇌리의 서고 구석에 있던 소중한 기억들의 책장이 불타 없어지는 듯한 감각이 전신을 엄습했다. 어제 낙엽헌에서 마셨던 차의 향기도, 함께 장서각에서 필사하던 동료들의 흐릿한 얼굴도 머릿속에서 강제로 지워져 가고 있었다.


태경이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 직전, 흑호곡 입구의 안개 속에서 한 노인의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 미친 서생 놈아! 내가 뭐라 하더냐!"


낙엽촌의 의원 장 노인이 약방 침통을 든 채 안개를 헤치고 헐떡이며 뛰어왔다. 장 노인은 쓰러진 태경의 상태를 보고 사색이 되어, 즉각 그의 백회혈(百會穴)과 안구 주변의 미세한 혈도에 은침을 깊숙이 꽂아 넣었다. 침 끝을 타고 차가운 기운이 흘러들자 태경의 거친 박동이 간신히 진정되기 시작했다.


장 노인은 태경의 안대 위로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 목소리로 거칠게 경고했다.


"뇌맥이 완전히 타들어 가고 있다! 장서각의 그 빌어먹을 비급들을 지키겠다고 네 놈의 목숨을 버릴 셈이냐? 장 노장의 정신 안정 비약(Mind-Calming Elixir)도 이제 한계다! 비약을 더 복용하면 네 머릿속의 소중한 기억들이 영구히 지워질 게다! 죽은 동료들의 이름도, 그 장서각의 비급들도 전부 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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