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스승의 기이한 제안
쉬익! 밤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설소백의 부러진 철검 끝이 기괴한 원호를 그리며 솟구쳤다.
그것은 정종(正宗) 무학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궤적이었다. 왕칠이 거구의 흑철도를 내리누르며 모든 무게중심을 전방에 쏟아붓고 있던 찰나, 소백의 검은 그의 칼날 아래를 스치듯 미끄러져 들어가 겨드랑이 밑의 텅 빈 사각지대를 정확히 찔러 올렸다.
창검이 부딪치는 쇳소리 대신, 살가죽을 찢고 뼈를 긁는 서늘한 파열음이 밤공기를 찢었다.
"크아아악!"
왕칠의 처절한 비명이 마당 한가운데를 가득 채웠다. 소백의 검 끝은 왕칠의 오른쪽 겨드랑이 밑 기맥의 접합부를 정확히 꿰뚫고 지나갔다. 왕칠은 손목의 극심한 저림과 함께 가슴을 움켜쥐며 뒤로 자빠졌다. 그의 오른손에 들려 있던 거구의 흑철도가 힘없이 진흙 바닥으로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이, 이 빌어먹을 놈이...!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왕칠은 피가 울컥울컥 쏟아지는 겨드랑이를 움켜쥔 채, 이가 갈리는 분노와 정체 모를 공포가 뒤섞인 눈으로 소백을 노려보았다. 방금 전 소백이 보여준 움직임은 그가 평생 강호에서 보아온 그 어떤 검로와도 달랐다. 뼈가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신형이 뱀처럼 흐느적거리며 다가오던 그 기괴한 신법은, 마치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사파의 마공처럼 보였다.
마당 구석에서 대나무 지팡이를 짚은 채 서 있던 서태경은 안대 뒤에서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귀에는 왕칠의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왔다. 분당 백 번이 넘게 거칠게 날뛰는 박동. 그것은 두려움에 질린 삼류 무사의 명백한 패배 선언이었다.
"어설픈 살기는 스스로를 베는 법이지요, 대협."
태경의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다. 평소 낙엽헌에서 찻잔을 나르며 굽실거리던 비굴한 점소이의 어조는 온데간데없었다. 오직 차가운 이성과 학자로서의 기품만이 서린 기이한 음성이었다.
"가자! 일단 후퇴한다!"
왕칠은 태경의 묘한 분위기와 소백의 기괴한 무공에 완전히 기가 꺾인 채, 부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어둠 속으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횃불의 붉은 불빛들이 갈대밭 너머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마당에는 오직 거친 숨소리만이 맴돌았다.
"소백아!"
방 안에서 벌벌 떨고 있던 설예진이 뛰쳐나와 소백의 품에 안겼다. 문턱에 쓰러져 있던 한씨 부인 역시 눈물을 흘리며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소백은 누이를 안아줄 여력조차 없었다.
"컥...!"
소백의 입에서 짙은 검붉은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그의 전신 근육이 사시나무 떨듯 부르르 떨렸다. 단전을 거치지 않고 등뼈의 기형 골격 틈새로 내력을 강제로 역류시킨 대가였다. 온몸의 경맥이 불타는 타르를 가득 채운 것처럼 뜨겁고 고통스러웠다. 소백은 묵풍검을 바닥에 짚은 채 겨우 몸을 지탱하며 주저앉았다.
태경이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소백의 곁으로 다가왔다.
"예진 낭자, 어머니를 모시고 방 안으로 들어가 불을 피우십시오. 밤바람이 무척 차갑고, 소백이에게는 지금 조용한 안정이 필요합니다."
예진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태경을 올려다보았다. 평범한 점소이인 줄만 알았던 사내가 보여준 기적 같은 조약돌 기습과 불 가해 보이는 전음 지휘. 그녀는 본능적으로 태경이 보통 인물이 아님을 직감하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어머니를 부축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사리문이 닫히고 마당에는 오직 차가운 북서풍과 피비린내, 그리고 두 사내만이 남았다.
소백은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며 태경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시야에 비친 태경은 여전히 검은 안대로 두 눈을 가린 채, 낡은 삼베옷을 입고 소박하게 서 있는 맹인이었다. 하지만 소백의 마음속에 서린 경외감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져 있었다.
"점소이 형... 아니, 대협.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방금 제 귀에 들렸던 그 목소리는... 그리고 저를 살린 그 구결은 대체 무엇입니까?"
태경은 나직하게 미소 지으며 청풍죽 지팡이를 바닥에 가볍게 짚었다.
"나는 그저 글을 받아 적고 차를 나르는 눈먼 필사가일 뿐입니다, 소백아."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삼류 무사인 저조차 압니다. 방금 전의 구결은 정종 무학의 도리를 완전히 뒤엎는 천하의 기예였습니다. 눈먼 필사가가 어찌 그런 힘을 지닌단 말입니까!"
태경은 대답 대신 소백의 앞으로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의 긴 손가락이 소백의 젖은 어깨를 향해 뻗어왔다. 소백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굳히려 했으나, 태경의 부드러운 손길이 그의 쇄골과 어깨 관절을 지그시 누르자 힘이 스르륵 풀렸다.
"몸을 굳히지 마라. 힘을 빼거라."
태경의 손가락은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소백의 살갗을 더듬는 손끝의 움직임은 소름 끼치도록 정교했다. 태경은 소백의 목덜미 아래 대추혈(大椎穴)부터 시작해, 척추 마디마디를 따라 손가락을 미끄러뜨렸다. 마치 뼈 속의 미세한 균열까지 들여다보는 심안(心眼)을 지닌 것처럼,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소백의 굳어 있던 근육들이 가볍게 떨렸다.
"척추의 세 번째와 네 번째 마디가 왼쪽으로 기이하게 뒤틀려 자랐군. 신주혈(身柱穴) 주변의 경맥이 뼈의 왜곡된 압력을 받아 기 흐름이 완전히 막혀 있다. 정통 무공의 운기법을 전개할 때마다 단전에서 솟구친 기운이 이 비틀린 뼈에 가로막혀 갈 곳을 잃고 역류했을 터. 그러니 기운을 모을 때마다 명치가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피를 토할 수밖에 없었겠지."
소백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것은 그의 평생을 지배해 온 지독한 형벌이자 비밀이었다. 낙엽촌을 지나던 그 어떤 의원도, 삼류 문파의 스승들도 그저 그를 '선천적인 폐인'이라 부르며 고개를 저었을 뿐이었다. 뼈가 뒤틀려 태어났으니 무공의 무 자도 꺼내지 말라며 침을 뱉던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눈먼 사내는 오직 손가락 끝의 촉각만으로 소백의 21년 묵은 고통의 근원을 단숨에 해체해 내고 있었다.
태경의 손가락이 소백의 오른쪽 어깨 관절인 견우혈(肩髃穴)에 머물렀다.
"어깨 관절의 홈 또한 정상인보다 훨씬 얕고 느슨하다. 검을 정방향으로 강하게 내리칠 때마다 관절이 어긋나려 하니, 네 검 끝이 항상 흔들리고 가벼웠던 것이다. 너는 기형(畸形)이다, 소백아. 정통의 틀로는 결코 완성될 수 없는 부러진 그릇이지."
소백의 고개가 힘없이 아래로 꺾였다. 진흙 바닥으로 그의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예... 알고 있습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저주받은 몸이었습니다. 아무리 밤낮으로 검을 휘둘러도 삼류의 벽조차 넘지 못하고, 가족들이 짓밟힐 때 그저 무릎을 꿇어야 하는 가련한 버러지일 뿐입니다. 그런데... 방금 전에는 어떻게 왕칠의 도를 꺾을 수 있었던 것입니까?"
태경의 목소리가 순간 겨울철 얼음 계곡의 물소리처럼 차갑고 날카롭게 변했다.
"네가 무공을 배울 수 없는 몸인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무공'을 배울 수 없는 몸일 뿐이다."
"그들의 무공... 이라뇨?"
"무림맹(Murim-maeng)이 정의라 부르는 정종 무학이란, 가장 완벽하고 대칭적인 육체를 지닌 기득권의 자제들을 위해 설계된 규격품이다. 그들은 그 규격에 맞지 않는 뒤틀린 뼈를 가진 자들을 '사마외도'라 부르거나 '폐인'이라 부르며 강호의 밖으로 밀어내지. 지배하기 편한 규격만을 진실이라 우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혜는 규격에 갇히지 않는다."
태경은 손가락 끝으로 소백의 뒤틀린 등뼈 마디를 꾹 눌렀다.
"비틀린 뼈를 억지로 맞추려 하지 마라. 오히려 그 비틀림의 틈새를 디딤돌로 삼아라. 정상적인 기맥의 흐름을 완전히 거슬러 역류시키고, 뼈와 근육의 기형적 탄성을 극한으로 수축시켰다 한 번에 방출하는 무공. 내가 장서각의 무학을 바탕으로 오직 너만을 위해 새로이 설계한 비전, *역기맥근골법(Reverse Qi-Vein Method)*이다."
소백의 심장이 쿵쾅거리며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의 귓전에 울리는 태경의 말은 강호의 상식을 깨부수는 혁명적인 선언이었다. 단전이 아닌 뒤틀린 등뼈에서 시작되는 무공이라니.
"정말... 저 같은 삼류도 강해질 수 있습니까? 내 누이와 어머니를 저 무도한 흑호방의 손아귀에서 지켜낼 힘을 얻을 수 있습니까?"
태경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의 가느다란 손이 품속으로 들어가더니, 반쯤 그을린 기이한 나뭇조각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서책이 아니었다. 나뭇결 표면에 기이한 요철과 미세한 홈들이 촘촘하게 새겨진, 눈이 먼 태경만이 손끝의 감각으로 해독할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된 *암호화된 목패(Encrypted Wooden Slips)*였다.
"강해질 수 있다. 천하의 오만한 정종 무인들이 네 검로를 사파의 마공이라 비하하며 공포에 떨게 만들 만큼 강력한 무인이 될 수 있지. 하지만 소백아, 내 제자가 되는 길에는 가혹한 대가가 따른다."
"무엇이든 치르겠습니다! 목숨을 바쳐야 한다 해도 기꺼이 내놓겠습니다!"
소백이 흙바닥에 머리를 크게 찧으며 외쳤다.
태경은 목패를 손가락 끝으로 천천히 쓸어내리며 차가운 음성으로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내가 네 스승임을 천하의 그 누구에게도 밝혀서는 안 된다. 나는 그저 찻집 낙엽헌의 눈먼 점소이 서태경일 뿐이다. 내 정체가 무림맹의 귀에 들어가는 날, 이 마을은 흔적도 없이 불타 사라질 것이다."
소백은 침을 꿀꺽 삼켰다. 스승이 짊어진 복수의 무게가 얼마나 거대한지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둘째, 내가 지시하는 기맥의 길이 설령 천 길 낭떠러지처럼 보일지라도, 의심하지 말고 네 육체를 내던져라. 사제 간의 신뢰가 단 1리라도 흔들리는 순간, 네 경맥은 안에서부터 찢겨 나가 주화입마에 빠질 것이다. 이 가혹한 계약을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소백은 주저하지 않고 바닥에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렸다. 쿵, 쿵, 쿵. 세 번의 무거운 타격음이 밤하늘을 울렸다.
"제자 설소백, 평생 스승님의 뜻을 받들어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합니다.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
태경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에 쥐고 있던 암호화된 목패를 소백의 떨리는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좋다. 이것을 쥐어라. 눈이 아닌 손끝의 감각으로, 이 나무판의 요철에 새겨진 경맥의 새로운 길을 네 머릿속으로 정밀하게 그리거라. 그것이 네 역천(逆天)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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