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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문 앞의 청년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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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촌 외곽 관문(Nakyeop Outpost Gate)을 에워싼 공기는 얼어붙은 삭풍보다 더 차갑고 가팔랐다. 흑호방의 포졸들과 관청의 포교 임태수(Im Tae-su)가 세운 목조 바리케이드 너머로, 굶주림과 공포에 질린 민초들의 신음이 안개처럼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마차 한 대조차 빠져나가지 못하게 촘촘히 박힌 무쇠 창살들. 그 삼엄한 경계선 너머로 저 멀리 황량한 대로를 뚫고 거대한 먼지구름이 일어났다.


두두두두!


대지를 울리는 웅장한 군마의 말발굽 소리였다. 낙엽헌의 문틀을 미세하게 흔들 만큼 묵직한 진동이 대지 아래로부터 전해졌다. 이윽고 안개를 가르며 웅장한 기세를 풍기는 은백색의 마차와 무림맹의 푸른 깃발을 높이 세운 군마 수십 필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림맹 특별조사단(Murim-maeng Special Investigation Unit)의 도착이었다.


마차의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천천히 대지 위로 발을 내디뎠다.


눈부신 은색 경갑을 입고 허리에는 수려한 보검을 찬 청년. 무림맹 특별조사단의 수장이자 남궁세가의 후기지수, 남궁휘(Namgung Hwi)였다. 그의 온몸에서는 명문 정파의 엘리트 특유의 올곧으면서도 오만한 기풍이 서슬 퍼렇게 뿜어져 나왔다. 그의 발걸음 하나하나에 대기가 미세하게 공명하는 듯한 정종 내력의 기세가 실려 있었다.


“조사단장님을 뵙습니다!”


관복을 비뚤게 걸친 채 바리케이드 뒤에 숨어 있던 포교 임태수가 허겁지겁 달려 나와 머리를 땅에 박았다. 그의 뒤를 따라 멧돼지 같은 체구의 흑호방주 조대포(Jo Dae-po) 역시 비굴하게 허리를 굽혔다. 낮에 보여주던 변방의 폭군 같은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거대 권력의 사냥개들 앞으로 기어 다니는 비루한 몰골들이었다.


남궁휘는 차가운 눈빛으로 임태수와 조대포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손가락이 허리에 찬 보검의 손잡이를 가볍게 두드렸다.


“포교 임태수. 그리고 흑호방주 조대포라 했는가.”


남궁휘의 목소리는 맑고 청아했으나, 그 안에는 거역할 수 없는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


“무림맹의 허가도 없이 변방의 일개 관문을 이토록 철저히 총봉쇄한 법적 근거가 무엇이냐. 관청의 공식 공문서도 없이 민초들의 물류를 막고 수탈하는 행위는 맹의 규율과 국법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짓이다.”


임태수는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품속으로 슬그머니 손을 집어넣었다. 조대포에게 뇌물로 받은 황금 명패를 은밀히 가리며, 남궁휘의 부하들에게 슬쩍 은화 주머니를 찔러 넣으려 눈짓을 보냈다. 그러나 남궁휘의 곁을 지키던 감찰 무사들이 차가운 눈빛으로 검자루를 쥐자, 임태수는 황급히 손을 빼내며 허위 보고서를 올렸다.


“아, 아닙니다, 단장님! 어찌 저희가 사사로이 관문을 막겠습니까! 최근 이 낙엽촌 내부에 정체불명의 사마외도(Sama-oedo) 무리가 침투했다는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그 마두들이 마을 주민들을 선동하고 관청의 치안을 위협하고 있어, 부득이하게 조사를 위해 일시적으로 관문을 통제한 것뿐입니다!”


옆에 서 있던 조대포 역시 거친 목소리를 낮추며 위선적인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렇습니다, 대협! 그 사마외도의 검객 놈은 선천적으로 뼈와 경맥이 뒤틀린 괴물 같은 무공을 쓰는데, 저희 흑호방의 무고한 무사들을 잔인하게 도륙하고 안개 숲에서 마철두 대장마저 참패시켰습니다. 정파의 안위와 낙엽촌 주민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결단이었습니다!”


그 시각, 관문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낙엽헌의 낡은 처마 밑.


서태경은 굳게 닫힌 문틈에 부러진 대나무 지팡이 청풍죽(Cheongpung-juk)을 지그시 대고 서 있었다. 후각을 완전히 잃은 그의 코끝에는 차가운 겨울 안개의 냄새조차 닿지 않았지만, 그의 귀와 발바닥은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하게 깨어 있었다.


‘심음 감청술(Heartbeat Listening Technique) 가동.’


태경의 머릿속에서 관문 앞의 풍경이 소리와 진동의 입체적인 도면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두근.


임태수의 심장 박동은 분당 백 번이 넘게 뛰며 불규칙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거짓말을 할 때 발생하는 전형적인 불안의 맥박이었다. 조대포의 심음 역시 탐욕과 살기가 뒤섞여 거칠게 헐떡이고 있었다.


반면, 남궁휘의 심음은 소름 끼칠 정도로 고르고 단단했다. 남궁세가 특유의 창궁신공(蒼穹神功) 기초 내력이 실린,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종의 고동 소리.


태경은 안대 뒤에서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왼쪽 뺨과 목덜미를 따라 길게 이어진 처절한 화상 흉터가 미세하게 떨렸다.


‘남궁휘... 강직하고 오만하며, 자신이 믿는 정파의 규율이 천하의 유일한 정의라 믿는 청년이군. 머리는 영리하나 변방 지하의 썩은 유착과 인간의 비열함을 직접 겪어본 적이 없는 온실 속의 화초다.’


태경은 남궁휘의 그 ‘정의감’이야말로 흑호방과 임태수의 목을 가장 잔인하게 벨 수 있는 칼날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이호경식(二虎競食). 탐욕스러운 범들과 정의로운 사냥개를 부딪치게 만들어 스스로 자멸하게 만드는 계책의 첫 단추가 맞춰질 시간이었다.


태경은 뒤편 어둠 속에 대기하고 있던 찻집 점원 개똥이(Gae-ttong-i)에게 보이지 않는 손끝으로 신호를 보냈다.


“개똥아. 지금이다. 장터 모퉁이에서 바람이 관문 쪽으로 불 때, 흑호방이 상인들에게 불법으로 징수한 가짜 세금 영수증 더미를 흘려보내거라.”


“예, 서 선생.”


개똥이가 쥐새끼처럼 날렵하게 골목 사이로 사라졌다.


다시 관문 앞.


남궁휘는 임태수가 바친 허위 보고서를 훑어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예리한 안광이 보고서의 모순점들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치안을 위한 일시 통제라면서, 왜 관청의 공식 관인(官印)이 찍힌 공문서가 존재하지 않는가. 그리고 사마외도의 무리가 침투했다면 왜 무림맹 본청에 즉각 보고하지 않고 사사로이 군대를 동원해 마을을 봉쇄했단 말인가.”


“그, 그것은... 사안이 워낙 급박하여 서류를 갖출 시간이 부족했사옵니다...!”


임태수가 말을 더듬으며 변명하려던 찰나, 매서운 북서풍이 관문 쪽으로 강하게 불어왔다. 바람을 타고 낡은 종이 조각 몇 장이 흩날리며 남궁휘가 탄 군마의 발밑으로 떨어졌다.


남궁휘의 눈길이 바닥에 떨어진 종이 조각으로 향했다. 그것은 흑호방이 관청의 이름을 도용하여 낙엽촌 상인들에게 가혹하게 징수한 불법 세금 영수증과 상납금 장부의 일부 조각이었다. 남궁휘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허공섭물의 기예처럼 종이 조각이 그의 손끝으로 빨려 들어왔.


장부 조각을 읽어 내려가는 남궁휘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졌다.


“임태수. 이것이 너희가 말한 ‘치안 유지’의 실체더냐. 무림맹의 가호를 받는 변방 백성들에게 관청의 이름을 사칭해 사사로이 고리대금을 취하고 상납금을 가로채다니.”


“아, 아닙니다! 그것은 저 사마외도의 무리들이 저희를 모함하기 위해 조작한 가짜 장부입니다!”


임태수가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조대포 역시 당황하여 흑호공의 거친 내력을 시위하듯 방출하려 했다.


그 순간, 남궁휘가 차가운 안광을 번뜩이며 검기를 머금은 기세를 폭발시켰다.


쿠우웅!


압도적인 일류 고수의 정종 강기가 사방으로 방출되며 관문 주변의 흙먼지를 단숨에 가라앉혔다. 조대포의 거구의 신형이 그 위압감에 짓눌려 쩍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임태수는 아예 숨조차 쉬지 못하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바닥을 긁었다.


“감히 내 앞에서 내력을 펼치려 드는가, 삼류 방파의 폭군 놈이.”


남궁휘의 목소리에는 명문가의 오만함과 불타는 정의감이 서려 있었다.


“당장 관문의 바리케이드를 치워라. 무림맹 특별조사단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이 낙엽촌 내부의 부패와 사마외도의 진실은 내가 직접 들어가 두 눈으로 확인할 것이다.”


임태수와 조대포는 남궁휘의 서슬 퍼런 기세에 완전히 압도당해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바리케이드를 열라는 손짓을 보냈다. 거대한 무쇠 창살문이 비명을 지르며 열리기 시작했다.


낙엽헌 문앞에서 이 모든 소리와 진동을 읽어낸 태경은 안대 뒤에서 소리 없이 웃었다.


‘사냥개가 드디어 덫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구나.’


비록 뇌 과부하로 인한 지독한 두통이 관자놀이를 조여왔지만, 태경의 머릿속 연산 장치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다음 복수의 행보를 그려내고 있었다.


그때였다.


관문을 통과한 남궁휘가 고삐를 쥐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정의로운 의구심이 가득한 시선이 낙엽촌 초입에 위치한 가장 허름하고 조용한 찻집, 낙엽헌의 간판을 향해 멎었다.


남궁휘는 임태수의 보고서에 적힌 이상 징후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군마에서 내려 천천히 낙엽헌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벅, 벅, 벅.


일류 검사의 단단하고 일정한 발소리가 태경이 서 있는 문앞을 향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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