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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전야의 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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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숲에서 마철두가 이끄는 철검문 순찰대가 몰살당했다는 소식은 낙엽촌(Nakyeop Village)을 지배하던 흑호방(Heukho-bang)의 심장부에 가공할 폭탄으로 떨어졌다. 단 하루 만에 변방의 황량한 마을은 숨 막히는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다.


흑호방주 조대포(Jo Dae-po)는 광기에 휩싸였다. 정예 무사들과 기맥 추적견 흑랑까지 잃고 겨우 목숨만 건져 도망쳐 온 마철두의 참혹한 몰골을 본 그는, 자신들의 배후이자 상위 적대 세력인 철검문(Cheolgeom-mun)으로부터 멸문지화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극단적인 공포를 느꼈다. 이성을 잃은 조대포는 낙엽촌 전체에 계엄에 준하는 ‘총봉쇄령’을 선포했다.


“쥐새끼 한 마리도 낙엽촌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라! 그 기형 검객 놈과 배후의 설계자를 찾아내지 못하면, 우리 모두 철검문주님의 검에 목이 날아갈 것이다!”


조대포의 광기 어린 명령에 따라, 낙엽촌 외곽 관문(Nakyeop Outpost Gate)은 거대한 쇠창살 바리케이드로 철저히 가로막혔다. 평소라면 가난한 민초들이 땔나무를 지고 드나들던 그 좁은 목조 관문에는, 관청의 부패한 포교 임태수(Im Tae-su)가 이끄는 관군 포졸들과 흑호방 무사들이 겹겹이 늘어서서 삼엄한 신원 조회를 시작했다. 마을의 물류가 완전히 차단되자 장터의 상권은 얼어붙었고, 주민들은 굶주림과 공포에 질려 울부짖기 시작했다. 바깥세상과 연결되던 유일한 통로가 거대한 감옥의 창살로 변해버린 것이다.


같은 시각, 찻집 낙엽헌(Nakyeop-heon)의 지하 밀실.


어둡고 습한 지하 공간의 탁자 위에는 반쯤 타버린 목패 하나가 놓여 있었다. 서태경은 눈을 가린 검은 안대 너머로, 보이지 않는 손가락 끝을 놀려 그 목패의 그을린 표면을 정밀하게 쓸어내렸다.


스스슥.


손가락 끝의 세포 하나하나가 목패 뒷면에 새겨진 미세한 나뭇결의 균열을 읽어냈다. 그것은 장서각 화재 당시 그의 위대한 스승 백선 선생이 목숨을 바쳐 건네주었던 유물, 귀근패(Gwigeun-pae)였다. 타버린 나뭇결 틈새로 감춰진 문양은 무림맹주 독고천패가 양성한 비밀 결사이자 그림자 정부인 ‘천명회’의 고대 비밀 표식이었다.


태경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장서각을 불태우고 내 동료들을 학살한 배후가 결국 천명회였음이 이 목패로 증명되는구나. 철검문 역시 이 표식을 상납금의 대가로 쥐고 흔들고 있을 터.’


태경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방대한 장서각 비급 데이터베이스가 빠르게 회전하며 복수의 대국적인 판을 짜 내려갔다. 이 변방의 작은 마을 낙엽촌은 복수의 시작점일 뿐, 그가 도달해야 할 진짜 전장은 더 거대하고 썩은 정보가 모이는 교통의 요지, 금릉성(Geumneung Castle)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낙엽촌을 단단히 옭아매고 있는 조대포와 부패한 관청의 고리를 끊어내야 했다.


탁자 맞은편에서 낙엽촌 촌장 가맹길(Ga Maeng-gil)이 마른침을 삼키며 덜덜 떨고 있었다. 맹인 점소이 태경의 손끝에서 뿜어지는 기묘하고 정적인 아우라에 압도당한 탓이었다.


“서, 서 선생... 조대포와 임태수가 눈이 뒤집혀 마을 전체를 이 잡듯 뒤지고 있소. 내 호적 위조 기술로도 이번 수색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소이다. 무림맹 특별조사단(Murim-maeng Special Investigation Unit)까지 내려온다는 소문이 돌고 있으니, 이제 우리는 끝장난 것이 아니오?”


태경은 가맹길을 향해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품속에서 낡은 가죽 주머니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툭, 하는 무거운 소리와 함께 주머니가 벌어지며 빛바랜 장부 한 권이 모습을 드러냈다.


“촌장 어르신, 이것은 임태수가 조대포에게 뇌물을 받고 관청의 세금을 횡령한 구체적인 내역이 적힌 비리 장부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놓인 황금 명패는 조대포가 임태수에게 직접 하사한 유착의 물증이지요.”


가맹길의 주름진 눈이 크게 떠졌다.


“이, 이것을 어떻게...!”


“아영이가 흑호방의 비밀 금고에서 목숨을 걸고 빼내 온 것입니다. 관청 내부의 탐욕스러운 포교들은 법보다 돈과 명예에 약한 법. 이 장부를 들고 임태수의 정적인 부포교에게 은밀히 전달하십시오. 그가 관청 내부에서 임태수의 목을 조를 준비를 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태경의 음성은 얼음처럼 차갑고 정교했다.


“무림맹 특별조사단의 남궁휘(Namgung Hwi)는 정의와 규율을 신봉하는 명문가의 검사입니다. 그가 마을에 들어섰을 때, 부패한 임태수와 조대포가 뇌물로 그를 매수하려 들겠지요. 우리는 그 유착의 현장을 남궁휘의 눈앞에 직접 들이밀어, 무림맹의 공권력이 스스로 흑호방의 숨통을 끊게 만들 것입니다. 이른바 이호경식(二虎競食), 두 마리의 범이 서로를 물어뜯게 만드는 계책이지요.”


가맹길은 소름 끼치는 경외감을 느끼며 장부를 품속에 깊숙이 감추었다. 무공은 단 1리도 쓸 수 없는 맹인이, 천하를 뒤흔드는 무림맹과 관청의 권력을 손가락 하나로 조종하려 하고 있었다.


같은 시각, 지상으로 올라온 태경은 낙엽헌 뒷마당으로 향했다.


마당 한구석에서는 첫 번째 제자 설소백(Seol So-baek)이 청강석의 푸른 탄성을 머금은 묵풍검(역근 편형검)을 숯돌에 묵묵히 갈고 있었다. 안개 숲에서 일류 고수 마철두의 붕산격을 받아내느라 검 끝에 미세한 이 빠짐 상처가 생긴 탓이었다. 소백의 전신에서는 여전히 안개 독소로 인한 경미한 한독(寒毒) 기운이 서려 있었으나, 스승을 보필하겠다는 그의 눈빛만큼은 흔들림이 없었다.


“소백아, 검을 거두거라. 지금은 검을 휘두를 때가 아니라, 숨을 고를 때다.”


태경의 지시에 소백이 즉각 검을 칼집에 밀어 넣고 무릎을 꿇었다.


“스승님, 제 상처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당장 관문으로 달려가 임태수의 포졸들을 베고 퇴로를 열겠습니다.”


“어리석은 소리. 정면 돌파를 선택하는 순간, 무림맹의 법률에 따라 너는 사마외도의 마두로 낙인찍혀 전국의 추적을 받게 된다. 복수는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법과 질서의 틈새를 파고드는 치밀한 칼날로 완수하는 법이다. 아영이는 지금 어디 있느냐?”


소백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아영이는 개방의 거지 아이들과 함께 흑호방 본영에서 관청으로 향하는 상납금 수송 마차의 이동 경로를 도청하기 위해 장터 모퉁이에 잠입해 있습니다.”


태경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려던 찰나, 갑자기 관자놀이를 찌르는 듯한 극심한 균열통이 그의 뇌리를 강타했다.


“윽...!”


태경이 비틀거리며 부러진 대나무 지팡이 청풍죽을 짚었다. 안대 뒤의 눈가에서 미세한 핏방울이 배어 나왔다. 뇌 과부하(Brain Overload)의 전조 증상이었다. 안개 숲 결전에서 소백을 실시간으로 지휘하느라 뇌 세포를 과도하게 소모한 대가였다. 그를 지탱해주던 ‘정신 안정 비약’이 마을 봉쇄령으로 인해 외부 약재 조달이 차단되면서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스승님!”


소백이 깜짝 놀라 태경을 부축하려 했으나, 태경은 손을 들어 제지했다.


“괜찮다... 잠시 뇌열이 오르는 것뿐이다. 삼돌이에게 마차를 몰고 관문을 통과해 장 노인의 약재를 받아오라 일렀으니, 곧 해결될 게다.”


그러나 태경의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낙엽헌 앞마당으로 늙은 마부 삼돌이(Sam-dol-i)가 땀과 흙먼지로 범벅이 된 채 마차를 끌고 허겁지겁 들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절망감이 가득했다.


“서 선생! 죄송합니다... 관문의 검문이 너무 삼엄하여 마차 바닥의 짐칸까지 송곳으로 찌르며 수색하고 있습니다. 장 노인님의 약재 상자를 숨겨 들어오려 했으나, 임태수의 포졸들에게 압수당하고 겨우 몸만 빠져나왔습니다.”


삼돌이의 보고에 소백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태경의 생명줄인 비약 재료가 적들의 손에 넘어가 버린 것이다. 태경은 지독하게 조여오는 두통 속에서도 입술을 깨물며 이성을 유지하려 애썼다. 후각이 완전히 상실된 그의 코끝에는 오직 피비린내와 같은 차가운 긴장감만이 맴돌았다.


‘조대포와 임태수가 생각보다 더 철저하게 포위망을 좁혀오는군. 내 비약이 차단된 상태에서 뇌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사흘... 그 안에 이 봉쇄망을 안에서부터 무너뜨려야 한다.’


태경은 부러진 청풍죽 지팡이를 굳게 쥐고 가볍게 땅을 두드렸다. 톡, 하는 진동음이 대나무 마디를 타고 그의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비록 지팡이에 균열이 가 감각의 선명도가 떨어졌으나, 풍안청청(Wind Eye Clarity)의 기예는 여전히 그에게 주변의 미세한 변화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때, 삭풍이 불어오는 관문 너머에서 수십 필의 군마가 대지를 울리는 웅장한 발소리가 태경의 예민한 청각에 포착되었다. 무거운 철갑의 마찰음, 그리고 정종 내공을 품은 강직한 숨소리들.


태경은 안대 뒤의 보이지 않는 눈을 가만히 감으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왔군... 무림의 법과 정의를 집행하겠다는 오만한 사냥개들이.”


저 멀리 관문 너머에서, 푸른 깃발을 휘날리며 진입하는 무림맹 특별조사단의 거대한 마차와 철검문의 정예 병력이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낙엽촌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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