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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선당의 음모와 노장로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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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각의 아침은 언제나 서늘한 안개와 함께 시작되었다.


어제 사천당가의 살수 당적이 독을 풀었던 우물은 커다란 돌판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우물물을 쓸 수 없게 된 탓에 장서각 주변에는 묘한 긴장감과 미세한 유황 냄새가 맴돌았다. 독고풍은 묵묵히 왼손으로 대나무 빗자루를 잡고 장서각 앞마당의 낙엽을 쓸어내렸다. 그의 오른팔 소매는 여전히 텅 빈 채 허리춤에 단단히 묶여 바람에 힘없이 휘날리고 있었다.


서고 문턱에 앉아 있던 백무기는 어리숙한 표정으로 침을 흘리며 제 스승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년의 오른쪽 뺨에는 공양간에서 주방장에게 밀쳐져 생긴 푸른 피멍 자국이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의 품에는 배진과의 격돌로 끝부분이 갈라져 낡은 무명 붕대로 촘촘하게 감아 보수한 대나무 목검이 안겨 있었다. 무기는 겉으로는 침을 닦으며 바보처럼 웃고 있었지만, 그의 태극경맥은 어제 천초독을 정화한 이후 한층 더 맑고 정순한 진기를 단전에 가라앉히고 있었다.


사위가 고요하던 그때, 장서각 사문 너머로 서늘하고 오만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서걱, 서걱.


지독한 안개를 헤치고 나타난 무리는 화산파의 정식 제자들이었다. 그 선두에는 눈처럼 하얀 비단 도포를 휘날리며 매화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진 설화검을 찬 청년이 서 있었다. 장문인 백양선인의 직계 제자이자 화산파 제일의 천재로 칭송받는 송진엽이었다. 그의 옆에는 독고풍의 대나무 빗자루를 짓밟았던 삼장로의 아들, 제갈충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규율당의 험악한 집사들을 대동하고 서 있었다.


송진엽의 기풍은 한 마리 고결한 학과 같았으나, 그의 가느다란 눈매 속에는 장서각 사제를 향한 얼음 같은 멸시와 묘한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최근 배진이 바보 소주에게 일격에 손목이 부러졌다는 소문과 제갈휘가 장서각 지하에서 정체불명의 내상을 입고 퇴각했다는 소식이 그의 귀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바보 새끼, 여기 있었구나."


제갈충이 성큼 걸어 나와 침을 탁 뱉으며 무기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무기는 깜짝 놀란 척 몸을 웅크리며 붕대 감긴 목검을 품에 더 깊숙이 안았다.


독고풍은 쓸쓸히 빗자루질을 멈추고 그들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노인은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 행세를 하며, 왼손으로 빗자루를 쥔 채 고개를 조용히 가로저었다. 그의 도포 품속 깊은 곳에는 어제 당적의 품에서 빼앗은 제갈우의 암살 사주 밀서가 숨겨져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 위선을 폭로하고 싶었으나, 사법권을 쥔 규율당이 제갈우의 손아귀에 있는 이상 섣부른 폭로는 개죽음으로 이어질 뿐이었다. 노인은 철저히 자신을 낮추며 인내했다.


송진엽이 차가운 목소리로 독고풍을 밀쳐내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비켜라, 서고지기 노인. 우리는 오늘 화산파의 공적인 규율을 집행하러 왔다."


송진엽이 소매 안에서 붉은 가죽으로 제본된 약선당의 비전 장부를 꺼내 보였다.


"어제저녁, 화산파 약선당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있던 귀한 영약, 철골단(鐵骨丹) 한 알이 도난당했다. 약선당의 수석 제자인 곽림 사형이 장부를 대조한 결과, 누군가 약고의 비밀 환기구를 통해 침투한 흔적을 발견했지. 그리고 그 현장 주변에서 이 더러운 장서각의 짚신 자국이 발견되었다."


제갈충이 기다렸다는 듯 소리쳤다.


"이 바보 새끼가 며칠 전부터 구타를 당하고도 뼈가 부러지지 않고 기어 다닌 이유가 바로 약선당의 영약을 훔쳐 처먹었기 때문이 분명하다! 감히 문파의 영약을 훔치다니, 이는 두 눈을 멀게 하고 추방해야 마땅한 대죄다!"


터무니없는 누명이었다. 무기는 약선당 근처에는 가본 적도 없었다. 제갈우 일파는 장서각 내부에 숨겨진 고수의 실체를 밝혀내고 무기를 합법적으로 지하 감옥으로 끌고 가 고문하기 위해, 문파의 공적인 권력을 남용하여 덫을 놓은 것이었다.


"아우으……? 탄(丹)…… 먹는 거……? 무기, 배고파……."


무기는 침을 흘리며 바보 같은 표정으로 웅얼거렸다. 소년의 연기는 완벽했으나, 송진엽의 차가운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규율당 집사들은 당장 장서각 내부를 수색하라! 영약의 흔적이나 약선당의 약초 찌꺼기가 나오면 그 즉시 이 바보를 포박해 계율당 지하 감옥으로 압송하겠다!"


송진엽의 명령에 검은 가죽 옷을 입은 규율당 집사들이 거칠게 장서각 대청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책장을 무자비하게 넘어뜨리고, 고서적들을 바닥에 짓밟으며 수색을 시작했다. 낡은 종이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장서각 내부가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변해갔다.


독고풍의 왼손이 빗자루 자루를 쥔 채 바르르 떨렸다. 그의 단전에서 역천폐맥공으로 닫아두었던 기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제자를 또다시 저 차가운 고문실로 보낼 수는 없었다. 노인의 목덜미에 박힌 은빛 금침들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전신 경맥에 뼈를 깎는 통증이 엄습했다. 노인은 이를 악물며 내력을 억눌렀다. 지금 움직이면 모든 안배가 무너진다.


그때, 수색을 하던 약선당의 제자 곽림이 무기의 침상 주변을 뒤지다가 붉은 비단으로 싸인 작은 껍질 하나를 치켜들었다.


"찾았습니다! 약선당의 철골단을 감싸고 있던 비단 껍질입니다! 이 바보의 베갯밑에서 나왔습니다!"


명백한 조작이었다. 곽림이 수색 도중 소매 속에서 미리 준비해 온 가짜 증거를 흘린 것이 분명했다. 제갈충이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쇠사슬을 치켜들었다.


"증거가 나왔다! 이 도둑놈 새끼, 당장 포박하라! 규율당 지하 감옥에서 등 가죽이 찢어지도록 매질을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규율당 집사들이 쇠사슬을 휘두르며 무기를 향해 좁혀왔다. 무기는 본능적으로 품속의 붕대 감긴 목검을 꽉 쥐었다. 그의 발끝이 낙엽소청보의 궤적을 밟으려 움츠러들었다. 독고풍 역시 왼손가락 끝에 지검의 기운을 모으기 시작했다. 장내에 터질 듯한 생사의 살기가 팽팽하게 당겨진 현악기 줄처럼 긴장감을 고조시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쿵!


장서각 마당의 진흙 바닥을 쾅 하고 울리는 묵직한 타격음이 들려왔다.


동시에 들이닥친 것은 산 전체를 뒤흔드는 듯한 웅장하고 정순한 도가의 진기였다. 안개 속에서 하얗고 긴 수염을 휘날리며, 낡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서린 도포를 입은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손에 거친 대나무 지팡이를 짚은 화산파의 은퇴한 노장로, 설도인이었다.


설도인의 등장에 마당을 메우고 있던 규율당 집사들과 송진엽의 안색이 일시에 굳어졌다.


"모두 멈추어라! 감히 은퇴한 장로의 비호 아래 있는 장서각에서 이 무슨 망동이냐!"


설도인이 대나무 지팡이로 지면을 다시 한번 쾅 내려치자, 마당에 가득했던 자갈들이 미세하게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노환으로 내력이 쇠퇴하고 있다 하나, 그의 몸에서 뿜어지는 일류 극처의 기세는 송진엽마저 식은땀을 흘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송진엽이 서둘러 포권을 하며 예의를 갖추었으나,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뼈가 서려 있었다.


"설 장로님, 은퇴하신 몸으로 문파의 공적인 사법 집행에 관여하시는 것은 문규에 어긋납니다. 이 바보 백무기가 약선당의 귀한 영약 철골단을 훔친 증거가 방금 장서각 내부에서 나왔습니다."


제갈충 역시 아버지를 믿고 거만하게 쏘아붙였다.


"그렇습니다! 장로님이라 할지라도 도둑놈을 감싸고 도신다면 장문인 처소에 탄핵을 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설도인은 그들의 조롱 섞인 협박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장로는 웅장한 호탕함을 터뜨리며 허허 웃었다.


"도둑놈이라니? 누가 누구를 도둑으로 몬단 말이냐!"


설도인이 도포 소매 속에서 자줏빛 비단으로 싸인 둥근 신표 하나를 꺼내어 송진엽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그것은 화산파 장문인의 직인이 정교하게 새겨진 진짜 장문인 패검의 신표(장문인 패검의 신표)였다.


송진엽의 두 눈이 경악으로 크게 커졌다.


"그, 그것은 장문인 신표……! 어째서 장로님께서 그걸 가지고 계십니까?"


설도인이 차갑게 미소를 지으며 장부를 바닥에 던졌다.


"이 멍청한 녀석들아! 장서각의 고서적 보수 작업은 장문인 처소의 극비 명령 하에 진행되는 일이다. 저 바보 백무기가 매일 밤 높은 들보를 오르내리며 헌책을 보수하는 노고를 기려, 내가 직접 장문인께 상소를 올려 철골단 한 알을 합법적으로 하사받아 무기에게 지급했다! 이 신표가 바로 그 증거다!"


설도인의 벼락같은 호통에 송진엽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장문인 직속의 신표가 제시된 이상, 약선당의 가짜 장부나 조작된 비단 껍질 따위는 아무런 법적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송진엽의 교활한 누명 음모가 설도인의 압도적인 사법적 권위에 의해 완벽하게 무력화되는 순간이었다.


"곽림 사형이 장부를 잘못 대조한 모양이구나. 철수하라."


송진엽이 이빨을 깨물며 식은땀을 흘리는 부하들을 향해 나지막이 명령했다. 제갈충은 분노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으나, 장문인 신표 앞에서는 감히 움직일 수 없었다. 그들은 난장판이 된 장서각을 뒤로한 채 황급히 사문 밖으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적들의 발자국 소리가 안개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자, 장서각 마당에는 다시 쓸쓸한 침묵이 찾아왔.


설도인은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독고풍을 향해 걸어왔다. 노장로의 눈빛에는 장난기 어린 기색은 사라지고, 백 년 묵은 고목처럼 깊고 슬픈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다.


설도인은 묵묵히 서 있는 독고풍의 앞으로 다가가, 그의 거친 왼손을 가만히 움켜쥐었다. 노장로의 따뜻하고 정순한 도가 진기가 독고풍의 왼손 경맥을 타고 부드럽게 흘러들어와, 금침의 부작용으로 타들어 가던 노인의 심장 통증을 맑게 가라앉혀 주었다.


그리고 설도인은 독고풍의 텅 빈 오른쪽 소매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며, 오직 노인만이 들을 수 있는 아주 미세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독고성(獨孤成)의 아들이 살아있었구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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