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속에 퍼진 독과 백독불침의 각성
장서각의 아침은 언제나 차가운 이슬과 안개로 시작되었다.
외팔이 노인 독고풍은 왼손에 낡은 대나무 빗자루를 쥔 채, 서서히 걷히는 안개 속에서 앞마당을 쓸고 있었다. 빗자루 끝이 돌바닥을 쓸어내릴 때마다 스스슥 하는 쓸쓸한 마찰음이 새벽의 정적을 깨웠다. 허리춤에 단단히 묶인 그의 빈 오른팔 소매가 찬바람에 힘없이 펄럭였다. 노인의 눈길은 마당 한구석, 돌바닥 틈새에 스며든 거무스름한 흔적에 머물렀다.
어젯밤, 제갈우의 사주를 받고 장서각 지하로 침입했던 제갈휘가 묵흔검벽에 충돌하여 토해내고 간 검붉은 피였다. 독고풍은 묵묵히 빗자루를 움직여 그 흔적을 지워나갔다. 지독한 안개 덕에 핏자국은 희미해졌으나, 제갈우의 의심이 마침내 임계점에 달했음을 노인은 직감하고 있었다. 그들은 장서각 내부에 자신들을 위협할 고수가 숨어있다고 확신했을 터였다.
서고 문턱에 앉아 있던 백무기가 어리숙한 표정으로 침을 흘리며 노인을 바라보았다. 소년의 오른쪽 뺨에는 공양간에서 주방장에게 밀쳐져 생긴 푸른 피멍 타박상이 여전히 남아 있었고, 품에는 하룻밤 사이 손목의 무명 붕대로 촘촘히 감아 보수한 조잡한 대나무 목검이 안겨 있었다. 겉보기엔 그저 어수룩한 백치였으나, 소년의 깊고 투명한 눈망울 밑바닥에는 스승의 뺨에 새겨졌던 배진의 손자국에 대한 분노가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헤헤, 할부지…… 물…… 무기, 물 떠올게."
무기가 침을 닦으며 낡은 나무 두레박을 들고 마당 구석의 우물가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독고풍은 빗자루질을 멈추지 않은 채, 눈동자만을 움직여 제자의 뒷모습을 쫓았다. 낮 동안에는 철저히 바보 소주의 역할을 수행해야만 이 가혹한 화산파의 눈을 속일 수 있었다.
우물가에 도달한 무기가 두레박을 줄에 매달아 우물 깊숙한 곳으로 던졌다.
풍덩.
차가운 물소리가 들리고, 무기가 밧줄을 끌어올려 두레박 가득 맑은 물을 담아 올렸다. 소년이 물을 마시기 위해 바루를 두레박에 대려던 찰나였다.
독고풍의 초감각적 청력이 우물가 주변의 기묘한 공기 흐름을 포착했다. 바람을 타고 아주 미세하게, 풀 비린내와 쇠 냄새가 섞인 기이한 약초 향이 노인의 코끝을 스쳤다. 단순한 이끼 냄새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천당가(四川唐門)의 비전 독약 중에서도 가장 음험하다는 천초독(天草毒)의 독향이었다.
‘독이다.’
독고풍의 왼손이 빗자루 자루를 꽉 쥐었다. 제갈우가 지하 석실 침입 실패 후, 장서각 내부의 고수를 단숨에 도살하기 위해 우물에 독을 푼 것이 분명했다. 노인이 무공을 노출하지 않고 무기를 만류하려던 순간, 무기의 눈빛이 찰나의 순간 예리하게 빛났다.
무기 역시 코끝을 스치는 특유의 약초 비린내를 감지한 것이었다. 소년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물을 스승이 마시게 둔다면, 이미 경맥이 망가진 스승의 몸은 단숨에 무너져 내릴 터였다.
‘스승님을 다치게 둘 순 없다. 내 몸으로 막아야 한다.’
무기는 어리숙하게 웃는 척하며, 두레박의 물을 대접에 담아 단숨에 들이켰다.
벌컥, 벌컥.
"무기야!"
독고풍이 마음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빗자루를 내던지고 우물가로 쇄도했다. 그러나 이미 늦어 있었다. 천초독이 섞인 독수가 무기의 목구멍을 타고 단전으로 사정없이 흘러 들어갔다.
천초독은 오장육부를 순식간에 녹여내고 전신 경맥을 마비시키는 극독이었다. 독수가 몸에 닿자마자 무기의 전신이 굳어지며 무릎을 꿇었다. 소년의 입술이 순식간에 시퍼렇게 변했고, 숨결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독고풍이 무기의 등을 왼손으로 짚고 자신의 내력을 주입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무기의 체내 깊숙한 곳, 그의 어머니 소당혜(蘇唐慧)에게서 물려받은 사천당가 직계의 피가 독 기운에 반응하여 폭발하듯 깨어났다. 무기의 등 뒤 옷감 너머로 희미하게 붉고 푸른 기류가 소용돌이치며, 기이한 태극의 문양이 등뼈를 따라 떠올랐다.
동시에 무기의 목덜미 피부 위로 푸르스름한 사천당가 고유의 독맥 문양(毒脈 紋樣)이 핏줄처럼 솟구쳐 올랐다. 꼬여 있던 태극경맥이 천초독의 극양(極陽) 성질을 흡수하며 역류 운기를 시작한 것이다.
"으우우으……!"
무기의 입에서 고통 섞인 신음이 흘러나왔으나, 그의 전신 골격이 우두둑 소리를 내며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체내에 침투한 천초독의 성분이 백독불침(百毒不侵)의 경맥 세포들에 의해 갈가리 분해되어 정화되었다.
치이이익.
무기의 온몸의 땀구멍을 통해 시커멓고 독한 기운을 품은 땀방울들이 뿜어져 나왔다. 땀이 돌바닥에 떨어지자 쉭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단 1다경 만에, 무기의 안색이 본래의 맑고 투명한 빛깔로 돌아왔다. 그의 백독불침 체질이 완벽하게 각성한 것이었다.
"헤헤…… 물, 달다……."
무기가 다시 바보처럼 웃으며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독고풍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제자의 맥박을 짚었다. 경맥 속에 잔존하던 천초독의 흔적은 이미 깨끗이 씻겨 나가 있었고, 오히려 단전의 내공 기틀이 한층 더 정순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때였다.
장서각 지붕 위, 검게 그을린 기와 그늘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자객이 경악어린 신음을 흘렸다.
"흡……!"
그는 제갈우가 거액의 금전으로 고용한 사천당가의 방계 살수, 당적(당적)이었다. 자신이 직접 조제한 천초독을 마시고도 멀쩡히 살아 숨 쉬는 바보 소주의 모습을 목격한 당적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독살 실패를 직감한 당적의 눈에 잔혹한 살기가 서렸다. 그는 소리 소문 없이 일을 처리하라는 명령을 포기하고, 직접 무기와 외팔이 노인의 목을 베기 위해 지붕 밑으로 몸을 날렸다.
스스슥!
당적이 자줏빛 독포를 휘날리며 허공에서 두 자루의 독이 발린 쌍단검을 역수로 쥐고 무기의 목덜미를 향해 암습해 들어왔. 그의 신법은 바람 소리조차 내지 않을 정도로 은밀하고 빨랐다.
무기는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멍하니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독고풍의 깊은 눈동자가 얼음처럼 차갑게 빛났다. 노인은 오른팔 소매를 허리에 묶은 채, 왼손의 검지와 중지를 모아 당적의 낙하 궤적을 향해 가볍게 튕겼다.
그것은 검을 쥐지 않고도 손가락 끝에서 보이지 않는 미세한 검기를 방출하는 지검(指劍)의 기틀이었다.
쉬이익!
소리도 없고, 바람의 흔적도 없는 무형의 검기 실선이 허공을 갈랐다.
당적은 허공에서 무언가 치명적인 위험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몸을 비틀려 했다. 그러나 대종사의 지검은 일류 살수의 반응 속도보다 훨씬 더 쾌속했다.
퍽! 퍽!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당적의 양 무릎 뼈에 보이지 않는 구멍이 뚫렸다. 그의 무릎 경맥을 관통한 지검의 기운이 혈도를 완벽하게 차단해 버린 것이었다.
"끄아악!"
당적은 비명을 지르며 쌍단검을 떨어뜨린 채 마당 돌바닥 위로 처참하게 굴러떨어졌다. 무릎에서 붉은 피가 배어 나오며 그의 다리는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당적은 기어서 도망치려 발버둥 쳤으나, 독고풍은 이미 소리 없는 걸음으로 그의 코앞에 당도해 있었다. 노인의 외팔 소매가 찬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은 마치 저승사자의 장포와도 같았다.
당적은 공포에 질려 소매 속에서 자결용 독약 주머니를 꺼내 입에 넣으려 했다. 그러나 독고풍의 왼손 손가락이 번개처럼 뻗어 나와 당적의 턱 관절을 짚어 부러뜨렸다.
뚝.
"으읍……! 으으!"
턱이 빠진 당적은 독약을 삼키지 못하고 피와 침을 흘리며 바닥을 굴렀다. 독고풍은 냉혹한 눈빛으로 당적의 전신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노인의 왼손이 살수의 자줏빛 독포 안감을 거칠게 찢어발겼다.
바스락.
당적의 품속 깊은 곳에서 정교하게 접힌 서한 한 장이 흘러나왔다. 독고풍이 서한을 펼치자, 서한 하단에 붉게 찍힌 삼장로 제갈우의 개인 인장과 그의 날카로운 친필 서명이 눈에 들어왔.
[장서각의 외팔이 늙은이와 바보 소주를 흔적 없이 독살하라. 실패는 용납지 않는다. - 제갈우]
제갈우가 사천당가의 살수를 고용해 가문의 마지막 핏줄을 암살하려 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음모의 물증이었다.
독고풍의 눈에 맺힌 살기가 극에 달했다. 노인은 바닥에 엎드려 바르르 떨고 있는 당적의 목덜미를 왼손 손가락으로 가볍게 짚었다.
우두둑.
가혹한 골절음과 함께 당적의 목뼈가 완벽하게 꺾였다. 살수는 단 한 번의 신음도 지르지 못한 채, 눈동자를 부릅뜬 채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독고풍은 피 묻은 제갈우의 암살 사주 밀서를 소중히 접어 자신의 도포 품속 깊은 곳에 밀장했다. 그리고 바보처럼 웃고 있는 제자 무기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다짐했다. 이 추악한 위선자들의 목을 베어 가문의 원한을 갚을 날이 머지않았음을.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