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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탕약과 좁혀지는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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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각의 낡은 목조 문이 밤비에 젖어 비명을 지르듯 삐걱이는 소리를 냈다.


비바람을 뚫고 서고 안으로 들어선 독고풍은 단전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극심한 열기를 참지 못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유일한 왼팔에는 피투성이가 된 채 혼절한 백무기가 안겨 있었다.


“커흑……!”


독고풍의 입술 사이로 검붉은 핏덩이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바닥돌에 떨어진 피는 비정상적인 고열을 품고 있어, 차가운 빗물과 닿자마자 치익 소리를 내며 하얀 김을 피워 올렸다. 목뒤 아문혈(大椎穴)에 깊숙이 박힌 은빛 금침이 그의 분노와 살기에 공명하듯 미세하게 떨리며 경맥을 사정없이 갉아먹고 있었다. 금침제맥술로 강제로 이어붙인 경맥이 한계 시간에 다다르자, 온몸의 뼈마디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통이 노인을 덮쳤다.


하지만 독고풍은 자신의 고통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그는 떨리는 왼손으로 무기를 들어 올려 장서각 모퉁이 목판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무기의 상태는 처참했다. 규율당 지하 감옥에서 당한 가혹한 소금물 채찍질로 인해 등의 옷자락은 갈가리 찢겨 있었고, 그 틈새로 붉은 살점이 뒤엉켜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설도인이 무기의 옷 안감에 몰래 꿰매어 둔 어린 사슴 가죽 ‘현갑피’가 채찍의 파괴력을 흡수하여 가슴과 장기의 파열은 막아냈지만, 겉으로 드러난 가죽 피부는 처참하게 찢겨 나간 상태였다. 손톱 밑에 박혔던 쇠바늘 자국에서도 여전히 붉은 피가 흘러내려 소년의 손가락을 적시고 있었다.


독고풍은 벙어리 행세를 해야 했기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덜덜 떨리는 왼손으로 무기의 손을 감싸 쥐었다. 소년의 체온은 급격히 떨어져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바로 그때, 장서각 뒷문에서 아주 미세한 기척이 들려왔다. 빗소리에 묻힐 만큼 가벼운 발소리였지만, 화경의 검의를 유지하고 있던 독고풍의 심안(心眼)을 피할 수는 없었다. 노인이 본능적으로 살기를 뿜어내며 문가를 응시하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낮게 흘러들어왔.


“풍 어르신! 저희입니다, 문을 열어주십시오!”


설아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독고풍이 몸을 움직여 뒷문의 빗장을 풀자, 머리에 삼베 두건을 쓴 설도인과 초록색 저고리를 입은 설아가 비에 젖은 채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방 안으로 들어선 설아는 목판 침대에 피투성이가 된 채 누워 있는 무기를 발견하고는 힉, 하며 짧은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맑은 동공이 커다랗게 흔들리며 눈물이 왈칵 고였다.


“무기야……! 세상에, 이 몰골이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설아는 떨리는 손으로 무기의 찢어진 등을 만지려다, 소금물에 절어 있는 상처를 보고는 차마 손을 대지 못한 채 피눈물을 흘렸다. 설도인 역시 침통한 안색으로 대나무 지팡이를 짚으며 다가왔다. 그의 눈길이 독고풍의 목뒤에서 피어오르는 검붉은 기류와 미세하게 솟구친 은침의 끝부분에 닿았다.


“풍 어르신…… 결국 금침을 움직이셨구려. 그것도 이토록 깊이 꽂으시다니, 경맥이 완전히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설도인의 목소리에는 깊은 회한과 걱정이 서려 있었다. 과거 독고풍의 아버지 독고성에게 목숨을 빚진 은혜를 갚기 위해 평생을 은인자중하며 장서각을 비호해 온 노장로였기에, 독고풍이 자신의 수명을 깎아 무기를 구출해 냈음을 단숨에 간파한 것이다.


독고풍은 대답 대신 고개를 나지막이 끄덕이며 무기의 상처를 가리켰다. 자신의 목숨보다 제자의 안위가 먼저라는 묵언의 지시였다.


“설아야, 슬퍼할 시간이 없다. 당장 약상자를 열어라.”


설도인의 단호한 명령에 설아는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품속에서 작은 목조 상자를 꺼냈다. 그녀는 장서각 구석에 쌓인 깨끗한 한지를 가져와 무기의 등에 엉겨 붙은 피와 소금물을 정성스럽게 닦아내기 시작했다.


“아우으…… 스…… 승님…….”


차가운 물수건이 상처에 닿자, 혼절해 있던 무기가 몽롱한 신음을 흘리며 미세하게 몸을 떨었다. 설아는 가슴이 미어지는 고통을 참으며, 약선당 하급 약사 장운이 몰래 챙겨주었던 ‘어혈 소고약’을 손가락 가득 덜어내어 무기의 찢어진 살가죽 위에 정교하게 바르기 시작했다.


어혈 소고약의 쌉싸름하고 시원한 약초 향이 장서각 내부의 피비린내를 덮으며 빠르게 퍼져 나갔다. 약이 닿자마자 무기의 붉게 일어났던 살가죽이 진정되며 열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어 설아는 설도인이 목숨을 걸고 빼돌려 준 하급 영약 ‘철골단’ 한 알을 무기의 입술 사이에 밀어 넣었다.


“무기야, 삼켜라. 제발 살아다오.”


무기는 혼미한 와중에도 설아의 목소리를 듣고 본능적으로 목구멍을 움직여 알약을 삼켰다. 철골단이 단전으로 내려가는 순간, 소년의 내부에 꼬여 있던 대기만성형 태극경맥이 미세하게 요동치며 영약의 기운을 무서운 속도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부러진 뼈마디와 찢어진 경맥의 틈새로 정순한 약력이 흘러들어가며, 무기의 호흡이 서서히 고르고 단단하게 안정을 찾아갔다.


제자의 숨결이 안정되는 것을 확인한 독고풍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나, 동시에 그의 가슴팍에서 뚜두둑 하는 불길한 뼈 소리와 함께 극심한 각혈이 다시 터져 나왔.


“풍 어르신!”


설도인이 급히 다가와 독고풍의 왼손 맥을 짚었다. 노장로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진기가 역류하여 심장 주변의 경맥이 숯검둥이처럼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두면 한 시진도 버티지 못하고 전신 마비가 올 것입니다!”


설도인은 주저 없이 소매 속에서 작은 한옥함(寒玉盒)을 꺼냈다. 함을 열자, 장서각 내부의 온도가 단숨에 떨어질 만큼 차가운 푸른빛의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설도인이 평생을 바쳐 모아둔 천년한천의 결정(千年寒氷) 조각들이었다.


“어르신, 고통스럽겠지만 참으셔야 합니다.”


설도인은 한천의 결정을 가루 내어 독고풍의 목덜미 아문혈과 가슴의 단중혈 주변에 아낌없이 발랐다. 극양(極陽)의 화독으로 끓어오르던 독고풍의 피부 위에 차가운 한빙의 기운이 닿는 순간, 치이이익 하는 가공할 만한 소리와 함께 자욱한 하얀 냉기 기류가 서고 천장까지 치솟아 올랐다.


“으윽……!”


독고풍은 벙어리 행세를 해야 했기에 이빨이 깨질 정도로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삼켰다. 전신의 뼈를 깎아내는 듯한 차가운 한독이 타들어 가던 경맥 속으로 파고들어 가 화독을 억누르기 시작했다. 설도인은 자신의 대나무 지팡이를 바닥에 짚은 채, 왼손으로 독고풍의 등을 짚고 정순한 도가 진기를 흘려보내 한빙의 기운이 경맥의 끊어진 틈새를 부드럽게 감싸 안도록 인도했다.


차가운 냉기와 뜨거운 화독이 독고풍의 체내에서 격렬하게 충돌하며 자욱한 안개를 만들어냈다. 침상 주변은 온통 하얀 수증기로 뒤덮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약 반 시진 동안의 사투 끝에, 독고풍의 거친 호흡이 마침내 평온을 되찾았고 목뒤의 은침 주변에 도드라졌던 검붉은 핏줄들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후우…… 간신히 고비는 넘겼습니다.”


설도인이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어두웠다. 이번 금침 기동으로 인해 독고풍의 남은 수명이 최소 1년은 단축되었음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 정적을 깨뜨리고 장서각 외부의 비바람 소리 사이로 불길한 소음이 섞여 들려왔다.


저 멀리 옥녀봉 방향에서부터 수십 명의 발자국 소리가 가파른 바위 계단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빗소리 장막을 뚫고 횃불의 타오르는 매캐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스며들었다.


설도인이 번개처럼 고개를 돌려 창밖을 응시했다.


“제갈우가 움직였구려. 조웅이 지하 감옥에서 폐인이 되고 소주 무기가 사라진 것에 격노하여, 장서각 주변의 포위망을 좁히고 있습니다.”


제갈우는 조웅의 어깨 견정혈에 남겨진 미세하고 예리한 구멍 자상 흔적을 보고, 장서각 내부에 자신을 압도할 수 있는 화경의 대종사가 숨어있음을 확신한 것이 분명했다. 그는 즉시 화산파의 순찰 도사 수십 명을 비상 소집하여 장서각을 철저히 봉쇄하라는 명령을 내린 터였다.


쉬이이익! 툭!


주황색의 날카로운 불빛들이 장서각의 허름한 목조 창살 틈새로 사정없이 들이쳤다. 어두웠던 서고 내부가 순간적으로 붉고 스산한 횃불 그림자로 가득 찼다.


“장서각 내부에 있는 자들은 들어라! 삼장로님의 밀명이다! 규율당의 탈옥범 백무기와 그 배후를 추적 중이니, 즉시 문을 열고 검열을 받으라!”


거친 화산파 순찰 대원의 호통 소리가 폭풍우를 뚫고 장서각 대청 문 앞마당을 가득 메웠다. 횃불을 든 무인들의 그림자가 문앞에 촘촘하게 드리워지며 숨 막히는 긴장감이 사방을 조여왔다.


설아는 공포에 질려 무기의 품에 얼굴을 묻었고, 독고풍의 왼손 끝이 다시 한번 차갑게 굳어지며 대나무 빗자루를 향해 뻗어 나갔다. 문밖의 횃불 불빛이 장서각의 낡은 문틀을 붉게 물들이며, 폭풍전야의 정적이 장내를 지배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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