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침의 기동과 지하 감옥 침투
“키이이이잉!”
예리한 이명이 장서각의 낡은 들보와 먼지 쌓인 책장 사이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허공을 부유하던 누런 서책의 먼지들이 마치 시간의 흐름 속에 박제된 것처럼 일시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독고풍의 왼손 손가락이 목뒤 아문혈(啞門穴)에 박힌 은빛 금침을 천천히, 그러나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비틀어 돌렸다.
“으윽……!”
노인의 마른 입술 사이로 쇠가 긁히는 듯한 거친 신음이 흘러나왔다. 오른팔이 잘려 나가 허리춤에 초라하게 묶여 있는 빈 소매가 그의 격렬한 떨림을 따라 요동쳤다. 왼손 하나로 감당해야 하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10년 동안 스스로 단전을 닫고 경맥을 우회시켜 가두어 두었던 역천폐맥공(逆天閉脈功)의 빗장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해방이 아니었다. 굳게 닫혀 있던 기문이 강제로 열리며, 타들어 가는 듯한 극양(極陽)의 진기가 끊어지고 망가진 경맥의 틈새로 사정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마치 끓는 쇳물을 전신 뼈마디에 주입하는 듯한 가혹한 고열이었다. 목덜미와 이마의 살가죽 위로 검붉은 핏줄이 터질 듯이 도드라졌고, 은침이 박힌 아문혈 주변에서는 미세한 핏방울이 흘러내려 마의 깃을 붉게 적셨다.
‘독고풍의 가슴속 금침 7개의 가혹한 대가’.
노인은 이를 악물었다. 금침제맥술(金針制脈術)을 펼쳐 억지로 경맥을 이어붙이는 대가는 자신의 수명을 스스로 깎아 먹는 자멸의 길이었다. 한 번 기동할 때마다 심장 경맥이 미세하게 파열되어 생명의 불꽃이 줄어들 터였다. 하지만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 뜨거운 진기만이 지금 지하 감옥에서 죽어가는 제자, 의형제의 유일한 혈육인 백무기를 구원할 유일한 힘이었다.
독고풍은 대청 바닥에 피투성이가 된 채 누워 있는 늙은 아복을 내려다보았다. 아복은 모진 매질을 당해 온몸이 으스러진 상태에서도, 주군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화경(化境)의 기세를 보며 경외감 어린 눈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노인은 말없이 왼손을 뻗어 아복의 어깨를 가볍게 짚어 주었다. 그의 정순한 진기가 아복의 심맥을 감싸며 고통을 진정시켰다. 노인은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장서각의 어둠 속으로 신형을 날렸다.
슈우우욱!
장서각 문을 나서는 독고풍의 몸은 이미 인간의 속도를 초월해 있었다. 늦은 오후의 황혼이 저물고 화산 산자락에 짙은 야음과 차가운 밤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노인의 뜨겁게 달아오른 살결에 닿자마자 치익 소리를 내며 미세한 수증기로 기화했다.
노인은 화산파의 가파른 바위 절벽과 지붕 위를 미끄러지듯 달렸다. 그의 발끝은 기척을 전혀 남기지 않는 낙엽소청보(落葉掃淸步)의 극의를 담고 있었다. 빗물로 젖어 미끄러운 기와 위를 디디면서도 단 한 방울의 물조차 튀기지 않았고, 지면을 스칠 때마다 바람 소리마저 삼켜버렸다. 차가운 빗줄기는 노인의 발자국과 뿜어내는 기운의 흔적을 흔적도 없이 씻어내 주었다.
이윽고 독고풍의 신형이 화산파의 가장 어둡고 삼엄한 전각, 규율당(規律堂)의 높은 담장 위에 깃털처럼 내려앉았다.
규율당 주변은 검은 가죽 옷을 입은 집사들이 횃불을 든 채 촘촘하게 경계를 서고 있었다. 빗줄기 속에서도 횃불의 붉은 불빛이 바위 바닥을 스산하게 비추었다.
독고풍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시각을 차단하자, 그의 기경팔맥을 타고 흐르는 초감각적 청력, 즉 심안 청음(心眼 聽音)의 영역이 사방 수십 장의 공간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빗소리 장막을 뚫고 사방에서 불규칙하게 들려오는 경비병들의 심장 박동 소리와 호흡 주기가 노인의 머릿속에 붉은 점으로 찍혔다. 그들의 발걸음 무게와 내공의 수위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저 아래, 지하 감옥으로 통하는 무거운 철문 뒤편에서 가장 짙은 살기와 피비린내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독고풍은 숨을 멈추고 신형을 띄웠다. 순찰 무인 두 명이 횃불을 들고 담장 밑을 지나가는 찰나, 노인은 바람결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소리 없이 내려와 벽면의 짙은 어둠 속으로 자신을 은폐했다. 횃불의 불빛이 그의 코앞을 스쳐 지나갔으나, 경비병들은 자신들의 옆에 죽음의 그림자가 서 있다는 사실을 추호도 눈치채지 못했다.
지하 감옥으로 내려가는 돌계단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습했다. 벽면에 걸린 횃불이 흔들릴 때마다 기괴한 그림자가 요동쳤다. 독고풍은 낙엽소청보의 보법을 극도로 미세하게 조정하며, 계단에 맺힌 이끼와 물방울을 밟지 않고 유령처럼 하강했다.
그러나 지하 감옥 입구의 철문 바로 앞에는 삼엄한 장애물이 버티고 서 있었다.
가슴에 붉은 규율당 문양이 새겨진 가죽 옷을 입은 거구의 사내, 규율당의 하급 집사 도원(도원)이었다. 그는 굵은 형벌용 곤장을 옆에 세워둔 채, 예리한 눈빛으로 통로의 어둠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은 언제든 벽면에 매달린 청동 경보 종의 밧줄을 잡아당길 수 있는 거리에 머물러 있었다.
도원은 삼류 극처의 외공을 수련한 자로, 기체의 미세한 변화를 읽어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스으으으.
지하 통로의 차가운 정적 속에서 아주 미세한 기류의 일그러짐이 발생했다. 도원의 귓바퀴가 기이하게 실룩였다. 빗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야 할 축축한 공기 속에서, 아주 낯설고 뜨거운 열기가 미세하게 느껴진 것이다.
도원의 미간이 좁혀지며 눈동자에 경계의 빛이 서렸다.
“누구냐?”
그가 굵은 목소리로 나지막이 경고하며 오른손을 허리춤의 검자루로 가져갔다. 동시에 그의 왼손이 벽면에 매달린 청동 경보 종의 밧줄을 향해 사정없이 뻗어 나갔. 손끝이 거친 밧줄에 닿기까지 단 한 치의 거리만이 남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독고풍의 깊은 동공 속에서 푸른 진기의 불꽃이 번뜩였다.
노인은 이형환위(移形換位)의 신법을 전개했다. 찰나의 순간, 도원의 망막에 비친 독고풍의 형체가 물 안개처럼 흐릿하게 지워졌다. 허실상생의 극의가 도원의 시각적 인지 능력을 완벽하게 속여 넘긴 것이었다.
도원이 청동 종의 밧줄을 움켜쥐려던 그 기괴한 정지의 찰나, 차가운 빗물 냄새와 숯불처럼 뜨거운 진기의 열풍이 도원의 등 뒤에서 동시에 뿜어져 나왔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죽음의 그림자가 도원의 사각지대를 완전히 선점한 채, 그의 등 뒤에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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