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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율당 지하의 비명과 분노하는 은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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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악! 귀, 귀신이다!”


제갈충은 비명을 지르며 청풍검마저 바닥에 내팽개친 채 안개 속으로 광분하듯 도망쳤다. 그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내내 백무기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소년은 도망치는 원수의 등 뒤를 차가운 눈빛으로 응시하며, 천천히 붕대 감긴 목검을 거두었다.


절벽 바위를 딛고 올라오느라 손가락 끝에서는 붉은 피가 배어 나왔고 발목 인대는 터질 듯 시큰거렸지만, 무기의 마음은 고요한 심연과 같았다. 등 뒤 옷자락 안쪽에 꿰매어 둔 사슴 가죽 현갑피가 아니었다면 제갈충의 마지막 일격에 내장이 파열되었을 터였다. 무기는 안개 낀 절벽 아래를 다시 한번 내려다보았다. 어둠 속에 잠긴 망우곡의 험준한 지형이 소년의 머릿속에 한 폭의 지도처럼 완벽하게 각인되었다.


날이 밝자마자 화산파 삼장로 제갈우의 처소는 분노와 경악으로 뒤덮였다.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밤새 도망쳐 온 제갈충이 무릎을 꿇은 채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아버님! 그 바보 녀석은 진짜 바보가 아닙니다! 만장절벽 아래로 떨어졌는데도 허공을 딛고 귀신처럼 살아 돌아왔습니다! 제 목덜미에 목검을 겨누던 그 눈빛은…… 정녕 인간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갈우의 염소수염이 잘게 떨렸다. 외문 집사 배진이 손목 뼈가 박살 나 돌아온 이후로 줄곧 장서각을 의심해 왔지만, 설마 그 백치 소주가 직접 무공을 행사했을 줄은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배진은 의원들이 뼈를 맞추었음에도 매달 원인 모를 손목 마비 증상을 겪으며 폐인처럼 지내고 있었다. 그 모든 기이한 일들의 배후가 바로 백무기, 혹은 장서각에 숨어있는 정체불명의 고수임이 확실해진 것이다.


“설도인 그 늙은 여우가 장문인 패검의 신표까지 들고 나와 비호한 이유가 있었군. 장서각 내부에 화산의 정통 비급을 노리는 역적이 숨어있거나, 그 바보 녀석 자체가 마두의 조종을 받고 있는 게 틀림없다.”


제갈우의 눈에 음험한 살기가 서렸다. 사적으로 암습하려던 계획이 실패했으니, 이제는 문파의 공적인 사법 권력을 움직일 차례였다. 그는 즉시 자신의 사촌이자 화산파 사법 기관의 수장인 규율당주 조웅을 움직였다.


같은 날 정오, 장서각의 고요함은 철갑 구두 소리에 무참히 깨어졌다.


검은 가죽 옷을 입고 가슴에 붉은 규율당 문양을 새긴 집사 수십 명이 장서각 마당을 포위했다. 규율당주 조웅이 차가운 철갑옷을 도포 안에 입은 채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굵은 형벌용 채찍이 쥐어져 있었다.


독고풍은 잘려 나간 오른팔 소매를 허리춤에 묶은 채, 왼손으로 다 닳은 대나무 빗자루를 쥐고 마당을 쓸다 멈춰 섰다. 노인은 철저히 벙어리 행세를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서각의 백치 백무기를 문파 반역 및 영약 절도 혐의로 긴급 포박한다!”


조웅의 서슬 퍼런 외침과 함께 규율당 집사들이 서고 안으로 들이닥쳐 무기를 거칠게 끌고 나왔. 무기는 굵은 쇠사슬에 사지가 묶인 채 마당 바닥으로 엎어졌다.


“어우우? 아저씨들, 나랑 쇠사슬 놀이 하는 거야? 헤헤, 무기 무거워! 빗자루 형아, 밥 줘!”


무기는 침을 흘리며 바보처럼 웅얼거렸지만, 쇠사슬을 쥔 손가락 끝은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독고풍이 빗자루를 가로막으며 조웅의 앞을 막아서려 했다. 노인의 깊은 눈동자 속에서 10년간 억눌러왔던 살기가 찰나의 순간 번뜩였다. 그러나 조웅은 가당치 않다는 듯 왼손으로 독고풍의 어깨를 밀쳐냈다.


“물러서라, 서고지기 늙은이! 규율당의 집행을 방해하면 너 역시 반역죄로 다스리겠다!”


진기를 쓰지 않는 독고풍의 몸이 뒤로 크게 비틀거리며 흙바닥에 쓰러졌다. 빗자루가 마당 구석으로 굴러떨어졌다. 무기는 스승이 바닥에 쓰러지는 모습을 본 순간, 단전 속 태극경맥이 폭주하듯 날뛰는 것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쇠사슬을 끊고 조웅의 목을 베어버리고 싶었지만, 독고풍은 쓰러진 채로 무기를 향해 미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참아라, 무기야. 정체가 드러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무기는 이빨을 깨물며 살기를 삼켰다. 소년은 쇠사슬에 묶인 채 규율당 집사들에게 질질 끌려 나갔다. 장서각 뒤편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늙은 벙어리 일꾼 아복은 피눈물을 흘리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화산파 규율당의 지하 감옥은 빛 한 점 들지 않는 음산하고 축축한 동굴이었다. 사방의 돌벽에는 말라붙은 핏자국이 가득했고, 차가운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무기는 가혹한 형틀에 사지가 묶인 채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그의 앞에는 규율당주 조웅과 고문 집행관 갈 사형이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갈 사형의 손에는 시뻘겋게 끓는 물이 담긴 대형 항아리가 들려 있었다. 그것은 살을 찢고 고통을 극대화하기 위해 소금을 가득 넣어 끓인 규율당 태형용 농축 소금물이었다.


“자, 바보 녀석아. 어제 옥녀봉에서 제갈충 사제를 절벽 아래로 밀어 넣고 귀신처럼 살아 돌아온 비결이 무엇이냐? 장서각 배후에서 너에게 화산의 신법을 전수해 준 고수가 누구인지 대라!”


조웅이 형벌용 채찍을 갈 사형에게 건넸다. 갈 사형은 농축 소금물 항아리에 가시가 돋친 채찍을 푹 담갔다 건져 올렸다. 채찍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소금물방울이 돌바닥에 닿자 치익 소리를 내며 거품이 일었다.


“말하지 않으면 네 등 가죽이 소금물에 녹아내릴 것이다.”


찰싹! 촤아아악!


가혹한 채찍 소리가 지하 감옥의 정적을 깨뜨렸다. 소금물이 묻은 가시 채찍이 무기의 등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얇은 마의가 단숨에 찢겨 나갔고, 가시가 살점을 파고들며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피와 소금기가 찢어진 살가죽 속으로 동시에 침투하는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극심한 통증이 무기의 전신 신경을 강타했다.


“으아아아악!”


무기는 본능적으로 비명을 질렀으나, 이내 이빨이 깨질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소년은 전신의 근육과 가죽을 순간적으로 수축시키는 철포삼 변형 호신공을 전개했다. 단전의 정순한 태극 진기가 척추 경맥을 감싸 안으며 뼈가 으스러지는 타격을 가까스로 막아냈다.


“제법 맷집이 좋구나. 어디 이 약물도 견뎌내는지 보자.”


갈 사형이 비열하게 웃으며 정신을 흐트러뜨리는 취적 환각 약물을 무기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그러나 약물이 무기의 호흡기로 스며드는 순간, 소년의 체내 깊숙이 각성되어 있던 백독불침 체질이 격렬하게 반응했다. 사천당가 직계의 피가 약물의 독성 성분을 단숨에 감싸 안아 정화해 버린 것이다. 무기의 눈빛은 오히려 더욱 맑고 투명해졌다.


조웅은 약물마저 통하지 않자 초조해졌다. 그는 품속에서 뼈를 깎는 가늘고 예리한 쇠바늘들을 꺼내 들었다.


“이래도 자백하지 않겠느냐? 네 손톱 밑을 이 바늘로 하나씩 꿰뚫어 주마!”


서늘한 쇠바늘이 무기의 엄지손톱 밑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의 뼈를 긁어내는 듯한 가혹한 고통이 뇌맥을 때렸다. 무기는 눈앞이 흐려지는 와중에도, 장서각 마당에서 묵묵히 낙엽을 쓸어내리던 스승 독고풍의 초라하지만 숭고한 빗자루질 모습을 떠올렸다.


‘내가 입을 열면 스승님이 죽는다. 가문의 마지막 불씨가 꺼진다.’


무기는 혀를 깨물며 피를 삼켰다. 소년의 입술 사이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지만, 끝내 단 한마디의 자백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조웅과 갈 사형은 고통 속에서도 침묵을 지키는 소년의 기괴한 인내심 앞에 본능적인 오싹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장서각 마당은 폭풍전야의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독고풍은 마당 한구석에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의 텅 빈 오른팔 소매가 바람에 쓸쓸히 펄럭였다. 그때, 장서각 대문을 열고 늙은 벙어리 일꾼 아복이 피투성이가 된 채 기어 들어왔. 아복은 규율당 주변을 감시하다 집사들에게 발각되어 모진 매질을 당했음에도, 주군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기어 온 것이었다.


아복은 독고풍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붉게 충혈된 눈으로 눈물을 흘리며 규율당이 위치한 북쪽 전각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 말을 하지 못하는 그의 입에서 처절한 윽, 윽 소리만이 흘러나왔다. 그의 눈빛은 피눈물 어린 호소로 가득 차 있었다.


‘소주님이…… 무기가 지하 감옥으로 끌려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독고풍의 왼손이 바닥의 흙을 움켜쥐었다. 노인의 손가락이 진흙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며 바위처럼 단단하게 굳어졌다.


의형제 백천성이 멸문지화의 불길 속에서 자신에게 탁부했던 유일한 혈육. 세상에서 가장 어리숙하고 맑은 영혼을 지닌 제자 무기가, 지금 저 추악한 위선자들의 지하 감옥에서 피를 흘리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독고풍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굽어 있던 등이 비장하게 펴지며, 성성한 백발이 바람도 없는 마당에서 사방으로 거칠게 휘날리기 시작했다. 노인의 온몸에서 10년간 억눌러왔던 전설적인 검성의 무시무시한 살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마당 주변의 온도가 단숨에 얼음장처럼 차갑게 내려앉았다.


노인은 한쪽 소매를 휘날리며 장서각 대청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독고풍은 자신의 목뒤 아문혈(啞門穴) 부근에 손을 가져갔다. 피부 밑 깊숙이 박혀 있는 은빛 금침 7개. 생명력을 등가교환하여 끊어진 경맥을 강제로 이어붙이는 가혹한 시한부의 열쇠였다. 침을 한 번 회전시킬 때마다 수명이 1년씩 줄어들고 전신 마비가 촉진될 터였지만, 노인의 눈빛에는 단 한 줌의 망설임도 없었다.


“무기야…… 스승이 간다.”


독고풍이 목뒤 아문혈에 깊숙이 박힌 은빛 금침 하나를 왼손 손가락으로 쥐고 서서히 돌렸다.


키이이이잉!


예리한 이명이 서고 내부를 울림과 동시에, 장서각 전체에 피어오르던 낡은 서책의 먼지들이 일시에 허공에 정지했다. 시간마저 얼어붙은 듯한 거대한 검의의 공명이 장서각의 침묵을 깨뜨리며 대지를 조용히 가르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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