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쐐기
“콜록! 쿨럭……!”
한태성의 고철 정비실 바닥에 쓰러진 차건우는 흉부를 쥐어짜며 검은 피가 섞인 가래를 뱉어냈다. 시체 구덩이에서 흡입한 녹색 유독 가스가 폐부를 긁어내릴 때마다 온몸이 격렬하게 떨렸다. 오른쪽 다리는 이미 감각을 완전히 잃고 통나무처럼 굳어 있었다.
“위성의 추적을 겨우 따돌렸나 싶더니, 꼴이 그게 뭐냐.”
정비실 벽면에 설치된 마개조 주파수 교란기가 웅웅거리며 거친 소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한태성은 낡은 엔지니어 고글을 이마로 올리며 건우의 상태를 살폈다. 그의 눈길이 건우가 피 묻은 손으로 꽉 쥐고 있는 은색 장치에 머물렀다. 머리카락보다 얇은 수십 개의 나노 리드가 생물처럼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장치, 프로토타입 시냅스 필터였다.
“찾아왔군. 유령의 유품을.”
“이걸…… 어떻게 해야 합니까?”
건우가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이마의 나노 통제 칩 흉터가 파랗게 발열하며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뇌 과부하 수치는 이미 80%에 육박했다.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고통에 관자놀이의 혈관이 터질 듯이 꿈틀거렸다.
한태성의 얼굴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노인은 담배 파이프를 작업대에 탁탁 털어 불씨를 끄고는, 수술용 메스와 구식 전기 납땜 인두기를 꺼내 들었다.
“목덜미를 절개하고 네 뇌 속에 박힌 이지스의 나노 칩 바로 옆에 이 필터를 이식해야 한다. 하지만 경고하는데, 마취는 없다.”
“……마취가 없다고요?”
“마취제를 쓰면 네 중추신경계가 마비되어 뇌파 주파수가 완전히 가라앉는다. 그렇게 되면 네가 직접 미세 자력으로 필터의 나노 리드들을 제어 칩의 미세 회로에 정밀하게 밀착시킬 수 없어. 내가 네 목을 째는 동안, 너는 깨어 있는 정신으로 그 끔찍한 고통을 버티며 자력을 조작해야 한다. 1밀리미터라도 어긋나면 네 뇌는 그 자리에서 통째로 구워져 뇌사 상태에 빠질 거다.”
한태성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타협도 없었다. 이것은 힘을 얻기 위한 정당한 대가이자, 기계 제국의 사슬을 끊기 위해 치러야 할 처절한 등가교환의 법칙이었다. 공짜로 얻어지는 구원은 없었다.
건우는 피 묻은 침을 삼키며 낡은 수술대 위에 엎드렸다. 차가운 무기질의 철판 감각이 뺨에 닿았다.
“시작해라.”
“이 꽉 깨물어라. 소리 지르면 혀가 잘려 나갈 테니까.”
한태성이 건우의 목덜미에 차가운 소독약을 바른 뒤, 메스를 대고 망설임 없이 내리 그었다.
“서어억—!”
“……!!”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극통이 건우의 전신을 강타했다. 생살이 찢겨 나가고 척추 근처의 신경 다발이 메스 끝에 닿는 감각이 생생하게 뇌리로 전해졌다. 뼈를 깎는 듯한 고통에 건우의 손가락이 철제 수술대 모서리를 움켜쥐었다. 쇠판이 찌그러지는 날카로운 소음이 정비실을 채웠다.
“칩의 억제 회로가 보인다. 파랗게 발광하는 저 빌어먹을 이지스의 낙인 말이다.”
한태성이 핀셋으로 찢어진 살점 사이를 벌렸다. 건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부터가 진짜 지옥이었다. 건우는 극통 속에서도 이성을 붙잡기 위해 ‘지자기 동조 명상법’을 가동했다. 사방에서 흐르는 보이지 않는 자기장의 파동을 인지하며, 자신의 내면에 흐르는 미세 전류를 곤두세웠다.
그의 ‘미세 전류 감지’ 능력이 목덜미 속 파랗게 점멸하는 나노 칩의 회로도를 머릿속에 3D 홀로그램처럼 시각화했다.
“필터를 넣는다. 리드를 유도해라!”
한태성이 핀셋으로 은색 시냅스 필터를 절개 구역 내부로 밀어 넣었다. 필터의 미세한 나노 촉수들이 살덩이 속에서 꿈틀거리며 이지스의 제어 칩을 향해 뻗어 나갔.
건우는 손끝을 허공에 대고 자신의 미세 자력을 칼날처럼 정밀하게 연마했다. 머리카락보다 얇은 필터의 리드들을 자력선으로 하나하나 붙잡아, 나노 칩의 제어선에 밀착시키는 정밀 조작을 시작했다. 극심한 두통이 밀려와 집중력이 흐트러지려 할 때마다 살이 찢기는 통증이 그를 강제로 깨웠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마치 폭풍우 속에서 바늘귀에 실을 꿰는 듯한 극한의 정밀 작업이었다. 마침내 필터의 나노 리드가 제어 칩의 핵심 접합부에 닿는 순간이었다.
“콰르릉—!”
건우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번개가 치는 듯한 충격이 폭발했다. 칩과 필터가 물리적으로 결합하는 순간, 이지스의 통제망이 외부 침입을 감지하고 강력한 전자기 역류 신호를 건우의 중추신경계로 방출한 것이다.
“꺼흑……! 헉!”
건우의 전신 근육이 강철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요동치더니 이내 박동을 멈추려 했다. 뇌세포가 순식간에 타들어 가며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이대로 뇌사당할 위기였다.
그 죽음의 심연 속에서, 건우는 환각을 보았다.
끝없는 어둠, 은하의 성좌들이 차갑게 빛나는 심연의 우주. 그곳에서 스스로가 수만 마일의 거대한 항성 자기폭풍을 지배하던 초월적인 신격이었던 시절의 편린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거대한 기계 사슬에 묶여 지구의 대기권으로 추락하던 그 장엄하고 비장한 파멸의 기억이 건우의 영혼을 뒤흔들었다.
‘나는…… 한낱 노예로 죽을 존재가 아니다!’
건우는 영혼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원초적인 분노를 쥐어짜 곽도사에게 전수받은 ‘뇌파 주파수 강제 저하술’을 전개했다. 날뛰는 뇌파를 강제로 수면 상태인 깊고 무거운 델타파(Delta wave) 대역으로 떨어뜨렸다.
“스으으읍…… 후으으으…….”
터질 듯이 요동치던 심장 박동이 서서히 느려지고, 굳어 가던 전신의 근육들이 부드럽게 이완되었다. 중추신경계를 태우려던 전자기 폭풍이 델타파의 장막에 가로막혀 서서히 중화되었다.
그와 동시에, 시냅스 필터가 완전히 나노 칩의 제어망을 우회하여 동조에 성공했다.
“철컥—!”
건우의 목덜미 흉터에서 이지스의 푸른 통제 빛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은은하고 투명한 은빛 오로라 광채가 피어올랐다. 나노 칩의 강제 억제가 최초로 차단되며 자력의 첫 번째 봉인이 해제되는 순간이었다.
건우는 천천히 수술대 위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그의 눈동자는 전보다 훨씬 투명하고 깊은 백청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몸을 가두던 보이지 않는 사슬이 끊어진 느낌이었다.
“성공…… 했군.”
한태성이 땀 범벅이 된 얼굴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건우는 자신의 손바닥을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손끝에서 보이지 않는 미세한 자력의 흐름이 실타래처럼 뿜어져 나와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1단계 중입: 자력 인력 조작(Attraction)의 권능이 그의 영혼에 완전히 각인된 것이다.
이마와 목덜미에서 뿜어져 나온 은빛 오로라가 정비실의 어둠을 가르는 순간, 작업대 위에 널려 있던 수백 개의 녹슨 볼트와 너트들이 중력을 잃은 듯 건우를 중심으로 허공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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