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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의 구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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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쪼개질 듯한 고통과 함께 눈이 떠졌다.


눈을 뜨자마자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낯선 녹슨 배관들과 먼지 낀 주황색 전등빛이었다. 공기 중에 떠도는 퀴퀴한 기계 기름 냄새와 매캐한 쇳가루가 목구멍을 찔렀다. 건우는 본능적으로 상체를 일으키려 했으나, 관자놀이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통증에 신음을 흘리며 다시 바닥으로 쓰러졌다.


“윽……!”


“억지로 움직이지 마라. 뇌세포가 타들어 가다 못해 아예 구워지기 직전이니까.”


지직거리는 주파수 교란기 소음 너머로 걸걸하고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헝클어진 백발에 낡은 엔지니어 고글을 목에 건 노인, 한태성이었다. 한태성은 정비실 작업대에서 무언가를 납땜하다 말고 혀를 차며 건우에게 다가왔다.


건우는 이마를 짚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손톱 밑에는 말라붙은 핏자국이 선명했다. 머릿속이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했다.


“내가…… 왜 여기에 있지?”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이군. 뇌압 분산 공식을 썼다지만, 수십 톤짜리 철골 더미를 맨몸으로 받아냈으니 당연한 결과다. 너는 소희와 자치회 녀석들을 구하고 그대로 기절했다. 뇌 과부하가 임계점인 75%를 넘었어. 네 이마의 나노 칩이 네 신경망을 튀겨버리기 전에 내가 강제로 호흡을 늦춰 가사 상태로 만들지 않았다면, 넌 지금쯤 진짜 유령이 되었을 거다.”


소희. 그 이름이 들리는 순간 흐릿하던 건우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다. 건우는 벌떡 일어나 정비실 구석을 둘러보았다.


“소희는? 소희는 무사한가?”


“그 꼬맹이는 무사하다. 지아와 자치회 녀석들이 안전한 지하 대피소로 옮겼어. 네가 훔쳐 온 시냅스 시너 덕분에 발작도 완전히 가라앉았고. 하지만 정작 문제는 너다, 이 멍청한 녀석아.”


한태성이 건우의 이마를 가리켰다. 이마의 나노 통제 칩 주입 흉터 주변이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고, 피부 아래로 푸른색 전자기 회로가 흉터처럼 늘어져 있었다.


“시냅스 시너는 임시방편일 뿐이야. 네가 자력을 쓸 때마다 뇌 속의 나노 칩이 그걸 ‘시스템 오류’로 인식하고 뇌세포를 파괴한다. 이번엔 겨우 살아남았지만, 다음은 없다. 이대로 가면 뇌세포 괴사가 80%를 넘어 영구적인 실명이나 전신 마비가 올 거다.”


한태성의 경고는 차가운 현실이었다. 건우는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오른쪽 다리에 힘을 주려 했으나, 마비된 것처럼 감각이 무디고 뻣뻣했다. 힘을 기르기도 전에 스스로의 육체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등가교환의 법칙. 성좌의 권능을 한낱 인간의 미약한 뇌로 다루는 대가는 이토록 참혹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태성이 한 가지 소식을 더 얹었다.


“그리고 블랙마켓의 오동수 녀석, 금고가 털린 걸 알고 완전히 눈이 뒤집혔다. 정필두의 기계 다리가 박살 난 사건 때문에 이지스 보안국이 주파수 추적 위성 ‘스캐너-X’까지 돌리는 마당에, 오동수가 포상금을 노리고 너를 밀고하려 혈안이 되어 있어. 시간이 없다.”


건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12크레딧밖에 없는 노예 소년이 시냅스 시너를 구하기 위해선 훔치는 수밖에 없었지만, 그 대가로 슬럼가 전체가 그를 쫓는 사냥터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앉아서 죽을 수는 없었다.


“방법이…… 없습니까? 이 칩의 간섭을 완전히 막을 방법이.”


한태성이 담배 파이프를 입에 물었다가, 길게 연기를 뿜어내며 건우를 응시했다.


“물리적으로 나노 칩의 신호를 상쇄하는 수밖에 없다. 과거 이지스에 저항하던 전설적인 반군 엔지니어 중에 ‘유령(Ghost)’이라 불리던 자가 있었지. 그 녀석이 죽기 직전, 나노 칩의 간섭을 완벽하게 우회하고 자력을 증폭시켜 줄 ‘프로토타입 시냅스 필터’를 완성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필터는 어디에 있습니까?”


“제9구역 외곽,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금단의 골짜기. ‘시체 구덩이(The Pit)’다.”


노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이지스의 기계 개조 실험에 실패해 뇌사당한 인간들과 수명이 다한 폐기 로봇들이 쓰레기처럼 쌓여 썩어가는 어두운 구덩이지. 유령 역시 그곳에 버려졌다. 유독 가스가 가득하고, 상층부에서 떨어지는 쓰레기 더미 때문에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지옥 같은 곳이다. 하지만 살고 싶다면, 그리고 그 힘을 온전히 네 것으로 만들고 싶다면 그곳으로 가라.”


건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흔들리는 다리에 힘을 꽉 주었다. 마비된 신경을 억지로 깨우자 찌릿한 통증이 올라왔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가겠습니다.”


한태성은 말없이 작업대 서랍을 뒤적거리더니, 은색 금속 패치 하나를 건우에게 던졌다.


“‘납-티타늄 합금 차폐 패치’다. 네가 자력을 쓸 때 발생하는 미세 주파수를 외부로 나가지 않게 흡수해 주지. 이마의 흉터에 붙여라. 스캐너-X 위성의 눈을 가릴 수 있는 유일한 소모품이다. 그리고 구덩이 내부에서는 절대 함부로 자력을 쓰지 마라. 미세한 자동 진동에도 고철 산이 무너져 내릴 테니까. 오직 지자선만 밟고 걸어야 한다.”


건우는 차폐 패치를 이마의 흉터 위에 밀착시켰다. 차가운 금속 감각이 이마의 열기를 일시적으로 식혀주었다. 그는 낡은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정비실의 비밀 해치를 열어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


제9구역의 가장 깊은 외곽.


빛 한 점 들지 않는 거대한 절벽 아래로,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골짜기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시체 구덩이(The Pit).


절벽 가장자리에 선 건우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썩어가는 기계 윤활유와 인간의 살점이 부패하며 뿜어내는 녹색의 유독 가스가 구덩이 바닥에 안개처럼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사방에는 목이 잘린 사이보그의 프레임, 녹슨 이족보행 병기의 잔해, 그리고 이식 수술 도중 버려진 노예들의 백골이 기괴한 탑을 이루고 있었다.


“콜록, 록…….”


가스마스크도 없이 안개 속으로 발을 디디자, 폐부가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과 함께 격렬한 기침이 터져 나왔다. 차폐 패치 덕분에 이마의 칩은 잠잠했지만, 육체적 한계는 명확했다.


건우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태성이 가르쳐준 ‘지자선 추적 보행술’을 가동했다.


숨을 죽이고 신경을 발바닥으로 집중하자, 보이지 않는 지구의 거대한 자기장선—지자선(Geomagnetic Line)의 흐름이 대지 아래에서 미세한 푸른 맥박처럼 솟구치는 것이 느껴졌다. 지자선이 교차하는 지점은 지반이 가장 단단하게 고정된 축이었다. 그곳만을 딛고 걸어야 고철 산의 붕괴를 막을 수 있었다.


건우는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디뎠다.


‘스스슥.’


발끝에서 녹슨 철판이 쓸리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지자선이 단단히 붙잡고 있는 철골 축이었기에 무너지지 않았다. 건우는 고글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안개 속을 헤치며, 보이지 않는 자기장의 흐름만을 나침반 삼아 구덩이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주변은 죽음의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가끔 상층부에서 버려진 쓰레기가 떨어져 내리는 둔탁한 파열음만이 고요를 깨트렸다. 건우는 깊은 구덩이의 하부로 내려갈수록 기압이 낮아지고 유독 가스의 농도가 짙어지는 것을 느꼈다. 뇌압이 다시 서서히 차오르며 관자놀이가 찌릿거렸다.


그때였다.


지자선의 흐름을 쫓아 걷던 건우의 발끝에 순간적으로 강한 두통이 밀려왔다. 뇌 괴사의 여파로 인해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흐트러진 것이다.


‘아차.’


발바닥이 닿은 곳은 지자선이 흐르지 않는, 허공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던 녹슨 철판이었다.


“콰드득—!”


철판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아래로 꺾이며, 건우의 몸이 중심을 잃고 미끄러졌다. 그 진동은 도미노처럼 주변의 고철 더미를 자극했다.


“쿠구구구구구!”


상층부에 아슬아슬하게 쌓여 있던 수만 개의 폐기 기어와 거대한 철골 쓰레기들이 굉음을 지르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수 톤에 달하는 강철의 파도가 건우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여기서 깔리면 흔적도 없이 으스러진다.


건우는 본능적으로 자력을 방출하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직접적인 척력으로 이 거대한 질량을 밀어내려 했다간 뇌가 먼저 폭발할 것이 뻔했다. 한태성의 경고가 뇌리를 스쳤다.


‘직접 힘으로 막지 마라. 흐름을 엮어라!’


건우는 호흡을 극도로 늦추며, 무너져 내리는 고철 더미 중 가장 자성이 강한 철골 구조물들을 시각화했다. 그의 손끝에서 푸른색 자력의 실—‘자력 인력 인장(Magnetic Pull Tension)’이 번개처럼 뻗어나갔다.


건우는 쏟아지는 쓰레기 더미를 정면으로 막아서는 대신, 주변에 널려 있는 육중한 고대 병기의 장갑판들과 철제 파이프들을 자력선으로 한데 묶었다.


“철컥! 철컥! 콰아아앙!”


건우의 자력에 이끌린 강철판들이 서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건우의 머리 위로 견고한 아치형의 돔 구조물을 형성했다.


“쿠구구구구! 쾅! 쾅!”


무너져 내린 수 톤의 고철 쓰레기들이 건우가 만든 강철 돔의 경사면을 타고 옆으로 빗겨 나가며 바닥으로 쏟아졌다. 거대한 먼지 폭풍과 쇳가루가 사방을 덮쳤고, 건우는 돔 내부의 좁은 틈새에서 거칠게 기침을 토해냈다.


“콜록! 헉, 헉…….”


입안에서 비린 핏맛이 났다. 무리하게 자력을 엮어낸 탓에 코끝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이마의 차폐 패치가 과열되어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자력이 외부로 일부 유출되었을 위험이 있었지만, 지금은 살아남는 것이 먼저였다.


구조물이 완전히 멈춘 것을 확인한 건우는 강철 돔의 틈새를 비집고 기어 나왔다. 그리고 그 무너진 틈새 사이로, 기이하게 보존된 어두운 공동(空洞)을 발견했다.


그 공동의 중심에, 빛바랜 군용 제복을 입은 채 백골이 된 유해가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전설적인 반군 엔지니어, ‘유령’이었다.


유해의 주변에는 녹슨 정밀 공구들과 이지스의 초기 개발용 양자 컴퓨터 코어의 잔해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유해의 가슴팍, 백골화된 손가락이 꽉 쥐고 있는 것은 기이할 정도로 녹슬지 않은 정밀한 은색 금속 장치였다.


프로토타입 시냅스 필터(Prototype Synapse Filter).


건우는 엄숙한 감정에 휩싸인 채 유해 앞으로 다가갔다. 수많은 이들이 이지스의 통제에 저항하다가 이 차가운 구덩이에서 쓰러져 갔다. 그들의 의지가, 그리고 그들의 유산이 지금 건우의 눈앞에 남아 있었다.


“당신의 의지를…… 이어받겠습니다.”


건우는 조심스럽게 유해의 손가락을 펴고 은색 필터를 회수했다. 필터를 쥐는 순간, 손끝을 타고 미세하고 차가운 전자기적 진동이 뇌 신경망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노 칩의 폭주를 막아줄 구원의 열쇠였다.


그 순간, 유해의 품속에서 낡은 가죽 일지 한 권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한태성의 연구 일지와 닮아 있는, 유령의 일지였다.


건우가 일지를 집어 들어 첫 장을 펼쳤다. 먼지 쌓인 종이 위에 거친 필체로 적힌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별의 궤도는 기계의 사슬에 묶이지 않는다. 자기장의 주인이여, 다시 깨어나라.]


그 글귀를 읽는 순간.


건우의 옷 안쪽 깊숙이 숨겨져 있던 ‘망가진 우주 성좌의 눈물 펜던트’가 갑자기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웅웅웅웅—!”


펜던트가 스스로 푸른색 오로라 빛을 뿜어내며 터질 듯이 진동했다. 일지에 적힌 글귀와 펜던트의 주파수가 기이하게 공명하며, 건우의 뇌리에 지워졌던 우주의 기억 파편들이 폭풍처럼 밀려들었다. 거대한 태양풍, 행성을 감싸던 푸른 자기장 장막, 그리고 암흑 속으로 추락하던 자신의 실루엣이 환각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악……!”


건우가 머리를 감싸 쥐며 비명을 질렀다. 뇌 속의 나노 칩이 이 공명에 반응해 미친 듯이 발작하려 했다.


바로 그 순간, 구덩이 위쪽의 어두운 안개 너머로 차갑고 무기질적인 붉은색 서치라이트 불빛들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지이이이잉—


이지스 보안국의 하급 정찰 드론들이 자력 유출 흔적을 감지하고 구덩이 입구로 하강하는 소리가 죽음의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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