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강철
“지아의 단말기에 찍힌 붉은 조준선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스캐너-X가 하차장을 조준했다는 건, 이미 수색대가 그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뜻이야.”
지하 하수도 망의 퀴퀴한 습기 속에서 민지아가 경고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날카롭게 갈라져 있었다. 하지만 차건우는 멈출 수 없었다. 품 안의 주머니에 들어찬 시냅스 시너 앰플의 차가운 감각이 그의 가슴을 찌르고 있었다. 정필두의 기계 다리를 폭파하며 얻은 이 약물은 소희의 뇌 발작을 가라앉힐 유일한 구명줄이었다.
마비가 풀리지 않아 뻣뻣하게 굳은 오른쪽 다리를 질질 끌며, 건우는 어두운 배수관을 타고 필사적으로 달렸다. 뒤편에서 호재를 부축한 지아가 무어라 소리쳤지만, 건우의 귀에는 오직 소희의 가녀린 신음 소리만이 환청처럼 맴돌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텨다오.’
하수도 통로의 끝, 고철 하차장 제3구역으로 이어지는 수동 해치를 밀어젖히자 매캐한 쇳가루 냄새와 유독가스가 건우의 폐부를 사정없이 찔렀다.
이미 하차장의 아침 노역은 시작되어 있었다. 이지스 테크놀로지의 하급 사이보그 관리자들이 채찍을 휘두르며 노예들을 쥐어짜고 있었다. 전날 밤 발생한 용광로 폭발과 정필두의 사고로 인해 구역 전체의 보안 등급이 격상된 탓인지, 관리자들의 폭압은 평소보다 훨씬 잔혹했다.
건우는 작업복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감시 드론들의 조준선이 비껴가는 녹슨 강철 더미 사이를 은밀히 파고들었다. 마침내 제3구역의 구석진 분류대 아래, 얇은 가마니를 뒤집어쓴 채 바르르 떨고 있는 민소희를 발견했다.
“오빠……?”
소희의 회색빛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목덜미에 박힌 나노 통제 칩의 붉은 점멸 주기가 비정상적으로 빨라져 있었다. 이지스 본사에서 송출하는 고주파 통제 신호가 그녀의 뇌 신경망을 사정없이 갉아먹고 있는 증거였다.
건우는 지체 없이 품에서 시냅스 시너 앰플을 꺼내 소희의 입술 사이로 흘려 넣었다. 차가운 푸른색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소희의 목덜미에서 뿜어지던 붉은 발열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거친 호흡이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오빠, 머리가…… 더 이상 안 아파.”
소희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건우의 옷자락을 잡았다. 안도감도 잠시, 건우는 가슴을 짓누르는 거대한 이질감을 느꼈다. 머릿속의 나노 칩이 시냅스 시너의 약효에 반응해 기이한 전자기 노이즈를 내뿜고 있었다.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과 함께 머리가 쪼개질 듯한 편두통이 밀려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쿠구구구구—!
하차장 천장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진동음이 울려 퍼졌다. 상층부 ‘메탈 게이트’ 산업단지와 제9구역을 연결하는 거대한 고철 하역 댐의 붉은 경고등이 미친 듯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모두 피해라! 상부 개방구가 열린다!”
누군가의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전날 밤의 전력 이상으로 인해 하역 제어 시스템이 완전히 폭주해 버린 것이었다. 평소라면 안전 격벽이 닫힌 상태에서 서서히 내려와야 할 수십 톤 규모의 날카로운 폐기 철골 구조물과 거대한 중장비 부품들이, 아무런 제어 장치 없이 제3구역의 허공으로 직하강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살려줘!”
아수라장이 된 하차장. 도망치려던 제9구역 노동자 자치회 사람들과 노예들이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낙하하는 강철의 범위는 너무나 광활했다. 하필이면 소희와 자치회 전사들이 갇힌 분류대 주변으로 거대한 철골 쓰레기 더미가 무너지며 그들의 퇴로를 완벽히 가로막아 버렸다.
하늘에서 수십 미터 크기의 H빔 강철 구조물이 중력의 가속도를 얻어 소희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저 속도와 질량이라면 흔적도 없이 으스러질 것이 자명했다.
‘안 돼.’
건우의 심장이 터질 듯이 요동쳤다. 소희를 잃을 수 없다는 극도의 공포와 분노가 그의 내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성좌의 불꽃을 강제로 끄집어냈다.
건우는 본능적으로 오른손을 뻗어 날아오는 강철 구조물을 향해 자력 인력을 방출했다. 낙하 궤도를 옆으로 틀어버리겠다는 계산이었다.
“크윽……!”
하지만 강철의 질량이 너무나 무거웠다. 가속도가 붙은 수십 톤의 중력 에너지는 한낱 인간의 육체가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손끝을 타고 흐르는 자력선이 강하게 비틀리며, 건우의 손가락 관절이 뚝뚝 소리를 내며 꺾이기 시작했다. 손톱 밑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단일 사물에 가하는 인력 조작으로는 이 거대한 파멸을 막을 수 없었다.
‘공간 전체를 밀어내야 한다.’
건우는 이를 악물며 주머니 속에 숨겨두었던 뇌파 동조 전자기 링을 최대 출력으로 가동했다. 이마에 착용된 전자기 링이 푸른색 스파크를 튀기며 관자놀이를 사정없이 조여왔다. 링이 터질 듯이 발열하며 건우의 뇌파를 극도로 압착된 척력 주파수로 변환해 방출하기 시작했다.
“하아아아아!”
건우가 양손을 하늘을 향해 번쩍 치켜올렸다.
지이이이이이잉—!
건우의 신체를 중심으로 반경 3미터 범위의 허공이 푸른색 전자기 아우라로 물들며, 반구형의 강력한 ‘자력 척력 장벽 (Repulsion Shield)’이 전개되었다. 지구의 내핵에서 뻗어 나오는 지자기선의 흐름을 강제로 끌어올려 역방향의 척력장으로 변환해 낸 원초적인 방어막이었다.
쿠와아아앙—!
떨어지던 수십 톤의 거대 철골 구조물이 건우의 머리 위 겨우 1미터 허공에 정지한 채 장벽과 충돌했다. 강철과 전자기 장벽이 맞부딪히며 사방으로 청백색 플라즈마 불꽃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귀가 먹먹해지는 금속성 비명이 하차장 전체를 가득 채웠다.
“가, 강철이…… 공중에 멈췄어?”
분류대 아래에 웅크리고 있던 자치회 노동자들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머리 위에는 푸른색 전자기 장막이 거대한 방패처럼 펼쳐져 있었고, 그 장막을 온몸으로 떠받치고 있는 것은 깡마른 체구의 노예 소년, 차건우였다.
“끄아아아악!”
건우의 입에서 핏빛 비명이 터져 나왔다.
무한한 성좌의 힘을 한낱 인간의 미약한 유기물 뇌로 받아들인 대가는 참혹했다. 이마의 나노 통제 칩이 과부하를 일으키며 뇌세포를 원자 단위로 태워버릴 듯한 열기를 뿜어냈다. 뇌압이 폭발적으로 상승하며 당장이라도 뇌출혈로 즉사할 것 같은 공포가 엄습했다.
‘분산시켜야 해. 이 압력을 내 몸 전체로!’
건우는 한태성의 연구 일지에서 보았던 공식을 떠올렸다. ‘뇌압 분산 다중 신경 동조’.
그는 뇌로 집중되는 전자기적 과부하 압력을 목덜미를 거쳐 척수, 그리고 전신의 신경계로 골고루 분산시키기 시작했다. 이마의 나노 칩 흉터에서 시작된 푸른색 전자기 회로가 뺨과 목을 타고 전신으로 그물망처럼 뻗어나갔다.
그 순간, 건우의 머리카락 끝이 미세한 은빛 자력선으로 변해 공중에 가볍게 떠오르며 푸른 오로라 빛을 발산했다. 우주 성좌로서의 잃어버린 신격이 그의 육체에 아주 미세한 흔적을 남기며 반응한 것이었다.
“비켜라……!”
건우가 양손을 옆으로 거칠게 밀쳐냈다.
스스스스— 콰아아앙!
허공에 멈춰 서서 장벽을 압박하던 수십 톤의 거대 철골 구조물들이 건우의 손짓을 따라 옆으로 비껴가며, 자치회 사람들이 없는 빈 고철 더미 위로 굉음과 함께 튕겨 나갔다. 하차장 바닥이 지진이라도 난 듯 크게 요동쳤고, 거대한 먼지 폭풍이 사방을 덮쳤다.
격렬한 진동이 가라앉고, 먼지가 서서히 걷히자 하차장에는 기괴할 정도의 정적이 찾아왔다.
그 누구도 다치지 않았다. 소희도, 자치회의 노동자들도 모두가 무사했다.
사람들은 흙먼지 속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중앙에 서 있는 건우에게로 향했다. 건우의 이마에서 뿜어지던 푸른 광채는 이미 가라앉았고, 은빛으로 빛나던 머리카락 끝도 다시 평범한 검은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고철 유령…….”
노동자 자치회의 늙은 노동자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소문이 진짜였어. 고철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유령이 우리를 구원했다!”
“철의 구원자다……!”
노예들의 경외와 찬탄 섞인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그들의 눈빛에는 평생 이지스의 지배 아래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기적에 대한 동경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건우는 그들의 환호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아…….”
갑자기 건우의 눈앞이 급격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찬란하게 빛나던 푸른 시야가 순식간에 검은색 노이즈로 뒤덮였다. 뇌세포 괴사율의 급격한 상승이 초래한 참혹한 부작용이었다.
단기 기억상실증의 첫 번째 발현이었다.
내가 지금 왜 여기에 서 있지? 내 손에 묻은 이 피는 누구의 것이지? 내 눈앞에서 나를 바라보며 울고 있는 이 소녀의 이름은 무엇이었던가.
기억의 파편들이 원자 단위로 분해되어 허공으로 흩어지는 듯한 기괴한 감각 속에서, 건우는 자신의 육체가 바닥을 향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오빠! 정신 차려, 오빠!”
소희의 절박한 비명 소리가 멀어지는 의식의 저편으로 아스라이 사라져 갔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