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라이드
“쉬익—!”
무거운 가스 압착 소리와 함께 정필두의 거친 기계 다리가 지면을 딛고 우뚝 섰다. 어깨 위로 치켜든 녹슨 쇠파이프가 제9구역 지하 암시장의 붉은 네온사인 불빛을 받아 핏빛으로 기괴하게 번뜩였다. 그 아래에는 여덟 살 고아 소년, 호재가 멱살이 잡힌 채 허공에서 버둥거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 쓸모없는 불량 부품 놈, 머리를 깨부숴서 용광로에 던져주마!”
정필두의 비열한 눈가에 살기가 서렸다. 독사파(毒蛇派) 조직원들이 상인들의 배급 주머니를 강탈하며 지르는 비명과 울음소리가 사방을 메웠지만, 그 누구도 정필두의 폭력을 가로막지 못했다. 최강석의 파멸 이후 제9구역의 새로운 십장으로 기어오른 그의 무력은 슬럼가 노동자들에게 거역할 수 없는 법과 같았다.
가게 그늘진 구석에 몸을 숨긴 차건우의 주먹이 옷자락 속에서 바르르 떨렸다. 관자놀이를 무겁게 압박하는 ‘뇌파 동조 전자기 링’이 건우의 급격히 요동치는 뇌파에 반응해 웅웅거리는 미세한 노이즈를 내뿜었다. 이마의 링이 닿은 피부가 화끈거리며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지금 정면으로 뛰쳐나가 쇠파이프를 빼앗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건우에게는 아직 금속을 공중에 띄우거나 날려버릴 물리적인 자력(인력/척력)이 없었다. 그가 가진 유일한 힘은 2화에서 낡은 구리선 뭉치를 쥐었을 때 각성한 ‘1단계 초입: 미세 전류 감지’의 극도로 예민한 감각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정필두... 저 자식의 기계 다리.’
건우는 깊은 흡입과 함께 심장 박동을 의도적으로 늦췄다. 눈을 감자, 건우의 시야가 순식간에 암전되며 오직 전자기장의 흐름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지도가 머릿속에 시각화되었다.
정필두의 왼쪽 다리를 감싸고 있는 투박한 기계 보조 장치의 내부가 반투명한 푸른색 설계도로 분해되어 건우의 뇌리에 떠올랐다. 최강석의 정밀한 의수와 달리, 그것은 급조된 조잡한 이지스 하급 장비였다. 유압 실린더를 제어하는 마이크로 전선들이 피복도 제대로 씌워지지 않은 채 외부에 노출되어 있었고, 고압 밸브의 주파수가 불안정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금속 진동 촉각 피드백’을 통해 전해지는 기계의 미세한 맥박이 건우의 손끝을 찌릿하게 자극했다. 건우는 정필두의 기계 다리 제어 회로 내부로 자신의 미세한 자력 주파수를 바늘처럼 찔러 넣었다.
쇠파이프가 호재의 이마를 내리치기 직전, 단 0.5초의 찰나였다.
‘미세 회로 자력 과부하 공식, 전개.’
건우의 눈동자가 투명한 푸른빛으로 무섭게 물들었다. 이마의 전자기 링이 강하게 진동하며 건우의 뇌파를 극도로 압착된 고주파 전류로 변환해 방출했다.
“치이이이익—!”
정필두의 기계 다리 관절부에서 갑자기 고압의 청백색 스파크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제어 칩셋에 침투한 건우의 미세 자력이 유압 전자 밸브의 신호를 강제로 뒤틀어버린 것이다. 회로 오버라이드(Circuit Override). 전류의 흐름이 비정상적으로 역류하면서, 고압 유압 모터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 초고속으로 역회전하기 시작했다.
“어, 어? 이, 이게 왜 이래...!”
정필두가 당황해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강철 프레임이 비정상적인 유압의 힘에 밀려 역방향으로 꺾였다.
“우드득! 콰직!”
“아아아아악! 내 다리! 내 다리가!”
뼈가 으스러지는 끔찍한 파열음과 함께 정필두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가 쥐고 있던 무거운 쇠파이프가 댕그랑 소리를 내며 콘크리트 바닥을 굴렀다. 정필두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호재가 엉금엉금 기어 건우가 숨어 있는 가게 그늘 속으로 몸을 피했다.
“십장님! 무슨 일입니까!”
“기계 다리가... 기계 다리가 폭발했다! 으아아악! 어떤 놈이 해킹을...!”
정필두가 으스러진 왼쪽 다리를 붙잡고 피와 기름을 쏟아내며 비명을 질렀다. 독사파 조직원들이 대장의 갑작스러운 파멸에 경악하며 무기를 치켜들고 사방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암시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건우는 이 혼란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진짜 사냥은 이제부터였다.
건우는 시선을 오동수의 가게 안쪽에 놓인 두꺼운 주철 금고로 돌렸다. 조금 전 오동수가 거래를 거부하며 시냅스 시너 앰플을 넣고 잠갔던 그 금고였다. 건우는 이미 오동수가 금고를 잠글 때 발생한 마그네틱 락의 잠금 주파수를 자신의 미세 전류 감지 능력으로 완벽하게 해독해 둔 상태였다.
건우가 금고를 향해 보이지 않는 자력의 실을 뻗었다.
‘철컥.’
아무런 소음도 없이, 금고 표면의 디지털 액정이 꺼지며 육중한 마그네틱 잠금장치가 조용히 풀렸다. 건우는 고양이처럼 신속하고 은밀하게 금고 문을 열어젖히고, 그 안에 들어 있던 형광빛의 푸른 ‘시냅스 시너’ 앰플을 낚아챘다. 여동생 소희의 목숨을 구할 유일한 생명줄이 마침내 그의 손에 들어왔다.
그 순간, 머릿속이 쇠송곳으로 쑤시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건우의 중추신경계를 강타했다.
“끄윽...!”
건우는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삼켰다. 코끝에서 뜨겁고 비릿한 액체가 울컥 흘러내려 그의 회색 작업복을 붉게 적셨다.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것은 검붉은 피였다. 뇌세포 괴사(Necrosis) 80% 위험 경고의 잔인한 전조 증상이었다. 미세한 전류 조작조차 그의 미약한 유기물 뇌에는 목숨을 깎아내는 등가교환의 대가를 요구하고 있었다. 오른쪽 다리의 근육이 일시적으로 마비되며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하지만 건우는 쓰러질 수 없었다. 그는 품 안의 약물을 꽉 쥔 채, 겁에 질려 떨고 있는 호재의 작은 손을 잡았다.
“가자.”
건우는 마비되어 가는 다리를 억지로 이끌며, 독사파 조직원들의 시선이 정필두에게 쏠린 틈을 타 어두운 하수 배관의 그늘 속으로 신속하게 몸을 날렸다.
뒤편 광장 바닥에서 피와 유압유를 웅덩이처럼 흘리며 뒹굴던 정필두가 박살 난 무전기를 쥐고 광기 어린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치이익— 이지스 보안국! 들리나! 제9구역에 불법 개조 의수를 쓰는 유령 놈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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