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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톱니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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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차가운 땀방울이 건우의 손등을 적셨다. 아이의 호흡은 겨우 안정되었지만, 그것이 일시적인 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은 건우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목덜미에 깊게 박힌 나노 통제 칩은 언제 다시 이지스 본사의 강제 주파수를 수신해 발작을 일으킬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다.


건우는 기름때 절은 회색 작업복 후드를 깊게 눌러썼다. 이마를 압박하는 ‘뇌파 동조 전자기 링’의 금속 테두리가 아직도 미세하게 뜨거웠다. 링이 피부를 자극해 붉은 화상 흉터를 남겼지만, 건우는 개의치 않고 단칸방의 무거운 철문을 밀어젖혔다.


제9구역의 밤은 언제나처럼 유독가스와 녹슨 철골의 비린내로 가득했다. 하늘 높이 솟은 공중 정원 엘리시움의 찬란한 불빛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고, 최하층 슬럼가에는 오직 산성비가 섞인 누런 빗방울만 뚝뚝 떨어질 뿐이었다. 건우는 쇳가루가 섞인 진흙탕을 밟으며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의 목적지는 단 하나, 제9구역 최대의 암시장인 블랙마켓 ‘녹슨 톱니’였다.


공장 폐기탑 지하의 버려진 수압식 엘리베이터 샤프트를 타고 내려가자, 기괴한 붉은색과 녹색 네온사인이 명멸하는 지하 광장이 나타났다. 사방에서 고압 스팀 파이프가 쉭쉭 소리를 내며 뜨거운 김을 뿜어냈고, 공기 중에는 타버린 기계 윤활유와 오존 냄새가 진동했다. 이곳이 바로 상인 연합 ‘녹슨 톱니’가 지배하는 무법지대였다.


개조된 사이보그 의수 부품을 파는 노점들과 합성 단백질 젤을 늘어놓은 가판대 사이를 지나, 건우는 광장 구석에 위치한 오동수의 장물 가게 문을 두드렸다. 녹슨 철문이 거칠게 열리며 콧수염을 기른 왜소한 사내가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였다.


“누구야? 이 시간에 문을 두드리는 쥐새끼는.”


약삭빠른 눈빛의 밀수꾼, 오동수였다. 그는 온갖 불법 개조 부품이 주렁주렁 매달린 커다란 코트를 걸친 채 건우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건우가 후드 아래로 이마의 전자기 링을 살짝 드러내며 나직하게 말했다.


“시냅스 시너가 필요해.”


오동수의 눈이 가느다랗게 호선을 그렸다. 그는 가게 안쪽의 철제 미닫이문을 닫고는, 품 안에서 조심스럽게 작은 유리 앰플 하나를 꺼냈다. 형광빛의 푸르고 투명한 액체가 소용돌이치는 약물, 시냅스 시너(Synapse Synner)였다. 약물이 내뿜는 미세한 전자기 파동이 건우의 ‘미세 전류 감지’ 능력에 잡혀 손끝을 찌릿하게 자극했다.


“오호, 이거 말이군? 이지스의 마인드 컨트롤 주파수를 우회해 주는 유일한 생명줄이지. 소희 년의 뇌 칩이 또 폭주했나 보군? 가격은 알고 왔겠지? 이지스 배급 크레딧으로 딱 500 크레딧이다.”


500 크레딧. 하루 14시간 동안 고철을 날라 손에 쥐는 배급이 고작 2 크레딧 내외였다. 건우는 자신의 낡은 디지털 단말기를 꺼내 잔액을 확인했다. 화면에 선명하게 찍힌 숫자는 단 ‘12’. 턱없이 부족했다. 이지스 코퍼레이션의 철저한 착취 구조 속에서 노예가 그런 거금을 합법적으로 모으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크레딧은 부족해. 대신 이걸 주지.”


건우는 품 안에서 낮에 폐기장에서 은밀히 수집한 고순도 구리 코일과 이지스 정찰 드론의 파손된 군용 콘덴서를 꺼내 작업대 위에 올려놓았다. 꽤나 가치 있는 부품들이었다.


하지만 오동수는 콧방귀를 뀌며 콘덴서를 손가락으로 툭 밀쳐버렸다.


“야, 꼬맹이. 장난해? 이런 고철 부품은 제9구역 폐기장에 널리고 널렸어. 난 당장 상층부 메탈 게이트로 송금할 수 있는 깨끗한 이지스 배급 크레딧만 받아. 물물교환은 사절이다.”


“이건 군용 규격이야. 암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장비라고.”


건우가 목소리를 낮추며 협상을 시도했지만, 오동수의 태도는 완강했다. 돈을 밝히는 밀수꾼의 탐욕은 디스토피아의 법률보다 단단했다. 오동수는 시냅스 시너 앰플을 다시 두꺼운 주철 금고 안에 넣고는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았다. 금고 표면에 장착된 전자기 마그네틱 락이 육중한 기계음을 내며 잠겼다.


“크레딧을 채워오든가, 아니면 꺼져. 자선사업은 다른 데 가서 알아보라고.”


거래는 완전히 난항에 부딪혔다. 건우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금고의 기계식 마그네틱 잠금장치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유도 전류가 건우의 뇌리에 선명하게 읽혔지만, 지금 무작정 자력을 써서 금고를 강제로 열었다가는 암시장 상인 연합 전체의 표적이 될 터였다. 뇌압을 조절하는 전자기 링이 이마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때였다.


“쿵! 콰앙!”


암시장 입구를 지키던 두꺼운 녹슨 철문이 거대한 물리적 충격에 비명 같은 소리를 내며 찢겨 나갔다. 광장을 메우고 있던 상인들과 노동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자욱한 먼지 안개 속에서 거친 군화 소리와 함께 일단의 무리가 걸어 들어왔.


“비켜라, 이 쓰레기 같은 노예 놈들아!”


제9구역 슬럼가를 폭력으로 지배하는 친(親)이지스 폭력 조직, 독사파(毒蛇派)의 조직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는 한쪽 다리에 투박하고 거대한 강철 기계 보조 장치를 장착한 사내가 서 있었다.


부패한 십장, 정필두였다.


그는 얼마 전 용광로 사고로 양팔의 크롬 의수가 박살 나 파멸한 전임 관리자 최강석의 수하이자, 그의 빈자리를 치고 올라와 새로운 십장으로 기어오른 잔당 세력이었다. 정필두의 왼쪽 다리를 감싸고 있는 투박한 기계 보조 장치에서는 시끄러운 유압 모터 소리와 함께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최강석의 장비보다는 한 단계 떨어지는 하급 개조였지만, 슬럼가의 굶주린 노동자들을 짓밟기에는 차고 넘치는 폭력이었다.


“오늘 배급받은 크레딧 주머니 전부 꺼내놔! 이지스 보안국에서 이번 달 생산량 미달로 특별 세금을 징수하란 명령이 떨어졌다!”


정필두가 들고 있던 무거운 쇠파이프를 지면에 거칠게 긁으며 소리쳤. 쇠파이프가 콘크리트 바닥을 긁는 쇳소리가 지하 광장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독사파 조직원들이 가판대를 뒤엎고 상인들의 품에서 디지털 배급 주머니를 강탈하기 시작했다. 비명과 울음소리가 암시장을 가득 메웠다.


건우는 오동수의 가게 그늘진 구석에 몸을 숨긴 채,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차갑게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관자놀이 부근의 전자기 링이 건우의 요동치는 뇌파에 반응해 미세한 노이즈를 내뿜었다. 아직은 움직일 때가 아니었다. 다수의 무장 조직원들을 상대로 능력을 노출했다가는 이지스의 감시 위성에 즉각 감지될 터였다.


“이, 이건 내 자식들의 사흘 치 배급 젤을 살 크레딧입니다! 제발...!”


광장 중앙에서 한 늙은 노동자가 정필두의 가죽 장화 밑바닥을 붙잡고 애원했다. 정필두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왼쪽 다리의 기계 보조 장치에 흐르는 유압 밸브를 개방했다.


“치익—”


압축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기계 다리의 괴력이 노인의 가슴을 사정없이 짓눌렀다.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노인이 피를 토하며 바닥을 굴렀. 정필두는 가래침을 뱉으며 쇠파이프를 어깨에 걸쳤다.


“쓸모없는 늙은 부품 놈이 어디서 굴러먹던 수작이야? 다음은 누구냐?”


그의 포악한 시선이 사방을 훑던 중, 가판대 밑에 숨어 있던 작은 그림자 하나에 멈췄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커다란 눈망울을 지닌 여덟 살 고아 소년, 호재였다. 호재는 품 안에 이지스 배급 단백질 젤 한 팩을 소중하게 꽉 쥐고 있었다.


“어라? 저 꼬맹이 품에 든 건 뭐냐? 이리 내놔.”


정필두의 부하가 호재에게 다가가 젤 팩을 빼앗으려 했다. 하지만 겁에 질린 호재는 오히려 젤 팩을 더 깊숙이 품으며 부하의 손등을 이빨로 강하게 물어뜯었다.


“아악! 이 쥐새끼 같은 게!”


부하가 비명을 지르며 호재의 뺨을 갈겼다. 호재가 바닥으로 쓰러지며 품에 있던 단백질 젤이 정필두의 장화 앞으로 굴러갔다. 정필두는 장화 굽으로 젤 팩을 밟아 터뜨려 버렸다. 걸쭉한 인공 단백질 액체가 사방으로 튀었다.


“이 더러운 슬럼가 고아 놈들이 기어오르는군. 최강석 십장님이 망가지니까 우리가 우스워 보이나?”


정필두가 험악한 인상을 쓰며 호재의 덜덜 떨리는 멱살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들어 올렸다. 호재의 작은 다리가 허공에서 무력하게 버둥거렸다.


건우의 눈동자가 순간 투명한 푸른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주머니 속에서 쥐고 있던 주먹에 힘이 들어가며, 손가락 끝에서 미세한 정전기 스파크가 튀었다.


‘정필두... 저 자식의 기계 다리.’


건우는 호흡을 늦추며 ‘미세 전류 감지’ 능력을 극도로 집중했다. 정필두의 왼쪽 다리를 지탱하고 있는 기계 보조 장치의 내부 설계가 건우의 머릿속에 반투명한 푸른색 회로도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투박한 합금 장갑판 내부에는 고압 유압 모터와 그것을 제어하는 조잡한 마이크로 전선들이 얽혀 있었다. 특히 관절을 고정하는 핵심 나사와 전자 밸브 부근에 흐르는 미세한 전류의 진동이 건우의 손끝에 촉각 피드백으로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건우는 이마의 전자기 링을 미세하게 조율하며, 정필두의 기계 다리 내부의 전류 주파수와 자신의 뇌파를 동조시켰다. 다수의 조직원들과 정면으로 싸우는 것은 자멸이다. 하지만 정필두의 기계 장치 자체를 오작동시켜 스스로 무너지게 만든다면, 자신의 능력을 노출하지 않고도 적을 제압할 수 있었다.


광장 중앙에서 정필두가 쇠파이프를 높이 치켜들었다. 쇠파이프의 매끄러운 금속 표면이 지하 암시장의 붉은 네온사인을 받아 기괴하게 번뜩였다.


“이 쓸모없는 불량 부품 놈, 머리를 깨부숴서 용광로에 던져주마!”


호재는 겁에 질려 눈을 질끈 감았다. 정필두의 굵은 팔뚝에 힘이 들어가며, 쇠파이프가 호재의 머리 위로 사정없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촉즉발의 순간.


건우의 손가락이 옷자락 속에서 미세하게 움직이며, 정필두의 기계 다리 핵심 밸브를 향해 보이지 않는 자력의 쐐기를 조준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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