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전자기 나비
손바닥에 쥔 구리선 뭉치가 심장박동처럼 잘게 떨리고 있었다. 아무런 전원도 연결되지 않은 낡은 도선이었지만, 건우의 손가락 끝을 타고 흐르는 미세한 생체 전류가 구리 코일의 결을 따라 유도 기전력을 일으키고 있었다. 쇳가루 자욱한 한태성의 정비실 공기 속에서, 건우는 눈동자 깊은 곳에 맺히는 투명한 푸른 스파크를 가만히 응시했다.
이것이 나의 힘이다. 이지스 코퍼레이션이 그토록 포획하려 했던, 그리고 내 머릿속에 나노 칩을 박아 지우려 했던 원초적인 별의 흔적.
"...가야 합니다."
건우가 구리선 뭉치를 내려놓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아직 발작의 여파로 인한 미세한 떨림이 남아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단단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작업대 너머에서 구식 계측기를 만지던 한태성이 고개를 돌렸다. 노인의 낡은 엔지니어 고글 너머로 깊은 우려가 스쳐 지나갔다.
"벌써 가겠다고? 바이패스 호흡법을 겨우 한 번 터득했을 뿐이다. 정비실 밖으로 나가는 순간, 이지스의 감시망이 다시 네 뇌파를 훑을 거야. 아직 네 뇌세포는 그 과부하를 견딜 만큼 회복되지 않았다."
"소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건우의 단호한 한마디에 한태성은 더는 말을 얹지 못했다. 제9구역의 최하층, 빛 한 점 들지 않는 고철 스크랩 공장지대에서 서로의 온기에 의지해 살아가는 어린 여동생 민소희. 소희 역시 이지스의 가혹한 나노 칩 이식 실험의 부적합 판정을 받고 매일 밤 뇌 발작으로 시들어가는 처지였다. 건우가 용광로 사고로 사라진 지 벌써 몇 시간이 흘렀으니, 단칸방에서 오빠를 기다리며 공포에 떨고 있을 터였다.
한태성은 혀를 차며 작업대 구석에 놓여 있던 엉성한 물건 하나를 건우에게 던졌다. 고철 스크랩 조각들과 구리 코일을 조잡하게 엮어 만든 머리띠 형태의 장치였다.
"내가 고철로 조립해 둔 '뇌파 동조 전자기 링'이다. 네가 자력을 쓸 때 뇌로 집중되는 전자기적 압력을 미세 전류로 변환해서 외부로 방출해 줄 거다. 완벽한 차단은 불가능해도, 뇌압이 임계점을 넘어 뇌세포가 괴사하는 속도는 늦춰줄 테지. 이마에 단단히 조여 매라."
"...감사합니다."
건우는 전자기 링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목에 걸려 있던, 이지스의 기술로도 성분을 분석하지 못했던 푸른색 결정—'망가진 우주 성좌의 눈물 펜던트'를 옷 안쪽으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이 펜던트는 그가 이성을 잃고 폭주할 때마다 기이한 푸른 광채를 내뿜으며 뇌파를 안정시켜 주는 유일한 유품이었다.
정비실의 비밀 해치를 열고 나온 건우는 녹슨 철골과 기계 폐기물이 산처럼 쌓인 공장의 어둠을 틈타 달렸다. 이지스 경비대원들의 서치라이트가 밤하늘을 찢으며 수색 범위를 넓히고 있었지만, 건우는 쇳가루 냄새가 진동하는 하수 배관을 타고 은밀히 움직였다.
그가 도착한 곳은 공장 최하부, 녹슨 스팀 파이프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지하 보일러실 뒤편의 단칸방이었다. 보일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그대로 전달되어 숨이 턱턱 막히는 좁고 축축한 방. 낡은 철문을 밀고 들어선 건우의 눈동자가 순간 격렬하게 흔들렸다.
"소희야!"
방구석, 얇은 담요 위에 누워 있는 소희의 몸이 비정상적으로 굳어 있었다. 여덟 살 아이의 마른 뺨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얇은 입술 사이로 거친 신음이 흘러나왔다. 목덜미에 선명하게 새겨진 나노 칩 이식 흉터가 마치 살아있는 불씨처럼 붉게 점멸하고 있었다. 이지스 본사에서 야간 교대 시간에 맞춰 제9구역 전체에 송출하는 마인드 컨트롤 고주파가 소희의 고장 난 칩을 자극해 강제 발작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었다.
"아, 으으... 오빠... 머리가... 뜨거워..."
소희가 초점 없는 회색 눈동자로 허공을 휘저었다. 건우는 소희를 품에 안았다. 아이의 몸은 고열로 펄펄 끓고 있었다. 이대로 칩의 과부하가 지속되면 뇌 신경이 완전히 타버려 뇌사 상태에 빠질 것이 분명했다.
급히 방구석의 녹슨 양철 상자를 뒤졌다. 하지만 그 안에는 단 한 푼의 '이지스 배급 크레딧'도, 칩의 고통을 억제해 줄 불법 화학 약물인 '시냅스 시너'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루 14시간 동안 고철을 날라 얻는 쥐꼬리만 한 배급 크레딧으로는 시냅스 시너 한 앰플의 가격을 감당할 수 없었다. 지독한 가난과 이지스의 착취가 소희의 목숨을 서서히 조여오고 있었다.
'방법이 없어. 내가 직접 주파수를 막아야 해.'
건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한태성의 정비실에서 배웠던 감각을 떠올려야 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뇌파 동조 전자기 링'을 꺼내 자신의 이마에 단단히 착용했다. 차가운 금속 링이 이마의 흉터를 짓누르자, 뇌 속의 나노 칩이 이물질을 감지하고 웅웅거리는 진동을 내기 시작했다.
건우는 소희의 곁에 앉아 눈을 감았다.
'1단계 초입: 미세 전류 감지.'
그는 호흡을 극도로 늦췄다. 들이쉬는 숨은 짧게, 내쉬는 숨은 지극히 길게. 심장 박동을 분당 마흔 번 이하로 떨어뜨리며 뇌파를 델타파 상태로 속이는 바이패스 호흡법을 전개했다. 머릿속을 찌르던 나노 칩의 억제 신호가 미세하게 비껴가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보이지 않던 전자기의 세계가 건우의 뇌리에 홀로그램처럼 펼쳐졌다.
보일러실 벽면을 타고 흐르는 낡은 전선들의 미세한 전류 소리, 상층부 기계들이 내뿜는 차가운 전자기 노이즈가 진동과 소리로 변해 고막을 때렸다. 건우는 그 수많은 소음 속에서 소희의 목덜미로 시선을 집중했다.
보였다. 소희의 목덜미 칩에서 방출되는 불규칙하고 날카로운 고주파 마인드 컨트롤 신호가 붉은색 스파크의 파동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이지스 본사의 송신탑에서 쏘아 보내는 살인적인 주파수였다.
'저 주파수를 밀어내야 해.'
건우는 떨리는 손가락을 소희의 목덜미 흉터 근처로 가져갔다. 손끝에 자력을 모으려는 순간, 뇌가 통째로 불타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뇌 과부하의 전조였다. 이마에 착용한 전자기 링의 구리 코일이 붉게 달아오르며 열기를 뿜어냈고, 건우의 코끝에서 붉은 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크윽...!"
비명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이빨을 악물어 삼켰다. 여기서 멈추면 소희의 뇌는 영구히 파괴된다. 건우는 자신의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손가락 끝으로 미세한 자력선을 유도했다.
그 자력선은 소희의 목에 걸려 있는 낡은 펜던트로 향했다. 건우가 고철 폐기장에서 주워 수리해 준 구식 전자기 나비 펜던트였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건우가 방출한 미세한 자력이 나비 펜던트의 구리 날개와 공명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펜던트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건우의 내면에 잠재된 성좌의 힘, 그 파편의 공명 주파수를 받아들이는 천연의 안테나였다. 나비 펜던트가 은은한 푸른빛을 발하며 잘게 떨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건우의 자력 주파수를 주변 공간으로 증폭시켜 방출했다.
그것은 이지스의 억제 신호에 정확히 대치되는 역위상 주파수 펄스였다.
푸른 빛의 전자기 나비들이 날갯짓을 하듯, 미세한 푸른 스파크가 소희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이지스 본사에서 내려오던 붉은 고주파 신호가 푸른 자력 파동에 부딪혀 흔적도 없이 상쇄되어 사라졌다.
"...하아..."
소희의 거칠던 호흡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활처럼 팽팽하게 굳어 있던 아이의 몸이 부드럽게 이완되며, 이마의 붉은 칩 흉터도 점멸을 멈추고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소희는 깊고 편안한 잠에 빠져들었다.
건우는 전자기 링을 벗어 던지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전신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고, 이마에는 전자기 링의 열기로 인해 붉은 화상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관자놀이가 터질 것처럼 박동했지만, 소희의 안도한 얼굴을 바라보는 그의 입가에는 미약한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이것은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이지스의 마인드 컨트롤 주파수는 매일 밤 송출될 것이고, 약해진 소희의 뇌 신경을 근본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냅스 시너'가 필요했다.
건우는 깊은 잠에 빠진 소희의 뺨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소희의 이마에서 차가운 땀방울이 흘러내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남은 시간은 길어야 하루. 약물의 약효가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그리고 다음 발작이 소희의 영혼을 앗아가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 했다.
건우는 다시 바닥에 떨어진 전자기 링을 집어 들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푸른 전자기 나비가 날갯짓하듯, 차가운 스파크가 다시 한번 번뜩였다.
그는 단칸방의 철문을 바라보았다. 저 문 너머, 녹슨 고철 공장의 어둠을 뚫고 지나면 제9구역의 무법지대이자 온갖 불법 약물이 거래되는 지하 암시장 '녹슨 톱니'가 존재하고 있었다.
배급 크레딧은 단 한 푼도 없었지만, 건우는 전자기 링을 다시 이마에 단단히 조여 매며 어둠 속으로 걸어 나갈 결심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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