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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가루 속의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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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의 비상 경보 사이렌이 고철 더미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피비린내와 타버린 전선 냄새가 섞인 자욱한 백색 증기 속에서, 차건우는 차가운 철판 바닥에 쓰러진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마의 나노 통제 칩이 푸르게 발열할 때마다 머리가 반으로 쪼개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으윽... 커헉!"


눈앞이 붉은색과 푸른색의 노이즈로 번뜩이며 흐려졌다. 용광로를 터뜨리고 최강석의 크롬 의수를 박살 낸 대가는 참혹했다. 뇌세포가 실시간으로 타들어 가는 듯한 전자기 과부하가 중추신경계를 사정없이 짓밟고 있었다.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전신 근육은 이미 마비된 것처럼 굳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멀리서 보안 대원들의 무거운 군화 소리와 기계 드론의 고주파 구동음이 배관을 타고 울려 퍼졌다. 이대로 가다간 꼼짝없이 붙잡혀 해부당하거나 용광로에 다시 처박힐 터였다.


그때였다. 쇳가루 자욱한 안개 속에서 절뚝거리는 무거운 발소리가 다가왔다.


"이런 미친 꼬맹이를 봤나... 감히 이지스의 용광로를 날려버려?"


갈라지고 거친 노인의 목소리였다. 희미해지는 시야 사이로 헝클어진 백발에 녹슨 엔지니어 고글을 목에 걸친 노인의 실루엣이 보였다. 제9구역의 늙은 쓰레기 수거원, 한태성이었다. 평소 공장 구석에서 고철 쓰레기나 주우며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노인의 눈빛이 지금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한태성은 쓰러진 건우의 상태를 빠르게 훑어보더니, 망설임 없이 그의 겨드랑이 사이에 팔을 끼워 넣었다.


"보안대 놈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정신줄 잡아라, 꼬맹이."


한쪽 다리를 저는 노인의 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태성의 손길은 빠르고 과감했다. 그는 건우를 폐기물 이송용 수레에 거칠게 던져 넣고, 그 위에 녹슨 강철 판판과 고철 쓰레기들을 덮어 완벽히 은폐했다. 이윽고 수레가 덜컹거리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가죽 가스마스크를 쓴 이지스 경비대원들이 총을 겨눈 채 용광로 구역으로 들이닥치는 소리가 고철 판때기 틈새로 들려왔으나, 한태성은 태연하게 수레를 밀며 경비대원들의 시선을 피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수레가 멈추고 사방을 덮고 있던 고철들이 걷혔다.


건우가 마주한 곳은 사방이 녹슨 파이프와 구식 회로 기판으로 가득 찬 어두운 지하 공간이었다. 벽면 곳곳에는 이지스의 전파 감시를 차단하기 위해 마개조된 구식 주파수 교란기가 불규칙한 소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한태성의 고철 정비실이었다. 이곳은 제9구역의 촘촘한 감시망 네트워크에서 벗어난 유일한 사각지대였다.


"커헉...! 아악!"


수레에서 바닥으로 내려진 순간, 건우는 다시 전신을 뒤트는 발작을 시작했다. 이마의 나노 통제 칩 주위가 파랗게 발열하며 연기가 미세하게 피어올랐다. 경고 수치: 뇌 과부하(Overload) 50%. 뇌 속에 박힌 나조 칩이 건우의 체내에서 각성한 자력 주파수를 '시스템 오류'로 인식하고 강제로 고전압 제어 신호를 방출하고 있었다. 뇌 신경세포가 타들어 가는 고통에 건우는 바닥을 뒹굴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가만히 있어! 억지로 힘을 억누르려 하면 뇌가 먼저 타버린다!"


한태성이 외치며 건우의 몸을 거칠게 눌렀다. 노인은 익숙한 솜씨로 건우의 목덜미 부근, 나노 칩의 주입 흉터 옆의 특정 경혈과 신경 다발을 강하게 압박했다. 놀랍게도 그 손길이 닿자마자 머릿속을 헤집던 날카로운 전기 충격이 미세하게 감쇄되었다.


하지만 건우의 내면에서 날뛰는 전자기 에너지는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건우의 폭주하는 뇌파와 공명하듯, 정비실 사방에 널려 있던 녹슨 나사와 볼트, 드라이버 같은 가벼운 금속 부품들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웅웅거리는 진동음과 함께 고철들이 공중으로 수 센티미터가량 둥실 떠올랐다.


"이건... 단순한 기계 오작동이 아니군. 너, 대체 몸속에 뭘 숨기고 있는 거냐?"


한태성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떠졌다. 공중에 떠오른 고철들은 건우를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자력선의 흐름을 그리며 회전하고 있었다. 이지스의 기술로 억지로 개조된 사이보그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행성 자체의 자기장과 동조하는 원초적이고 거대한 자연의 힘이었다. 한태성은 과거 이지스의 수석 엔지니어 시절 보았던 극비 프로젝트의 기록을 떠올렸다. 인간의 육체에 가두었던 우주적 신격의 파편.


"정신 차려라! 내 말 잘 들어!"


한태성이 건우의 뺨을 강하게 때리며 그의 시선을 고정시켰다.


"지금 네 머릿속의 칩은 네 의지를 지우고 이지스의 거대 AI 아틀라스의 연산 부품으로 쓰기 위해 박아둔 거다. 네가 힘을 쓸 때마다 그 칩이 네 뇌파를 감지하고 억제 주파수를 쏘아 보내는 거야. 그 주파수와 네 힘이 충돌해서 뇌세포가 괴사하고 있는 거라고!"


"아으으... 머리가... 깨질 것... 같습니다..."


"살고 싶다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숨을 들이쉬지 말고, 심장 박동을 강제로 늦추는 거다!"


한태성은 건우의 가슴을 압박하며 '나노 칩 바이패스 호흡법'을 지시했다.


"들이쉬는 숨은 짧게, 내쉬는 숨은 지극히 길게 가져가라. 네 심장의 박동을 분당 마흔 번 이하로 떨어뜨려야 해. 네 뇌파를 완전한 무(無)의 상태, 델타파 대역으로 떨어뜨려라. 그러면 머릿속의 나노 칩은 네가 수면 상태이거나 가사 상태에 빠진 것으로 오인하고 감시 신호를 멈출 거다!"


건우는 밀려오는 절망적인 고통 속에서 이성을 붙잡기 위해 발버둥 쳤다. 노인의 거친 호흡 박자에 맞춰 강제로 폐부의 공기를 뱉어냈다.


후우우우우—.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열기가 흘러나왔다. 심장이 거칠게 요동치며 저항했다. 힘을 방출하고 싶다는 성좌의 원초적 본능이 뇌리를 흔들었지만, 건우는 곽도사와의 기억 속에서 배웠던 신체 제어의 감각을 필사적으로 쥐어짜 냈다. 체내 전류의 흐름을 의식적으로 조절하며, 심장 박동을 하나씩, 아주 천천히 가라앉혔다.


쿵... 쿵... 쿵...


마침내 심박수가 급격히 떨어지고 뇌파가 차분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이마의 나노 통제 칩에서 뿜어지던 붉은 스파크가 잦아들었다. 체내 전해질 이온의 평형이 미세하게 돌아오며 뇌를 짓누르던 임계점 위의 압력이 서서히 하강했다. 공중에 떠 있던 녹슨 나사와 볼트들이 툭, 투둑 소리를 내며 일제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정비실 내부에 무거운 정적이 찾아왔다. 건우는 땀과 핏방울로 범벅이 된 채 바닥에 엎드려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발작은 멈췄지만, 전신은 마치 납덩이를 매단 것처럼 무거웠고 머릿속은 텅 빈 것처럼 멍했다.


한태성은 바닥에 떨어진 고철 부품들을 바라보며 복잡한 표정으로 고글을 쓸어 올렸다.


"...살아났군. 이 호흡법을 단 한 번만에 따라 하다니. 꼬맹이, 네 정체가 대체 뭐냐?"


건우는 대답할 힘조차 없어 묵묵히 바닥만 바라보았다. 머릿속의 나노 칩은 여전히 박혀 있었고, 힘을 크게 쓸 때마다 언제든 뇌가 타버릴 수 있는 시한폭탄 상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이지스 보안국의 추적망은 한층 더 좁혀올 것이 뻔했다.


그때, 한태성이 한숨을 쉬며 작업대 위에서 먼지 쌓인 낡은 구리선 뭉치를 집어 들어 건우의 눈앞에 건넸다.


"이걸 쥐어봐라. 네가 가진 그 기이한 힘이 정말로 금속을 지배하는 자력이라면... 이 아날로그 도선이 네 답을 찾아줄 거다."


건우는 떨리는 손을 뻗어 노인이 건넨 구리선 뭉치를 움켜쥐었다.


그 순간이었다.


아무런 전류도 흐르지 않아야 할 낡은 구리선 뭉치에서, 건우의 손가락 끝을 타고 머릿속까지 관통하는 기이하고 선명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파동이 구리 코일의 결을 따라 푸른 스파크처럼 건우의 눈동자 속에서 번뜩였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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