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성의 칼날
매캐한 유황 연기와 찌든 기름때가 가득한 제9구역의 지하 골목은 낮과 밤의 경계가 모호했다. 차건우는 이마를 압박하는 뇌파 동조 전자기 링의 뜨거운 열기를 느끼며 걸음을 재촉했다. 임시 출력을 120%로 끌어올린 대가는 가혹했다. 관자놀이가 터질 것처럼 박동했고, 시야의 가장자리는 불규칙한 검은색 노이즈로 덮여 서서히 좁아지고 있었다. 백은하가 경고했던 시야 협착 증상이었다.
‘시간이 없어.’
건우는 이빨을 악물었다. 독사파의 행동대장 마진석이 강철민을 인질로 잡고 있는 ‘독사의 사냥터’로 가기 전,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마진석을 비롯한 독사파의 정예 사이보그들은 전신에 자력 면역 장갑을 두르고 있었다. 게다가 건우 자신의 자력 제어력은 너무나 강력하고 불안정해서, 일반적인 강철 무기를 들었다가는 제어 불능의 자기장 폭풍에 휩쓸려 무기가 역으로 자신을 찌르는 치명적인 오작동을 유발할 수 있었다. 실제로 수련 중 일반 강철 단검을 움직이려다 단검이 제멋대로 날아와 어깨를 스쳤던 아찔한 기억이 머리를 스쳤다.
자력 폭풍 속에서도 휩쓸리지 않고, 적의 단단한 티타늄 장갑을 물리적으로 찢어발길 수 있는 ‘비자성(Non-magnetic)’ 무기가 필연적으로 필요했다.
건우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슬럼가 외곽, 녹슨 철골 더미 사이에 숨겨진 외딴 지하 대장간이었다. 웅웅거리는 화로의 열기와 쇠붙이가 울부짖는 둔탁한 망치 소리가 철문을 뚫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9구역에서 유일하게 고철을 녹여 독자적인 합금을 정련할 수 있는 천재 대장장이, 한동우의 거처였다.
철문을 밀고 들어서자 가슴을 턱 막히게 하는 고열과 함께 매캐한 석탄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화로의 붉은 불꽃이 대장간 내부를 기괴하게 밝히고 있었고, 그 중심에 거구의 사내가 서 있었다. 민소매 셔츠 너머로 터질 듯한 이두박근을 드러낸 한동우였다. 그의 온몸은 쇳가루와 검은 그을음으로 덮여 있었고, 굳은살이 박인 두꺼운 손에는 거대한 강철 망치가 들려 있었다.
“누구냐? 여긴 이지스의 규격품 따위는 취급 안 해. 당장 나가.”
동우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뱉어내며 망치를 작업대에 쿵 내려놓았다. 쇳가루가 공중으로 흩날렸다. 건우는 후드를 벗고 이마의 파랗게 점멸하는 전자기 링을 드러냈다.
“한동우 씨. 내 자력 폭풍 속에서도 끌려가지 않는 비자성 무기가 필요합니다.”
동우의 매서운 눈동자가 건우의 이마에 새겨진 나노 칩 흉터와 전자기 링을 빠르게 훑었다. 그의 안색이 미세하게 변했다.
“……네놈이 그 ‘고철 유령’이군. 정필두의 기계 다리를 날려버렸다는 꼬맹이.”
동우는 침을 퉤 뱉고는 화로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눈빛에는 기계 제국 이지스를 향한 깊은 혐오감과 함께, 건우가 지닌 원초적인 힘에 대한 호기심이 엉켜 있었다.
“자력에 끌려가지 않으면서도 티타늄을 벨 수 있는 칼이라…… 쉽지 않은 주문이군. 하지만 내게 마침 쓸 만한 소재가 있지.”
동우가 구석의 잠금장치를 풀고 붉은빛을 띠는 금속 덩어리 하나를 꺼냈다. 건우가 낮에 오동수에게 지불하고 남은, 이지스 군용 장갑차의 폐기 잔해에서 추출한 고순도 탄소강 스크랩의 핵심 부품이었다.
“이건 이지스의 고밀도 장갑판에 쓰이던 특수 탄소강 합금이다. 강도는 초경합금 급이지만, 철분 함량이 높아 기본적으로 자성을 강하게 타지. 하지만 정련 과정에서 자성 분자의 배열을 완전히 비틀어버린다면 얘기가 달라져. 꼬맹이, 네 자력으로 날 도와라.”
동우가 달궈진 탄소강 합금을 모루 위에 올렸다. 붉게 타오르는 쇳덩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대장간을 가득 채웠.
“내가 망치질을 할 때마다, 네 자력을 미세하게 흘려보내 이 금속 내부의 철 이온 배열을 강제로 뒤틀어버려라. 분자 단위로 극성을 상쇄시키는 거다. 자성을 완전히 ‘거세’하란 뜻이지.”
“해보겠습니다.”
건우가 모루 앞으로 다가섰다. 동우가 거대한 망치를 치켜들고 내리치기 시작했다.
깡—!
맑고 거대한 타격음이 지하 대장간을 울렸다. 그 순간 건우는 눈을 감고 지자기 감각을 전개했다. 붉게 달아오른 탄소강 내부의 격자 구조와 불규칙하게 요동치는 미세한 자력선들이 3D 스펙트럼처럼 선명하게 인지되었다. 건우는 손끝을 뻗어 금속 내부로 미세한 자력 유도 전류를 쏘아 보냈다.
깡—! 깡—!
동우의 묵직한 망치질이 이어질 때마다 건우는 금속의 팽창하는 원자 배열을 자력선으로 움켜쥐었다. N극과 S극의 미세한 극성들을 서로 충돌시켜 강제로 상쇄시키는 정밀 조작이었다. 이마의 전자기 링이 과열되며 뇌압이 치솟았지만, 건우는 평정심을 유지하며 ‘비자성 물질 전자기 유도 공식’을 머릿속으로 연산했다.
동우의 얼굴에 경외감이 서렸다. 망치가 닿을 때마다 튀어야 할 불꽃이, 푸른색 전자기 스파크로 변해 건우의 손끝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금속 내부의 자성이 완벽하게 상쇄되며 무(無)의 상태로 정렬되는 기적적인 정련 과정이었다.
몇 시간 동안의 치열한 망치질 끝에, 마침내 화로의 불꽃이 가라앉았다.
모루 위에는 칠흑처럼 어두운 검은색 단검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빛을 흡수하는 듯한 기이한 무광의 표면,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 끝에는 미세한 구리 코일선들이 이음새를 따라 정밀하게 내장되어 있었다. 완벽한 ‘비자성 탄소강 단검’의 탄생이었다.
“됐다…… 자성을 전혀 타지 않는 탄소 합금 칼날이다. 네 자기장 폭풍 속에서도 이 칼만큼은 제멋대로 날뛰지 않을 거다.”
동우는 거친 숨을 내쉬며 땀을 닦았다. 그리고 작업대 아래에서 두꺼운 절연 가죽으로 제작된 장갑 한 쌍을 건넸다. 장갑 표면에는 붉은 구리 코일들이 촘촘하게 그물망처럼 감겨 있었다.
“이건 고전압 방전 장갑이다. 네 자력 유도로 구리 코일에 전류를 가하면 주먹에 푸른 스파크 전격을 두를 수 있지. 사이보그 놈들의 철갑을 때려 부수고 내부 회로를 태워버리기에 제격일 거다.”
“……감사합니다.”
건우는 비자성 단검을 칼집에 넣고, 고전압 방전 장갑을 양손에 착용했다. 묵직하고 단단한 감각이 양손을 타고 흘렀다. 무장을 마친 건우는 동우의 대장간을 나와, 수련을 위해 폐기된 지하철 터널로 향했다.
백 년 전 도시 문명이 건설되기 전 쓰였던 무너진 지하철 선로는 고압 전류가 흐르지 않아 이지스의 전자기 감시망으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운 사각지대였다. 사방에 부서진 침목과 녹슨 철골, 그리고 무수한 고철 파편들이 정적 속에 뒹굴고 있었다.
건우는 터널 중앙에 서서 전자기 감각 고글을 고쳐 썼다. 어둠 속에서도 사방의 전자기 흐름이 푸른색 선으로 선명하게 보였다.
그는 먼저 새로 얻은 비자성 탄소강 단검을 허공으로 던졌다. 자성이 없는 탄소 합금이라 일반적인 자력 인력으로는 단검을 제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건우는 ‘비자성 물질 전자기 유도 공식’을 전개했다. 단검 손잡이 끝에 감긴 미세 구리 코일에 자력 유도로 전류를 흘려보내자, 코일 주위로 국소적인 전자기장이 형성되었다.
건우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허공에 정지해 있던 단검이 그 미세한 유도 자기장을 타고 번개처럼 궤적을 그리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자력 폭풍 속에서도 단검은 건우의 몸으로 끌려오지 않고, 오직 건우의 뇌파 궤적을 따라서만 정밀하게 비행했다.
“동시에……!”
건우는 양손을 넓게 펼치며 터널 바닥을 향해 자력을 뿜어냈다. 사방에 널려 있던 녹슨 나사, 강철 톱니, 철판 파편들이 웅웅거리는 진동음과 함께 공중으로 떠올랐. 건우는 뇌파를 연산하여 고철들을 둥글게 압착하고 회전시켰. ‘철 조각 폭풍 탄환’ 스킬의 발동이었다.
쉬이이이익—!
수십 개의 날카로운 고철 조각들이 거대한 전자기 소용돌이를 그리며 레일건의 원리로 초고속 난사되었다.
타타타타탕—!
터널 벽면의 두꺼운 철판 엄폐물이 순식간에 누더기처럼 관통되며 찌그러졌다. 그 폭풍의 중심에서, 건우는 고전압 방전 장갑을 낀 주먹을 쥐었다. 장갑에 감긴 구리 코일이 건우의 자력 유도에 반응해 격렬한 푸른색 스파크를 튀기며 포효했다.
쿠르릉—!
건우가 주먹을 지면을 향해 내리치자, 푸른 뇌전이 사방으로 방전되며 바닥의 철골들을 검게 태워버렸다. 완벽한 살상 무기들의 조화였다. 이지스의 중장갑 사이보그들을 상대할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이다.
하지만 극도의 정밀 연산을 지속한 대가로, 머릿속의 나노 칩이 다시 뜨겁게 발열하기 시작했다. 관자놀이를 타고 차가운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시야가 순간적으로 암전되었다가 돌아왔. 경고 수치: 뇌 과부하 50%의 장막이 가슴을 무겁게 조여왔다. 생명력을 깎아내며 얻은 힘의 대가였다.
그때, 건우의 귓가에 꽂힌 무선 단말기에서 지아의 긴박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건우야, 독사의 사냥터 외곽 경비대원들의 교대 시간이 임박했어. 지금 움직여야 해. 철민이의 생명 신호가 점점 약해지고 있어!
건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허공을 맴돌던 검은 단검을 손아귀로 조용히 회수했다. 그의 투명한 푸른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차갑게 빛났다.
한동우가 벼려낸 검은색 단검을 허공에 던진 건우. 손을 뻗자, 단검은 자력선에 끌려가지 않고 오직 건우의 뇌파 궤적을 따라서만 공중을 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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