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탄도
민지아가 띄워놓은 홀로그램 화면의 붉은 경고등이 수술실의 푸른 조명과 엉켜 기괴한 보랏빛을 만들어냈다.
지하 진료소의 차가운 철제 의자에 앉아 있던 차건우는 그 보랏빛 흔들림 속에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앞이 흐릿한 안개에 가로막힌 것처럼 침침했다. 방금 백은하가 주입한 고농축 시냅스 시너 덕분에 머리를 쪼개는 듯한 극통은 간신히 가라앉았지만, 뇌세포 괴사율 80%라는 선고는 여전히 묵직한 납덩이가 되어 심장을 짓눌렀.
“지아 야, 화면 키워봐.”
건우의 갈라진 목소리에 민지아는 입술을 깨물며 홀로그램 패드를 두드렸다. 허공에 떠오른 화면이 노이즈를 일으키며 확대되었다.
화면 속 장소는 제9구역 중앙 광장이었다. 늘 녹슨 철골 기둥들이 기괴하게 솟아 있어 노예들이 본보기로 공개 처형을 당하던 그 피비린내 나는 공터. 지금 그곳은 이지스 보안국의 수색 대장 김태곤이 이끄는 정예 수색 부대원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말해! 고철 유령 놈이 어디로 숨었는지!”
확성기를 타고 흐르는 김태곤의 무기질적이고 잔혹한 음성이 지하 진료소의 스피커를 통해 지직거리며 울려 퍼졌다.
화면 속 김태곤은 흉측한 흉터가 가득한 다부진 체격을 이지스 군용 장갑복으로 감싼 채, 한 손에 거대한 ‘고출력 전자기 유탄 발사기’를 들고 있었다. 그 총구 끝에 감겨 있는 두꺼운 전자기 유도 코일이 푸른빛을 내며 충전되고 있었다. 건우는 자신도 모르게 그 전자기 코일의 주파수 흐름을 눈여겨보았다. 저 무기가 내뿜는 전류의 파동이 뇌리에 잔상처럼 박혔다.
“커헉……!”
화면 속에서 무참히 짓밟히고 있는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강철민이었다.
철민은 짧게 깎은 머리 사이로 붉은 피를 흘리며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무릎이 꿇려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제9구역 노동자 자치회 사람들이 전자기 채찍을 든 사이보그 대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철민은 입안에 고인 피를 바닥에 뱉어내며, 김태곤의 총구 앞에서도 이빨을 드러내고 씩 웃을 뿐이었다.
“유령? 그딴 게 슬럼가에 어딨냐, 이지스의 사냥개 새끼야…….”
“이 건방진 부품 놈이.”
김태곤의 군화가 철민의 안면을 사정없이 걷어찼다. 철민의 고개가 꺾이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자치회 사람들 사이에서 절망적인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누구도 건우의 행방을 불지 않았다. 그들은 이지스의 무자비한 폭압 속에서도 ‘철의 구원자’로 떠오른 소년의 정체를 목숨 걸고 숨겨주고 있었다.
“안 돼…….”
건우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먹을 꽉 쥐자, 손가락 마디마디가 뻣뻣하게 굳어 비명을 질렀다. 허벅지 뒤편에 차고 있는 비자성 탄소강 단검의 서늘한 촉감이 신경을 타고 흘렀다. 당장이라도 하수구를 타고 광장으로 뛰어나가 그 사냥개들의 머리를 으깨버리고 싶었다.
“어딜 가려는 거야, 미친 녀석아!”
백은하가 건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피얼룩이 묻은 가죽 코트를 거칠게 휘날리며, 그녀는 건우의 쇠약해진 어깨를 강하게 밀쳐 의자에 다시 앉혔다.
“방금 내 경고 안 들었어? 네 뇌세포 괴사율은 이미 한계치야! 여기서 자력을 한 번만 더 크게 방출하면 네 시신경은 완전히 타버려! 맹인이 되어서 저 장갑 부대와 싸우겠다고?”
“하지만 철민이가…… 자치회 사람들이 나 때문에 죽어가고 있어요.”
“가면 너도 죽고, 저 사람들도 다 죽어! 이성적으로 생각해, 차건우!”
민지아 역시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건우의 팔을 붙잡았다.
“건우야, 은하 언니 말이 맞아. 지금 광장 주변은 이지스의 전파 차단막이 쳐져 있어. 네가 가봤자 주파수가 교란당해서 손끝 하나 까딱 못 하고 잡힐 거야. 제발……”
사방이 꽉 막힌 벽이었다. 동료들의 침묵이 피로 물들어가는 것을 빤히 보면서도, 자신은 타들어 가는 뇌를 움켜쥐고 숨어 있어야만 하는 잔혹한 현실. 건우의 이마에 박힌 나노 칩 흉터가 분노에 반응하듯 푸르게 스파크를 튀겼다. 터질 듯한 뇌압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려 눈앞이 다시 붉게 물들기 일보 직전이었다.
“분노에 눈이 멀어 벼락을 휘두르는 놈은, 결국 제 벼락에 맞아 재가 되는 법이지.”
그때, 진료소 구석의 어두운 하수관 그늘 속에서 낮고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으윽.
기운 낡은 도포 자락을 쓸며, 덥수룩한 백발의 노인이 걸어 나왔다. 입에 구식 나무 파이프 담배를 문 채, 싱글벙글 웃고 있지만 눈빛만큼은 칼날처럼 날카로운 기인. 슬럼가 깊은 곳에서 기공을 수련한다는 은둔 마스터, 곽도사였다.
“곽도사님……?”
은하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언제 안으로 들어왔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곽도사는 파이프 담배를 길게 빨아들인 뒤, 자욱한 회색 연기를 건우의 얼굴을 향해 내뿜었다. 매캐한 향료의 냄새가 코끝을 찌르자, 신기하게도 건우의 뇌 속에서 요동치던 분노의 전류가 아주 미세하게 진정되었다.
“꼬맹아. 네놈의 몸뚱이에 깃든 자력은 아주 거대하고 우악스럽더구나. 용광로를 터뜨리고 기계 다리를 으깨버릴 정도로 말이야. 하지만 그건 그저 힘의 찌꺼기를 무식하게 쏟아부은 것에 불과해.”
곽도사가 건우의 어깨 위로 툭 손을 올렸다. 겉보기에는 마른 노인의 손이었지만, 그 안에서 흐르는 기(氣)의 흐름이 건우의 체내 전해질 이온을 자극하며 무거운 압력으로 내려앉았다.
“네놈이 장벽을 크게 켜고 쇳덩이를 크게 휘두를 때마다, 네 미약한 머리통은 그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타들어 가는 게지. 이지스의 총알이 네 대가리를 뚫기 전에, 네놈 스스로 뇌를 태워 죽일 셈이냐?”
건우는 이빨을 악물었다.
“그럼 어쩌란 말입니까? 저들을 그냥 죽게 내버려 두라고요?”
“무식한 놈. 총알을 막기 위해 거대한 성벽을 쌓을 필요는 없다. 날아오는 총알의 궤적, 그 단 하나의 점(點)에만 극소의 힘을 집중해 튕겨내면 그만인 것을.”
곽도사가 파이프를 거두며 몸을 돌렸다.
“따라오너라. 네놈의 그 우악스러운 힘을 정밀한 칼날로 제련해 줄 테니. 저 장갑 부대의 단단한 껍데기를 뚫으려면, 네놈의 뇌를 지키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건우는 쓰러져 있는 소희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본 뒤, 곽도사의 뒤를 따라 진료소 깊숙한 뒤편의 버려진 지하 하수관 터널로 발걸음을 옮겼. 지아와 은하는 긴장된 눈빛으로 그들의 등 뒤를 지켜볼 뿐이었다.
***
지하철 노선이 건설되기 전 방치된 백 년 전의 구시대 터널.
사방이 축축한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그곳은 이지스의 전파 감시 위성 ‘스캐너-X’의 전파조차 닿지 않는 완벽한 음지였다. 어두운 터널 바닥에는 녹슨 철 가루와 버려진 볼트들이 흩어져 있었다.
곽도사는 터널 중앙에 멈춰 서더니, 품 안에서 낡은 구식 가죽 새총과 주먹만 한 자루를 꺼냈다. 자루 안을 열어젖히자 반짝이는 철제 쇠구슬 수십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력 구도 예측 연산법(磁力 構圖 預測 演算法). 오늘 네놈이 배울 기술이다.”
노인이 새총 가죽에 쇠구슬 한 개를 끼워 넣으며 말했다.
“눈으로 날아오는 구슬을 보고 막으려 하지 마라. 인간의 시각 정보가 뇌로 전달되어 근육을 움직이는 속도는 너무 느려. 날아오는 사물이 공기를 가를 때 발생하는 미세한 정전기 마찰 주파수, 그리고 그 총구가 조준하는 지자기선의 왜곡을 뇌파로 먼저 읽어내야 한다.”
“그게 가능합니까?”
“못 하면 죽는 게지. 서라.”
곽도사가 새총의 고무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노인의 흐릿하던 눈동자가 순간 매섭게 빛났다.
팽—!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쇠구슬이 어둠을 찢고 건우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건우는 본능적으로 양손을 뻗으며 전신에 자력을 끌어올렸다. 뇌 속의 시냅스 필터가 거칠게 요동치며 이마의 전자기 링이 푸른 광채를 뿜었다. 사방에 거대한 자력 척력 장벽을 형성하려 한 것이다.
“끄아악……!”
하지만 무리하게 출력을 높이려 하자, 뇌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통이 뇌리를 강타했다. 뇌압이 치솟으며 건우의 신체가 비틀거렸다. 척력막이 채 형성되기도 전에, 날아온 쇠구슬이 건우의 왼쪽 뺨을 스쳐 지나갔.
촤아악!
살점이 찢어지며 붉은 피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건우는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관자놀이에서 뜨거운 열감이 피어올랐다.
“멍청한 놈!”
곽도사가 호통을 쳤다.
“내가 장벽을 크게 켜지 말라 하지 않았더냐! 온 사방에 힘을 뿌려대니 뇌가 버티질 못하는 게야! 날아오는 구슬 주위의 공기 흐름에만 집중해라! ‘지자기 동조 명상법’을 켜고, 네 생체 주파수를 바닥의 자기장선과 일치시켜!”
건우는 뺨에 흐르는 피를 훔쳐내며 눈을 감았다.
‘진정해라. 분노를 가라앉혀야 한다.’
건우는 곽도사에게 배운 대로 심장 박동을 의도적으로 늦추기 시작했다. 두근거리던 심장의 고동이 분당 40회 이하로 가파르게 떨어졌다. 차가운 하수관의 냉기가 전신으로 스며들며, 이마의 전자기 링이 내뿜던 우악스러운 열감이 서서히 식어갔다.
눈을 감자, 오히려 세상이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지구 내핵에서부터 흘러나와 제9구역의 녹슨 철골들을 관통하는 보이지 않는 푸른색 지자기선들. 건우의 뇌파가 그 자기장의 주파수 대역과 완벽하게 동조되었다.
스으으으—
어두운 터널 안의 공기 흐름이 머릿속에 3D 스펙트럼 화면처럼 그려졌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세한 철 가루들의 정전기 마찰, 그리고 곽도사가 새총을 조준할 때 미세하게 굴절되는 자기장의 왜곡선.
철컥.
곽도사가 두 번째 쇠구슬을 장전했다. 고무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소리가 고막이 아닌, 공간의 전자기 파동을 통해 건우의 중추신경계에 직접 입력되었다.
‘보인다.’
구슬이 날아올 궤적(Trajectory)이 머릿속에 한 줄기 푸른색 선으로 선명하게 시각화되었다. 날아오는 쇠구슬이 도달할 정확한 좌표.
팽—!
구슬이 날아오는 순간, 건우는 거대한 장벽을 켜지 않았다. 오직 구슬이 도달할 이마 앞 10cm 허공, 단 하나의 점에만 미세한 자력 척력의 쐐기를 박아 넣었다.
팅—!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날아오던 쇠구슬이 허공에서 불꽃을 튀기며 옆으로 튕겨 나갔다.
건우의 뇌는 타들어 가지 않았다. 뇌압 상승도, 극심한 발작도 없었다. 오직 필요한 점에만 극소의 힘을 집중했기에, 뇌 세포의 소모는 최소한에 그쳤다.
“흐음, 제법이군.”
곽도사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하지만 실전에서 적들이 쏘는 총알은 단 한 발이 아니다.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탄막 속에서, 네놈은 모든 궤적을 예측해 낼 수 있겠느냐?”
노인은 자루를 통째로 뒤집어엎었다. 수십 개의 철제 쇠구슬이 바닥에 떨어지며 쟁그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곽도사는 새총을 내려놓더니, 양손 가득 쇠구슬 십여 개를 쥐었다.
“이번엔 피할 수 없을 게다, 꼬맹아.”
곽도사의 노련한 완력이 쇠구슬들을 허공으로 던져 올렸다. 그리고 그의 마른 손바닥이 채찍처럼 허공을 가르며, 수십 개의 쇠구슬을 건우를 향해 동시에 무차별적으로 후려쳤다!
슈우우우웅—!
수십 개의 죽음의 탄도가 어둠 속에서 불규칙한 궤적을 그리며 건우의 전신을 향해 쇄도했다. 하나하나가 인간의 두개골을 손쉽게 관통할 수 있는 속도였다.
건우는 눈을 감은 채, 자신의 모든 신경 세포를 지구 자기장선과 완벽하게 일치시켰다.
‘자력 구도 예측 연산, 가동.’
머릿속의 전자기 지도가 미친 듯이 연산을 시작했다. 수십 개의 푸른색 궤적선이 교차하며 건우의 신체 좌표를 향해 좁혀왔다. 왼쪽 귀에서 삐— 하는 날카로운 이명이 들려오고 가벼운 현기증이 시야를 흔들었지만, 건우는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모든 탄도를 잃지 마라. 낱개의 점들을 전부 묶어라.’
건우의 뇌파 주파수가 극도로 압착되며, 그의 이마에서부터 시작된 푸른색 전자기 스파크가 어둠 속에서 눈부시게 번뜩였다.
곽도사가 던진 쇠구슬 십여 개가 건우의 이마 직전에서 멈춘다. 건우의 눈에 푸른 전자기 스파크가 번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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