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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의 치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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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도의 썩은 물은 차가웠다. 발목을 넘어 무릎까지 차오르는 오염수는 제9구역의 온갖 산업 폐기물과 녹슨 고철에서 흘러나온 중금속이 뒤섞여 비릿한 기름 냄새를 풍겼다.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오물이 군화 안으로 스며들어 뼈마디를 시리게 만들었다.


건우는 이를 악물었다. 등 뒤에 업힌 소희의 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고 있었다. 얇은 천 한 장에 의지한 아이의 작은 어깨는 가늘게 떨리다 못해 점차 굳어가는 듯했다. 목덜미에 박힌 이지스의 나노 통제 칩이 뿜어내던 붉은 스파크는 이제 희미한 점멸로 변해 있었다. 동력의 폭주가 끝나가며 소희의 생명력 또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잔혹한 신호였다.


“조금만 참아, 소희야. 거의 다 왔어.”


건우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목덜미의 수술 상처가 환기 팬을 돌파할 때 터진 탓에, 옷깃을 타고 흘러내린 피가 하수도의 오염수와 섞여 검붉게 번져 나갔다. 이마의 전자기 링이 방출하는 미세한 진동 노이즈가 관자놀이를 찌르며 머릿속을 헤집었지만, 건우는 멈출 수 없었다. 손을 뻗어 호재의 작은 손을 꼭 쥐었다. 여덟 살 꼬마는 아무런 불평도 없이, 그저 건우의 옷자락을 붙잡은 채 어두운 하수도 바닥을 필사적으로 걸어내고 있었다.


건우는 눈을 감고 ‘지자기 감각’을 가동했다.


눈앞이 흐릿한 암전 상태였지만, 머릿속에 투사되는 3D 전자기 지도는 선명했다. 하수도 벽면 내부를 흐르는 낡은 구리 전선들의 전류 노이즈, 그리고 저 멀리서 고여 있는 거대한 지자기선의 교차점. 그곳에 그들의 유일한 생명줄이 존재했다.


이윽고 하수도 지류의 막다른 벽면에 도달했다. 겉보기에는 녹슨 철판으로 막힌 폐기 구역이었으나, 건우는 철판 아래 숨겨진 미세한 무전 송수신 장치의 주파수를 읽어냈다. 건우가 손가락 끝을 대고 아주 미세한 자력 펄스를 튕겨 보냈다. 뚜, 뚜, 뚜.


한태성 옹이 가르쳐준 간이 무전 신호이자, 지하 진료소의 마스터 보안 인증 주파수였다.


철컥, 스으으윽—


녹슨 철판이 무거운 기계음을 내며 옆으로 밀려났다.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알싸한 소독약 냄새와 차가운 인공 바람이 건우 일행을 맞이했다.


폐기된 하수처리장을 마개조해 만든 지하 임시 병원. 천장에 매달린 구식 형광등이 깜빡이며 푸르스름한 빛을 흘렸고, 사방에는 이지스의 폐기된 기계 장치들을 뜯어내 조립한 조잡한 의료 기기들이 윙윙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백은하의 지하 진료소였다.


“누구…… 헉, 건우 너!”


낡은 수술대 옆에서 약병을 정리하던 백은하가 고개를 돌렸다. 피얼룩이 묻은 가죽 코트 아래 해진 가운을 걸친 그녀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은하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건우의 목덜미에서 흐르는 피와, 그의 등에 업혀 의식을 잃어가는 소희의 창백한 얼굴을 빠르게 훑었다.


“당장 소희부터 눕혀! 호재는 저기 구석 소파에 앉아 있고!”


은하가 급히 달려와 건우의 등에서 소희를 받아 안았다. 차가운 철제 수술대 위에 소희를 눕힌 은하는 곧바로 옆에 매달린 수동식 링거 장치를 잡아당겼다. 그녀의 섬세한 손가락이 소희의 얇은 팔뚝에 흐르는 정맥을 찾아 바늘을 꽂아 넣었다.


“불법 생체 전해질 수액이야. 나노 칩의 강제 폭주로 붕괴한 체내 이온 농도를 급속도로 안정시켜 줄 거다. 체온이 너무 낮아. 담요 더 가져와!”


푸르고 투명한 화학 수액이 튜브를 타고 소희의 체내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소희의 목덜미에서 불규칙하게 튀던 붉은 정전기 스파크가 서서히 가라앉으며, 아이의 가슴팍이 미약하게나마 규칙적으로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급한 불은 끈 셈이었다.


은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이 건우에게 닿는 순간, 그녀의 얼굴은 다시 차갑게 굳어졌다.


“이제 네 차례야. 당장 이리 와서 앉아.”


건우는 비틀거리며 낡은 철제 의자에 주저앉았다. 손끝이 통제력을 잃은 듯 미세하게 덜덜 떨리고 있었다. 손바닥의 감각은 완전히 무뎌져, 의자의 차가운 쇠 느낌조차 제대로 인지되지 않았다.


은하는 건우의 목덜미에 감긴 피 묻은 붕대를 거칠게 가위로 잘라냈다. 시냅스 필터가 이식된 부위의 살점이 벌어져 푸른색 전자기 회로가 밖으로 기괴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미친 녀석. 필터를 이식하자마자 자력을 최대 출력으로 뿜어댄 거야? 환기 팬 베어링을 통째로 압착했다고? 네가 그러고도 인간의 뇌를 유지할 수 있을 줄 알았어?”


은하가 뇌파 분석 홀로그램 장치의 스위치를 올렸다.


위이잉—


공중에 투사된 건우의 뇌 스캔 화면은 참혹했다. 붉은색 뇌 신경망 위로, 푸른색 전자기 결정들이 암세포처럼 그물망을 치며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그 결정들이 중추신경계의 핵심 소자들을 갉아먹고 있는 시각적 비주얼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보여? 이게 네 현재 중추신경계 상태야. 위험 수치: 뇌세포 괴사(Necrosis) 80%에 육박하고 있어. 이미 괴사가 시신경 다발을 타고 내려오기 시작했어. 네 시각 정보 전달망이 타들어 가고 있다는 뜻이야.”


은하의 목소리가 수술실의 소독약 냄새만큼이나 차갑게 가라앉았다.


“손끝이 떨리고 감각이 무뎌지는 건 시작일 뿐이야. 이대로 가면 다음 단계는 완전한 실명, 그리고 전신 마비다. 성좌의 무한한 에너지를 한낱 인간의 미약한 유기물 뇌가 감당하려 하니 머리가 버텨내질 못하는 거라고.”


건우는 묵묵히 홀로그램 화면을 바라보았다. 푸른색으로 죽어가는 자신의 뇌 세포들. 기연을 얻어 공짜로 강해지는 흔한 기적 따위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다. 힘을 쓸 때마다 생명을 깎아내야 하는 처절한 등가교환의 법칙만이 그의 눈앞에 놓여 있었다.


“……상관없어. 소희를 살릴 수만 있다면.”


“살려? 네가 먼저 죽으면 소희는 누가 지키는데!”


은하가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주사기를 치켜들었다. 그녀는 약병에서 형광빛의 푸른 액체를 가득 빨아올렸다. 고농축 ‘시냅스 시너(Synapse Synner)’였다.


“이 꽉 깨물어.”


은하가 건우의 목덜미 절개 부위 바로 옆에 주사 바늘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으윽……!”


건우의 전신이 단단하게 경직되었다. 목덜미를 타고 뇌척수액으로 얼음 같은 냉기가 급속도로 침투하는 감각에 이가 맞부딪히며 덜덜 떨렸다. 하지만 이내 뇌를 짓누르던 무거운 압력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으며, 흐릿해지던 시야가 아주 미세하게 맑아졌다. 관자놀이의 통증이 줄어들었다.


“하아, 하아……”


건우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땀에 젖은 얼굴을 닦아냈다. 은하는 주사기를 내려놓으며 담배를 새로 피워 물었다.


“방금 주입한 건 고농축 시냅스 시너야. 나노 칩의 강제 폭주 압력을 뇌 속의 이온 화학적 결합으로 일시 상쇄해 준 거지. 하지만 경고하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인 진통제일 뿐이야. 뇌 괴사를 근본적으로 멈출 수는 없어.”


은하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건우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진짜 네 신경 세포를 복구하고 생명을 연장하고 싶다면, 이지스 연구소가 독점하고 있는 ‘신경 안정 촉매제 원액’이 필요해. 제9구역에서는 구할 수 없는 상층부 메탈 게이트의 물건이지. 그걸 구하기 전까진 넌 시한부 환자야.”


그때, 진료소 입구의 철판문이 다시 거칠게 열리며 숨 가쁜 발소리가 들려왔다.


“건우야! 은하 언니!”


헝클어진 단발머리에 홀로그램 안경을 코끝에 걸친 민지아가 숨을 헐떡이며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그녀의 품에는 마개조된 양자 해킹 단말기 ‘스펙터’가 안겨 있었고, 단말기 화면에는 붉은색 경고 코드가 쉴 새 없이 명멸하고 있었다.


“지아?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은하가 놀라 물었다. 지아는 단말기를 진료소 작업대에 거칠게 내려놓으며 홀로그램 스크린을 공중에 띄웠다.


“시간이 없어! 이지스 보안국이 미쳤어! 정필두의 기계 다리가 박살 난 사건이랑 어젯밤 수술 노이즈를 추적해서, 제9구역 전체를 전면 폐쇄했어! 구역 경계마다 바코드 전자기 격벽이 내려앉았다고!”


지아가 가리킨 화면에는 제9구역 전체를 바둑판 모양으로 촘촘하게 에워싸고 있는 푸른색 격벽 데이터가 띄워져 있었다. 이지스 보안국이 가동한 완벽한 봉쇄망이었다.


“그게 끝이 아냐. 본사에서 제9구역을 ‘불량 부품 대량 발생 구역’으로 낙인찍었어. 지금 중간층에서 블랙 윈터의 정예 부대가 하강하고 있어. 구역 전체를 무차별 학살하고 불태우는 ‘청소 작전’을 준비 중이야! 우리 아지트도, 이 진료소도 곧 스캔망에 걸릴 거야!”


진료소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절대영도로 얼어붙었다.


호재는 구석 소파에서 무릎을 안고 몸을 떨었고, 소희는 수액을 맞으며 가냘픈 신음을 흘렸다. 탈출구는 완전히 봉쇄되었고, 적들의 학살 군대는 머리 위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건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떨리던 손가락을 꽉 움켜쥐자, 비자성 탄소강 단검의 묵직한 촉감이 허벅지 너머로 느껴졌다. 소희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타들어 가는 뇌 세포를 복구하기 위해서라도 길은 하나뿐이었다. 이 봉쇄망을 뚫고, 상층부 메탈 게이트로 잠입해 신경 안정제를 탈취하는 것.


건우가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 백은하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떨리고 있었다. 은하는 건우의 어깨를 붙잡고, 뼈를 깎는 듯한 차가운 경고를 건넸다.


“한 번만 더 자력을 최대 출력으로 뿜어내면, 네 눈은 영원히 빛을 잃을 거야.”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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