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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 수습 프로토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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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고등학교 본관 2층에 위치한 교장실의 공기는 무겁다 못해 질식할 것 같았다. 사방을 가득 채운 가죽 소파의 냄새와 정재계 인사들의 감사패가 번쩍이는 방 한가운데, 팽팽한 대치가 이어지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 이건 단순한 훈계로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피해자 오현태 군은 안면 함몰에 가까운 상처를 입었고, 목격자들의 진술 역시 일관됩니다. 강태성 군의 폭력은 명백한 학폭위 회부 대상이자 즉각적인 강제 전학 처분이 내려져야 하는 중범죄입니다!”


선도부장 윤지민은 칼로 자른 듯 단정한 단발머리를 흔들며 고발 서류를 교탁 위에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그녀의 눈빛은 타협을 모르는 법치주의자의 그것처럼 서슬 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소파 상석에 앉아 있던 교장 최병만은 둥글고 기름진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내며 슬그머니 교무부장 황국선을 바라보았다. 황국선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야비한 미소를 지으며 짐짓 헛기침을 했다.


“에, 윤지민 학생. 선도부장으로서의 책임감은 아주 가상하네만, 세상일이라는 게 그렇게 칼로 무 자르듯 단도직입적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야. 강태성 군은 최근 전국 학술대회 준비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두 학생 사이에 사소한 채무 관계가 얽혀 우발적으로 벌어진 해프닝이 아닌가?”


“해프닝이라고요? 쇠파이프를 휘둘러 동급생을 식물인간 상태로 만들 뻔한 게 해프닝입니까?”


윤지민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졌다. 그녀의 뒤에 서 있던 선도부원들도 긴장한 기색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황국선 교무부장은 속으로 혀를 찼다. 강산그룹의 거액 기부금과 자신들이 피나클 컨설팅을 통해 세탁해 오던 비공식 입시 자금줄이 이 융통성 없는 선도부장 년 하나 때문에 끊길 위기였다. 어떻게든 이 건을 조용히 묻어야 했다. 하지만 윤지민이 들고 있는 목격자 진술서와 상해 진단서의 법적 효력이 너무나 명백했다.


바로 그 순간, 교장실의 무거운 참나무 문이 거칠게 열렸다.


모두의 시선이 문가로 쏠렸다. 들어선 인물은 정문고의 전문 상담 교사이자 위(Wee)클래스를 담당하는 정인호였다. 그의 손에는 하얀색 병원 봉투와 결재 서류철이 들려 있었다. 정인호는 안경테를 치켜올리며, 사전에 약속된 차가운 연극의 첫 대사를 읊조렸다.


“교장 선생님, 징계 위원회 회부 전에 반드시 검토하셔야 할 의학적 소견서와 긴급 합의서가 접수되어 가져왔습니다.”


“오, 정 교사! 그게 무슨 소린가?”


최병만 교장이 기다렸다는 듯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정인호는 윤지민의 매서운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서류를 교탁 위에 펼쳤다. 그 서류는 이선우가 밤새도록 고시원 단칸방에서 정밀하게 설계하고, 정인호의 차명 계좌로 강산그룹의 비자금을 이체해 주는 조건으로 뜯어낸 ‘가짜 공황장애 소견서’였다.


“강태성 군은 최근 과도한 학업적 중압감과 가문 내부의 기대치로 인해 극심한 뇌 과부하 상태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본 상담실의 정밀 진단과 연계 병원의 정신과 전문의 소견에 따르면, 사고 당시 강태성 군은 일시적인 자아 분열 및 ‘스트레스성 해리형 공황발작’ 상태였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즉, 본인의 자유 의지에 의한 폭력이 아닌, 병리적 발작에 의한 우발적 행동이라는 뜻입니다.”


“뭐라고요? 가짜 소견서입니다! 강태성이 공황장애라니, 말도 안 됩니다!”


윤지민이 서류를 낚아채며 소리쳤다. 하지만 서류 하단에는 대한민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대학병원의 직인과 전문의의 친필 서명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선우가 윤혜원의 자금을 움직여 병원장 라인을 통해 단 6시간 만에 가공해 낸 완벽한 법적 방패였다.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정인호가 또 다른 서류를 제시했다. 그것은 피해자 오현태의 어머니가 직접 서명한 ‘처벌 불원서 및 합의 계약서’였다.


“피해자 오현태 군의 보호자께서 방금 전 교무처를 통해 공식 합의서를 제출하셨습니다. 태성 군의 치료비 전액 지원과 함께 위로금 조로 거액의 합의가 원만히 성립되었으며, 현태 군의 심신 안정을 위해 캐나다의 명문 사립고로 즉각적인 유학 및 전학 절차를 밟기로 합의하셨습니다. 피해자 측에서 어떠한 사법적, 행정적 처벌도 원치 않는다는 공식 입장입니다.”


“이럴 수가...”


윤지민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그녀는 어제 병실로 찾아가 오현태를 직접 설득하려 했다. 강태성의 폭력을 두려워하지 말고 법정 증언을 서달라고 눈물로 호소했었다. 하지만 선우가 미리 설계한 완벽한 현실적 혜택 앞에서는 정의감 따위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 가난에 허덕이던 오현태의 가족에게 강산그룹이 제시한 1억 5천만 원의 현금과 캐나다 영주권 연계 유학 코스는 지옥에서 내려온 동줄과 같았다. 현태의 어머니는 윤지민의 손을 뿌리치며 ‘우리 아이 살 길 열어준 사람들을 왜 괴롭히냐’며 울부짖었었다.


선우는 기득권 학교 시스템과 인간의 탐욕이 가진 맹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옹호하고, 공인된 의사가 가해자에게 ‘정신 질환’이라는 면죄부를 씌워주는 순간, 그 어떤 강직한 선도부장도 법적으로 강태성을 처벌할 근거를 잃어버린다.


최병만 교장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피해자와의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졌고, 가해 학생의 심각한 정신 질환 정황이 의학적으로 증명되었으니 더 이상의 징계 절차는 무의미하겠군. 이번 사건은 강태성 군의 ‘일시적 공황발작으로 인한 불상사’로 종결짓고, 태성 군에게는 특별 상담 치료 2주 처분만을 내리도록 하겠네. 황 부장, 즉시 전산에 입력하게.”


“예, 교장 선생님. 즉시 처리하겠습니다.”


황국선이 실실 웃으며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윤지민은 붉어진 눈으로 교장실 내부의 위선자들을 노려보았다. 법과 정의를 수호해야 할 학교의 수장들이 대기업의 돈줄 앞에서 너무나 손쉽게 범죄를 세탁하는 광경. 그녀는 지독한 무력감과 분노에 휩싸인 채 고발 서류를 구겨 쥐고 교장실을 박차고 나갔다.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히는 소리가 교장실에 길게 울려 퍼졌다.


***


그날 밤, 시계 바늘이 자정을 향해 달려가던 시각.


정문고등학교 본관 5층의 방치된 폐기도서 보관소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깨진 창문 틈새로 불어오는 차가운 밤바람이 먼지 쌓인 서가 사이를 스산하게 맴돌았다.


서가 깊숙한 곳, 낡은 싱크패드 노트북의 모니터 불빛만이 이선우의 창백한 얼굴을 밝히고 있었다. 선우는 책상 위에 놓인 이준호 박사의 낡은 만년필을 조용히 손가락으로 굴리며 태성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르륵.


아지트의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낡은 나무 문이 열렸다. 들어선 것은 강태성이었다.


낮의 거만하던 기세는 온데간데없고, 태성의 얼굴은 땀과 먼지로 얼룩져 있었다. 그의 어깨는 잘게 떨리고 있었고, 눈동자는 극도의 흥분과 공포로 흔들리고 있었다. 태성은 문을 닫자마자 선우의 앞으로 걸어오더니, 털썩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


쿵, 무거운 거구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아지트의 정적을 깨뜨렸다.


“...선우야.”


태성의 목소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다. 가짜 천재의 가면 뒤에 숨겨진, 지적 능력이 결여된 불량배의 본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태성은 선우의 교복 바지 자락을 붙잡으며 애원하듯 말을 이었다.


“진짜... 진짜 네 말대로 되더라. 윤지민 그 년이 독 기를 품고 달려들었는데, 네가 짜준 서류 몇 장에 교장이고 교감이고 전부 입을 닥치더라고. 나 진짜 퇴학당하는 줄 알았어. 우리 아버지가 나 퇴학당하면 강산그룹 후계자 자리에서 영구 제명하고 유학 보내버리겠다고 했단 말이야...”


선우는 꿇어앉은 태성을 안경 너머로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가해자인 원수가 자신에게 무릎을 꿇고 구원을 바라는 이 모순적인 상황. 선우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기묘한 자기혐오와 함께, 지적 지배가 주는 극상의 카타르시스가 동시에 요동쳤다.


[자기애적 성격 장애 역이용 유도법 가동]

- 대상의 심리적 의존도: 100% 도달.

- 가스라이팅 성공 확률: 99.9%.

- 다음 단계 행동 강령: 대상에게 더 거대한 지적 탐욕을 자극하여 깊은 수렁으로 유도함.


선우는 천천히 상체를 숙여 태성과 눈높이를 맞췄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우며, 동시에 뱀의 이빨처럼 서늘했다.


“내가 말했잖아, 태성아. 내 각본만 따르는 한 너는 정문고의 신이자 완벽한 천재로 살 수 있어. 하지만 한 번만 더 내 통제를 벗어나 무식하게 주먹을 휘두르면, 그땐 진짜 네 손으로 네 인생의 목을 조르게 될 거야. 이해했어?”


“어, 어! 이해했어. 다신 안 그럴게. 네가 시키는 대로만 할게. 진짜야!”


태성이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돈과 폭력으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던 괴물이, 오직 지능과 상황 설계만으로 무장한 흙수저 소년의 완벽한 노예로 전락한 순간이었다.


태성은 침을 삼키며 선우의 눈치를 보다가, 품 안에서 조심스럽게 태블릿 PC를 꺼내 들었다. 화면에는 정문고등학교 인트라넷의 학생 주소록과 함께, 한 여학생의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단정하게 생머리를 빗어 넘긴 차갑고 기품 있는 미모, 얼음처럼 차가운 안광을 지닌 소녀. 정문고등학교 이사장의 외딸이자 전교 1등의 엘리트, 최서현이었다.


태성은 붉어진 얼굴로 선우를 바라보며, 이전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탐욕스러운 요구를 나지막하게 던졌다.


“선우야... 다음 각본을 짜줘. 정문고 최고 실세인 이사장 딸, 최서현. 그 년을 내 여자로 만들 수 있는 완벽한 사교 시나리오를 짜내란 말이야. 그 년만 내 손에 넣으면, 우리 아버지가 강산그룹 후계 구도를 완전히 나한테 넘겨주겠다고 약속하셨어. 그러니까... 최서현을 유혹할 수 있는 천재적인 각본을 만들어줘.”


서가 사이로 차가운 밤바람이 다시 한번 휘몰아쳤다. 선우는 태블릿 속 최서현의 차가운 눈빛을 응시하며, 주머니 속 낡은 만년필을 꽉 쥐었다.


정문고의 진짜 실세이자 자신을 파괴할 수도 있는 날카로운 칼날인 최서현. 그녀를 공략하라는 원수의 무모한 탐욕이, 선우를 향해 새로운 지옥의 문을 열어젖히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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