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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2등의 추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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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푸르스름한 안개가 채 가시지 않은 대치동의 아침은 늘 가혹했다. 대한민국 사교육의 성지이자, 내신 등급 하나에 아이들의 목숨줄이 오가는 정문고등학교의 교실은 숨이 막힐 듯한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중간고사 석차표가 공고된 직후였기에 교실의 공기는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살벌했다.


3학년 4반 교실 뒤편. 전교 최하위권을 맴돌던 일진 우두머리 강태성이 거만하게 의자를 뒤로 젖힌 채 앉아 있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는 ‘전교 9등’이라는 기적적인 숫자가 박힌 성적표가 들려 있었다.


평소라면 침을 뱉고 욕설을 내뱉었을 녀석이, 지금은 마치 세상을 다 가진 왕이라도 된 양 거드름을 피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성적표의 이면에는 매일 밤 고시원 단칸방에서 코피를 흘리며 그의 문체와 어휘 수준을 분석해 답안을 설계했던 그림자 브레인, 이선우의 피와 땀이 서려 있었다.


선우는 교실 구석, 햇빛조차 잘 들지 않는 자리에 앉아 낡은 검은 뿔테 안경을 쓸어 올렸다. 안경 너머로 번뜩이는 그의 차가운 안광은 강태성의 일거수일투족을 프로파일링하고 있었다. 강태성은 선우가 심어둔 ‘가짜 노력파 천재’의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그 본질은 여전히 얄팍하고 무식한 일진일 뿐이었다.


그때, 교실 앞문이 거칠게 열리며 날카로운 구두 굽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강태성.”


지독하리만큼 차갑고 서늘한 목소리. 3학년 전교 2등이자 의대 지망생인 독종, 민혜령이었다. 그녀의 눈은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한 듯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손톱은 살점이 보일 정도로 바짝 물어뜯겨 있었다. 하루 3시간만 자며 기계처럼 공부했던 그녀에게, 평소 침이나 뱉던 강태성이 자신을 제치고 전교 9등으로 치고 올라온 현상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모독이었다.


혜령은 태성의 책상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성적표를 내던지듯 내려놓았다.


“이게 네 진짜 성적이라고 믿으라는 거야? 네가 전교 9등? 영어 에세이는커녕 기본적인 단어 스펠링도 틀리는 새끼가 무슨 수로 이 점수를 받아?”


교실 안의 학생들이 일제히 숨을 죽였다. 내신 2-3등급 구간의 상위권 추격자들은 민혜령의 폭주를 유심히 관찰하며 동조하는 눈빛을 보냈다. 태성의 갑작스러운 성적 상승은 그들의 대학 진학 마지노선을 위협하는 대형 재앙이었기 때문이다.


태성은 짐짓 여유로운 척 조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그의 거구에서 풍기는 위압감이 혜령을 짓눌렀다.


“어이, 전교 2등. 공부 좀 열심히 하지 그랬냐? 억울하면 너도 나처럼 머리를 쓰든가. 괜히 열등감 폭발해서 짖어대지 말고 저리 꺼져.”


“닥쳐! 너 백퍼 시험지 유출이나 대필이야.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당장 학교 이사회랑 교육청에 공식 감사 청구할 거야. 네 가짜 가면, 내가 낱낱이 벗겨줄 테니까.”


혜령은 이빨을 갈며 교실을 박차고 나갔다. 태성은 겉으로는 코웃음을 쳤지만, 그의 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은 감출 수 없었다. 태성은 반사적으로 교실 구석에 앉아 있는 선우를 쏘아보았다. ‘어떻게든 해결해라’라는 무언의 협박이었다.


선우는 아무런 대꾸 없이 조용히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고도의 상황 연산이 구동되고 있었다.


[상황 수치화 구동]

- 민혜령의 부친 유상우 원장의 정계 및 학원가 영향력: 상.

- 교육청 특별 감사 청구 시 강태성의 대필 흔적 적발 확률: 75%.

- 최선의 행동 지침: 민혜령 가문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을 확보하여 자멸을 유도함.


선우는 본관 5층의 방치된 폐기도서 보관소 아지트로 향했다. 먼지 쌓인 책장 뒤 비밀 공간에 숨겨둔 낡은 싱크패드 노트북을 켜고, 대치동의 기술 조력자인 김 사장에게 보안 무선 연락을 취했다.


“김 사장님, 접니다. 유상우 원장이 운영하는 강남의 ‘유 성형외과’ 메인 서버의 백도어를 열어주십시오. 그 가문의 가장 어두운 구석을 털어야겠습니다.”


- “오, 선우냐? 마침 피나클 서버 세탁하면서 그쪽 병원 IP 대역도 따둔 게 있지. 조금만 기다려봐라.”


수화기 너머로 김 사장의 현란한 키보드 타격음이 울렸다. 선우는 싱크패드 모니터에 뜨는 데이터 패킷들을 실시간으로 분석했다. 유상우 원장은 겉으로는 정문고 자문위원장이자 청렴한 의료인으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그 배후는 추악하기 짝이 없었다.


타닥, 타닥.


선우의 손가락이 자판 위를 날아다녔다. 마침내 병원 내부의 이중 장부와 탈세 기록, 그리고 의료법을 위반한 ‘대리 수술(유령 수술)’ 정황이 담긴 비밀 폴더의 암호가 해제되었다. 자격이 없는 의료기기 영업사원들이 환자의 마취 상태를 틈타 대리 수술을 집행한 고화질 블랙박스 영상들이 선우의 싱크패드 화면을 가득 채웠다.


“이것뿐만이 아니야.”


선우는 과거 피나클 컨설팅의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해 두었던 백업본을 뒤졌다. 그곳에는 전교 2등 민혜령이 과거 피나클에서 수천만 원의 뒷돈을 주고 대필받았던 수행평가 원본 대조표와 학생부종합전형 세특 위조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남의 비리를 고발하겠다는 정의로운 독종 역시, 대치동 사교육 카르텔의 추악한 수혜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선우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이 모든 자료를 하나의 암호화된 PDF 파일로 병합했다.


이제 이 독이 든 성배를 상대에게 전달할 가장 자연스럽고 안전한 ‘도구’가 필요했다. 선우는 직접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이 전면에 나서는 순간, 독고영이나 곽두팔 같은 음지의 추적자들에게 꼬리가 밟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우는 아지트를 나와 3학년 4반의 학급 실장이자 전교 부회장인 한태오를 조용히 도서실 뒤편 복도로 불러냈다.


한태오는 큰 키에 훤칠한 외모를 지닌 모범생이었지만, 부모의 숨 막히는 입시 압박과 학교의 위선적인 시스템에 깊은 환멸을 품고 있는 인물이었다. 선우는 한태오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꺼냈다. 그 안에는 USB 하나가 들어 있었다.


“태오야.”


선우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태오가 고개를 돌렸다.


“이게 뭐야, 선우야?”


“민혜령의 아버지가 지금 교장실에서 학교를 터트리겠다고 날뛰고 있어. 그게 실행되면 정문고의 내신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너를 포함한 상위권 학생들의 수시 평판도 전부 진흙탕이 되겠지.”


태오의 미간이 좁혀졌다. 선우의 말이 지독하리만큼 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USB를 지금 교장실 앞에 대기 중인 유상우 원장의 비서에게 조용히 전달해 줘. 학생회 부회장으로서 교내 소란을 막기 위한 공식 건의서라고 하면서 건네면, 그 비서가 알아서 원장에게 보고할 거야. 네 손은 더러워지지 않아.”


태오는 선우의 눈빛에 서린 압도적인 지적 아우라와 정밀한 상황 통제력에 기묘한 경외감을 느꼈다. 그는 침을 삼키며 USB 봉투를 받아 들었다.


“...알겠어. 학교가 시끄러워지는 건 나도 원치 않으니까.”


***


같은 시각, 정문고등학교 행정동 2층 교장실.


쾅!


문이 거칠게 열리며 최고급 맞춤 수트를 입은 유상우 원장이 위압적인 기세로 걸어 들어왔다. 그의 뒤에는 겁에 질린 비서가 서류 가방을 들고 뒤따르고 있었다.


교장 최병만과 교무부장 황국선은 쩔쩔매며 소파에서 일어섰다. 유상우는 정문고의 거액 자문위원이자 강남 사교계의 거두였기에, 학교 측으로서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거물이었다.


“유 원장님! 이 새벽부터 무슨 일로 이렇게 노하셨습니까?”


최병만 교장이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차를 권하려 했다. 하지만 유상우는 거칠게 손을 저으며 품 안에서 교육청 공식 감사 청구서 양식을 꺼내 교탁에 쾅 내리쳤다.


“교장! 지금 차나 마시게 생겼어? 내 딸 혜령이가 밤낮없이 피를 흘리며 공부해서 지켜온 내신 등급이야! 그런데 어디서 굴러먹던 일진 깡패 녀석이 단숨에 전교 9등으로 올라와? 이건 명백한 시험지 유출이거나 불법 대필이야!”


유상우의 고함에 교장실 유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교무부장 황국선은 자신과 강산그룹 간의 검은 커넥션이 들통날까 봐 식은땀을 흘리며 황급히 변명했다.


“원장님, 강태성 학생은 최근 과외를 늘리고 개과천선하여...”


“개과천선? 개가 똥을 끊지! 당장 시험지 보관실 수색하고 특별 감사 청구서에 연대 서명해! 청구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내가 가진 모든 정계 인맥을 동원해 정문재단 전체를 탈탈 털어버릴 테니까!”


유상우는 비서가 내민 만년필을 쥐고 감사 청구서의 서명란에 펜촉을 가져갔다. 그의 눈에는 자식의 등급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타인의 인생쯤은 가볍게 밟아버리겠다는 비정한 탐욕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최병만 교장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서명이 완료되는 순간, 정문고의 학사 비리 제국은 파멸의 궤도로 진입할 터였다.


그 순간, 교장실 문밖에서 대기하던 유상우의 비서가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한태오로부터 전달받은 하얀 봉투가 들려 있었다. 비서는 사색이 된 얼굴로 유상우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원장님... 방금 학생회 부회장 측에서 전해준 건데, 원장님 개인 스마트폰을 즉시 확인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뭐야? 지금 이 중요한 순간에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유상우가 신경질적으로 비서를 밀쳐내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그의 바지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정체불명의 발신 번호로부터 온 문자 메시지였다.


유상우는 혀를 차며 스마트폰 액정을 켰다. 화면에 표시된 것은 정체불명의 링크와 함께 첨부된 한 장의 PDF 파일 제목이었다.


[유 성형외과 세무조사 자료 및 대리 수술 블랙박스 영상 원본.pdf]


유상우의 손가락이 굳었다. 그는 홀린 듯이 액정을 터치해 파일을 열었다.


첫 페이지를 장식한 것은 국세청조차 파악하지 못한 병원의 차명 비자금 세탁 장부의 상세 내역이었다. 유상우의 동공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화면을 아래로 내리자, 수술실 안에서 마취된 환자를 두고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메스를 쥔 채 수술을 집행하는 고화질 캡처 화면과 동영상 링크가 적나라하게 박혀 있었다. 의사 면허 박탈은 물론, 평생을 쌓아온 사회적 명예와 부가 한순간에 공중분해될 수 있는 핵폭탄급 물증이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민혜령이 과거 피나클 컨설팅에서 대필받았던 수행평가 원안과 위조된 세특 기록이 대조표로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나지막한 경고 문구가 적혀 있었다.


[타인의 가짜 가면을 벗기기 전에, 당신 가문의 가면에 묻은 피부터 닦으십시오. 감사 청구서에 서명이 완료되는 순간, 이 파일은 보건복지부와 대검찰청, 그리고 언론사 사회부 기자 50명에게 동시 송출됩니다. 남은 시간은 10초입니다.]


유상우의 얼굴에서 핏기가 순식간에 가셔졌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고, 이마에서는 비 오듯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펜을 쥔 그의 손가락이 미친 듯이 떨리며 감사 청구서 종이 위에 잉크 얼룩을 남겼다.


“원, 원장님? 왜 그러십니까?”


교장 최병만이 의아한 눈으로 유상우를 바라보았다.


유상우는 스마트폰을 쥔 채 주저앉을 듯 비틀거렸다. 그는 칠판에 적힌 강태성의 성적표 조작 의혹을 바라보았지만, 이제 그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눈앞에 들이닥친 자신의 파멸이라는 거대한 공포가 그의 영혼을 완벽하게 압도해 버렸다.


“...이, 이 서명은...”


유상우는 떨리는 손으로 펜을 내려놓았다. 그는 감사 청구서 서류를 거칠게 구겨 자신의 가방에 쑤셔 넣었다.


“서명은 없었던 일로 하지. 감사 청구도... 철회한다.”


“예? 원장님,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황국선 교무부장이 당황해 물었지만, 유상우는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사색이 된 얼굴로 비서의 덜미를 잡아끌며 교장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마치 뒤에서 보이지 않는 유령이라도 쫓아오는 것처럼, 유상우는 도망치듯 정문고등학교 행정동 복도를 질주해 사라졌다.


교장실 내부에는 기묘한 정적만이 맴돌았다.


같은 시각, 본관 5층 창가에서 이 광경을 내려다보던 이선우는 조용히 안경을 쓸어 올렸다. 싱크패드 화면 속의 데이터 전송 대기 타이머가 ‘00:00:00’으로 바뀌며 안전하게 소멸했다.


선우는 상대방이 자신들의 기득권과 평판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비리를 덮는 것에 얼마나 민감한지, 그 심리적 기제를 정확히 파고들어 단 한 방의 타격으로 무혈입성을 달성한 것이다.


위기는 완벽하게 통제되었다. 하지만 선우는 알고 있었다. 이 지독한 대치동의 정글에서 하나의 적을 침묵시키면, 배후에 숨은 더 거대한 독사들이 입을 벌리고 다가온다는 사실을.


선우는 주머니 속 아버지가 남겨준 낡은 몽블랑 만년필을 꽉 쥐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각이 그의 손끝을 타고 흐르며, 다가올 더 거대한 전장을 예고하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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