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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영의 패배와 새로운 침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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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기 너머로 독고영의 서늘한 호흡 소리가 일순간 멈췄다. 대치동 사교육 카르텔 내부의 거대한 밥그릇 싸움의 도화선에 불이 붙는 순간이었다.


“메가에듀…….”


독고영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는 날 선 분노가 일렁이고 있었다. 곽두팔은 신재혁의 묵직한 손아귀 아래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선우가 적어준 대본을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갔다.


“예, 대표님. 그놈들이 정문고 강태성의 에세이 초안 데이터를 해킹해 간 흔적을 확인했습니다. 저한테 미끼로 던져진 흙수저 놈은 메가에듀의 하부 정보원일 뿐이었습니다. 진짜 배후는 그놈들이에요.”


- “그들이 감히 내 영역을 침범해? 감히 피나클의 기술을 훔쳐 가?”


독고영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그녀에게 경쟁 업체의 기습은 단순한 정보 유출을 넘어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모욕이었다.


- “곽 사장, 즉시 철수해. 그 흙수저 놈은 더 이상 건드릴 가치도 없다. 메가에듀의 대필 증거들을 확보하는 데 전력을 다해라. 내가 직접 법무팀을 움직여 그놈들의 숨통을 끊어놓을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즉시 움직이겠습니다.”


전화가 툭 끊겼다. 곽두팔은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은 공포와 안도감으로 기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선우는 곽두팔의 손목을 잡고 있던 신재혁에게 눈짓을 보냈다. 신재혁이 손을 놓아주자 곽두팔은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독고영은 이제 완전히 낚였다.”


선우가 조용히 안경을 고쳐 쓰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안경 렌즈 너머로 번뜩이는 차가운 지적 아우라가 어두운 체육관 내부를 압도했다.


독고영은 곽두팔의 보고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신뢰하는 사설 사냥개가 역으로 조종당해 프락치가 되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테니까. 게다가 피나클과 메가에듀는 대치동 상류층의 불법 대필 시장을 두고 오랫동안 암투를 벌여온 숙적이었다. 작은 불씨만 던져도 거대한 폭발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관계였다.


그날 밤부터 대치동 사교육계는 소리 없는 폭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독고영은 즉각 피나클의 거대 자본과 법무팀을 동원해 메가에듀를 향한 전면적인 보복 소송과 여론 플레이를 개시했다. 학부모 커뮤니티에는 메가에듀의 불법 스펙 위조 정황을 고발하는 찌라시가 실시간으로 유포되었고, 학원가 배후의 음성 자금줄을 흔드는 세무조사 압박까지 시작되었다. 대치동 입시 카르텔 내부에서 사상 초유의 거대한 밥그릇 싸움이 터진 것이다.


그리고 이 혼란은 선우에게 가장 완벽한 ‘골든타임’을 선사했다.


***


다음 날 오후, 정문고등학교 본관 5층의 방치된 폐기도서 보관소.


먼지 쌓인 책장 뒤 비밀 공간에서 선우는 싱크패드 노트북 화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화면 옆에는 최서현이 은밀하게 전송해 준 피나클 컨설팅 본사의 내부 동선 및 보안 인력 교대 시간표가 띄워져 있었다.


[최서현: 독고영이 메가에듀 법무팀과의 압수수색 대치 상황에 집중하느라 본사 보안 인력의 절반을 현장 증거 보전 신청서 제출용으로 차출했어. 오늘 밤이 피나클 본사 12층의 보안 경비가 가장 느슨해지는 유일한 빈틈이야.]


선우는 서현의 메시지를 읽으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성동격서(城東擊西)…….”


동쪽에서 소리를 지르고 서쪽을 친다. 독고영의 시선이 메가에듀라는 가짜 적에게 쏠려 있는 지금이야말로, 피나클의 가장 깊숙한 심장부인 ‘블랙 가이브’ 서버실에 침투할 유일한 기회였다.


선우는 가방 속에서 김 사장이 개조해 준 특수 암호화 프로그램을 탑재한 USB를 꺼냈다. 그리고 품 안에서 최서현이 미리 복제해 준 피나클 최고위층 전용 RFID 보안 카드를 꺼내 쥐었다. 차가운 플라스틱 카드의 촉감이 손끝을 타고 뇌세포를 자극했다.


‘오늘 밤, 강태성의 모든 대필 로그를 영구적으로 세탁한다. 그리고 피나클이 보관 중인 상위 0.1%의 추악한 비밀을 내 손에 쥔다.’


***


밤 11시 45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랜드마크인 피나클 빌딩.


화려한 유리 외벽으로 장식된 빌딩은 야간 조명을 받아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평소라면 삼엄한 사설 경비원들이 로비를 지키고 있었겠지만, 메가에듀와의 소송전 여파로 본사 행정 직원들과 보안 요원 대부분이 비상대책 회의실이 있는 12층으로 올라가 있었다.


선우는 정문고 교복을 벗고 단정한 무채색 셔츠를 입은 채, 백팩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자연스럽게 빌딩 내부로 걸어 들어갔. 그의 머릿속에서 ‘상황 수치화 기술’이 실시간으로 구동되었다.


[상황 수치화 및 실시간 확률 계산력 구동]

- 로비 CCTV 회전 주기: 15초.

- 경비원 시야각 사각지대 진입 성공률: 94.5%.

- 지하 3층 ‘블랙 가이브’ 서버실 도달 예상 시간: 3분 10초.

- 최선의 행동 지침: 엘리베이터 대신 비상계단을 이용해 지하로 침투.


선우는 안경테를 쓸어 올리며 로비 구석의 CCTV 카메라가 반대편을 향해 회전하는 15초의 틈을 정확히 포착했다. 고양이처럼 부드럽고 신속한 발걸음으로 로비를 가로지른 그는 비상구 철문을 열고 지하 계단으로 몸을 숨겼.


지하 3층으로 내려갈수록 공기는 서늘해졌고, 거대한 환풍기 돌아가는 묵직한 기계음이 고막을 두드렸다. 마침내 도달한 ‘블랙 가이브’ 서버실 입구. 이중 잠금장치가 설치된 두꺼운 강철 문이 선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선우는 최서현이 건네준 고위층 보안 카드를 리더기에 접촉했다.


띠리릭.


초록색 표시등이 점멸하며 1차 잠금이 해제되었다. 이어지는 홍채 인식기는 김 사장이 제작해 준 특수 광학 렌즈 필터를 스마트폰 카메라에 장착해 우회했다. 피나클 대표 마성진의 눈동자 패턴을 복제한 가상 이미지였다. 리더기가 렌즈의 광학 패턴을 스캔하더니, 둔탁한 금속성 마찰음과 함께 강철 문이 천천히 열렸다.


서버실 내부는 빙하기처럼 차가웠다. 수십 대의 서버 랙들이 뿜어내는 푸른색 LED 빛이 어두운 공간을 기괴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팬 돌아가는 소리가 소음 차단용 방음벽에 부딪쳐 웅웅거렸다.


선우는 신속하게 중앙 통제 콘솔로 다가갔다. 백팩에서 싱크패드 노트북을 꺼내 메인 서버 포트에 연결하고, 김 사장의 암호화 USB를 삽입했다.


타닥, 타다닥!


선우의 손가락이 자판 위를 미친 듯이 날아다녔다. 화면에는 피나클의 핵심 데이터베이스인 ‘블랙 가이브’의 보안 장벽이 실시간으로 해체되는 과정이 붉은색 코드로 흘러내렸다.


“IP 세탁 및 프록시 우회술 가동.”


선우는 발신지 IP를 스위스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의 도서관 서버망으로 위장했다. 피나클의 보안 시스템이 침입을 감지하더라도 추적 경로를 완전히 교란하기 위함이었다.


[보안 방화벽 1단계 해제 완료]

[강태성 대필 로그 탐색 중…….]


화면 중앙에 강태성의 이름으로 제출된 하버드 대비 영어 에세이와 수행평가 보고서의 원본 전송 로그들이 뜨기 시작했다. 선우는 마우스휠을 빠르게 굴리며 로그의 타임스탬프와 IP 흔적들을 스캔했다.


‘이 흔적들을 지우지 않으면, 훗날 독고영이 내 정체를 밝혀낼 단서가 된다. 완벽하게 세탁해야 해.’


선우는 특수 코딩 프로그램을 실행해 강태성의 대필 로그를 영구 삭제하는 동시에, 피나클의 공식 서버가 자체적으로 생성한 ‘정상적인 학업 수행 데이터’로 위조해 덮어씌웠. 이제 세상 그 어떤 포렌식 전문가가 들이닥쳐도 이 에세이가 대필작임을 증명할 수 없었다. 적들의 시스템 내부에서 완벽한 가짜 우상이 완성된 것이다.


[강태성 대필 로그 영구 세탁 완료]


“다음은…….”


선우의 눈빛이 극도로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USB의 두 번째 파티션을 활성화했다. 피나클 컨설팅이 지난 5년간 은밀하게 보관해 온 대치동 상위 0.1% 부유층 자제들의 불법 스펙 대필 아카이브와 뇌물 장부 파일들이 보관된 구역이었다.


이 데이터들은 훗날 3단계에서 대치동 입시 카르텔 전체를 전 국민 앞에서 폭로하고, 자신의 아버지를 파멸시킨 강산그룹을 단숨에 매장할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핵무기가 될 터였다.


[불법 대필 아카이브 복제 시작…… 10%…… 30%…….]


싱크패드 화면에 전송 프로그레스 바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차가운 서버실의 공기 속에서 선우의 이마에 미세한 땀방울이 맺혔다. 기계음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리는 밀실 속에서, 전송 속도는 야속하리만큼 느리게 느껴졌다.


[50%…… 70%…….]


그 순간, 선우의 스마트폰이 강하게 진동했다. 김 사장에게서 온 다급한 무선 경고였다.


- “선우야! 당장 뽑고 나와! 강산그룹에서 파견된 천재 보안팀장 장철민이 본사 서버의 미세한 트래픽 변동을 감지했다! 지금 실시간으로 B3 서버실 노드를 역추적하고 있어!”


선우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화면을 보니 다운로드 수치는 이제 막 85%를 넘어서고 있었다.


“조금만 더 버텨야 합니다. 이 장부가 없으면 다음 단계의 판을 짤 수가 없어요.”


- “미쳤어? 장철민 그 새끼는 국정원 출신이야! 녀석이 시스템을 잠그면 너 거기서 평생 못 나와!”


[90%…… 93%…….]


바로 그 순간, 서버실 천장의 푸른색 조명이 순식간에 적색으로 변하며 사이렌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경고: 비정상적인 트래픽 감지. 외부 침입 시도로 판정.]

[시스템 락다운(Lockdown) 프로토콜을 활성화합니다. 모든 출입구를 강제 폐쇄합니다.]


“제발…….”


선우는 이를 악물며 싱크패드 자판을 두드렸다. 장철민의 추적 패킷이 서버실 내부 포트로 들어오는 경로를 차단하기 위해 가짜 디도스 트래픽을 피나클 1층 로비의 키오스크로 분산시키는 성동격서 지략을 즉석에서 발휘했다. 보안팀의 시선을 일시적으로 분산시키는 0.1초의 연산이었다.


[97%…… 98%…… 99%…….]


철컥! 철컥!


서버실 천장에서 거대한 두께의 강철 방화 격벽들이 엄청난 무게감을 뿜어내며 바닥을 향해 내려오기 시작했다. 격벽이 완전히 바닥에 닿는 순간, 이 공간은 공기조차 통하지 않는 거대한 강철 무덤이 될 터였다.


[다운로드 완료. USB 추출 가능.]


“됐다!”


선우는 다운로드가 완료되자마자 포트를 강제로 포맷하는 명령어를 실행함과 동시에 USB를 거칠게 뽑아냈다. 싱크패드 노트북을 백팩에 쑤셔 넣는 순간에도 강철 격벽은 이미 바닥에서 불과 50cm 높이까지 내려와 있었다.


위이이이잉!


붉은 경보광이 선우의 안경 렌즈를 피빛으로 물들였다. 출구는 단 하나, 서서히 닫히고 있는 격벽 밑의 좁은 틈새뿐이었다.


선우는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렸다. 낡은 운동화가 바닥을 박차고, 차가운 금속 바닥 위로 그의 몸이 미끄러지듯 활강했다. 격벽의 날카로운 모서리가 선우의 등 뒤를 스치며 엄청난 금속성 파열음을 냈다.


쿵!!!!


서버실 전체를 울리는 거대한 충격음과 함께 강철 격벽이 바닥에 완벽히 밀착되며 먼지를 뿜어냈다. 선우는 격벽 바로 바깥쪽 복도 바닥에 엎드린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등 뒤에는 방금 전까지 자신이 서 있던 서버실이 완벽하게 폐쇄되어 있었다. 단 0.5초만 늦었어도 손가락이 잘려 나가거나 영구히 감금당했을 극단의 위기였다.


선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품 안의 USB를 확인했다. 대치동 상류층의 목줄을 쥘 불법 대필 아카이브는 무사히 그의 손에 들어와 있었다.


하지만 안도할 시간은 없었다. 비상계단 위쪽에서 무거운 구두 굽 소리와 함께 보안 요원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하 3층 서버실이다! 격벽 작동했으니 침입자는 안에 갇혔을 거다! 빨리 내려가!”


선우는 신속하게 몸을 일으켜 반대편 비상 주차장 통로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장철민의 디지털 추적을 따돌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물리적인 탈출이라는 더 가혹한 현실의 장벽이 그의 목을 죄어오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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