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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쫓는 사냥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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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의 밤은 양극단의 색으로 물든다. 대로변을 가득 메운 학원가 빌딩들은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도 대낮처럼 밝은 백색광을 뿜어내지만, 그 화려한 콘크리트 숲에서 불과 한 블록만 안쪽으로 들어서면 가로등조차 제 구실을 못 하는 음침한 골목길이 미로처럼 뻗어 있었다.


선우는 가방끈을 단단히 쥐며,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미행자의 시선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자취방 골목 초입에 정차된 검은색 외제차. 짙게 틴팅된 차창 너머로 자신을 관찰하던 차가운 눈빛의 주인은 선우가 가까워지자 슬그머니 창문을 올렸다. 스르륵, 기분 나쁜 기계음과 함께 차창이 완전히 닫혔지만, 그 너머에서 느껴지는 살벌한 적의까지 차단할 수는 없었다.


선우는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처럼 어깨를 약간 움츠리고, 안경테를 슬쩍 밀어 올리며 낡은 반지하 자취방 계단 아래로 발걸음을 옮겼. 낡은 철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렸고, 선우는 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문을 걸어 잠갔다.


방 안은 고요했다. 희미한 곰팡이 냄새와 동생 선아의 약 냄새가 섞인 익숙한 공기. 이불 속에 누워 있는 선아의 작은 어깨가 규칙적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선우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동생의 이마를 짚었다. 다행히 열은 없었다.


선우는 스마트폰을 꺼내 선아의 손목에 채워진 스마트 워치와 연동된 모니터링 앱을 켰다.


[여동생 신변 실시간 모니터링 수칙 가동]

- 대상: 이선아

- 현재 심박수: 74bpm (정상 범위)

- 실시간 GPS 위치: 대치동 변두리 반지하 자취방 (오차 범위 3m 이내)

- 보안 상태: 김 사장 독립 서버 이중 연동 완료.


‘아직은 안전해.’


선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교복 재킷을 벗었다. 가방 안쪽 지퍼 주머니에서 낮에 강 실장에게 받아낸 사채 이자 탕감 합의서를 꺼내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 보관했다. 연 24%의 살인적인 연체 이자가 공식적으로 삭감되었다는 서류. 가문의 경제적 목줄을 조이던 쇠사슬 하나를 겨우 끊어냈지만, 기뻐할 틈도 없이 새로운 사냥개가 문앞까지 들이닥쳤다.


선우는 즉각 김 사장의 비밀 회선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두 번 울리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로 김 사장의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 선우야. 무사히 들어갔냐? 너희 집 골목길에 주차된 그 외제차, 번호판 조회해 봤다.”


“역시 미행이 맞습니까?”


- “그래. 대치 퀵서비스 연합 애들 시켜서 블랙박스 화면 슬쩍 따봤는데, 대포차는 아니더군. 등록된 법인명이 ‘그림자 해결사’야. 대치동 음지에서 뒷조사 전문으로 하는 불법 흥신소지. 그 대표 놈 이름이 곽두팔이다.”


“곽두팔...”


선우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머릿속의 연산 회로가 고속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 “그놈, 보통 잔인한 놈이 아니다. 돈만 주면 납치든 협박이든 물불 안 가리는 인간 사냥개야. 피나클의 독고영이 강태성 에세이 대필 흔적을 추적하려고 그놈을 고용한 게 확실해. 독고영 그 여자, 자기 영역을 침범한 그림자 대필가의 정체를 밝혀내려고 눈이 뒤집힌 모양이다.”


김 사장의 경고는 무거웠다. 독고영은 대치동 사교육계의 정점에 선 여자다. 자신의 완벽한 포트폴리오 기획력을 위협하는 존재를 용납할 리 없었다. 사설 탐정 곽두팔을 고용해 선우의 동선을 24시간 밀착 감시하고, 대필 서류를 인쇄하는 동선을 추적해 물리적 증거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선우는 안경 너머로 어두운 방 안을 응시했다.


‘경찰에 신고하는 건 의미가 없어. 단순 미행이나 잠복 감시는 스토킹 처벌법으로 즉각적인 격리 조치를 끌어내기 어렵다. 공권력의 한계는 명백해. 곽두팔 같은 놈들은 법망의 빈틈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해결책은 하나뿐이었다. 적이 파놓은 감시망 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 역으로 적을 통제된 사각지대로 유인하는 것.


[상황 수치화 및 실시간 확률 계산력 구동]

- 곽두팔의 자취방 침입 및 납치 시도 확률: 35%

- 자취방 주변 몰래카메라 설치를 통한 증거 수집 확률: 85%

- 독고영에게 대필가 실명이 노출될 경우 복수극 파멸 확률: 100%

- 대응 전략: 가짜 대필 서류 봉투를 미끼로 던져 곽두팔을 CCTV 사각지대인 ‘대치 권투 체육관’ 지하로 유인.


선우는 책상 서랍에서 가짜 대필 초안 서류들이 가득 담긴 노란색 봉투를 꺼내 가방에 넣었다. 봉투 겉면에는 일부러 ‘피나클 에세이 초안 - 강태성’이라는 글자를 큼지막하게 적어두었다. 적들의 탐욕을 자극할 완벽한 미끼였다.


이튿날 밤, 대치동 학원가의 불빛이 하나둘 꺼져가는 시간.


선우는 가방을 품에 안은 채 의도적으로 불안한 기색을 연출하며 자취방 골목길을 나섰다. 가방 지퍼를 살짝 열어 노란색 서류 봉투의 모서리가 밖으로 노출되도록 만드는 세밀한 연출도 잊지 않았다.


골목 모퉁이에 서 있던 검은색 외제차의 전조등이 소리 없이 켜졌다. 사냥개가 미끼를 물었다.


선우는 김 사장의 무전망을 이어폰으로 수신하며 천천히 걸었다. 김 사장이 실시간으로 곽두팔의 동선을 브리핑했다.


- “선우야, 그놈 차에서 내렸다. 모자 눌러쓰고 네 뒤를 도보로 추적하기 시작했어. 거리는 약 50미터.”


선우는 입꼬리를 미세하게 올렸다. 그는 일부러 대치동 대로변을 피해,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골목길로만 경로를 잡았다. 곽두팔의 사냥개 본능은 사소한 단서에 비정상적으로 흥분한다. 선우가 가방을 꽉 움켜쥐며 뒤를 힐끗 돌아보는 행동을 취할 때마다, 곽두팔의 발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하지만 곽두팔은 노련한 탐정답게 대로변에서는 쉽게 덮치지 않았다. 확실한 물증을 잡거나, 선우를 완벽히 고립시킬 수 있는 사각지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우는 골목길의 CCTV 위치를 완벽하게 꿰고 있었다. 그는 카메라의 회전 반경과 감시 각도를 초 단위로 계산하며, 곽두팔을 대치 권투 체육관 건물 지하 통로로 유도하기 시작했다. 그곳은 체육관 관장 신재혁이 운영하는 낡은 지하 체육관으로, 야간에는 인적이 끊기고 내부 CCTV가 작동하지 않는 완벽한 물리적 폐쇄 공간이었다.


골목길의 막다른 모퉁이, 낡은 체육관 건물의 지하 계단 입구에 다다랐을 때였다.


선우는 계단 아래의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기 전, 마지막으로 자취방 담벼락 주변의 보안 카메라 홈 피드를 태블릿으로 확인했다.


자신의 반지하 방 창문 바로 옆, 어두운 시멘트 벽면으로 다가서는 검은 그림자가 화면에 잡혔다. 곽두팔이 선우를 추적하기 전, 선우가 방을 비운 틈을 타 자취방 내부를 24시간 감시할 초소형 핀홀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려 했던 것이다. 동생 선아가 홀로 누워 있는 그 신성한 공간의 담벼락에 추악한 기계를 들이밀려는 순간이었다.


선우의 눈빛이 심연보다 더 깊은 차가운 분노로 물들었다. 그의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하도록 가방끈을 움켜쥐었다.


곽두팔이 선우의 자취방 담벼락에 초소형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려는 순간, 선우가 골목 어둠 속에서 조용히 안경을 쓸어 올리며 그를 응시한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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