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실의 아바타
“이선우 군, 듣고 있는가? 어서 강태성 군에게 연락하게! 지금 당장 면접실로 들어가야 하네!”
정문고등학교 본관 2층 교무실 안쪽 탕비실. 교무부장 황국선이 선우의 어깨를 꽉 움켜쥐며 재촉했다. 그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축축한 식은땀이 선우의 얇은 교복 블레이저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황국선의 얼굴은 이미 사색이 되어 있었다. 전교 2등 민혜령 가문의 기습적인 반발과 이사장실의 압박 사이에서, 이 비리 교사는 자신의 안위가 날아갈까 극도의 초조함에 질려 있었던 것이다.
선우는 황국선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시선은 바지 주머니 속에서 소리 없이 진동하는 스마트폰 화면에 고정하고 있었다. 액정 위에는 대치동의 해킹 전문가 김 사장이 보낸 적색 경고 아이콘이 선명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경고: 면접실 주변 50m 반경 내 강력한 주파수 방해 신호(Jammer) 감지. 신호 감쇄율 99.1%. 무선 통신 두절 임박.]
선우의 머릿속에서 즉각적인 연산 회로가 구동되기 시작했다.
‘황국선이 면접 순서를 첫 번째로 바꾼 건 단순한 행정적 조치가 아니야. 민혜령 측의 눈을 속이기 위함도 있지만, 면접실 주변에 군사용 수준의 전파 차단기를 가동해 내 무선 지시를 완전히 차단하려는 덫이다. 태성이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임 교수 앞에서 입을 여는 순간, 녀석의 지적 백치 상태가 폭로되고 내 대필 각본도 파멸한다.’
[상황 수치화 구동]
- 면접실 내부 전파 차단기 작동 강도: 극상 (LTE, 5G, 표준 Wi-Fi 대역 전면 차단).
- 강태성의 자발적 답변 성공 확률: 0.1% 미만.
- 무선 신호 두절 시 대필 포트폴리오 허위 폭로 확률: 99.9%.
- 최선의 대응책: 교내 전산망의 사각지대 유선 포트를 해킹하여 우회 무선 터널 개설.
“네, 부장님. 즉시 대기실로 가서 강태성 학생이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우는 황국선에게 평소처럼 둔하고 유순한 학생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황국선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교무실로 돌아가자, 선우는 즉각 발걸음을 돌려 본관 5층의 방치된 폐기도서 보관소 아지트로 질주했다. 계단을 뛰어오르는 선우의 심장 소리가 차가운 복도 벽에 부딪쳐 쿵쾅거렸다.
아지트 문을 열고 들어서자 먼지 냄새와 함께 차가운 공기가 선우를 맞이했다. 선우는 책상 뒤 비밀 틈새에 숨겨두었던 낡은 싱크패드 노트북을 켜고 자판을 미친 듯이 두드리기 시작했다. 화면 중앙에는 빨간색 경고등과 함께 ‘CONNECTION LOST’라는 문구가 차갑게 깜빡이고 있었다. 태성의 귀에 심어둔 초소형 이어폰과의 연결이 완전히 끊긴 상태였다.
“김 사장님, 들리십니까? 면접실 주변에 가동된 차단 장치 때문에 표준 대역 주파수가 완전히 죽었습니다.”
선우가 헤드셋 마이크에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수리점 지하에 있던 김 사장의 거친 목소리가 노이즈 섞인 음성으로 돌아왔다.
- “어, 선우야. 황국선 그 야비한 새끼가 사설 보안 업체 장비를 들여온 모양이다. 특정 대역 주파수를 아주 촘촘하게 뭉개고 있어. 일반적인 신호 증폭기로는 절대 안 뚫려.”
선우는 안경테를 쓸어 올리며 화면의 트래픽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의 날카로운 안광이 싱크패드의 검은 콘솔 창에 흐르는 난수들을 스캔했다.
‘아니, 틈이 있어. 학교 전체에 깔린 CCTV 제어망은 무선이 아니라 하드웨어 동축 케이블로 연결되어 있지. 그리고 학교 매점의 결제용 POS 단말기는 차단기 영향권 밖에 있는 외부 망을 사용하고 있어.’
선우는 즉각 교내 CCTV 제어 시스템의 백도어를 가동했다. 지난번 오현태를 포섭할 때 심어두었던 우회 포트였다. 선우는 CCTV 망의 유선 대역폭을 가로채 매점 알바생이 사용하는 무선 공유기의 특정 사설 주파수 대역과 강제로 브리핑 터널을 연결했다.
타닥, 타타타탁!
선우의 손가락이 자판 위에서 잔상을 남기며 움직였다. 뇌의 전두엽이 한계까지 활성화되면서 관자놀이 부근의 혈관이 미세하게 떨렸다. 마침내 싱크패드 화면의 적색 경고등이 노란색을 거쳐 녹색의 ‘STABLE’로 전환되었다.
[우회 네트워크 터널 개설 완료. 신호 강도 74% 복구. 실시간 음성 동기화 재개.]
“후우...”
선우는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헤드셋을 고쳐 썼. 화면에는 면접실 내부의 소리가 실시간 텍스트로 변환되어 출력되기 시작했다.
***
같은 시각, 정문고등학교 본관 2층 제1면접실.
무거운 참나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가짜 천재 강태성이 단정한 교복 차림으로 꼿꼿이 앉아 있었다. 그의 맞은편에는 주름진 얼굴에 안경 너머로 지적인 안광을 번뜩이는 S대 입학처장 임 교수가 앉아 있었다. 임 교수의 손에는 선우가 매일 밤 고시원 단칸방에서 피를 흘리며 대필했던 태성의 화학 보고서가 들려 있었다.
태성은 겉으로는 오만하고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셔츠 안쪽의 등판은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귓속 깊숙이 박힌 살색 이어폰에서 지독한 기계음과 노이즈만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선우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태성은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는 텅 빈 그릇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이 엄격한 노교수 앞에서 폭로되기 직전임을 직감하고 공포에 떨고 있었다.
임 교수가 안경을 고쳐 쓰며 보고서의 한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강태성 학생. 제출한 ‘유기 촉매를 이용한 수소 결합 에너지 제어’ 보고서를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고등학생의 논문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열역학적 접근이 정교하더군요.”
“...감사합니다, 교수님. 밤새워 연구한 보람이 있네요.”
태성은 선우가 가르쳐 준 대로 짐짓 겸손한 척 답변했지만, 목소리의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임 교수의 눈매가 날카롭게 좁혀졌다. 그는 돈으로 바른 가짜 스펙을 가장 혐오하는 학문적 원칙주의자였다. 태성의 평소 형편없는 학업 이력과 이 보고서의 압도적인 학술적 깊이 사이의 괴리를 임 교수가 놓칠 리 없었다.
“그렇다면 질문을 드리죠. 이 보고서 12페이지를 보면 촉매 개입에 따른 깁스 자유에너지 변화와 엔탈피의 상관관계가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 유도 과정을 바탕으로, 수소 결합의 열역학적 평형 상수가 촉매 농도 변화에 따라 어떻게 유도되는지 칠판에 직접 수식으로 증명해 보겠습니까?”
기습적인 송곳 질문이었다. 교과서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대학원 예비 과정 수준의 고난도 열역학 수식 증명 요구였다.
태성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깁스 자유에너지가 무엇인지, 엔탈피가 무엇인지 녀석은 단 하나의 개념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칠판 앞에 서는 순간 자신의 무식이 만천하에 드러날 터였다. 태성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노이즈로 가득했던 태성의 귓속 이어폰에서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차갑고 나지막한 선우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내리꽂혔.
- “태성아. 허리 펴고 턱을 당겨. 그리고 ‘3초 버퍼링 규칙’을 실행해.”
선우의 목소리를 들은 태성은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안도의 숨을 들이쉬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상체를 곧게 세우며 턱을 만졌다. 짐짓 깊은 학술적 고민에 잠긴 천재의 모습을 연출하는 3초간의 침묵.
5층 아지트에서 선우는 싱크패드 화면을 주시하며 뇌 세포를 극한으로 쥐어짜고 있었다. 임 교수가 던진 질문의 논리 구조를 해체하고, 열역학 평형 상수 K의 유도 공식을 머릿속에서 실시간으로 연산했다.
- “자, 천천히 일어나서 칠판으로 걸어가. 분필을 잡고 내가 불러주는 수식을 그대로 적어라. 리듬을 타는 거야. 시작한다.”
태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교탁 옆 대형 칠판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손에 들린 하얀색 분필이 미세하게 떨렸다.
- “적어라. dG는 dH 마이너스 T dS.”
태성이 칠판에 서투르지만 단호한 필체로 수식을 적기 시작했다.
“\( dG = dH - TdS \)”
임 교수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 “다음 줄. 평형 상태에서 dG는 0이므로, dH는 T dS가 성립한다. 그리고 반트 호프 방정식을 유도하기 위해 ln K는 마이너스 RT 분의 델타 H 플러스 R 분의 델타 S를 적어.”
선우의 차분한 음성이 태성의 고막을 울렸다. 태성은 자신이 무슨 뜻을 적고 있는지도 모른 채, 오직 선우가 읊어주는 문자들의 궤적을 칠판 위에 복제해 나갔.
“\( \ln K = -\frac{\Delta H}{RT} + \frac{\Delta S}{R} \)”
칠판 위에 하얀 분필 가루가 날리며 정교한 열역학 반응식이 완성되어 갔다. 임 교수는 자리에서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태성의 손끝을 유심히 관찰했다. 필적의 망설임, 수식의 논리적 비약 여부를 검증하려는 예리한 시선이었다.
- “마지막 쐐기다. 이 식을 촉매 농도 C에 대해 미분하면, 촉매 개입에 따른 평형 상수의 변화율 d ln K over dC는 마이너스 RT 분의 1 곱하기 d 델타 H over dC가 된다. 적어.”
태성이 마지막 수식을 칠판에 쾅 점을 찍으며 완성했다.
“\( \frac{d \ln K}{dC} = -\frac{1}{RT} \frac{d(\Delta H)}{dC} \)”
태성이 분필을 내려놓고 임 교수를 향해 거만하게 돌아섰다.
“촉매 농도 변화에 따른 수소 결합의 열역학적 평형 상수의 유도 과정입니다, 교수님. 촉매가 개입하면 활성화 에너지가 감소하여 평형 상수의 온도 의존성이 변화하게 되죠.”
면접실 내부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황국선 교무부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임 교수의 표정을 살폈다.
이윽고, 임 교수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그는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군요. 고등학생이 깁스 자유에너지의 미분 형태를 촉매 농도 변수와 연계해 유도해 낼 줄은 몰랐습니다. 이 보고서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이 완벽히 해결되었네.”
임 교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태성의 장학금 추천서 서류 상단에 ‘최우수 1순위’ 서명을 날인했다. 정문고 이사장 특별 장학금의 수혜자가 강태성으로 최종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5층 아지트에서 헤드셋을 통해 임 교수의 서명 소리를 들은 선우는 그제야 싱크패드의 전원을 껐다. 긴장이 풀리자 코끝에서 붉은 피 한 방울이 툭 떨어져 책상 위에 번졌다. 선우는 손등으로 피를 닦아내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첫 번째 전리품을 확보했다, 강태성.’
***
몇 시간 뒤, 해가 저물어가는 대치동의 음침한 지하 사채 사무실.
선우는 사채업자 강 실장의 책상 앞에 서 있었다. 강 실장은 태성이 장학금 수혜자로 최종 선발되었다는 정문고의 공식 공문을 내려다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금고에서 두꺼운 서류철을 꺼내 선우의 눈앞에 던졌다.
“과연 대치동의 그림자 브레인다운 솜씨야. 약속은 지킨다, 이선우.”
강 실장이 던진 서류는 ‘대성파이낸셜 사채 이자 탕감 서류’였다. 선우의 외삼촌이 도용했던 불법 보증 채무의 살벌한 연체 이자 연 24%를 전액 무효화한다는 법적 합의서였다. 선우는 강 실장과의 사채 계약 원본의 이자 조항이 붉은 펜으로 그어지는 것을 똑똑히 확인했다. 동생 선아의 수술비 확보에 이어 가문을 옥죄던 경제적 사슬의 일부를 자신의 지력으로 끊어낸 순간이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다음 과제도 차질 없이 준비하겠습니다.”
선우는 서류를 가방에 소중히 넣고 사채 사무실을 나왔다.
밤공기는 차가웠지만, 선우의 가슴속에는 묵직한 해방감과 복수의 투지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가짜 우상 강태성을 가장 높은 곳으로 올려놓은 뒤 추락시킬 설계도가 이제 막 첫 번째 실행 단계를 완벽히 마친 것이다.
선우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대치동 변두리의 낡은 자취방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내리쬐는 좁은 골목길 초입에 이르렀을 때, 선우의 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자신의 초라한 반지하 방 건물 앞,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광택이 흐르는 고급 검은색 외제차 한 대가 어둠 속에 조용히 주차되어 있었다.
선우가 다가가자, 외제차의 짙게 틴팅된 창문이 스르륵 내려갔다. 그 어두운 차창 너머로, 선우의 일거수일투족을 집요하게 관찰하는 차갑고 예리한 시선이 번뜩였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