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레이와 플래시, 사법의 덫
콰강!
녹슨 철제 자물쇠가 비명을 지르며 뜯겨 나갔다. 부서진 나사못들이 바닥에 흩어지며 둔탁한 금속음이 밀실의 정적을 찢어발겼다. 열린 문틈 사이로 들이닥친 것은 밤비에 젖은 비린내와, 그보다 더 퀴퀴한 살의였다.
“여기 맞네. 3층 구석방.”
어둠을 가르는 강렬한 플래시 불빛이 먼지 쌓인 물리실험실 내부를 훑었다. 불빛의 종착지는 방 한가운데 놓인 대리석 책상, 그리고 그 뒤에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송현우였다.
플래시 불빛 뒤로 드러난 배강두의 얼굴은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한쪽 뺨을 가로지르는 칼자국 흉터가 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그의 손에는 자물쇠를 부순 쇠지렛대와 1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두꺼운 쇠파이프가 쥐어져 있었다. 그 뒤로 덩치 큰 일진 두 명이 복도를 막아서며 퇴로를 완전히 차단했다.
“음침한 쥐새끼처럼 여기서 숨어 있었냐? 오태식 그 병신을 아주 제대로 담가놨더만.”
배강두가 쇠파이프를 바닥에 툭툭 치며 천천히 걸어 들어왔. 쿵, 쿵, 거구의 체중이 실린 발소리가 바닥을 타고 현우의 뼈마디를 울렸다.
그 순간, 현우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통제할 수 없는 냉기가 치솟았다. 폐가 쪼그라들고 목구멍이 틀어막히는 감각. 2년 전 겨울, 동생 민우가 구관 옥상 철문 앞에서 울부짖던 환청이 귓가를 때렸다. 쇠파이프가 바닥을 긁는 소리는 민우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던 가해자들의 비열한 웃음소리와 완벽하게 겹쳐졌다. 호흡이 가빠지고 시야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공황 발작의 기습이었다.
‘안 돼. 여기서 무너지면 전부 끝이다.’
현우는 주머니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손끝에 닿은 가죽 다이어리의 날카로운 모서리. 그는 망설임 없이 엄지손톱으로 그 모서리를 사정없이 짓눌렀다. 살점이 뜯겨 나가고 끈적한 피가 배어 나오는 극심한 통증이 신경을 타고 뇌로 직격했다.
‘포커페이스 앵커링(Pokerface Anchoring).’
육체적 고통이 정신적 패닉을 강제로 억누르자, 흐려지던 현우의 눈동자에 다시 차가운 이성이 돌아왔다. 그의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듯 대리석처럼 차갑게 얼어붙었다. 호흡이 일정한 주기를 되찾았다.
“누가 보냈지?”
현우의 목소리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차분했다. 150Hz 대역의 낮고 단단한 저음. ‘로우 톤 디클레어’의 변형이었다.
배강두는 멈칫했다. 눈앞의 샌님이 공포에 질려 빌거나 도망치기는커녕, 자신을 벌레 보듯 내려다보는 눈빛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강두는 본능적인 불쾌감에 얼굴을 구겼다.
“뭐라는 거야, 이 씹새끼가. 오태식이 무너지니까 네가 뭐라도 된 줄 아나 본데, 우린 그 병신이랑 체급이 달라.”
“오태식은 도구였을 뿐이지. 묻지 않았다. 오태식이 아니라, 너희에게 이 방을 부수고 나를 짓밟으라고 지시한 배후를 묻는 거다. 김철수인가?”
현우는 나직하게 말을 이어가며, 교복 깃 안쪽에 숨겨진 만년필 모양의 초소형 고성능 녹음기 마이크 방향을 미세하게 조정했다. 녀석의 입에서 직접 배후의 이름이 나와야 했다. 그것이 사법적 덫의 완성 조건이었다.
“하! 김철수?”
배강두가 비열하게 낄낄거렸다. 지능이 낮고 다혈질인 녀석은 자신이 지금 어떤 덫에 발을 들이고 있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철수 이름이 왜 네 입에서 나와? 그래, 철수가 이 구관 쓰레기 장소랑 너 같은 쥐새끼들 싹 정리하라고 하더라. 병원 신세 좀 지고 나면 다이어리니 뭐니 쓸데없는 짓거리 못 하겠지? 오늘 네 다리를 분질러 놓으라고 하셨거든.”
완벽한 자백이었다. 현우의 주머니 속 녹음기 지시등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붉게 깜빡였다.
“그래, 확실하게 들었어.”
현우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 냉소적인 미소를 본 배강두의 이성이 완전히 끊어졌다.
“이 새끼가 끝까지 기어오르네! 죽어라!”
배강두가 거구의 몸을 날리며 쇠파이프를 치켜들었다. 웅하는 파공음과 함께 묵직한 철퇴가 현우의 머리를 향해 사정없이 내리눌러졌다. 일반적인 고등학생이라면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싸 쥐었을 순간.
하지만 현우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이미 책상 모퉁이에 놓인 작은 스프레이 용기로 향해 있었다.
‘지금이다.’
배강두의 쇠파이프가 현우의 이마 앞 50센티미터 사정거리 안으로 진입한 찰나, 현우는 스프레이 노즐을 향해 강하게 손가락을 내리눌렀다.
피식! 콰아아앙!
그것은 호신용 페퍼 스프레이가 아니었다. 현우가 직접 개조한 ‘모형 스프레이 경보기’였다.
정적을 깨고 구관 전체를 흔드는 120데시벨의 찢어지는 듯한 사이렌 고음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스프레이 노즐 끝에 매립되어 있던 고성능 LED 광원 모듈에서 5,000루멘의 초고광도 스트로보 플래시가 어둠을 찢어발기며 연속으로 폭발했다.
번쩍! 번쩍! 번쩍!
“아아악!”
어둠에 완벽히 적응해 있던 배강두의 동공이 급격히 수축했다. 망막을 태워버릴 듯한 백색 섬광과 고막을 찢는 사이렌 소음이 그의 오감을 완벽히 마비시켰다. 뇌가 일시적인 인지 불능 상태에 빠진 배강두는 내리치던 쇠파이프를 궤도 밖으로 떨어뜨리며 제 자리에 주저앉았다. 주먹을 쥐고 다가오던 뒤쪽의 일진들도 눈을 움켜쥐고 비명을 지르며 복도로 비틀거렸다.
“내, 내 눈! 씨발, 안 보여! 귀가……!”
배강두가 눈을 감은 채 허공을 향해 쇠지렛대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날카로운 쇠끝이 대리석 책상 모서리를 때려 불꽃이 튀었다.
현우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반 걸음 앞으로 파고들었다. ‘비언어적 공간 침범(Space Invasion Defense)’의 실전 적용이었다. 눈이 먼 가해자의 동물적인 공포를 역이용하는 전술. 현우는 독고다이처럼 정면으로 다가가 배강두의 무게중심이 쏠린 허벅지 안쪽을 강하게 걷어찼다.
“억!”
중심을 잃은 배강두의 거구가 바닥에 흩어진 깨진 유리 기구 더미 위로 요란하게 쓰러졌다. 쨍그랑! 유리 파편들이 흩어지며 배강두의 손등과 뺨에 자잘한 상처를 냈다.
그 순간, 정확히 10시 08분.
청소부 김 씨가 건네준 ‘야간 순찰 플래시 타임테이블’의 시간표와 단 1초의 오차도 없이, 물리실의 부서진 철문 너머로 묵직한 발소리가 들이닥쳤.
“이 새끼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강렬한 서치라이트 불빛이 물리실 내부를 하얗게 비추었다. 문을 부수고 나타난 것은 거구의 야간 경비원, 강철민이었다. 부러진 코뼈 흉터 위로 분노가 서린 전직 유도 선수 출신의 경비원은 쇠파이프를 들고 발악하는 배강두 일당의 모습을 한눈에 포착했다.
“경비 아저씨! 이 새끼들이 무단으로 침입해서 쇠파이프로 때리려고……”
복도에 서 있던 일진 한 명이 도망치려 발버둥 쳤지만, 강철민의 거대한 손아귀가 그의 덜미를 낚아챘다.
“어딜 도망가, 이 새끼야!”
강철민은 유도 기술인 밭다리후리기로 도망치려던 일진의 다리를 걸어 그대로 시멘트 바닥에 메쳤다. 쿵! 단단한 신체가 바닥에 부딪치는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일진이 비명을 지르며 기절하듯 쓰러졌다.
눈이 멀어 쇠지렛대를 휘두르던 배강두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려 했지만, 강철민은 이미 그의 배후를 잡고 있었다. 강철민은 배강두의 오른팔을 등 뒤로 꺾어 올리며 무릎으로 그의 척추를 강하게 내리눌렀다.
“아아악! 팔! 팔 부러져요!”
“입 닥쳐! 야간에 쇠파이프 들고 구관에 침입해? 너희 오늘 제대로 임자 만났다.”
강철민의 압도적인 물리적 제압 앞에, 오태식 패거리의 핵심 타격대원이라 불리던 배강두는 흙먼지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나머지 한 명은 경비원의 기세와 사방을 가득 채운 경보기 소음에 압도되어 스스로 무릎을 꿇고 손을 들어 올렸다.
현우는 조용히 경보기의 노즐을 다시 돌려 사이렌을 껐다. 귀를 찢던 소음이 사라지자, 물리실 내부에는 배강두의 신음 소리와 깨진 유리가 밟히는 서늘한 소리만이 남았다.
“송현우 학생, 괜찮나? 다친 데는 없고?”
강철민 경비원이 배강두를 제압한 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현우를 바라보았다.
“네, 경비 아저씨. 덕분에 살았습니다. 미리 말씀드린 대로 야간 무단 침입 현행범들이네요.”
현우는 차분하게 교복 매무새를 정리했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고, 엄지손가락 끝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지만 표정만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이 녀석들, 바로 학생부실과 경찰서로 인계하겠습니다. 자물쇠를 부수고 무기를 소지한 채 침입했으니 특수주거침입 및 특수협박죄가 성립됩니다.”
강철민은 혀를 차며 무전기를 켰다.
“경비실, 경비실. 여기 구관 3층 물리실이다. 야간 무단 침입 및 특수 폭행 미수 학생 세 명 확보했다. 즉각 경찰 신고하고 학생부장 장동식 선생한테 연락해.”
배강두 패거리는 강철민 경비원의 거대한 손에 이끌려 비틀거리며 복도 밖으로 끌려 나갔다. 그들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현우는 조용히 칠판 옆 비밀 슬라이딩 레일을 밀었다.
스르륵.
준비실 암실 문이 열리고, 노트북 가방을 품에 꼭 안은 채 사색이 된 박준영이 걸어 나왔다. 준영의 다리는 눈에 띄게 덜덜 떨리고 있었다.
“선배…… 진짜,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준영아, 노트북 켜.”
현우는 흔들림 없이 지시했다.
“네? 하지만 방금 상황이 끝났는데……”
“내일 아침 장동식 학생부장이 출근하면, 이 사건을 어떻게든 ‘학생들 간의 사소한 야간 다툼’으로 은폐하려 들 거다. 배강두의 배후에 김철수가 있으니까. 장동식은 즉각 구관 CCTV 원본 파일부터 삭제하려 하겠지. 그러니까 지금 당장, 제어실 서버의 백업 경로를 확보해야 해.”
준영은 현우의 치밀함에 소름이 돋았다. 방금 목숨이 오가는 폭력 상황을 겪고도, 현우의 뇌는 이미 내일 아침 적들이 취할 행정적 방어 행동을 3수 앞까지 계산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할게요.”
준영이 서둘러 노트북을 펼치는 사이, 현우는 바닥에 떨어진 깨진 비커의 유리 파편들을 조용히 밟으며 일어섰. 서걱, 서걱, 유리가 으깨지는 차가운 소리가 어두운 방안에 울렸다.
현우는 주머니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자동 저장된 실시간 녹음 파일이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그는 재생 버튼을 눌렀다.
- ……그래, 철수가 이 구관 쓰레기 장소랑 너 같은 쥐새끼들 싹 정리하라고 하더라. 오늘 네 다리를 분질러 놓으라고 하셨거든.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배강두의 멍청하고 확실한 음성 자백.
현우의 입꼬리가 호선으로 비틀리며 차가운 미소가 어둠 속에 피어올랐다. 동생 민우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절대적인 포식자, 김철수의 꼬리가 마침내 사법의 덫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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